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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눈앞의 모든 게 역사가 된다

Culture - 눈앞의 모든 게 역사가 된다

작가 장태원, 산업화 역사의 기록·공감에 관심…산업혁명 이후 생긴 공장 찾아다녀
1. 장태원, Collusion, Yonkers, 2013년 2. 장태원, Collusion, Shimonoseki, 2013년



우리는 역사보다 뉴스가 중요한 시대에 사는 것 같다. 신문에서, TV에서, 손에 든 스마트폰에서 늘 뉴스가 쏟아진다. 뉴스가 지닌 최신성은 정보로서의 자극성이 매우 높다. 지나고 나면 꼭 필요한 정보가 아니더라도 새롭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뉴스를 주목한다. 혹시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정보가 있진 않은지, 생존에 꼭 필요한 정보가 담겨있진 않은지 점검하기 위해서라도 최신 정보를 탐색하고 수용한다.

경우에 따라선, 자신이 속한 집단에 동조하기 위해서 뉴스에 집중하기도 한다. 주변 사람이 다 아는 사실을 나만 모르면 제대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증권가 찌라시’라는 이름의 정체 모를 뉴스는 바로 이런 심리를 파고든다. 누가 만들었는지도 알 수 없는 자극적 스토리가 익명이라는 갑옷을 입고 삽시간에 퍼져 나간다.

마치 유행의 최선봉에 서기라도 하는 것처럼, 유행에 편승하지 않으면 부끄러운 것처럼, 심지어는 우리끼리만 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처럼, 비밀스럽게 뉴스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그런 뉴스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스마트폰 대기 화면의 불빛이 자동으로 꺼지면서 동시에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는 뉴스도 부지기수다. 처리할 정보가 너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정보는 정보의 가치를 따지기가 어렵다.

역사는 거대하고 인간은 미약하다. 오늘 하루하루 느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금, 여기(here & now)’를 떠난 관점을 지닌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에겐 쉬운 일이 아니다. 쏟아지는 뉴스를 잘 가려 받으려면 스마트 폰 애플리케이션 대신 역사적 관점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한 개인이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해서 급변하는 세계에 대응하는 주체적 관점을 지니는 건 쉽지 않은 일일뿐더러 어딘지 고리타분한 지침처럼 들린다. 우리는 다만 지금 일어나는 일이 과거 또는 미래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생각할 기회가 필요한 것이다.

장태원 작가의 ‘콜루젼(Collusion)’ 연작은 역사적 장면을 개인적 경험으로 끌어들인다. 그가 관심을 가지고 찾아 다니는 곳은 지난 세기의 산업이 만든 시설물이다. 산업혁명 이후에 인류의 생활양식을 변화시킨 중요한 공장을 찾아 다니는 것이다.

천연 자원을 채굴하기 위한 탄광이나 전기를 만들기 위한 발전소를 비롯해서 제철·면화·군수 관련 산업 등은 거대 자본과 맞물려서 거대한 인공물을 만들었다. 산과 들만이 있던 곳에 공장이 들어오면 자연히 도시가 생겨났다. 주변에는 도로와 철도가 놓였고 수많은 근로자가 일자리를 찾아 모여들어다. 거기에 그들에게 필요한 집과 소비재 유통망, 유흥시설이 함께 자리를 잡았다.

아마도 20세기의 인류는 경이로운 생산성을 자랑한 산업도시의 활약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산업구조의 변동으로 상황은 급속히 달라졌다. 불야성을 이루던 산업도시가 지도에서 사라지는 일까지 생겨났다. 미국과 일본 등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이런 장소를 찾아 다니면서도 작가는 자신의 사진에서 장소 자체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아마도 소재보다 표현방법을, 표현방법보다 자신이 던지는 질문을 더 중요하게 다루고 싶어서 일 것이다. 그 모든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연결돼 있다.

작가는 19세기 이후의 산업이 만든 거대한 인공물을 밤 시간을 이용해서 촬영한다. 충분한 빛이 없으니 당연히 촬영시간은 길어진다.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몇 시간까지, 밤이 낮처럼 충분이 밝아질 때까지 장시간 노출을 주어 사진을 찍는다. 이런 방법으로 작업을 하려면 낮 촬영보다 더 많은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달의 크기, 구름의 양이나 높이, 바람의 세기와 같은 날씨는 물론이고 도시의 고립 정도에 따른 주변의 조명상태 등을 세심하게 따져가며 작가가 보려던 건 ‘아름다운 도시’다. 비록 현실에서는 급속한 쇠락의 길을 가고 있다 해도, 한 시대를 호령한 위용을 기억하듯, 달빛은 시간을 감싸 안는다. 천천히 스며드는 빛은 거친 역사의 현장을 순화시킨다.

사진은 의도하지 않아도 역사를 기록한다. 미국 최대 철강회사였던 베들레햄 스틸의 한 공장은 촬영 당시 카지노로 쓰였다. 글렌우드 발전소는 최근에 컨벤션센터로 변신을 시작했다. 일본 시모노세키 바닷가에 남겨진 포격 훈련장은 언제 그 자취가 사라질지 알 수 없다. 작가는 자신이 바라보고 싶은 대로 역사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지만, 거기에 담긴 시간은 객관과 주관의 경계를 넘나들며 현재와 과거를 이어준다. 산업적 유산을 기록하고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상실된 기능을 작품 속에서 복원시키는 것이다.

장태원의 작품은 지금 우리의 눈앞에 있는 모든 게 곧 역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 순간에도 과거가 되는 것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분절적이고 파편화된 경험에 역사성을 부여할 수 있다. 한 인간이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인식론적 한계는 이미 20세기 모더니즘 시대의 예술가에게도 중요한 화두였다.

인류는 더욱 빠르고 복잡한 세계로의 진화를 거듭한다. 거기에서 비롯된 좌절과 도전은 지금도 계속된다. 장태원은 찬미와 풍자라는 산업화에 대한 전통적인 비판의식을 벗어나서 ‘기록’과 ‘공감’을 통한 개별화된 역사의식을 드러낸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이끌려 세계를 사는 나약한 인간이라도, 현재진행형의 변화에 주목하고 자신의 경험을 극대화시켜 동시대의 인류와 함께 공감하려는 노력은 의미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이 언젠가 역사로 남는다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함께 고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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