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FEATURES living with war - “전쟁이 계속 우리를 따라다녔다”

FEATURES living with war - “전쟁이 계속 우리를 따라다녔다”

아프가니스탄의 한 카펫 상인이 어린 시절 고향 카불을 떠난 뒤 전국을 떠돈 피란생활을 이야기한다



몇 달 있으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시작한 지 만 12년이 된다. 오바마 정부의 정책입안자들은 2014년을 전쟁 ‘종식’의 해라고 선언하며 백악관 달력에 그 날짜를 표시할 것이다. 미국인들에게는 이기지 못하고 끝내는 또 다른 전쟁이 된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주민 입장에선 끝이 아니다. 나토군이 여전히 주둔하며 30년 넘게 지속된 분쟁이 그들을 기다린다.

카이스 아크바르 오마르는 보스턴대 예술학 석사과정 문예창작과 학생이며 아프간 태생의 융단 직조가이기도 하다. 탁월한 새 회고록 ‘9개 탑의 요새(A Fort of Nine Towers)’에서 “하나의 매듭이 서서히 또 다른 매듭의 뒤를 따르며 하나의 패턴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썼다. 아프가니스탄을 다룬 다른 책들과 차별성을 갖는 책이다.

아프간 관련서 출판이 증가하는 가운데 반갑게도 아프간인의 시각에서 쓴 책들이 많이 나온다. 지금까지 기자·군인·학자들이 그 나라의 실상을 묘사했지만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시각이 많았다. 낯선 땅의 이방인들이었다. 이들의 저술은 외교사, 전쟁정책, 반란진압 및 테러진압 전략 초기의 순진함과 계속되는 난제들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걷어 올리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카이스의 열띤 목소리는 색다르다.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의 작전을 비판하지는 않지만 다른 식으로 미국에 일침을 가한다. 그의 가족은 조국에서 소련 점령, 무자헤딘(이슬람 전사) 군벌, 탈레반 그리고 오늘날의 전쟁까지 격동의 전환기를 모두 이겨냈다. “탈레반의 가장 괴상한 법들조차 나토 지휘관들의 혼란상보다 견뎌내기가 더 쉬웠다”고 그가 썼다.

이는 아프간인들이 “더 좋은 친구”가 되지는 못해도 특히 외국인들에게 “더 나쁜 적도 되지 않는” 전통이 있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상기시킨다. 워싱턴의 정책입안자들이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전쟁을 끝내려는 마당에 새겨둘 만한 이야기다. 카이스 가족의 이야기는 바로 아프가니스탄의 이야기다.

카이스는 두 부족의 피가 섞인 아프간인이다. 자칭 “하자라족의 눈을 가진 파슈툰족”이다. 과거 폭력의 악순환으로 빠져들기 전까지는 아프간인들이 “잘 살았다”고 그는 상기시킨다. 1950년대 아프가니스탄 사회에는 공개토론, 부르카(머리부터 발목까지 덮는 무슬림 여성의 전통의상)나 베일을 착용하지 않은 교육받은 직장 여성, 그리고 경제발전이 있었다. 암살, 도로매설 폭탄, 학교 방화로 도배되는 오늘날의 신문만 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카이스는 그런 시절이 있었음을 일깨운다. 카불에서 살던 초창기, 자기 가족의 혜택 받은 삶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 땅은 곧 전쟁으로 폐허가 된다. 저격수의 총탄, 박격포탄, 로켓포탄이 카이스의 동네로 날아들며 지옥으로 변한다. 그의 가족은 피란을 떠나야 했다. 어린 카이스는 지리여행뿐 아니라 내적인 여행을 하면서 빠르게 성장한다.

카이스는 조국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여과하지 않고, 그리고 외국인의 렌즈를 통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보여준다. 곳곳에 포탄 구덩이가 파인 아프가니스탄 땅이 얼마나 변함없이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충만한지 그려낸다. 난 빵(naan bread)의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형형색색의 과일나무들이 흙담 사이에서 꽃을 피운다.

(왼쪽부터) 2007년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접경의 쿠치족 유목민들. 2008년 코스트 지방에 착륙하는 블랙호크 헬리콥터를 아프간 어린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상쾌한 바람이 산봉우리 사이의 계곡을 따라 내려온다. 그는 독자의 모든 감각을 일깨우지만 그 세부묘사는 고통과 죽음의 원색적인 묘사와 더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러면서 힌두쿠시 산맥의 험준한 지형 속에서 난관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들의 잡초 같은 생명력을 포착한다.

카이스의 가족은 아프가니스탄의 여러 지역을 거치며 오랜 피란생활을 했다. 바미얀에서는 동굴 속의 지금은 파괴된 불상들 옆에서 생활했다. 쿤두즈와 마자레 샤리프를 거치는 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라디오로 BBC 월드 서비스의 최신 뉴스를 들었다. 한동안 유목생활을 하는 쿠치 족을 따라다니기도 했다.

