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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16살부터 기업실무 배우며 명장(名匠) 꿈꿔

Issue - 16살부터 기업실무 배우며 명장(名匠) 꿈꿔

특성화고·전문대생 상대로 ‘일-학습 병행 듀얼시스템’ 도입 … 업계 반응은 엇갈려
고용노동부·한국산업인력공단 주최 ‘기술대장정’ 행사에 참가한 전국 특성화고 학생들이 7월 24일 경남 창원에서 산업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여러분 가정에서 사용하는 TV·냉장고·세탁기 뒷면을 본 적 있죠? 이곳에서는 가전제품 후면 판을 만드는 금형을 설계·제작하는 일을 합니다. 완성된 틀 하나로 수 백, 수 천 개의 제품을 찍어내기 때문에 신중하게 작업해야 합니다.”

동구기업 경영지원팀 이충기 차장이 시끄러운 기계음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설명을 이어나간다. 그의 설명을 하나라도 놓칠새라 30여명의 고교생이 눈을 반짝이며 집중한다. 7월 24일, 경남 창원의 프레스 금형 제작 전문업체 동구기업은 오랜만에 젊은 방문객들로 북적거렸다.

지난해 9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 고졸 취업박람회에 몰린 인파.
이들은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 주최 ‘기술대장정’에 참가한 전국 특성화고 학생들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기술 명장(마이스터)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산업현장을 둘러보고, 우수 기업의 기술인들과 만날 기회를 주기 위해 마련됐다.



중소업계 “현행 실습 기간 너무 짧아”행사에 참가한 부산 자동차고 2학년 강석진(17)군은 자동차 생산 업종에 종사하는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특성화고로 진학했다. 그는 “자동차 정비기술을 익혀 이 분야 전문가가 되고 싶다”며 “남들보다 빨리 기술을 익히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고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에 6개월 간 기업으로 실습을 가는데 그 전에 현장을 보면 좋을 것 같아 이번 행사에 참가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만난 고교생들은 강군처럼 졸업 후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할 생각이다. 공업·상업·전자·에너지고 등 재학 중인 특성화고 분야는 저마다 다르지만 마이스터를 꿈꾼다는 점은 동일했다.

이들 특성화고(마이스터고) 학생들은 대개 졸업 직전인 고교 3학년 2학기에 기업으로 실습을 나간다. 이때 적용하는 제도가 중소기업청이 지원하는 산학연계 맞춤형 인력양성사업이다. 전국 150개 특성화고가 이 기준에 따라 실습 과정을 제공한다. 학교별로 기간과 시스템에 차이는 있지만 대개 짧게는 2~3개월, 길어야 6개월을 넘기지 않는다.

2008년부터 시행된 이 사업은 중소기업청과 학교·중소기업이 연계됐다. 특성화고와 중소기업이 취업 약정을 하고 기업이 우수 학생을 선정해 각 기업에 필요한 교육을 시킨 후 채용하는 방식이다. 이 사업에 참여한 중소기업은 병역지정 업체로 우선 추천 받을 수 있다. 취업한 학생 역시 산업기능요원으로 우선 편입돼 병역 특례 혜택 대상이 된다. 이 때문에 참가 학교와 취업 학생 수가 늘고 있다.

시행 첫해 전국 66개 학교, 1만5134명의 학생을 지원해 그중 23.8%인 3602명이 취업에 성공했다. 이후 매년 지원 대상을 늘려 지난해에는 80개 학교, 2만2686명의 학생이 혜택을 받았다. 이들 중 55.7%인 1만2647명이 취업했다. 올해는 규모를 더욱 늘려 총 27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이대건 중소기업청 인력개발과장은 “이 사업은 산업체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지원해 중소기업 취업을 늘리는 게 목표”라며 “올해는 150개 학교, 4만여명의 학생이 참여할 계획으로 이들 중 60%인 2만4000여명이 취업에 성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사업 취지는 좋으나 취업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기에 몇 개월의 실습 기간은 여전히 너무 짧다”고 입을 모은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실습과정으로만 여겨서 그런지 근무 태도가 불량하거나 마지 못해 출근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며 “실습을 했다 하더라도 기업 내부 평가 기준에 따라 취업하지 못하는 사례가 더 많다”고 말했다.

실습 기간에 대한 기업과 학교 간 견해 차도 크다. 기업에서는 실습 기간을 늘리고 싶어한다. 반면 학교에서는 수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최소한으로 실시하려고 한다. 서울 시내 한 특성화고 교사는 “외부로 실습 나간 학생들에 대한 지도·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에 2~3개월씩 보낸다”며 “간혹 과도한 업무 부담을 주는 기업도 있고, 안전사고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무조건 견습 기간을 늘려 잡는 게 과연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별도의 교육 과정 없이 야간 근로를 강요하는 등 노동 강도가 높거나 현장 업무와 무관한 잡일로 시간 때우기 식이 많아 학생들조차 기피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기업과 학교 간 원하는 바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내년부터 ‘독일식 도제(견습)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는 7월 18일 안정적인 청년 일자리의 확보를 위해 ‘일-학습 병행 듀얼시스템’을 추진키로 하고 직장 내 학습 체제를 갖춘 ‘구조화된 현장직무교육훈련(S-OJT)’ 시스템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독일에서는 고교 졸업과 동시에 현장에 투입돼 전문가로 바로 일할 수 있는 직업교육(아우스빌둥)이 뿌리 내렸다.

