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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film - 의식 있는 여배우의 이유 있는 반항

culture film - 의식 있는 여배우의 이유 있는 반항

브리트 말링, 금융업계 일자리 제안 거절하고 영화 만드는 사연



브리트 말링(29)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금세 그녀가 여느 젊은 여배우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물론 그녀는 매우 아름답다. 엠마 스톤이나 제니퍼 로렌스처럼 명랑하면서도 침착한 스타일로 ‘함께 맥주 한 잔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여자다.

말링은 2005년 조지타운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골드먼삭스에서 인턴 사원으로 일한 뒤 일자리를 제안 받았지만 거절하고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2011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자신이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하고 주연한 영화 두 편이 발표되면서 큰 기회를 맞았다. 조지타운대 시절 친구인 마이크 케이힐이 감독한 SF 드라마 ‘어나더 어스’와 또 다른 대학 동창 잘 바트만글리지가 감독한 사이비 종교에 관한 영화 ‘사운드 오브 마이 보이스’다.

최근 말링은 스릴러 영화 ‘이스트(The East)’에서 바트만글리지와 다시 만났다. 말링은 이 작품 역시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했으며 사설 정보회사의 정보원 사라 모스 역으로 출연했다. 모스의 임무는 무정부주의적 생태지향주의자(eco-anarchist) 단체 ‘이스트’에 침투하는 것이다.

벤지(알렉산더 스카스가드)와 이지(엘렌 페이지)가 이끄는 이 단체는 환경을 해치는 기업들을 비밀리에 공격한다. 예를 들면 거대 석유회사 CEO의 별장에 원유를 쏟아붓는 등의 행동을 말한다. 하지만 모스는 그 단체와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2005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한 뒤 만든 첫 영화는?

마이크와 잘과 나는 처음 얼마 동안 다큐-리얼리티쇼나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을 했다. 난 마이크와 함께 ‘복서와 발레리나’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촬영과 편집 기술을 익혔다. 그 계통에서는 일자리를 구하기가 훨씬 쉬웠다. 게다가 저질 영화의 깊이없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처럼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느라 마음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됐다.

당신은 자신이 맡을 역할을 직접 쓰니까 할리우드의 여느 젊은 여배우들과는 달리 “깊이 없는 캐릭터”를 피할 수 있지 않았나?

여배우들을 위한 역할이 갈수록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쟁이 아주 치열하다. 재능 있는 젊은 여배우는 많은데 그들이 맡을 역할이 충분치 않다. 그러니 그런 훌륭한 여배우들과 나 자신이 맡을 역할을 계속 쓸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2009년 2개월 동안 잘과 함께 프리거니즘(freeganism)을 실천한 걸로 안다. Freegan.info에 보면 버려진 음식물 쓰레기에서 얻은 채소로 연명하면서 “도덕적 고려보다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제체제에 반대하는 사상과 그 운동”이라고 나와 있는데.

당시 우리는 젊고 배고프고 돈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사상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그해 여름 기차에 무임 승차해 전국 곳곳을 여행했다. 유기농 농장에서도 머무르고 무정부주의자나 프리건들과도 어울렸다. 그 경험을 통해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우리 세대의 사회운동은 매일의 일상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와 연결돼 있다.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실생활에서 정치적 이상을 실천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경험을 하고 나서 몇 년이 흐른 뒤, ‘어나더 어스’와 ‘사운드 오브 마이 보이스’를 만들고 나서야 그 기억을 그냥 떨쳐버릴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에 관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무정부주의자 집단과 함께했던 경험이 ‘이스트’에 반영됐나?

병 돌리기 게임(사람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바닥 한가운데 병을 놓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병을 돌린다. 그리고 병이 멈췄을 때 병의 입이 가리키는 사람과 키스하거나 그 사람에게 사적인 질문을 한다) 장면은 당시 여행 중 무정부주의자 단체와 함께 지낼 때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처음엔 모두 당황스러워 했지만 곧 그 게임에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거나 서로 사적인 질문을 하는 걸 두려워하면서도 그렇게 했다. 우리는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진심을 털어놓고 약점을 드러내는 걸 두려워한다. 서로 부둥켜 안고 키스하기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트윗을 날리거나 인스타그램으로 사진을 공유하는 걸 더 좋아한다.

영화에서 무정부주의적 생태주의자 집단이 다국적 기업과 제약업계를 표적으로 삼게 만든 이유는?

과거에 무정부주의자들은 정부에 저항했다. 정부가 권력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권력의 중심은 기업이다. 돈이 곧 권력이며 돈을 가진 기업이 정책을 좌우한다. 사람들은 그런 기업들의 무책임한 태도에 실망한다. 그 점엔 모두가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은행들은 잘못을 저질러도 법적 처벌을 하거나 망하도록 내버려두기가 곤란할 정도로 덩치가 커졌다.

또 영국 석유 대기업 BP는 뉴올리언스 앞바다에 원유를 유출하는 사고를 내고도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잘못됐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한다. 따라서 ‘이스트’는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역할을 한다. 관객들은 햄튼스 에스테이트(뉴욕주 롱아일랜드 동쪽의 부촌)에 있는 석유기업 CEO의 별장에 몰래 숨어들어가 그의 풀장에 원유를 쏟아붓는 장면을 보면서 통쾌해 한다.

앞에서 정치적 이상대로 사는 일에 관해 언급했는데 골드먼삭스에서 제안한 일자리를 거절하고 진로를 바꾼 이유가 그 때문인가?

서양에서는 직업과 그 사람의 됨됨이는 별개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일을 오래 하면 할수록 그 일이 그 사람의 됨됨이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커진다고 생각한다. 금융업계에는 그곳에서 큰 돈을 벌어들인 다음 그 돈과 사업적인 사고방식을 이용해 좋은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지만 나로선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이해가 안 됐다. 난 그곳에서 일할 때 행복하지 않았다.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그리고 세상에서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는 나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니 거기서 지내는 하루하루가 불행했다. 출근하면 퇴근 시간만 기다렸다. 시간은 가장 소중한 재산인데 돈(월급)을 받고 그 소중한 시간을 팔아야 한단 말인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돼 있다. 각자에게 얼마만큼 허용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그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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