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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즈 카드는 신자유주의 부활

서머즈 카드는 신자유주의 부활

민주당에서도 반발 거세 … 과거 IT·주택 버블정책 장본인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 당선인이 2008년 11월 24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경제팀 인선 관련 기자회견 자리에서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과 나란히 서 있다.



차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자리를 둘러싸고 미국 정·재계가 뜨겁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의중’에 로렌스 서머즈 전 재무장관이 있는 건 틀림 없어 보인다.

미국의 정치 전문 온라인 매체인 ‘더 힐(The Hill)’은 8월 1일자 기사에서 여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민주당 하원 의원들과의 비공개 회동에서 서머즈를 옹호했다고 참석 의원들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비록 “아직 완전히 결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서머즈 쪽으로 기울어 있음은 분명하다.

일각에서는 현재 연방준비제도의 양적완화 정책을 둘러싸고 그동안 유력한 후보였던 자넷 옐런 현 부의장과 로렌스 서머즈 사이의 입장 차이가 큰 이슈인 것처럼 보도한다. 그러나 이건 사실과 다르다.

오바마 대통령 스스로도 “후보군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고 밝힐 만큼 두 사람의 통화정책 차이가 크지 않다. 오히려 핵심적인 차이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견해, 연방정부의 대규모 재정 부양책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도록 백악관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인물이냐 아니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차이는 금융 산업에 대한 규제 여부에 달려 있다.



서머즈로 기우는 오바마오바마 정권의 참모 라인을 살펴보면 오바마 정권의 인맥은 주변 핵심 인사로 좁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집권 1기 초기의 ‘거국 연대 내각 및 참모 진용’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다른 식으로 풀이하면 오바마의 정치적 입지가 협소해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또 갈수록 과거 클린턴 정권 시절 인물의 입김이 세지고 있다. 따라서 그나마 자신의 ‘통치 철학’을 놓고 대화할 수 있는 인물을 차기 연방준비제도 의장에 올려놓고 싶어하는 건 당연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념적인 측면에서 로렌스 서머즈 전 재무장관이 좀 더 오마바 쪽에 가깝다. 전형적인 케인지언 재정·통화 정책을 금융적 측면에서 끌고 나갈 인물로는 서머즈가 더 적합하다. 서머즈 임명은 가뜩이나 취약한 미국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이 지금보다도 크게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바마는 로렌스 서머즈 전 재무장관과 자넷 옐런 현 부의장 사이에서 차기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고심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미 민주당과 공화당, 월가와 진보 진영 모두에서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서머즈는 성사되기 어려운 카드일 것이다.

이에 대한 민주당과 공화당의 반응이 흥미롭다. 미국 북동부 출신의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서머즈 카드’에 즉각 반발하며 연판장을 돌렸다. 공화당 상원 의원들은 ‘논란이 적은 인물을 선택하자’며 피해갔다. 적어도 상원 차원에서는 공화당과 서머즈 카드에 대해 사전 교감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민주당 내부의 반발로 서머즈 카드는 확실히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지지 청년 단체인 영턱스(Young Turks)의 대표가 “서머즈를 임명한다면 게임 오버(Game Over. 오바마에 대한 지지를 완전 철회하겠다)”라고 선언한 것에서도 나타나듯이 민주당의 주요 지지 기반 가운데 하나인 청년층과 진보 그룹의 반발이 상당히 거세다.

그러나 서머즈 카드가 의미하는 건 ‘재정 부양책과 월가에 대한 규제 완화’이기 때문에 이름만 바꾼 동일 노선 추종자(논란이 적은) 인물을 제3의 카드로 오바마가 내밀 가능성도 크다.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위해 버냉키 의장을 ‘빈부 격차 확대의 주범, 버블 위험 인물’이라고 슬쩍 시사한 건 상당히 ‘얄팍한’ 정치적 술수에 해당하지만, 레이건 이념의 충실한 추종자인 오바마 대통령에게 그 이상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차라리 궁금한 건 왜 서머즈를 차기 의장으로 고민하고 있느냐다. 서머즈 카드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는 대규모 케인즈주의적 재정 부양책(그리고 그 자금 조달을 위해 연방준비제도를 동원하는 것), 둘째는 백악관과 의사 소통이 수월한 인물(중앙은행 독립성의 약화)의 필요성이다.

동시에 이는 현재의 통화·재정 정책으로는 미국 경제의 성장 모멘텀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서머즈가 유력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건 일부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과 다르다. 서머즈와 자넷 옐런 현 부의장과의 차이는 양적완화나 완화적 통화정책에 있는 건 아니다.

물론 서머즈는 “양적완화가 재정 정책에 비해 덜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기서 방점은 양적완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다른 재정 정책’에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그리고 ‘다른 재정 정책’은 그것이 무엇이든 정부의 추가 부채 발행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며 그 비용(국채 이자 부담)은 작을수록 좋은 것이다. 아니, 작아야만 가능한 것이다.