독일식 도제제도를 이해하려면 학제부터 살펴야 한다. 독일은 중학교 과정(제쿤달스튜페1)부터 다양한 종류의 학교를 선택할 수 있다. 이때 아우스빌둥에 진학하고 싶은 학생은 특수학교인 레알슐레나 하우프트슐레에 다닌다. 이후 고교 과정(제쿤달스튜페2)에 진학해 3년간 아우스빌둥 과정을 밟는다. 이 과정을 거쳐 만 16세가 되면 기업에 입사해 실무교육을 받을 수 있다.

아우스빌둥은 기업에서 제공하는 직업교육 과정이다. 현재 우리나라 특성화고 3학년 학생들이 2~6개월 간 거치는 실습 과정에 해당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일종의 자격증으로 볼 수 있는 기술학위를 부여한다. 도제수업을 받는 학생들은 훈련을 지원하는 회사에 취업해 마이스터로 성장하는 사례가 많다.



입사 후 재교육 비용 절감 효과철저한 자격증 제도를 거쳐 선발된 학생들이기 때문에 실습 기업이 아닌 다른 기업에 입사하더라도 실무에 바로 투입할 수 있다. 기업 또한 채용 때 직업교육 시행과 자격증 여부를 꼼꼼히 따진다. 이처럼 독일식 도제제도는 직장에서 일을 배우면서 과정을 이수할 경우 자격증을 주는 게 골자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성이 자사 종업원 대상으로 운영하는 ‘삼성대학’ 등 사내대학이 있다. 그러나 독일처럼 기업이 같은 직종의 학생을 가르치고 교육하는 시스템은 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우수한 인재를 조기에 확보하면서도 입사 후 별도의 재교육 부담이 줄어든다. 학생들은 불필요한 스펙을 쌓지 않고도 이른 나이에 안정적인 직장을 찾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독일의 대학 진학률은 42%(2012년 OECD 발표 기준)에 불과하다. 한국의 진학률이 80% 이상인 것과 대조적이다.

정부는 독일식 견습제도를 벤치마킹해 청년층 일자리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또 특성화고에서도 이론교육에 치우친 시스템도 고칠 계획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독일식 도제제도를 어떻게 국내에 정착시킬지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라며 “다만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소하려면 이 제도를 안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부·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도 이에 대해선 같은 입장이라고 한다. 주요 대상은 특성화고와 전문대 최종 학년 학생 12만명과 직업교육을 원하는 일반고생은 1만4000명이다.

업계에서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특히 인력난이 심각한 중소기업에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류병현 동구기업 대표는 “실습 기간은 기술을 익히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그 기업의 문화와 일의 가치를 깨우치는 기회가 돼야 한다”며 “실습을 하는 이유가 결국은 취업을 하기 위함인데 한두 달이 고작인 현행 실습제도만으로 취업까지 이어지기엔 부족한 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류 대표는 “몇 개월 간의 실습 과정만으로는 입사 후 재교육이 불가피했는데 입학 직후부터 기업에서 교육을 받는다면 재교육 비용도 절감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기업들이 신입 직원 교육에 투입하는 비용은 1인당 평균 6000만원에 달한다.

취업률에 목마른 특성화고도 기업과 협력만 잘 된다면 효과적인 제도가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현수 수원하이텍고 교장은 “타학교와 달리 우리 학교는 신입생 선발 과정부터 교육과정까지 기업체와 협력해 운영한다”며 “이런 시스템을 학교 자체적으로 운영하기엔 어려움이 많았는데 정부에서 지원을 한다면 협력 기업도 늘고, 학생들 인식도 더욱 좋아질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원공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이은지(18)양 역시 “학교 내 여러 과가 있어 1~2학년 때는 통합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입학 직후부터 진로에 맞는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면 취업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새로운 제도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 제도의 실효성에 회의적인 의견도 있다. 경남도 내 한 중견기업 대표는 “독일과 우리는 학제 시스템부터 다르다”며 “여전히 학교는 교육, 기업은 실습이라는 이분법적인 시스템인 우리 실정에서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고졸자 혹은 기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독일식 도제제도는 먼 나라 이야기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업 간 입장 차도 크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현재 몇몇 특성화고에서는 대기업 취업을 목표로 각 기업에 필요한 기술을 선행 학습하는 반을 별도로 운영하는 것으로 안다”며 “기술을 미리 익힌다고 해도 실제로 채용되는 인원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고졸자 채용 기회도 적다”고 말했다. 그는 “고학력 대졸자 인력난도 극심한데 대기업이 기술이 뛰어난 구직자를 원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중소기업 취업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대기업 입사를 원하는 고졸 취업자에게는 소용 없는 일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소업계는 환영, 대기업은 회의적이런 가운데 정부는 독일식 도제가 도입되려면 직장 내 S-OJT시스템이 확대돼야 한다고 보고 내년 전국 1000개 기업에 이 시스템을 구축키로 했다. 이를 위한 훈련 비용, 인프라 구축비용 등은 재정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또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이 초과 근무에 시달리지 않게 근무시간 엄수 등 보호체계를 마련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기업은 이 시스템을 통해 근무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졸업시점에 정규직원으로 채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업들이 필요한 교육을 직접 맡아서 하니까 재교육비용이 불필요해 경비절감과 인재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일과 학습을 병행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이 정착하면 ‘일-학습 지원에 관한 법률(가칭)’을 제정해 본격적으로 독일식 도제제도의 안착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계획이다. 내년 첫 선을 보일 ‘한국식 도제제도’가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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