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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TTOM LINE - 비용 절감이 만능 아니다

BOTTOM LINE - 비용 절감이 만능 아니다

경쟁 격화와 소비자 외면으로 떨어진 실적을 만회하려면 애플은 지출 삭감보다 종업원들에게 돈을 더 풀어야



장부상 현금을 1450억 달러나 쌓아둔 회사가 돈 없다고 우는 소리를 하는 건 미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지난 8월 2일 월스트리트 저널에 애플의 소매유통 사업 관련 기사가 실렸다. 고속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새 경영자 물색에 겪는 어려움을 조명했다. 기사 속에 묻힌 재미 있는 정보가 한 가지 있었다. 그 유통체인이 실적을 개선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종이와 펜 같은 소모품 예산을 삭감한다는 내용이다. 참신한 아이디어이고 좋은 자극이지만 문제의 핵심에서 한참 벗어난 발상이다.

애플의 핵심적인 문제는 미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직면한 문제와 동일하다. 기업 부문은 잘 나가고 부유층도 탄탄대로를 달린다. 그러나 전반적인 내수는 그들이 바라는 만큼 살아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애플의 소매유통 사업은 큰 성공을 거뒀다.

2012년 애플 매장의 제곱피트 당 매출액이 5971달러로 2011년 대비 17% 증가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한다. 티파니보다 훨씬 많은 액수다. 그러나 올해 “제곱피트 당 매출이 4542달러로 줄었다. 전년 동기의 4754달러에 비해 4.5% 감소한 규모다.” 최신 분기 총매출액 또한 하락했다. “매장의 전년 동기 대비 매출 측면에서 애플이 수익 인식방법을 변경한 2009년 이후 최초의 하락이다.”

애플의 소매유통 사업이 일련의 난관에 부닥쳤다. 해마다 초고속 성장을 기록하기는 어렵다. 신규 고객이 고갈돼간다. 경쟁도 치열하다. 애플이 점심식사를 할 동안 블랙베리는 앉아서 빈둥거렸다. 하지만 나머지 전자업체들은 애플의 독점에 맞서 싸우고 있다. 삼성은 자사 휴대전화와 노트북 광고로 방송과 웹에 융단폭격을 가한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제품들도 순항 중이다.

이는 애플 특유의 문제들이다. 하지만 수요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소매업체는 애플뿐이 아니다. “고객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지난 2월 월마트 경영진 내부에서 블룸버그 뉴스로 새나간 탄식조의 e-메일 내용이다. “그리고 돈은 모두 어디에 숨었는가?”

소비 파이가 충분히 빨리 커지지 않는다. 일정 부분 임금이 많이 오르지 않은 까닭이다. 미국인들은 대체로 임금과 연봉 소득만큼 지출한다. 물론 소비습관을 맞추기 위해 많은 돈을 빌린다. 하지만 지난 몇 년 사이 미국 전체의 신용카드 및 주택담보 대출 잔액이 크게 줄었다.

소매유통 채널에 더 많은 현금이 유입되기를 원한다면 소비자 채널에 현금을 더 많이 투입해야 한다. 그런 일이 실현되고 있지만 속도가 빠르지 않다. 올해 정부는 급여세 인상을 통해 소비자 채널의 일부 현금을 거둬들였다. 게다가 기업들은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

지난 12개월 사이 220만 개 안팎의 일자리가 늘어났다. 괜찮은 수준이다. 그러나 임금은 여전히 오르지 않고 있다. 미국 기업계 특히 대기업들은 애플이 종이와 펜 예산을 아끼듯이 인건비를 억제해 왔다. 지난 7월 평균 주급은 전월 대비 0.4% 감소하고, 전년 대비 2% 가까이 상승했다.

임금상승폭이 전반적인 경제성장과 보조가 맞지 않는다. 대체로 약간의 임금인상을 손쉽게 감당할 수 있는 많은 기업이 그것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애플의 미국 내 소매유통업계 직원이 2만6000명 안팎이라고 한다. 2012년 뉴욕타임스 기사는 그들이 12달러 선의 시급을 받는다고 보도했다.

맥도널드보다는 높지만 그 정도로는 적정 수준과 거리가 멀다. 애플은 임금 인상 여력이 충분하다. 장부상 1450억 달러의 현금을 쌓아뒀다. 최근 분기에 69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미국 내 소매유통 업계 직원 1인 당 임금을 연간 2000달러 올려줄 경우 5200만 달러의 비용이 든다. 애플이 보유한 현금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애플이 직원에게 지급하는 임금을 깜짝 인상할 경우 그들이 바로 돌아서서 인상분을 애플 매장에서 쓰지는 않을 성싶다. 음식점·영화관·가구점·자전거포 등 다른 곳에서도 지출한다. 하지만 애플의 그런 조치는 경제환경을 더 우호적으로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 시장 선도자가 표준을 정하면 나머지도 따르는 경향을 보인다.

월마트가 임금을 짜게 주니까 다른 소매유통 업체들도 그들을 따라 한다. 반대로 애플이 임금을 약간 올려준다면 그 지역의 다른 동종 업체들도 직원들을 붙잡아 두려면 따라서 임금을 인상해야 한다. 그런 움직임이 계속 확산되면 곧 시중에 소비 자금이 약간 더 풍부해지고 그중 일부가 애플의 금전등록기로 흘러 들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세계 최고 부자기업으로 꼽히는 애플이 펜과 종이를 원하는 만큼 주문할 수 있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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