쿠치 족은 동물가죽 천막을 들고 매년 수백 ㎞를 이동하는 부족이다. 그들의 얼굴은 햇볕으로 깊게 주름이 패였다. 하늘을 바라보다가 눈이 내릴 조짐이 보이면 짐을 싸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항상 겨울을 몇 발짝 앞서가려 애쓴다.

하지만 가난하게 살면서도 그들만큼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도 없다. 그들은 수류탄으로 물고기를 잡는다. 상당히 인상적일 뿐 아니라 효율적인 전략이다. 카이스의 간단명료한 여행기는 쉬 잊혀지지 않는 그림을 보여준다. 특히 1996년 탈레반의 출현을 묘사한 부분이 뛰어나다.

“그들은 모두 화장먹으로 아이라인을 그렸다. 턱수염을 깍지 않아 덥수룩한 얼굴이었다. 제대로 된 신발을 신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대신 슬리퍼를 신고 다녀 발이 몹시 더러웠다. 대부분 담배를 입에 물었다. 몇몇은 땅에 갈색 침을 뱉은 뒤 터번 끝자락으로 입을 닦았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숲이나 동굴에서 막 나와 건물을 처음 보는 사람들처럼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처음에는 뱀파이어들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겁을 주려는 동화 외에는 뱀파이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가족들과 오랜 피란생활을 하는 도중 그는 귀가 멀고 말을 못하는 투르크멘족 소녀를 만나 융단 짜는 기술을 배운다. 탈레반 정권 치하에서 마침내 가족과 함께 카불로 귀향했다. 카이스는 공장을 세우고 직조공을 고용해 가내수공업을 시작했다. 2001년 미국인들이 침공했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지금껏 수많은 생명과 수십 억달러를 잃었다.

‘9개 탑의 요새’는 뼈 있는 논평으로 끝을 맺는다. 카이스가 자신의 양탄자와 물물교환하는 연합군 병사들을 묘사한다. 프랑스인들은 까다롭다. 절대 제값을 주지 않지만 그들이 가진 음식은 최고다. 이탈리아인들은 아프간인들처럼 소란스럽다. 그들은 제값을 치르지만 서둘러 떠나간다.

항상 시간을 못 맞추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은 위엄을 부린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인들은 친절하다. 항상 제값을 내며 모든 걸 알고 싶어 한다. 새 방문자들 중에서 가장 호감을 주는 편이지만 카이스의 아버지는 상당히 회의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아프간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서로 싸워 왔다. 서로를 침략하고 약탈하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하지만 두 가지가 우리를 뭉치게 한다. 알라를 향한 사랑, 그리고 침략자와 적에 대한 증오다. 이들 미국인이 우리의 진정한 친구인지 아니면 친구의 가면을 쓴 적인지 알 때까지는 아프가니스탄을 떠나지 않으련다.”

이제 10년이 넘었지만 아프간 사람들은 여전히 미국인의 의도와 참을성에 확신을 갖지 못한다. 카이스의 이야기는 전쟁 지지 또는 반대의 단단한 편견 속으로 파고 들어가 아프간 사람들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고통과 긍지를 기록한다. 그들은 그런 전쟁에 익숙하다. 카이스의 말을 빌리자면 “전쟁이 끊임 없이 우리를 쫓아다녔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편의점서 금테크… CU, 1g 카드형 골드 이틀 만에 완판

2‘베이징 모터쇼’ 4년 만에 역대급으로 돌아왔다

3“2030 소비자 잡아라”…홈쇼핑, 젊어지는 이유는

4“전자담배 발명 보상 못받아”…KT&G 前연구원, 2.8조 소송

5전신 굳어가지만…셀린디옹 “어떤 것도 날 멈추지 못해”

6검찰, ‘신림 등산로 살인’ 최윤종 2심도 사형 구형

7中알리, 자본금 334억원 증자…한국 공습 본격화하나

8CJ대한통운, 편의점 택배 가격 인상 연기…“국민 부담 고려”

9 일본 후쿠시마 원전, 정전으로 중단했던 오염수 방류 재개

실시간 뉴스

1편의점서 금테크… CU, 1g 카드형 골드 이틀 만에 완판

2‘베이징 모터쇼’ 4년 만에 역대급으로 돌아왔다

3“2030 소비자 잡아라”…홈쇼핑, 젊어지는 이유는

4“전자담배 발명 보상 못받아”…KT&G 前연구원, 2.8조 소송

5전신 굳어가지만…셀린디옹 “어떤 것도 날 멈추지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