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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SOCIETY - 혼전 동거는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FEATURES SOCIETY - 혼전 동거는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상대방에 대한 신비감 줄어들고 마음의 상처 남길 수 있는 반면 친밀감과 신뢰감 쌓으며 결혼으로 이어지는 계기 되기도 해



연인과 함께 동거를 시작할 때는 이런저런 기대를 품게 마련이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그 생활은 다음 둘 중 한 가지 방식으로 끝나게 돼 있다. 결혼이라는 결실로 이어져 평생을 함께할 든든한 기반이 되든가, 아니면 서로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눈더미처럼 쌓인 채 등을 돌리든가 말이다.

요즘은 후자의 위험을 무릅쓰고 기꺼이 동거를 시작하는 여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많다. 미국 국가보건통계청(NCHS)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15~44세 미국 여성의 ‘이성 간 첫 결합(first union)’ 중 48%가 동거의 형태를 띤다. 이 보고서의 대표 저자는 요즘 미국에선 혼전 동거가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보고서에서는 또 동거 커플 중 약 40%가 3년 안에 결혼에 이른다고 밝혔다. 연구원들은 성혁명부터 생활비 분담의 편리성까지 문화·경제적 영향을 이런 변화의 요인으로 지적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과 비교할 때 결혼 전에 직업상의 목표와 개인적 기대를 충족시키고 싶어하는 젊은이가 훨씬 더 많아졌다.

혼전 동거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인 코넬대 정책분석 및 관리학과 부교수 섀런 새슬러의 말을 들어보자. “그들은 결혼 전에 학업을 마치고, 직장에서 일정 목표를 성취하며, 누군가의 배우자가 될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따라서 결혼 연령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높아진 반면 동거를 시작하는 연령은 그렇지 않다.”

대다수 커플, 특히 젊은 커플들은 동거를 결정할 때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동거 생활에는 약혼과 맞먹는 이점과 문제점이 따르는 데도 말이다. 따로 살던 두 사람이 한 집으로 살림을 합치는 데서 오는 편리함과 금전적 절약이 동거를 결정하는 가장 큰 동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요즘 미국의 동거 커플들은 1994년까지만 해도 결혼한 커플에게만 주어지던 의료보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런 혜택이 아니었다면 비싼 개인보험료를 지불해야 했을 프리랜서와 사업가들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부동산 가격과 임대료가 터무니없이 비싼 도시에서 따로 살고 있는 커플이라면 다음과 같은 이유가 동거를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우린 이미 거의 매일 밤을 같이 보내는데 매번 누구 집에서 잘지를 놓고 입씨름을 벌인다. 함께 살 곳을 마련해 이사하면 그런 문제도 해결되고 꽤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아니면 적어도 서로를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뉴욕에 사는 케이틀린 스미스(25)도 이런 이유에서 동거를 결정했다. 그녀는 2년 전 뉴욕으로 이사한 직후 남자친구를 만났고 한 패션 잡지에서 편집 보조 일자리를 얻었다. “뉴욕에 온 뒤 크레이그리스트(뉴욕의 생활정보 사이트)에 소개된 단기 임대 아파트를 전전했다”고 스미스는 말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렇게 끊임없이 옮겨다니는 게 바보 같은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자친구와 함께 살기로 결심했고 그도 동의했다. 두 사람 다 집세가 많이 절약됐다.” 그녀는 결혼에 대해서는 “남자친구와 진지하게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동거 커플들도 꼭 결혼을 원해서 함께 사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 결혼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가능성은 열어놓는다. 두 살 연상의 남자친구와 3년 동안 사귀었고 6개월째 동거 중인 소피아 바가스(23)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 아이의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등과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남자친구도 나도 언젠가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게 목표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이야기를 굳이 입밖에 낼 필요는 없다. 두 사람 다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가 일이 잘못되는 걸 원치 않는다.” 다시 말해 그녀는 동거 생활이 성공적으로 유지돼 결혼으로 이어지기를 바라지만 “결혼을 목표로 인생을 계획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바가스보다 나이와 경험이 더 많은 앨리슨 다일키(46)는 혼전 동거를 추천한다. 그녀는 “결혼 전 두 명의 남자와 각각 3년, 2년 동안 동거했다. 만약 그렇게 시험삼아 살아보지 않았다면 둘 중 한 사람과 결혼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다일키는 그 두 사람이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해 아들을 낳고 21년째 살고 있다. “연인의 어떤 사소한 측면이 신경에 거슬릴 때 대다수 사람은 그런 측면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그녀는 말했다.



