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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세계 개발사업의 총지휘자

제3세계 개발사업의 총지휘자

하버드대 교수, 다트머스대 총장 출신으로 오바마와 두터운 친분



한국계 미국인 의사인 김용(미국명 짐 용 김·54) 세계은행 총재가 8월 갑자기 뉴스의 주목을 받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여름 휴가 마지막 날인 8월 18일 휴가지인 미국 매사추세츠주 에드거타운의 마샤스 비니어드 골프장에서 오바마와 함께 라운딩하면서 친분을 과시했다.

김용은 앞서 14일에도 오바마와 동반 라운딩을 했다. 8박 9일의 대통령 휴가 중 두 차례나 함께 골프를 친 것이다. 18일 골프 동반자 중에는 같은 한국계인 전은우 변호사까지 2명의 한국계 미국인이 포함됐다. 이들 외에 마이크 브러쉬 백악관 보좌관이 합류했다.

한국계 이민자의 아들인 전 변호사는 뉴욕의 커크랜드 앤드 엘리스 법률사무소의 파트너로 기업 인수·합병 전문가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전 변호사는 오바마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에서 성장했으며 지난 미국 대선 당시 월가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위해 선거자금을 모금했다. 오바마가 전 변호사와 함께 라운딩 한건 선거운동 지원에 대한 감사의 성격이 다분해 보인다. 하지만 선거 지원과 무관한 김용과 두 차례나 동반한 건 그야말로 그에 대한 신뢰와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세계 최고의 권력자로 불리는 미국 대통령과 이처럼 가까운 김용은 능력과 파워를 동시에 지닌 인물로 평가 받는다. 그는 제3세계 개발사업의 돈줄을 쥔 인물이다. 세계은행이 개도국 개발사업을 위한 차관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김용은 세계은행이 밀레니엄 개발목표(MDGs)로 삼아 추진한 절대빈곤과 기아 근절, 보편적 초등교육 성취, 양성평등 고취, 유아사망률 감소, 모자보건 개선, 에이즈와 말라리아 등 질병 퇴치, 지속가능한 환경 확보, 개발을 위한 글로벌 협력 발전 등 8대 사업을 실행하는 총책임자다.

보건의료, 식량 공급, 농업 개발, 교육사업 등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위한 글로벌 협력 사업을 기획하는 최고위 설계자이기도 하다. 이런 개발 사업을 통해 세계은행에 돈을 대는 서방 국가들은 제3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김용이 그 선두에 있다.

김용은 7월 초 한 인터뷰에서 대규모 시위 사태를 맞은 브라질·이집트·터키 정부에 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세계 각국 정부들은 브라질과 이집트·터키에서 발생한 대규모 시위로부터 국민에게 적절한 공공 서비스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러면서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가 민간 사회의 강력한 도구로 등장한 만큼 모든 국가는 공공 서비스를 제공할 때 그것이 효과적인지, 또 국민이 진정 기회가 있는지 진심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민의 정치적 요구를 억압하지 말고 어느 정도 들어줘야 한다는 압박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이다. 그가 실제로 돈줄을 쥐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엔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그는 “이러한 사태들은 거시경제를 잘 운용하는 게 점점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거시경제를 잘 운용할 때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들 정부에 구체적인 변화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보건과 교육, 사회안전망 확충 등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가 매우 중요하다”며 “그래야 소득 불평등 문제도 해결된다”고 지적했다.



브라질·이집트·터키 정부에 변화 압박실제로 그의 발언 이후 브라질은 서둘러 공공 서비스 개선을 약속했다. 그의 충고에도 시위대에 고압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이슬람식 개혁을 주장한 무함마드 모르시 대통령은 반정부 시위에 이은 군사 쿠데타로 축출됐다. 시위대와 군부가 그의 발언을 어떤 신호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사실 김용 총재는 7월 초 “이집트에서 민주적으로 당선된 대통령이 축출돼도 이집트 차관에 따른 개발 계획은 계속 추진하기를 세계은행은 바란다”고 말했다. 세계은행은 이집트에 47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3월 23일 김용을 세계은행 차기 총재 후보로 지명했다. 전통적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은 유럽에서 총재를 맡아왔으며 세계은행은 미국 몫이었다. 김용 직전에는 역시 미국인으로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와 국무부 부장관 출신으로 골드먼삭스 이사를 지낸 로버트 죌릭이 세계은행 총재를 5년간 맡았다. 세계은행 총재는 187개 회원국을 대표하는 집행위원 25명의 투표로 결정된다.

