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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 Estate - 집 한 채 믿던 은퇴자 직격탄

Real Estate - 집 한 채 믿던 은퇴자 직격탄

양도세 감면 축소 … 기존 부동산 활성화 정책과 엇박자 지적도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려 했다가 거위에게 물린 격이다’. 8월 8일 발표된 ‘2013 세제 개편’ 얘기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국민의 세금 부담을 최소화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프랑스 루이 14세 때 재무장관이었던 콜베르의 발언을 인용했다가 오히려 역풍을 키웠다. 비과세가 축소됐지만 연간 16만원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편법증세’라는 국민적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유리 지갑’으로 불리는 봉급생활 중산층의 반발이 거셌다.

이번 세제 개편의 기조는 세수 확보를 위해 비과세를 대폭 축소한 것이다. 이는 부동산 분야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했다. 1가구 1주택자가 9억원 이상의 집을 팔 때 내는 양도소득세의 장기 보유특별공제를 축소했다. 자경 농지나 농지 대토 등에 따른 양도세 감면 요건도 까다롭게 했다. 대신 주택거래 활성화와 서민 주거안정 지원을 위한 세금 혜택은 늘렸다. 고가 주택 보유자의 세제 혜택을 줄이고 서민들의 세 부담은 줄였다는 점에서 대체적으로 올바른 방향 설정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이 같은 세제 개편으로 주택거래 활성화나 서민 주거안정이 이뤄지리라는 기대감은 적다. 취득세 영구 인하나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 등 주택시장 정상화를 위한 핵심 개편안이 빠진 때문이다. 오히려 양도세 같은 거래세를 낮추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세제 개편 논의와 정반대로 1가구 1주택자의 양도세 장기 보유 특별공제를 축소해 정책 불확실성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규정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과도한 세금 감면 조항을 축소하는 건 이해되지만 전반적으로 거래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빠져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9억원 초과 주택 특별공제 축소이번 세법 개정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양도세 감면 축소다. 9억원 초과 고가 주택의 1가구 1주택 장기 보유 특별공제 혜택이 줄어든다. 이명박 정부는 종합부동산세를 부담하는 9억원 초과 주택 소유자가 집을 팔 때 양도 차익의 최고 80%(연 8%)까지 양도세를 감면했다. 이번 세제 개편으로 원상복구 된다. 2015년 1월부터는 특별공제율이 구매일 기준 연 6%씩, 최대 60%로 낮아진다. 특별공제율을 적용 받으려면 3년 이상 보유해야 한다.

예를 들어 2003년 8억원을 주고 산 아파트를 15억원에 판다고 가정하자. 내년 말까지는 양도세가 762만원이지만 2015년 이후에는 2628만원을 내야 한다. 장기 보유 특별공제 금액이 2억2400만원에서 1억6800만원으로 대폭 줄어 과세표준이 5350만원에서 1억950만원으로 늘어난다.

이렇게 되면 고가 주택이 밀집한 서울 강남 지역의 주택거래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양도세 감면 혜택이 줄어들면 동결 효과가 발생해 고가 주택의 거래가 줄어들 수 있다. 주택 가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방식은 조세 당국 입장에서는 편리하지만 납세자 입장에서는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대형 주택을 중소형으로 ‘다운사이징’하려는 은퇴 세대가 이번 세제 개편의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평생 모은 돈으로 집 한 채만 가진 경우가 대부분인 60대 이상의 은퇴자들은 세제 혜택 축소로 주택 처분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주택시장 침체 장기화로 시가가 9억원이 넘고 시세 차익이 발생할 수 있는 주택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장기 보유 특별공제 축소에 따른 세 부담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재정 건전성 vs 시장 활성화이번 세제 개편안에는 자경 농지의 양도세 감면 범위를 축소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종전에는 8년 이상 해당 농지 소재지에 거주하면서 직접 농지를 경작했다면 땅을 팔더라도 양도세를 내지 않았다. 이로 인해 거주 요건을 적당히 채우면서 실제론 농업에 종사하지 않으면서 지가 상승을 노리는 ‘무늬만 농민’도 편법적으로 혜택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내년부터는 근로소득과 사업소득(농업·축산업·임업 제외)이 연간 3700만원을 넘으면 전업농으로 인정하지 않아 양도세를 감면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미 쌀 소득 보전 직불금 제도에서는 농업 외 종합소득금액이 3700만원 이상인 경우에는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토지 투기를 예방하고 세수 손실을 줄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전·월세와 주택저당차입금이자상환액에 대한 소득공제 대상이 확대된다. 전·월세난으로 고통 받는 서민·중산층의 주거비 부담을 덜고 주택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그러나 실제론 세제 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세법은 월세 지급액의 50%, 전세자금 차입 이자 상환액의 40%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을 ‘무주택 가구주’로 정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무주택 가구원’으로 범위가 확대된다. 부인이나 자녀가 월세 계약을 하고 월세를 지급했다면 공제 대상이 된다.

문제는 지금까지 전·월세 소득공제를 받으려면 근로자 총급여 5000만원 이하, 사업자 소득금액 4000만원 이하면 됐지만 앞으로는 이자 배당 등을 합산한 종합소득금액이 4000만원을 초과할 경우 소득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김규정 연구위원은 “종합소득금액이 4000만원이 넘는 일부 중산층의 경우 세제 혜택에서 배제될 수 있다”며 “가뜩이나 전셋값 상승으로 고통 받는 중산층이 이중고에 시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주택거래 활성화와 무주택 근로자의 주택 구입을 지원하기 위해 주택저당차입금이자상환액의 소득공제 대상을 확대했다. ‘국민주택규모’라는 제한 규정을 삭제해 85㎡ 초과 중대형 아파트라도 3억원 이하라면 소득공제를 받는다. 이에 따라 무주택 근로자가 주택 규모에 상관없이 대출을 받아 집을 샀을 때 대출 상환 기간이 15년 이상이면 이자 상환액의 500만원(고정금리·비거치식은 150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소득공제 대상 주택 규모 요건 폐지로 집값 하락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주택 구입을 꺼리는 무주택자의 자가 소유를 촉진하는 효과가 일정 부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주택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주택 규모뿐 아니라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이자 상환액 한도를 더 늘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번 세제 개편이 주택시장에 미칠 영향력이 매우 제한적이라고 평가한다. 또 양도세 감면 축소 조치가 ‘거래세 완화, 보유세 강화’라는 현 정부의 부동산 세제정책 방향과 배치돼 시장에 엇갈린 신호를 줬다고 비판한다. 다주택자 양도세중과 폐지와 종합부동산세 개편 등 핵심 내용이 빠진 것에 대해서도 과감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월세 시장은 전세중심에서 보증부 월세(반전세)와 월세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이 시점에서 월세에 대한 소득공제를 대폭 강화하는 등 임대차 시장의 변화에 발맞춘 전향적인 세제 개편 내용을 담지 못했다.



주택시장 영향은 제한적일 듯정부는 다주택자 양도세 폐지 등에 대해서는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에 추진 과제로 짧게 언급하는 선에 그쳤다. 김낙회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여러 부동산 세제 입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며 “정기국회에서 논의할 예정이어서 이번 세제 개편안에는 담지않았다”고 설명했다. 취득세 영구 인하 등 거래세 완화와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의 통합 등 보유세 개편은 정치권은 물론 지방자치단체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정부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조주현 교수는 “거래세 완화와 보유세 강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며 취득세·양도세와 재산세·종합부동산세의 비중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정치권과 지자체가 자신들의 이해를 떠나 재정 건전성 확보와 시장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해법을 빨리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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