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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JAZZ ERA in china - 개츠비 중국 청두에 가다

FEATURES JAZZ ERA in china - 개츠비 중국 청두에 가다

미국의 약동하는 1920년대를 상징하는 소설에서 오늘날의 중원을 본다
중국의 경제성장과 번화한 도시는 1920년대 미국을 닮았다.



겅당하오는 중국 청두에 있는 시난(西南)재경대학 2학년 학급 대표다. 그는 콘크리트 블록 강의실 앞에 서서 학생들을 모아놓고 교재를 판매했다. 대학 측이 첫 강의에 맞춰 교과 교재를 확보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하오는 인근 복사집에서 그 문제를 해결했다.

보험을 전공하는 이 부지런한 학생은 해리라는 닉네임을 선호한다(“해리 포터를 좋아한다”). 해적판 서적 더미가 줄어드는 반면 손 안의 위안화 지폐가 늘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해리가 농담을 던졌다. “지금 당장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다.”

그가 판매하는 소설 중 하나가 미국 픽션에서 가장 악명 높은 불법 밀주업자(bootlegger) 이야기라는 점을 감안할 때 제법 어울리는 말인 듯했다. 빳빳한 커버 위에 검정색 글씨로 ‘F의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BY F)’라는 타이틀이 가로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몇㎝ 아래 작은 글씨로 ‘스콧 피츠제럴드’라고 작가명이 적혀 있었다.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에선 넌더리가 나도록 배우는 소설 중 하나다. 일정 부분 그 소설의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비판 때문이다. 대다수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로는 더 일찍이 피츠제럴드가 그린 번쩍이는 사교계 그룹들을 만난다.

뉴욕 시립대학 버루크칼리지는 지난 가을 나를 중국 남서부 청두로 파견했다. 이 대학에서 내가 가르치는 영작 과정을 가리켜 나는 ‘낯선 땅의 이방인들(Strangers in Strange Lands)’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내가 가르치는 책 중의 하나가 ‘위대한 개츠비’였다. 한 나라의 성스러운 고전이 다른 나라에선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궁금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현대 중국간에 유사성이 있는 듯했다.

중국의 청년문화가 “포효하지는(roaring)” 않지만 중국의 번영, 산업성장, 팽배한 소비주의, 신기술, 번화한 도시는 1920년대 미국을 닮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심각한 농촌빈곤에도 불구하고 ‘차이니즈 드림’을 약속한다. 하지만 1990년대 호황기에 태어난 첨단기술에 밝은 중국인 세대에게 그 ‘꿈’이란 무엇일까? 그들은 1989년 톈안먼 학생시위에 관해서는 막연하게만 알고 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답을 찾는다면 학생들이 공감하는 사람은 소설 속에서 갈등을 겪는 해설자 닉 캐러웨이가 아니었다. 과제리포트에 한 학생이 이렇게 썼다. “허위의 세계에 맞서 개츠비가 보여준 불굴의 의지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의 별똥별 같은 역할을 했다. 어둠에 새벽을, 슬픔에 위안을, 절망에 희망을 줬다.”

해리는 내가 제시한 독서목록의 책들을 복사해 헐값에 판매하는 일 말고도 공사다망한 친구였다. 때때로 TED(기술·엔터테인먼트·디자인) 강연 같은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그러면 80명을 웃도는 학생이 강의실을 가득 메웠다. 자신도 가 본 적이 없는 뉴욕에서 살아가는 법이 주제였다. 아니면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잉글리시 클럽’을 이끌었다. 학생들이 ‘게티스버그 연설문’이나 인기 드라마 ‘프렌즈’의 대본을 갖고 공부하는 모임이었다.

학급 대표로도 활동했다. 선출된 게 아니라 집안의 친구인 전임 학급 대표의 지명을 받았다. 해리의 꿈은 스위스 대기업의 부자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되는 것이다. 언젠가 아버지의 출장여행에 따라갔다가 그 도시의 친절한 사람들, 깔끔함, 아름다움에 반했다. 하지만 캐나다나 미국이 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믿는다. 제이 개츠비, 그리고 내 대다수 제자와 마찬가지로 해리의 가족은 가난한 농촌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내몽고의 가난한 양치기로 성장했다. 집안의 막내였던 그는 시안자오퉁(西安交通) 대학에 다닐 수 있었다. 대학에서 첫 사랑을 만나 나중에 결혼에까지 골인했다. 해리의 부모는 베이징 정부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비좁고 물이 새는 6층짜리 아파트에서 살았다. 엘리베이터도, 냉난방 시설도 없었다. 얼마 뒤 해리의 아버지는 새로운 기계를 연구하도록 이탈리아에 파견됐다. 거기서 중국 진출을 모색하던 스위스 회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그뒤 해리는 집을 떠나 중국 내 기숙학교에서 성장했다.

어느 서늘한 가을의 토요일 오후, 수업 막간에 해리와 나는 만원을 이룬 노천 음식점에서 기름투성이의 긴 식탁 앞의 낮은 장의자에 앉았다. 커다란 금속 냄비에 담겨 나온 매운 국수 요리를 같이 먹은 뒤 유리병에 담긴 땅콩우유 음료를 마시며 혀를 달랬다. 19세인 해리는 단신에 얼굴이 넓적하고 안경 위로 보이는 눈썹이 짙었다. 그 며칠 전 중국 작가 모옌(莫言)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해리는 여전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난 정말 무라카미 하루키가 유력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말했다.