좀 더 중요한 건 차기 후보감인 서머즈가 왜 양적완화가 덜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느냐의 문제다. 이는 곧 오바마 행정부의 의중이자, 월가 큰 손의 의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게는 양적완화 축소·중단으로 인한 혼란을 버냉키가 책임을 지라는 신호로도 볼 수 있다. 국제적으로는 양적완화 규모 축소(tapering)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영역들, 즉 신흥시장과 유럽에 대한 위협으로도 볼 수 있다.



양적완화 방식 바뀔 수도양적완화는 신흥시장 자금 유출입에 큰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유동성 부족에 허덕이는 유로존 은행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유로존 자금 공급의 15% 내외를 차지하는 미국계 머니마켓펀드(MMF)와 더불어 양적완화에 따른 통화 발행으로 현금성 예금으로 가장 많이 쌓인 곳이 유로존 은행이다. 그래서 양적완화는 유로존 은행에게 특혜라는 주장이 간간이 제기됐다.

표면적으로는 아시아 신흥시장이 양적완화 축소로 죽어나갈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로존 은행의 자금 압박 때문에 유럽중앙은행(ECB)은 양적완화를 자체적으로 시행하든지, 아니면 또 한 차례의 금융위기를 겪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양적완화는 미국 자산에 대한 통화팽창(reflation) 정책일 뿐만 아니라, 그 진퇴에 따라서는 국제적인 압력 수단이기도 하다. 이것이 달러의 힘이다.

두번째 요인은 서머즈가 양적완화의 작동 방식을 변경할 가능성을 꼽을 수 있다. 현재 연방준비제도의 핵심 정책 중 하나인 양적완화는 기본적으로 자산 가격을 부풀리기 위해 설계된 것이다. 실제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제한적이다. 심지어는 초과지준금에 대한 연준의 이자 지급 등으로 실물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래서 엄청난 통화 발행 속에서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다. 실물에 대한 투자 유인을 감소시키는 효과까지 가진 것이다.

오바마가 보다 원칙적인 제로금리주의자인 옐런이 아닌 서머즈를 선호하는 것은 바로 양적완화의 이 같은 제약을 해소하겠다는 의중이 담긴 것이다. 실물 경제로도 자금이 흐르도록 빗장을 풀겠다는 의사 표명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서머즈가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된다면 양적완화를 (조기) 중단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건 맞지 않다. 그보다 양적완화를 지속하되 그 방식의 변화를 통해서, 혹은 그 밖의 다른 방법을 통해서 연방준비제도에 쌓인 막대한 예금(지준금과 초과지준금)을 시중으로 내보내는 정책을 구사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를 방증이라도 하듯 죠셉 바이든 부통령의 전 경제 보좌관은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소득 불평등 문제를 거론하며 대규모 중산층 부양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오바마도 ‘대타협안(Grand Bargaining, 500억 달러의 정부 재정 건설 인프라 투자와 기업법인세 인하 주고 받기)’을 내놓았다. 백악관 측은 재정 부양책을 위한 대대적인 대국민 캠페인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서머즈 귀환 때 인플레이션 각오해야서머즈가 씨티그룹 같은 월가의 대형 은행과 가깝다거나, 또는 은행 규제를 더 풀고 은행이 더 대형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 등은 금융 산업의 독점 강화를 통해서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정책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는 과거와는 달리 은행감독권을 부여 받았기 때문에, 버블이나 다른 금융 위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하는 연방준비제도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버블이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커져 후유증이 발생한다면 모든 비난은 이제 연방준비제도가 고스란히 짊어져야 한다. 최근 연방준비제도가 대형 투자은행을 상대로 자기자본금 비율을 높이고, 레버리지 비율을 제한하는 등 규제 조치를 강화한 건 바로 금융안정에 대한 연방준비제도의 최소한의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결국, 서머즈와 옐런의 정책적 차이가 작은 건 아니지만 둘 다 ‘더 완화적’이라는 틀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수행하는 방식에서 ‘통화주의’라는 제한된 틀에서 작동하기를 희망하는 버냉키-옐렌 노선과 금융의 무한 팽창을 통한 강제 신용 공급을 모색하는 서머즈-신자유주의(케인즈주의) 노선 사이의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서머즈가 의장이 된다면 인플레이션을 예상하고, 옐런이 총재가 된다면 유지 불가능한 현상유지 정책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서머즈의 귀환론은 또 다른 측면에서 흥미롭다. 루빈-서머즈로 이어지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재무장관 라인은 이른바 신‘ 자유주의’의 총아였다. 규제완화·금융화·세계화로 압축되는 이들의 세계관은 IT 버블과 주택 버블로 세계를 두 번씩이나 위기로 몰아넣었지만 여전히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를 탄생시킨 물적 기반이 여전히 세계 경제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두 번이나 정책적 실패를 거듭한 이 패러다임이 세 번째는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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