김용은 나이지리아의 재무장관인 응고지 오킨조이웨알라와 콜롬비아의 전직 재무장관인 호세 안토니오 오캄포와 함께 후보로 나섰다. 그는 오바마의 지명 다음 달인 4월 26일 세계은행 집행위원 선거에서 총재로 선출돼 그 해 7월 1일 취임했다. 글로벌 사업에서 보여준 업적 때문에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선출됐다.

김용은 2009년 3월부터 지난해까지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인 다트머스대의 17대 총장을 지냈다.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아이비리그 총장을 지낸 건 그가 처음이다. 다트머스대로 가기 전에는 하버드대 의과대 교수로 글로벌 보건·사회의학과장을 지냈다. 1987년 설립된 글로벌 인도주의 의료봉사단체인 ‘건강의 파트너(PIH)’의 공동 설립자로 총재도 맡았다.

그렇다면 금융인이 아닌 의사 김용이 왜 세계은행의 총재를 맡았을까? 잠시 그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자. 김용은 학력·경력이 화려하다. 서울 태생으로 다섯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 아이오와주로 이민한 그는 아이오와대 치과대 교수인 아버지와 철학박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성장했다. 고교를 수석으로 마쳐 졸업식 때 동기 대표로 고별 연설을 했으며 학교 미식축구팀에서 주축인 쿼터백과 농구팀에서 경기를 이끄는 포인트 가드를 맡았다. 이를테면 ‘엄친아’였던 것이다.

아이오와대에 진학했다가 한 학기 반을 마치고 동부 아이비리그인 브라운대학으로 옮겨 졸업했다. 1991년 하버드대 의과대를 마치고 이 대학 최초의 의학·사회과학 협동 프로그램에 의해 1993년 인류학 박사 학위도 받았다. 1993년 하버드대 의과대 교수에 임용돼 글로벌 보건·사회의학과장을 맡았고 2003~2006년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 국장으로 활동했다.

에이즈 국장 당시 에이즈와 그 원인이 되는 HIV 감염이 만연한 아프리카 국가에 2005년까지 300만명의 환자와 감염자를 치료하는 3X5 프로젝트를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목표는 제시간에 달성되지 못했지만 이 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대성공해 최근까지 700만명의 환자와 감염자를 치료했다. 이 프로젝트로 그는 글로벌 보건사회에서 이름을 알렸다.

2009년부터는 다트머스대 총장을 맡아 역시 의욕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다가 세계은행 수장에 올랐다. 이런 학력과 경력이 지금의 그를 만든 배경이 된 건 맞다. 하지만 이건 필요조건일 뿐이다. 그는 여기에 창의성과 헌신성, 그리고 열정이라는 세 가지 장점을 보탰다.

김용은 앞서 말한 ‘건강의 파트너(PIH)’라는 글로벌 인도주의 의료봉사 단체를 의대생이던 1987년 조직했다. 같이 의대에 다니던 폴 파머(현 하버드 의과대 글로벌 보건·사회의학과장) 등과 함께였다. 그는 진료 중심의 단순한 의료봉사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혁신적인 의료봉사를 고안해 실천했다. 그는 가난과 질병을 동시에 구제하는 프로그램을 가동하려고 노력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해 3월 23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백악관 공식 브리핑에서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된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가운데)을 소개하고 있다. 그 왼쪽은 힐러리 클린턴.





창의성·헌신·열정이 큰 무기가족과 이웃의 도움을 받으며 잘 먹고 깨끗하게 생활해야 질병이 더 빨리 정확하게 치료될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신념이었다. 그래서 급수·영양공급·교육·주거향상 등으로 지역사회 주민의 생활을 향상시키면서 가난한 환자가 빈곤과 결핵·에이즈 같은 질병에서 동시에 벗어나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가난이 병을 만들고 병환이 다시 빈곤을 부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은 것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사회의학의 기본 개념이다. 이런 식으로 그는 의료봉사 활동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이며 생산적인 방법으로 진화시켰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주민들의 생활이 나아지면서 질병 치료 효과도 훨씬 좋아졌다. 질병은 병원에서만 치료한다는 기존의 인식을 바꾼 것이다. 그는 카리브해 연안의 가난한 나라 아이티에서 봉사활동을 계속했으며 PIH는 지금도 계속 활동하고 있다. 1990년대 초까지 이 프로그램의 도움으로 치유된 아이티 주민이 10만명을 넘는다.

