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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일본식 구조조정 조짐

Issue - 일본식 구조조정 조짐

회원제 골프장 46%가 적자 … 수백 개 골프장 묶은 대형 프랜차이즈 탄생은 시기상조
지난해 회원제에서 퍼블릭으로 전환한 경북 성주 롯데 스카이힐 골프장. 영업 적자와 세금 부담에 시달린 이 골프장은 회원 157명에 총 210억원을 돌려주고 퍼블릭으로 전환했다.



“서울에서 가까워 그나마 형편이 낫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못 아는 겁니다. 최근 5년 사이 주변에 골프장이 열 개 가까이 생겼어요. 위에서는 마케팅 전략을 짜라는데 가격 내리는 거 말고 뾰족한 수가 있나요? 손님이 드문 오전 타임 가격을 2만~3만원 내렸죠. 그랬더니 경쟁 골프장에서는 5만원, 10만원을 내리더군요. 정상가를 받고 싶어도 이제 고객이 할인 가격 아니면 눈길도 안 줘요. 내년에 골프장 두 개가 (근처에) 더 생긴다는데 죽을 맛입니다.” (강원도 A골프장 마케팅 실장)



골프장 500개 돌파 눈앞에“겉으로만 회원제 골프장이지 이미 퍼블릭으로 전환했다고 보면 됩니다. 일본 여행사 통해서 일반 고객을 계속 받고 있어요. 제주도 골프장 중 일본인 부킹 안 되는 골프장은 아마 없을 걸요? 일본 여행사에서 골프장에 금액 제시하고 서로 조율해서 관광객을 연결해줘요.

회원들 위해서 일반 고객 받는 한도를 지키자고 내부 방침을 세워두긴 했지만 얼마나 유지될 지 모르겠네요. 그나마 제주도 골프장은 형편이 괜찮아요. 수도권을 벗어난 곳에는 더 열악한 곳이 많아요. 겉으로는 회원제이지만 뒤로는 여행사 끼고 비회원에게도 골프장을 다 개방하죠.” (제주도 B골프장 관계자)

골프장 업계의 갑(甲)과 을(乙)이 바뀌었다. 골프 붐이 일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골프장 예약은 하늘에 별 따기에 가까웠다. 골프장이 많지 않았고, 그나마도 1억~2억원의 회원권이 없으면 예약이 쉽지 않았다. 90% 이상의 골프장이 회원제로 운영됐다. 불과 10년 사이 골프장 경영 환경이 확 달라졌다. 골프장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면서 적자에 시달리는 골프장이 늘었다. 골프장마다 손님 모시기에 여념이 없다.

지난해까지 영업 중인 한국의 골프장은 총 469개. 올해 23개의 골프장이 추가로 문을 열 예정이다. 현재 건설 중이거나 착공 예정인 골프장도 91개에 달한다. 이들 사업이 예정대로 마무리 될 경우 국내의 골프장 수는 583개로 늘어난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한국 골프인구 대비 적정 골프장 수(450개)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자연스럽게 적자를 보는 골프장이 늘었다. 골프장 수가 급증하면서 홀당 이용객 수가 4.4% 감소했다. 골프장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용료가 하락한 것도 한 요인이다. 특히 회원제로 운영되는 골프장의 적자폭이 크다. 경기침체에 가격이 저렴한 퍼블릭 골프장을 찾는 고객이 늘었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129개의 회원제 골프장 가운데 지난해 영업적자를 기록한 곳은 전체의 46.5%인 60개다. 2011년 42개보다 18개가 늘었다. 퍼블릭 골프장 역시 안심할 수 없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장은 “지난해 퍼블릭 골프장의 영업 이익률이 36%로 아직 괜찮은 편이지만 점점 떨어지는 추세”라며 “경영난에 시달리는 퍼블릭 골프장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퍼블릭 전환도 어려워누적된 적자로 법정관리 위기에 처한 골프장도 많다. 회원제 골프장 경영자를 주축으로 설립한 한국골프장경영협회는 골프상품권을 발행할 계획이다. 무기명 주중 회원권을 발행하는 회원제 골프장도 늘었다. 골프장 회원권 가격은 큰 폭으로 떨어졌다. 골프장 매물도 심심찮게 나온다. 단, 마음대로 팔기는 어렵다. 회원들의 입회금 반환 문제가 있다. 골프장을 사려는 입장에서는 입회금까지 고려하면 가격이 올라 매입하기 힘들다. 회원들의 반발로 소송이 벌어진 곳도 적지 않다.