나는 2010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중국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류사오보(劉曉波)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정부를 비판한 죄로 중국 내에 수감돼 있었다. 해리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활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자기 나라에 혼란을 초래하는 사람이 왜 ‘평화’상을 받아야 하죠? 나로선 납득이 가지 않아요.”

공산당의 엄격한 통제에 대다수 학생이 불만을 표시했다. 그들은 정부의 온라인 검열을 ‘만리방화벽(The Great Firewall)’으로 불렀다. 하지만 해리는 항상 공산당의 입장을 지지했다. 못난 부모를 옹호하는 자의식 강하면서도 효성 지극한 아들 같았다. 종종 정부는 국민을 위해 최선의 정책을 펼칠 뿐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국에 긍지를 갖고 싶어하면서도 외국인은 정부의 입장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떠보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해리는 북한을 가리켜 중국의 “성가신 동생(annoying little brother)”으로 묘사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세계적으로 친구가 많지 않다”며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중국 정부는 검열과 언론 통제를 통해 나름의 스토리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하지만 중국 청소년들은 이전의 어떤 세대보다 어쩌면 세계를 더 잘 알지 모른다. 인터넷과 해외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이 전하는 이야기 덕분이다.

안토니아는 해리와 마찬가지로 19세의 2학년생이다. 그녀의 본명은 유안 멍팅이다. 그리고 본명이 제임스 개츠인 개츠비처럼 이미지 메이킹의 힘을 이해한다. 이번 여름 학부 과정을 마치기 위해 뉴욕으로 건너가면 자신이 직접 선택한 이름을 사용할 계획이다. 안토니아는 네덜란드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Antonia’s Line)’을 보고 그 이름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페미니스트의 동화로도 불리는 1996년 아카데미상 수상작이다.

출생 때 엄마가 지어준 ‘멍팅’이라는 이름은 ‘꿈과 아름다움’을 뜻한다고 한다. 대만 작가 충야오(瓊搖)의 인기 로맨스 소설 캐릭터 이름이다. 하지만 안토니아는 새 이름에서 더 독립적인 여성 같은 기분을 느낀다. 다른 학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 제자 중에는 앤절리나 졸리의 이름을 빌려온 졸리, 마거릿 미첼의 스칼렛 오하라를 본뜬 스칼렛,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을 가리키는 오케아니스도 있다.

안토니아는 검정색 플라스틱 테 안경을 착용하고 긴 검정색 머리에 가운데 가르마를 탔다. 종종 (칼라를 단추로 채우는) 버튼다운 셔츠, 스웨터, 몸에 달라붙는 스키니 진 등의 캐주얼 복장을 했다. 남성 위주의 나라에서 강한 여성이 되기는 쉽지 않다고 안토니아는 수업 중 종종 강조했다.

가족의 압력, 한 주 6일의 수업, 남자친구와 장거리 연예, 그리고 취업 걱정으로 살아가면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몸이 아프거나, 집 또는 가족이 그립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드라마 ‘프렌즈’를 본다”고 그녀가 말했다. 이 미국 TV 드라마는 중국에선 이미 ‘클래식’으로 간주된다. 안토니아가 이 드라마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한 교육배경을 갖고, 모두 다른 인생목표를 지닌 “완전히 다른” 6명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두 눈에 이슬이 비쳤다.

“그들은 부모의 바람에는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가슴과 꿈을 좇는다”고 그녀가 말했다. “중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국의 청춘 세대에게 ‘프렌즈’는 해방감을 주는 인생 판타지 역할을 한다. 젊은이들은 국내에선 이 같은 판타지가 실현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개츠비가 그랬듯이 다른 곳에서 새로 태어나기를 원한다. 하지만 베이징에도 ‘프렌즈’ 테마의 ‘센트럴 퍼크(Central Perk)’ 카페가 운영된다.

중국이 세계에서 명품이 가장 많이 팔리는 나라라는 통계가 종종 인용된다. 사실에 거의 접근한 데이터다. 현재로선 중국이 2위지만 2014년에는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설의 5장에서 개츠비가 데이지에게 자신의 롱아일랜드 맨션을 구경시켜주는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 데이지는 호화로운 드레스 셔츠 더미를 보고 울음을 터뜨린다.

이 장면을 읽은 뒤 사치 및 신분과 관련된 긴장과 정체성을 두고 학생들과 토론했다. 학생들은 중국의 공격적인 소비풍조뿐 아니라 그것이 공산국가에 던져주는 아이러니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추세를 보는 관점에서 우려와 긍지가 동시에 드러났다. 빅터라는 이름의 한 학생은 이렇게 썼다.

“요즘 미국사회에는 천박한 사람이 많다. 그들은 개인적 명성과 이익을 좇는다. 쾌락이나 그런 것에 돈을 쓴다. 사실상 중국에 그런 얼간이가 훨씬 많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개발도상국으로 세계 제2의 인구대국이며 커다란 발전 잠재력을 지닌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발전에는 아직도 커다란 빈부격차 같은 많은 문제가 존재한다. 널리 알려졌듯이 중국인들은 항상 명품에 열을 올린다.”

빅터는 위쪽으로 조각처럼 뾰족하게 세운 세련된 헤어스타일과 부루퉁한 표정을 지녔다. 1980년대 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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