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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제조업 르네상스 완연

美 제조업 르네상스 완연

원유 생산 붐, 원가 경쟁력 향상으로 무역수지 개선



유럽을 대표하는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가 9월 9일 미국 앨라배마주의 항구도시 모빌에서 구인 공고를 냈다. 세 명의 대졸 엔지니어를 뽑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보잉과 어깨를 견주는 에어버스는 적진 깊숙한 곳에 공장을 짓고 있다. 6억 달러가 투입되는 이 조립공장은 2015년 가동을 시작해 이듬해 납품을 개시할 예정이다.

미국의 제조업이 살아나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8월 말 보고서에서 이를 ‘르네상스(부흥)’라고 표현했다. 이미 무역에서 드러나고 있다. 미국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50년 만에 가장 큰 수준이다. 보스턴컨설팅은 시‘ 작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빠르게 개선되는 비용 경쟁력이 미국의 제조업을 되살려내고 있다.

두 가지 배경이 작용했다. 미국 내 원유생산이 급증하면서 에너지 비용이 줄었고, 높은 실업률로 노동비용 역시 우위를 갖게 됐다. 이에 힘입어 미국의 무역수지는 가파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다. 일부 신흥시장 국가들이 경상수지 적자와 외환위기를 겪는 것과는 대조되는 현상이다.



고령화로 해외 상품 수입 수요 둔화해외에서 생산된 제품이 미국으로 수출되려면 운송 비용과 시간을 충당하고도 남을 정도로 원가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격차가 줄어든다면 차라리 미국 안에 공장을 두는 게 유리하다. 그래서 앨라배마주의 에어버스 공장처럼 지금 새로 짓는 생산기지의 상당 부분은 우선 미국 내수를 충당하는데 활용된다. 미국 내 공장 건설이 잇따르는 건 유럽이나 일본·중국 등의 원가 경쟁력이 지속적으로 하락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미국은 글로벌 제조기업의 수출기지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보스턴컨설팅은 2020년까지 다른 나라의 수출 가운데 연간 700억~1150억 달러가 미국의 몫으로 넘겨질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연간 수출 기반이 5% 가량 커진다는 뜻이다. 그 결과로 미국에서는 앞으로 7년간 약 250만~500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날 것이라고 보스턴컨설팅은 내다봤다.

미국 경제의 달라진 모습은 2분기 국내총생산(GDP) 지표에도 뚜렷하게 반영됐다. 2분기 중 성장률 2.5%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0.9%를 수출이 담당했다. 2010년 4분기 이후 가장 높은 기여도다. 더디긴 하지만 제조업 부문의 고용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8월 한 달 동안 미국의 제조업 부문에서는 1만4000개의 일자리가 생겨났다. 2010년 초 바닥을 찍은 뒤로 3년 반 동안 제조업 일자리는 총 50만3000개 증가했다.

미국 안에서의 원유 생산 붐은 제조기업의 원가 경쟁력을 높여줄 뿐 아니라 에너지 수입도 빠른 속도로 줄이고 있다. 그 결과 무역적자는 급격히 감소하는 중이다. 올 들어 7월까지 미국의 무역수지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59억 달러 개선됐다. 이 기간 석유류 수입이 무려 329억 달러 급감하면서 수지 개선을 주도했다. 석유류 수출은 38억 달러 증가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에 따르면 6월 중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총 2억1600만 배럴에 달해 21년 전인 1992년 수준을 회복했다. 미국의 무역수지 개선은 원유 증산 추세와 정확히 일치한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초 미국의 월간 무역수지 적자폭은 600억 달러를 넘었다.

그러나 이 무렵부터 원유 생산이 늘면서 수지가 개선되기 시작했다. 2011년부터 산유량이 가속도를 내며 증가하자 무역적자는 더욱 빠른 속도로 줄었다. 제조업 수출경쟁력을 증대시키는 역할까지 포함해 최근의 원유 생산 붐은 미국의 무역수지에 이중의 직간접 개선 효과를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제조업 수출국가에게 고무적일 수 있다. 에너지 수입이 급감하고 있지만, 이는 다른 상품 수입을 늘릴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역수지가 개선되고 국민소득이 증가한다고 해서 미국이 저축을 늘릴 나라는 아니기 때문이다. 2분기 중 미국의 수입은 GDP 성장률을 1%포인트 갉아먹는 역할을 했다. 수입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뜻이다.

