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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BOOKS -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뇌

culture BOOKS -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뇌

일부 조직을 제거한 뒤 30초만 기억할 수 있었던 몰레이슨 신경과학 연구에 지대한 기여를 했지만 인간 모르모트로서 기구한 삶을 살아



헨리 몰레이슨은 2008년 12월 8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뇌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했다. 물론 그 자신은 그런 사실을 몰랐다. 극심한 기억상실증으로 그에겐 거의 모든 것이 늘 새로웠다.

몰레이슨은 9살 때에 코네티컷 하트포드의 집 근처에서 자전거에 치여 뇌를 다쳤다. 1953년 27살 때 간질 발작이 심해졌다. 그는 하트포드 병원의 신경외과 의사인 윌리엄 스코빌을 찾아갔고, 여러 치료 끝에 스코빌 박사는 뇌의 일부 조직을 제거하는 수술을 실시했다.

그 결과 몰레이슨은 새로운 기억을 만들 능력을 잃었다. 수술 후 그의 삶은 30초 경험으로 구성됐다. 그 짧은 경험은 거의 즉시 잊혀졌다. 밥을 먹거나 어디를 산책하거나 해도 매번 처음처럼 인식됐다.

그는 기억상실증을 앓으면서 인간의 기억에 관한 연구에 피실험자로 참여했다. 지난 55년간 수백여 건의 연구에 환자로 참여해 과학자들이 학습과 기억의 생리를 이해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과학자들은 그런 몰레이슨을 이용해 인간의 기억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뇌의 어느 부위가 기억 기능에 필수적인지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이 서로 다른 뇌회로를 활용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 그의 뇌가 큰 기여를 했다. 각종 논문에서 ‘H.M.’으로만 알려지게 된 그는 1970년부터 심리학·신경과학 교과서에 필수적으로 등장하게 됐다. 현재 보존돼 있는 몰레이슨의 뇌는 우리가 어떻게 기억을 만들고, 저장하고, 다시 불러오는지에 관해 새로운 정보를 계속 제공한다.

수잰 코킨은 1962년 대학원생으로 몰레이슨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제 매사추세츠 공대 신경과학 명예교수인 그녀는 ‘영원한 현재 시제: 기억상실증 환자 H.M.의 잊지 못할 생애(Permanent Present Tense: The Unforgettable Life of the Amnesic Patient, H.M.)’라는 책을 썼다. 뇌 과학에 몰레이슨이 어떻게 기여했는지 철저하게 파헤친 책이다.

책의 많은 부분을 딱딱한 신경과학 이론과 발견에 할애했지만 그 책은 놀랍게도 감동적인 읽을거리를 선사한다. 20세기 정신외과(psychosurgery) 운동에 관한 역사적인 개관(전전두엽 절제술 등 소름 끼치는 사례들 포함)부터 몰레이슨의 마지막 나날에 관한 서술까지 이 책은 독자에게 뇌 연구의 파란만장한 역사와 특히 몰레이슨의 독특한 케이스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결정하도록 끊임없이 요구한다.

코킨은 오랜 세월에 걸쳐 몰레이슨과 친밀한 개인적 관계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관심이 언제나 “지적인 측면”이었다고 강조한다. 그 책의 서술을 이끄는 힘이 바로 그런 기술적인 호기심이다.

몰레이슨은 27세에 측두극의 일부, 편도 복합체, 해마 복합체(뒷부분 약 2㎝는 제외), 해마 곁이랑(역시 뒷부분 약 2㎝는 제외)을 제거하는 뇌 수술을 받았다. 한 가지 척도에서는 그 수술(집도의 윌리엄 비처 스코빌은 “솔직히 실험적인 수술이었다”고 인정했다)이 성공적이었다. 간질 발작이 멈췄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수술로 치르게 된 헤아릴 수 없는 대가를 생각하면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몰레이슨 뇌 연구의 과학적인 가치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기억상실증이 어느정도인지 분명해진 직후 몰레이슨은 끊임없이 심리 테스트와 뇌 촬영을 받았다. 이런저런 이론을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그래서 그는 “신경과학에서 가장 철저하게 연구된 환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런 꾸준한 검사에서 얻어진 지식은 분명히 인상적이다.

