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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 - 한국인에겐 에펠탑보다 유명한 파리 관광 1번지

Repo - 한국인에겐 에펠탑보다 유명한 파리 관광 1번지

대량 구매로 꼬달리·아벤느·바이오더마 등 인기 화장품 브랜드 반값 한국말 유창한 직원 두고 한국식 ‘1+1 행사’로 손님 끌어
오전 11시 프랑스 파리 몽쥬약국 내부 전경. 화장품을 고르는 한국인 손님들로 북적인다.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바구니에서 ‘바이오더마 클렌징 워터’를 흔히 볼 수 있어요. 화장 지울 때 솜에 묻혀서 닦아내면 따로 세수할 필요가 없어요. 수분도 잡아주고요. (피부가) 건성인 것 같은데 꼭 써보세요.” 제시 코르뉘(31)가 진열된 화장품을 들고 열심히 설명한다.

그의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20대 한국인 여성 세 명이 철제 바구니에 이 제품을 5개씩 담는다. 그들의 바구니는 이미 립밤·수분크림·로션 등 각종 화장품으로 가득 찼다. 화장품 병 무게만으로도 만만치 않을 텐데 그들은 또 다른 ‘머스트 해브 아이템(필수 구입 품목)’을 찾아 작은 매장을 누빈다.

몽쥬약국 앞 전광판에서는 태극기 배경의 한국말 인사가 나온다.
165㎡(약 50평) 남짓한 매장 안이 수십 여 가지의 화장품으로 빼곡히 차 있었다. 화장품 매대 사이로 난 골목은 두 사람이 비껴서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다. 가게 안 30여명의 사람이 “잠시만요”를 연신 외치며 진열대 위 화장품을 바구니로 던져 넣는다. 이곳에선 생전 처음 보는 이들과 등을 스치는 건 물론이고, 발을 밟히는 일도 예사다. 서울 명동 거리가 아닌 프랑스 파리 시내에서 최근 만난 ‘몽쥬약국’ 풍경이다.



점포 안은 부딪히고 밟히고 북새통프랑스 파리 지하철 M7선을 타고 ‘플라스 몽쥬(Place Monge)’역에 내려 출구를 나오면, 한국인 사이에서 일명 ‘몽쥬약국(Parapharmacie Monge)’으로 불리는 작은 약국이 나온다.

몇 해 전부터 파리를 찾는 한국 관광객에게 ‘쇼핑 1번지’로 소문이 난 곳이다. 국내에도 이제 화장품·일용잡화·식료품·뷰티 관련 상품을 파는 멀티 상점을 표방한 약국, ‘드러그스토어’가 생겼지만 프랑스에선 약국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약국 화장품’이 일반화돼있다.

약국 화장품은 미용뿐만 아니라 기능에 중점을 둬 식물성 원료를 사용한 저자극성 화장품이라 인기다. 국내에서 약국·병원 화장품 시장은 전체 화장품 시장 규모의 3%에 불과하지만 미국·유럽 등지에선 20%를 차지할 만큼 대중화돼 있다.

국내에서도 약국 화장품 브랜드가 인기를 끌면서 프랑스 현지 약국에서 직접 구매하려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파리 시내에만 수백 여 곳의 약국이 있지만 유독 몽쥬약국만 한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약국 근처에 이렇다 할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파리의 대표적인 관광 코스인 에펠탑이나 개선문·노트르담성당 등에서 이곳을 방문하려면 지하철을 두세 번 갈아타고도 30분이 넘게 걸릴 만큼 애매한 위치에 있다. 시내 중심에서도 멀리 떨어진 이곳에 한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문을 듣고 약국을 찾은 5월18일 오전 9시40분. 생각보다 평범한 외관에 제대로 찾은 것이 맞나 멈칫하던 찰나 약국 앞에 걸린 전광판에 태극기가 그려졌다. 한글로 ‘몽쥬약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환영 인사와 함께 영업 시간을 알리는 글귀가 차례로 뜬다. 한국어로 환영 인사를 받으며 약국에 들어서자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한국인 관광객이 눈에 띈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온 사람도 여럿 보였다.

동생과 함께 프랑스 여행을 온 설영인(35)씨는 공항에 가기 전 마지막 행선지로 몽쥬약국을 찾았다. 설씨는 “화장품을 미리 사면 짐이 무거워 공항버스를 타기 직전 들렀다”며 “지인들에게 선물할 화장품을 사러 왔는데 가격이 생각보다 싸서 많이 살 예정”이라고 말했다.

인근 유럽 국가에서 유학 중인 이지민(23)씨도 여행길에 몽쥬약국에 들렀다. 1년에 두 세 번씩 프랑스에 놀러 온다는 이씨는 그때마다 이곳을 찾는다. 그는 “파리 관광 1번지는 이제 에펠탑이 아닌 몽쥬약국”이라고 말했다. 오전 10시를 넘어서자 본격적으로 손님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약국 앞 전광판에 태극기와 한국말 인사몽쥬약국에서 취급하는 화장품은 아벤느·듀크레이·아더마 등이다. 대부분 프랑스 약국 화장품 업계 1위 피에르파브르 그룹 브랜드다. 이외에도 달팡·꼬달리·유리아쥬·바이오더마·비오템 등 대표적인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의 인기 라인이 빼곡히 들어차있다.

대개 한국에 수입돼 국내에서도 구매할 수 있는 브랜드이지만 가격은 한국보다 평균 30~40% 가량 저렴하다. 예컨대 베스트셀러인 눅스 멀티 바디오일은 이곳에서 17.99유로(100ml 기준, 약 2만6900원)면 살 수 있다. 한국에서 사려면 5만원이 넘는다.