메레디스 빅슬(28)은 남자친구 그레이엄과 함께 살기로 결정했을 때 결혼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나머지 생을 함께 보내는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들이 동거를 시작했을 때도 둘 사이엔 문제가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깔끔한 성격의 빅슬은 그레이엄이 (적어도 이전 룸메이트들보다) 깨끗하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의 살림 솜씨가 자신의 수준에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기대가 허물어졌을 때 그렇게 화가 날 줄 몰랐다”고 그녀는 말했다. 처음 얼마 동안 빅슬은 그레이엄이 밥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묵묵히 그 일을 대신했다. 하지만 몇 달 동안 그렇게 살면서 감정이 쌓일 대로 쌓여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그녀는 그레이엄이 있는 쪽으로 TV 리모콘을 집어던질 뻔했다.

요즘 그레이엄은 집안 일을 더 열심히 하고, 빅슬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불만이 있을 때는 그때 그때 말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둘 사이도 예전 같지 않아졌다. “이제 더는 신비감이 없다”고 빅슬은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에게서 실망한 듯한 기색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빅슬은 남자친구와 동거하면서 둘의 관계에 생긴 불가피한 변화를 잘 받아들인 듯하다.

하지만 남자친구와 동거 중인 내 친구들은 모두 둘의 관계가 예전보다 신비감이 덜하고 덜 낭만적이며 섹시한 느낌도 훨씬 줄었다며 불만을 표한다. 그들은 처음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의 흥분이 가라앉으면 서서히 낭만적인 분위기가 사라지면서 친구처럼 편한 사이가 된다고 말했다.

물론 여기엔 심리적학적인 이유가 있다. 이런 경향은 ‘쾌락적응(Hedonic adaptation, 원하는 행복을 얻고난 뒤 일정 시간이 흐르면 그것을 얻기 전과 비슷한 상황이 되고 또 다른 행복을 갈구하게 되는 현상)’, 또는 경험과 변화에 적응하는 인간 본연의 능력에 기인한 것으로 설명된다.

저서 ‘행복의 신화(The Myths of Happiness)’에서 쾌락적응의 역할을 논한 소냐 류보머스키는 “어떤 관계도 뜨거운 열정을 영원히 유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함께 살면 쾌락적응의 속도가 더 빨라진다. 화장실은 말할 것도 없고 생활 공간을 누군가와 함께 나눌 때 그 사람에 대한 신비감을 유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남자친구와 함께 작은 아파트로 이사한다고 말했을 때 한 친구는 “상대방의 방귀 소리를 편안하게 들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 친구가 방귀 소리뿐 아니라 음식물 토하는 소리를 비롯해 인간이 화장실에서 낼 수 있는 온갖 속 뒤집히는 소리를 모두 언급했더라면 더 도움이 됐겠다는 생각이 든다.

난 상대방의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에 대해 까탈스럽게 구는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몇 주 지나지 않아 동거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의 설렘과 흥분은 사라졌다. 좋은 일뿐 아니라 기분 나쁜 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대다수 사람이 처음 동거를 시작할 때 갖는 희망을 나도 갖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관계가 내 도자기 램프와 함께 산산조각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혼전 동거가 “보편적인 현상”이 됐을지는 모르지만 신중한 결정이 필요한 ‘큰 일’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현실을 직시하자면 이렇다. 난 누군가와 함께하는 생활을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편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두 사람 다함께 있기를 원하지만 언젠가는 상대방과 한 침대에서 자느니 차라리 비상계단에서 자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쾌락적응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 현상은 우리를 친숙함에서 오는 위험에 취약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상대방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긴다든가 서로에게 싫증이 난다든가 하는 등의 상황을 말한다. 어떤 날 밤은 남자친구가 나와 섹스를 하기보다 쓰레기를 내다버리고 그냥 자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또 어느 날 아침 내가 잠에서 깼을 때 남자친구의 얼굴을 들여다 보면서 ‘세상에 이웃집 남자보다 어쩌면 이렇게 못생겼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또 남자친구와 다퉜을 때 기네스 펠트로가 영화에서 하듯이 집에 돌아와 화난 그를 다정하게 달래줘야지 하는 마음이 들지 모른다. 비록 집에 도착했을 때 태연히 포르노 영화를 보고 있는 남자친구를 발견하고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동거는 한 커플에게 결혼이나 자녀의 출산 다음으로 큰 책임이 따르는 약속이다. 물론 마음이 바뀌면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때는 둘이 함께 지녔던 모든 재산을 나눠야 한다. 둘이 함께 데려다 기른 고양이가 오줌을 싸서 거금을 들여 천갈이를 한 값비싼 소파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고양이도 잊어선 안 된다. 둘이 함께 나눈 모든 기억과 약속도 마찬가지다. 그 모든 것이 소파와 함께 버려지거나 잊혀진다.

하지만 동거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이점도 많다. 동료의식이나 깊은 친밀감, 또는 결혼으로 이어질 만큼 굳건한 신뢰감 등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그렇게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우디 앨런이 영화 ‘애니 홀’(1977)에서 말했듯이 “관계란 상어와 같아서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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