코킨은 몰레이슨이 무엇보다 “진행성 기억상실증에서는 특별한 사건(일화 기억)과 사실(의미 기억)을 기억하는 능력 둘 다가 손상된다”는 것을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건강한 해마는 결혼식의 세부사항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것(회상)에는 필수적이지만 누구인지 확인하거나 맥락에서 파악하지 않고 단순히 얼굴을 알아보는 데(낯익음)는 필수적이지 않다는 것도 입증할 수 있었다.”

낯익음이라는 개념은 몰레이슨이 코킨을 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그는 코킨과 이스트하트퍼드 고교 동창이라고 잘못 알았다). 또 그가 생의 마지막 나날에 약간의 부추김으로 코킨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던 이유도 설명해준다.

코킨이 몰레이슨의 과학적 기여를 수없이 나열하면서 ‘영원한 현재 시제’는 한 남자가 아니라 그의 뇌에 관한 책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과학자가 아닌 독자가 처음부터 가졌던 의문은 나중에야 풀린다. 4장 마지막에 가서야 코킨은 이렇게 묻는다.

“단기 기억에만 의지하는 삶은 과연 어떨까?” 누구나 30초 간격 안에서 사는 삶은 끊임없는 혼란과 좌절, 수치의 끔찍한 실존이라고 상상할 것이다. 그러나 코킨은 책에 “몰레이슨은 그의 고교 급우들이 알았던 정중하고 조용한 그 모습 그대로 늘 온화하고 상냥했다”고 적었다.

대부분의 경우 그는 좋은 친구였다. 언제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좋아했다. 물론 수술 전에 몰랐던 사람 대다수는 그가 이전에 만났든 만나지 않았든 언제나 새로운 사람이었지만 말이다. 그는 종종 농담을 잘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재담을 그의 이름을 따

‘헨리이즘(Henryism)’이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질문에 답을 잘 하지 못할 때 그는 “나 자신과 논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원한 현재 시제’를 읽기가 도덕적으로 힘든 것은 몰레이슨의 매력적인 개성과 인간미 때문이다. 몰레이슨이 정상적인 기억력을 가졌더라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무자비한 실험을 당하게 한 것이 비양심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가 모든 테스트를 언제나 처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덜 양심적으로 대해도 괜찮았을까?

비록 가치 있는 이유가 있긴 하지만 코킨과 동료 과학자들이 몰레이슨을 철저히 이용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들이 그를 좋아하게 됐을 진 몰라도 그들에게 몰레이슨의 마음은 그의 뇌로 향하는 접근점이었을 뿐이었다.

‘과학연구 대상으로서의 헨리’라는 발상이 ‘영원한 현재 시제’의 가장 불편한 내용이다. 예를 들어 코킨은 몰레이슨이 죽기 수년 전 그의 사후 뇌를 촬영하고 제거해서 보존할 세부 계획을 세웠다고 책에서 묘사했다. 그의 사후 뇌를 꺼냈을 때를 코킨은 이렇게 묘사했다. “헨리의 그 귀중한 뇌가 금속 그릇에 안전하게 담겨지는 것을 본 것이 내 일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뿌듯한 순간 중 하나였다.” 블랙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좀 더 희망적으로 그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아무튼 몰레이슨은 의학을 위해 정상적인 삶의 가능성을 빼앗겼다. 그의 상태를 연구한 코킨과 수많은 연구자들은 이전 실험의 실패를 바로잡고 그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려고 애썼다. 그가 그토록 정감있는 연구 대상이었다는 사실이 그들의 작업을 더 쉽게 만들었다.

2009년 몰레이슨의 뇌는 젤라틴 속에서 얼려져 2401개의 얇은 조각으로 썰어졌다. 미래의 과학자들이 그의 뇌를 미세한 세포차원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56년 전 우연히도 뇌의 일부가 제거되면서 유명해진 한 남자에게 암울하게 어울리는 종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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