또 다른 인기 제품인 아벤느 온천수 미스트는 4.25유로(150ml 기준, 약 6350원)지만 국내 정가는 1만7000원이다. 약국에서 자체적으로 ‘1+1 행사’를 하는 걸 감안하면 국내보다 절반 이상 싼 제품도 수두룩하다. 파리 시내 다른 약국과 비교해도 저렴한 편이다.

이곳 직원인 코르뉘는 “사장님이 프랑스 전체에 비슷한 형태의 약국 세 곳을 운영하는데 다른 약국과 일종의 협동조합을 맺고 있어 대량 구매한다”며 “프랑스 내 다른 약국과 비교해도 싼 편인데 이곳에서 8유로인 제품이 다른 곳에서는 14유로로 팔릴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2시간 여 약국에 머무는 동안 이곳을 찾은 한국인 고객은 줄잡아 100명이 넘었다. 매대 위에 제품이 채워지기가 무섭게 쓸어가는 한국인 덕분에 이곳 직원들은 쉴새 없이 화장품 상자를 들고 날랐다. 코르뉘는 “한국 고객이 전체의 70%를 차지한다”며 “브라질·중국 등 외국인 손님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이날 약국에서 만난 한국 쇼핑객들의 1인당 구매 금액은 평균 30만~50만원에 달했다. 이들은 대부분 화장품 효능이 뭔지 따지기 이전에 일단 베스트셀러라고 알려진 제품을 담고 보는 식으로 쇼핑을 했다. 사재기로 볼 수도 있는 풍경에 한국인 고객들은 “많이 사는 게 남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이게 어디에 좋은 거냐” “TV에서 소개된 ‘김남주 오일’이 어디 있느냐”며 정보를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

이 가운데는 중년 남성들도 심심찮게 찾을 수 있었다. 대부분 출장 길에 아내나 딸의 부탁을 받고 약국을 찾은 사람들이었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김명국(49·가명)씨는 “딸이 인터넷 블로그에서 이 약국을 봤다며 프랑스에 가면 꼭 들러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며 “바쁜 출장 일정을 쪼개 어렵사리 들렀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이 많다고 듣긴 했지만 실제로 와보니 대부분이 한국 사람들이라 깜짝 놀랐다”며 “딸이 원하는 걸 못 찾을까 걱정했는데 젊은 친구들(다른 한국인 고객)이 도와줘서 수월하게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손에 딸이 적어준 화장품 목록을, 다른 한 손에는 화장품 바구니를 들고 좁은 매장 안을 종횡무진했다.

이 약국은 몇 해 전 한 언론 매체에 화장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보도되면서 국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그 후 이곳에 들른 여행객들이 블로그를 통해 앞다투어 방문기를 올리며 파리 여행에서 빼놓지 않고 들러야 할 곳으로 급부상했다.

현재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몽쥬약국’을 검색하면 이곳에서 쇼핑한 후기나 제품 인증샷 등을 올린 글이 수백 건에 이른다. 이처럼 한국인 방문객이 주를 이루자 약국 측은 한국인 직원은 물론 한국말이 유창한 프랑스인도 채용했다. 60명의 직원 가운데 한국어가 가능한 직원은 모두 세 명. 이들은 모두 매장에서 손님 응대를 담당한다. 제시 코르뉘는 그중 한 명으로 이 가게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

큰 키에 금발머리인 코르뉘는 겉모습은 영락 없는 백인 남성이지만 유창한 한국말로 제품 설명을 도맡는다. 그는 지성·건성과 같은 기본적인 피부 표현은 물론 ‘두껍게 바르라’ ‘쟁여두라’는 등의 쉽지 않은 한국어 표현도 능숙하게 해낸다. 프랑스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한국에서 3년 간 유학한 덕분이다.

그는 “여름 성수기에는 한국인 고객이 대부분”이라며 “화장품 성분이나 주요한 표현은 한국어로 따로 공부해 손님들에게 잘 설명해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유일한 한국인 직원 유미영씨도 이 약국에서 1년째 근무 중이다. “언니, 아이젤 없어요?” “엄마한테 선물할 주름 방지 크림 좀 골라주세요”.

쉴새 없이 밀려드는 손님들의 요구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유씨는 “프랑스인 직원도 있지만 대부분의 손님이 나에게 질문을 한다”며 “이곳에서는 프랑스어보다는 한국어가 ‘제 1의 언어’로 인식될 정도이니 가게에 있으면 여기가 프랑스인지 한국인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베스트셀러 제품 무더기로 담는 모습한국 손님이 주를 이루다 보니 약국 사장 알렉스는 직원들에게 한글 학교 수업료를 지원해준다. 휴가 기간에는 한국 여행 경비를 일부 제공한다. 유씨는 “지난해 프랑스인 직원 두 명이 사장님께 비행기표를 받아 한국 여행을 다녀왔다”며 “한국에 직접 가보고, 시장 조사도 해보라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 같은 ‘한국 공부하기’ 결과 몽쥬약국에서는 다양한 ‘한국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작은 약국 곳곳에는 한국어로 표기된 제품명과 상세한 설명이 붙어있다. 굳이 직원들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손님들이 쉽게 원하는 물건을 찾을 수 있다. ‘1+1 행사’나 계산 시에 샘플 화장품을 많이 넣어주는 것도 여느 한국 화장품 가게와 비슷했다.

신혼여행길에 들른 지혜민(31)씨는 “값이 원래 저렴한데다가 다양한 할인 행사를 하고 있어서 한국보다 훨씬 싸게 구입할 수 있다”며 “외국 매장에서는 샘플이나 끼워주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여기선 이런 서비스까지 해주니 한국 사람들이 알고 몰려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금 환급도 약국에서 바로 받을 수 있다. 해외에서 쇼핑한 물품이 일정 금액을 넘어서면 출국 전 세금 환급을 받을 수 있다.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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