한때 골프장 건설의 원동력이 됐던 회원권이 이제는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국내 회원제 골프장은 대부분 회원권 분양대금으로 건설비를 충당한다. 체육시설의 설치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서는 골프장 사업자가 5년인 분양기간이 끝나면 회원권 입회금을 회원에게 돌려줘야 한다. 5년간 골프장을 운영해 갚아야하는 돈인데, 누적된 적자로 반환이 힘들다. 경영이 어려워진 회원제 골프장들은 ‘개별소비세 감면’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해 골프경영자협회는 “해외로 빠져 나가는 고객의 발길을 국내로 돌리고, 회원제 골프장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개별소비세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퍼블릭 골프장 중심의 대중골프장협회는 “회원제 골프장이 주장하는 세제개편안은 회원권을 가진 일부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부자 감세”라며 맞섰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세제 개편을 통해 거둘 수 있는 효과는 미미한 반면, 연간 3000억원이 넘는 세수 감소가 발생한다”며 퍼블릭 골프장의 손을 들어줘 개별소비세 인하는 무산됐다. 회원제 골프장에는 입장객 1인당 2만1120원의 개별소비세(교육세·농어촌특별세·부가가치세)를 부과한다. 퍼블릭 골프장은 개별소비세가 없어 회원제 골프장에 비해 요금이 싸다.

아예 퍼블릭으로 전환을 시도하는 회원제 골프장도 늘었다. 전남 영암 아크로, 강원 횡성 섬강벨라스톤, 경남 양산 다이아몬드, 경북 성주 롯데스카이힐 등 10여 개의 회원제 골프장이 이미 퍼블릭으로 전환을 마쳤다. 이들 골프장은 그나마 사정이 괜찮은 편이다. 회원들에게 돌려줄 입회금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적자 골프장들은 회원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적자를 감수한 채로 운영한다. 더욱 상황이 나빠지면 도산이 불가피하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한국에도 일본식 대형 프랜차이즈 골프장이 생길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한국의 골프산업은 일본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일본은 1980~1990년대 골프 대중화 바람이 불면서 골프장이 급격하게 늘었다. 회원권 위주의 골프장이 많다는 것도 한국과 비슷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버블 붕괴와 공급 초과 현상으로 도산하는 골프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2004년까지 440여 골프장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고가의 회원권 가격은 10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이후 일본에는 대형 프랜차이즈 골프장이 등장했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먼삭스와 론스타가 헐값에 나온 골프장을 대거 사들인 것이다. 이들은 인수한 골프장의 요금을 낮추고 선진 경영기법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현재 골드먼삭스가 설립한 아코디아골프체인과 론스타가 설립한 퍼시픽골프매니지먼트(PGM)가 일본 골프장의 양대 축으로 자리잡았다. 두 회사가 운영하는 골프장에서 발생하는 매출이 전체의 69%에 이른다.

지난해 5월 PGM은 한국 지사를 설립했다. 그동안은 뚜렷한 활동 없이 시장 분위기를 살폈다. PGM은 론스타가 보유하다 지난해 매각해 일본인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경영진이 바뀌고 조직이 안정을 찾으면서 한국 쪽 사업도 탄력을 받았다. 현재 인수 대상 골프장을 물색 중이다. 트룬골프·태평양 등이 주축이 돼 설립한 ‘더골프그룹’도 PGM이 일본에서 시도한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한다.

1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한 다음 부실 골프장 50여 개를 한번에 인수할 계획이다. 현재 자금 마련을 위해 골드먼삭스를 비롯한 투자자와 접촉 중이다. 충남 아산 아름다운 CC와 경기도 여주 캐슬파인GC가 1차 인수 대상이다. 더골프그룹 관계자는 “영업 정지된 저축은행이 보유한 골프장만 스무개가 넘는다”며 “이 골프장과 다른 매물로 나온 골프장만 인수해도 20~30개의 골프장을 한 번에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크린 골프 업체 골프존도 골프장 운영 사업에 뛰어들었다. 단순히 골프장 한 두 개를 운영하는 게 아니다. 법정관리 대상으로 나온 골프장을 1년에 두세 곳씩 인수해 규모를 키운 다음 프랜차이즈 형태로 운영할 계획이다. 골프존은 2011년 골프장 운영 자회사인 골프존카운티를 설립하고 전북 고창 선운산CC(현재 골프존 카운티 선운CC)를 481억원에 인수했다.

지난해 78억원의 매출과 31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성과를 올렸다. 현재는 딜로이트안진과 손잡고 경기도 안성Q CC 인수를 추진 중이다. 골프존 관계자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골프장을 인수해 20개까지 늘릴 계획”이라며 “선운CC의 운영 경험을 십분 발휘해 한국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론스타계 자본 국내 골프장 인수 타진전문가들은 골프존처럼 부실 골프장 두 세 곳을 묶어 키우는 구조조정 방식이 현실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서천범 소장은 “일본은 수백 개의 매물이 한 번에 쏟아져 나와 대형 체인을 설립할 수 있었지만 한국은 그럴 여지가 적다”며 “한국의 회원제 골프장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적자가 나도 얼마간은 버티고, 조금씩 매물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 골프업계 관계자는 “법정관리 골프장이 있어도 회원권 문제로 가격이 만만찮다”며 “일본은 인수자가 회원권의 액면 가격 중 5%만 부담하는 법안을 마련해 매입자 대량 인수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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