그러나 추세는 분명히 부정적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미국의 실질 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도 늘지 않았다. 2010년 상반기에만 해도 무려 11%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미국의 고용이 회복되고 있는데도 수입이 둔화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인들은 지금 자국산 상품과 서비스 소비를 수입산보다 더 빠른 속도로 늘려가고 있다.

1990년대 말 이후 처음 나타난 현상이다. 여기에는 원유 자급 이외에 구조적인 변화도 작용했다는게 메릴린치의 분석이다. 미국 인구의 고령화다. 베이비붐 세대가 노년에 접어들면서 의료보건이나 푸드서비스, 주택관리 등 수입하기 어려운 상품과 서비스의 소비 비중이 커진 것이다.

금융위기 당시 미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고 회생한 자동차 회사 역시 강력한 수입대체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메릴린치는 분석했다. 이런 수입대체 현상은 모두 미국의 노동집약적 산업에 우호적이며 미국의 고용 증가세로 이어질 것이라고 메릴린치는 전망했다.



미국의 고민은 ‘숙련 노동자 부족’다른 나라에 대한 보스턴컨설팅의 경고는 더욱 구체적이고 광범위하다. 미국의 수출 급증세는 미국 산업 전반에 걸쳐 나타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중에서도 특히 세계 무역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운송장비·화학·기계류·컴퓨터·전기제품 분야에서 충격이 가장 클 것이라고 한다. 미국은 지금 선진국 가운데 제조업 비용이 가장 적은 나라로 꾸준히 향해가고 있다.

경쟁국의 사정은 정반대다. 보스턴컨설팅은 2015년까지 세계 5대 수출국(독일·일본·프랑스·이탈리아·영국)의 평균 제조업 비용이 미국보다 8~18%나 많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에 대해 한 때 압도적이던 중국의 생산비용 우위 역시 임금 상승과 여타 요인으로 인해 침식돼 가고 있다.

우리나라에게도 큰 도전이다. 최소한 미국과 비슷한 수준으로라도 원가 경쟁력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수출의 성장 기반은 크게 잠식되고 일자리는 위협받을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단위노동비용은 2011년부터 가파르게 늘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본과는 월등한 격차를 유지했으나 이제는 추세가 완전히 역전됐다. 2000년 이후 우리나라의 단위노동비용은 24% 증가했다. 일본은 22% 감소했다. 2008년 이후 정체 상태를 보인 미국과의 격차가 급격히 축소됐다.

그 충격은 이미 미국의 자동차 시장에서 나타났다. 8월 중 미국의 자동차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7%나 급증했다. GM·포드·크라이슬러 미국 3대 메이커의 판매 신장률이 모두 10%를 넘었다. 도요타와 닛산은 20% 이상 급증했다. 현대·기아자동차의 판매량은 1년 전에 비해 6.3% 증가한 데 그쳤다. 현대·기아자동차의 미국 판매량은 지난해 9월 이후 매달 시장의 예상치에 못 미치는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의 원유 생산 붐과 제조업의 부흥, 그리고 이에 힘입은 무역수지 개선은 구조적으로 달러화를 강세로 이끄는 요인이다. 미국의 수입대체 현상으로 일자리가 늘어나면 실업률이 더 빠른 속도로 떨어질 것이다. 이는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을 앞당길 것이기 때문에 역시 달러화에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메릴린치는 진단했다.

그러나 미국에도 고민이 있다. 숙련된 노동자들이 산업 수요에 맞춰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는 것이다. 보스턴 컨설팅은 이런 문제가 단기적으로는 제조업 부흥을 저해하진 않겠지만, 숙련 노동자를 훈련시키는 노력이 미미하면 미국 제조업에 장기적으로는 위협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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