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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10년 다진 경영권 기반 휘청

Issue - 10년 다진 경영권 기반 휘청

검찰 압수수색 이어 출국금지 … 실적 부진, 정부 규제, 검찰 수사 3중고



“검찰에서 수 년 전부터 별렀다. 준비 기간을 갖고 증거를 포착했다.” 법조계의 한 익명 취재원은 이같이 전했다. 이재현 회장 수사가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게 아니라 5년 간 치밀하게 들여다 본 결과라는 것이다. 2008년부터 이어진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검찰의 질긴 악연이 재연됐다. 이 회장의 탈세와 비자금 조성, 편법증여 의혹을 놓고 수사망을 좁히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윤대진)는 5월 21일 CJ그룹 본사와 임직원 자택을 압수수색 했다. CJ그룹이 해외에서 탈세로 조성한 비자금 일부인 70억여원을 국내에 반입한 정황도 포착했다.

검찰은 5월 24일 서울지방국세청에서 넘겨받은 2008년 이후 CJ그룹의 세무조사 자료와 압수수색 자료를 대조하면서 비자금 조성 경위·흐름을 수사했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이 홍콩에서 3500억원의 비자금을 운용했고, 차명 재산만 32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했다.

특히 2002년 그룹 회장 취임 때부터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은 차명 재산 일부를 자녀에게 넘긴 사실도 확인해 수사 중이다. 이 회장의 누나인 이미경 CJ E&M 부회장을 비롯한 그룹 총수 일가와 전·현직 임직원에 대한 수사망도 좁혔다. 검찰은 이 회장 등 3남매를 출국금지 조치했다. 이 회장이 취임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은 것이다.

재계는 바짝 긴장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재계를 겨냥한 사실상의 첫 비자금 수사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새 정부의 ‘재벌 길들이기’가 본격화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SK와 한화 총수가 실형을 살고 있는 상황에서 CJ가 검찰 조사를 받자 그 다음은 어디냐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전했다. CJ그룹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룹 관계자는 “지금으로선 수사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검찰 “2008년부터 내사”CJ그룹과 검찰의 악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8년 당시 이 회장이 전 재무팀장 이모(44)씨를 통해 차명계좌 40여개로 비자금 수천억원을 관리한 것으로 확인돼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이 회장은 세금 1700억원을 내면서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의 상속 재산이라고 밝히고 수사망에서 벗어났다. 2009년엔 CJ그룹과 천신일 세중나모그룹 회장 사이 편법 거래 의혹이 불거졌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2008년 국세청의 CJ그룹 세무조사 때 천 회장이 로비를 벌인 의혹을 조사했다. 결과는 무혐의였다.

검찰은 5년간 이 회장의 비자금 의혹을 추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재무팀장의 USB를 분석해 이 회장에게 쓴 편지를 복원하고 증거자료로 입수했다. 검찰은 2008년 당시 증거가 있는데도 경찰 수사가 미진했고 이후 이 회장의 차명 재산이 드러났는데도 국세청이 검찰에 고발하지 않고 세금 1700억원만 부과한 점을 추가로 조사할 계획이다. CJ-경찰-국세청으로 이어지는 ‘이재현 회장 구하기’ 기류가있지 않았는지를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CJ그룹은 1953년 이병철 회장이 설립한 제일제당이 모태다. 1996년 삼성에서 분리돼 제일제당그룹으로 출범했다. 2002년 CJ로 사명을 바꾸고 이후 식품·식품서비스 외에 유통·엔터테인먼트·미디어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223개의 계열사(해외법인 포함)를 보유했다. 주요 계열사는 CJ제일제당·CJ CGV·CJ대한통운·CJ E&M·CJ헬로비전·CJ오쇼핑·CJ프레시웨이·CJ건설·CJ푸드빌 등이다.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은 26조원으로 재계 14위다.

이재현 회장은 공격적인 경영 스타일로 회사를 키우며 승승장구했다. 그는 이병철 회장의 손자다. 이병철 회장의 장남으로 이건희 삼성 회장의 맏형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아버지다. 아버지는 삼성가 경영권 승계에서 배제돼 야인(野人)이 됐지만 제일제당그룹을 맡은 아들은 달랐다.

이재현 회장은 2002년 3월 대표이사로 취임한 후 같은 해 10월 CJ그룹으로 사명을 바꾸면서 경영권 기반을 다지는 데 힘썼다. 사업 영역을 넓히면서 외삼촌인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의 도움을 받아 경영권을 장악했다. 현재 이재현 회장의 CJ 지분은 42.3%로 그룹 내 위상이 막강하다. 누나인 이미경 부회장이 가진 그룹 지분은 적으며 동생인 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는 지분이 없다.



CJ 주가 하락세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 회장은 CJ제일제당과 CJ대한통운 등 8개 계열사 등기 이사다. CJ제일제당 주주인 국민연금은 3월 주주총회에서 이 회장 이사 선임에 반대했다. 그룹 총수가 사내이사를 너무 많이 겸임해 이사회 독립성을 떨어뜨린다는 이유에서다.

시민사회는 과한 사내이사 겸임이 총수의 그룹 내 위상을 키우면서 페이퍼 컴퍼니 설립과 비자금 조성을 조장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여론 악화가 검찰 수사에서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CJ그룹은 “이 회장의 사내이사 겸임은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검찰은 확보한 증거물 분석과 계좌 추적, 이 회장 외 관련 임직원 소환조사 등으로 당분간 수사에 주력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와 홍콩 등 해외에 법인자금을 빼돌린 혐의를 캐낼 예정이다. 이 회장 외에 총수 일가로 수사 범위가 넓어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사정당국은 이 회장의 경영권이 탄탄해 SK·한화와 달리 경영권 방어보다는 일가가 쓸 목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본다. 검찰은 금융정보분석원(FIU) 등 관련 기관의 협조를 받아 CJ의 해외 계좌거래내역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CJ그룹은 이번 수사로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경기 침체로 실적이 좋지 않은데다 올 들어 정부의 동반성장 규제로 CJ푸드빌을 비롯한 계열사가 출점 제한을 받았다. 여기에 총수 리스크 또는 경영권 약화라는 악재가 겹쳤다. CJ의 5월 24일 종가는 12만4000원으로 3월 초 15만원 고지를 돌파했던 것에 비해 하락세가 뚜렷하다. CJ그룹 임직원과 투자자들의 시름이 깊어졌다.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서류 형태로 존재하는 회사. 영업 활동은 자회사를 통해 하고 법적으로 회사자격이 있어 유령회사는 아니다. 세금 절감 목적으로 버진아일랜드나 라이베리아 등 세계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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