이 프로그램에는 의사보다 지역 주민의 손길이 더 많이 동원됐다. 그 결과 비용이 훨씬 적게 들었다. 결핵 퇴치의 경우 미국에서 한 사람당 1만5000~2만 달러가 들 것을 현지에선 150~200달러로 해결됐다. 지역사회가 나서서 환자의 생활을 돕고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지원한 때문이다. 물리적인 질병 치료가 아니라 삶의 문제를 해결한 덕분이다.

가난을 막아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으며 지역 경제가 안정돼야 가난을 막을 수 있음을 역설한 것이다. 이는 곧 세계은행이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지역사회 의료는 현재 제3세계 의료사업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김용은 이러한 지역의료 성공사례를 남미·아프리카·중앙아시아 등 전 세계 빈곤국 현장을 두루 누비며 전파했다.

이런 활동에 힘입어 하버드대에 지역사회 의료 프로젝트를 연구·수행하는 글로벌 보건·사회의학과가 설치됐으며 그 덕분에 그는 하버드 의과대 교수와 학과의 학과장을 맡을 수 있었다. 그는 WHO 활동을 위해 2003년 하버드를 떠날 때까지 무려 16년 동안 PIH 활동을 계속했다. 창의성과 함께 가난한 환자들을 돕겠다는 헌신성과 열정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김용과 2009년 인터뷰한 월스트리트저널 건강 분야 블로거인 알 멀리는 이런 말을 남겼다. “중요한 건 김용이 의사란 사실이 아니라 그가 의학 지식을 어디에 쓰려는가에 있다. 그는 자신의 지식을 활용해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성가신 문제를 해결하려고 도전하고 있다. 그게 그를 가치 있게 만든다.”

김용이 하버드대 의과대 교수와 WHO 간부에 이어 세계은행 총재가 된 것은 몰리의 지적대로 이 같은 창의적 아이디어와 더불어 헌신적인 실천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지식이나 학위가 아니라 그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있다. 강단 의료인이나 이론가가 아니라 현장의 실천적인 의사이자 프로젝트 수행자로서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헌신해왔다는 점이 개발과 빈곤퇴치를 맡은 세계은행 수장에 발탁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용과 함께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강력하게 거론된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김용이 총재를 맡은 직후 쓴 칼럼에서 “세계은행의 개도국 개발사업은 글로벌 평화 유지에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속가능한 개발은 지속가능한 평화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며 “지역 주민이 계속 굶주리고 기근에 봉착하고 물이 부족해서 끼니를 제대로 이을 수도 없고 희망도 없다면 어떠한 군사적 해결방안도 지역을 안정화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지난해 2월 나온 미국 정보기관의 보고서를 인용해 “다음 10년 동안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의 물 부족 문제가 미국 국가안보 이익에 중요한 나라들을 불안정하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 부족은 미국의 국가안보뿐 아니라 글로벌 안보까지 위협하며 수많은 사람의 생존과 행복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며 “굳이 10년 뒤까지 생각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이미 보고서가 예상한 그 무시무시한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도국 개발사업은 세계 평화 유지에 긴요세계은행은 지속가능한 개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가 힘을 모으는 국제기구로서 전 세계의 정부·과학자·학자와 시민 사회 조직자, 그리고 대중과 손잡고 세상을 진보시키는 기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로 그 기구의 대표가 김용인 것이다.

김용은 특히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이 60년 동안 거둔 개발과 성장의 노하우를 글로벌 사회에 확산하는 주역으로도 주목 받는다. 김용이 총재에 취임하던 날 직원과의 대화에서 했던 “한국을 본보기로 삼을 수 있다”는 발언은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김용 총재는 젊은 시절 서울에 와서 어학당에 다니며 한국어를 배웠다. 제법 유창하다. 그는 미국인이지만 한국의 장점을 잘 안다. 그에게 여러 가지 기대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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