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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넘어 유럽 이끄는 ‘철의 여인’

독일 넘어 유럽 이끄는 ‘철의 여인’

독일 첫 여성 총리로 3선 성공 … 대처 전 영국 총리보다 대화의 정치력 돋보여



앙겔라 메르켈(59) 독일 총리가 9월22일의 총선에서 승리했다. 메르켈이 이끄는 독일 보수 집권당 기독교민주·기독교사회당은 41.5%의 득표율로 압승을 거뒀다(기독교사회당은 바이에른주에만 있는 독특한 지역정당으로 이 주에서 사실상 기민당을 대신한다).

이로써 메르켈은 대망의 3선 총리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3선 총리는 전후 초대 총리인 콘라트 아데나워(재임 기간 1949~63년)와 통일 총리인 헬무트 콜(1982~98년)에 이어 세 번째다. 이번 총선 승리로 메르켈 총리는 유럽에서 가장 강한 나라를 이끄는 정치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한층 굳혔다.

메르켈은 2005년 독일에서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총리에 올라 2009년 재선에 성공한 뒤 지금까지 8년간 집권했다. 4년 임기를 더 채우면 12년 집권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럴 경우 지금까지 11년이라는 최장수 집권 기록을 갖고 있던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여성 총리를 넘어서게 된다.

이런 기록에 관계없이 메르켈은 이미 독일과 유럽을 넘어 세계의 권력자로 통한다. 지난해 12월 미국 포브스가 뽑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미국(15조6847억 달러)·중국(8조2270억 달러)·일본(5조9639억 달러)에 이은 세계 4위(3조4005억 달러)의 국내총생산(GDP)을 자랑하는 독일의 최고 정치지도자로서 막강한 권력과 영향력·리더십을 자랑한다. 메르켈은 2000년 독일 최대 보수정당인 기독교민주당의 첫 여성 당수, 2005년 독일 첫 여성 총리, 전후 최연소 총리, 옛 동독 출신의 최초 총리 등 여러 가지 정치적 기록을 세워 왔다.

그는 독일의 최고 지도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 지도자를 넘어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지도자로 통한다. 유럽에서 재정이 가장 튼실하며, 가장 경제 사정이 좋은 독일의 국가수반으로서 유럽연합(EU)에서도 실질적인 최고 지도자 역할을 한다. EU의 운영을 좌지우지하고 있어 사실상 유럽의 대통령이나 마찬가지다.

사실 EU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경제단위다. 지난해 기준으로 5억790만명의 인구가 모여 사는 EU는 IMF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GDP(71조7073억 달러)의 23.2%인 16조6411억 달러를 생산했다. 미국(15조6847억 달러)보다 많다. 1인당 GDP가 3만2000달러를 넘는 부유한 지역이다.

이런 EU의 최대 경제대국 국가수반으로서 메르켈은 유럽 재정위기가 한창인 2011~2012년 이래로 강력한 긴축재정이라는 해법을 들고 위기탈출 작업을 진두지휘 했다. 유로존 위기 해법의 열쇠를 쥔 메르켈은 유럽 내에서 강력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베를린의 칸츨러암트(독일 총리관저)를 유럽의 정치 경제 중심으로 만들었다. 24개의 공식언어를 사용하는 28개 EU 회원국을 때론 설득하고, 때로 윽박지르며 여기까지 끌고 왔다는 것 자체로도 그의 힘과 리더십을 느낄 수 있다.



질적인 ‘유럽 대통령’메르켈 총리는 4월 8일 세상을 떠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 종종 비교된다. 강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끈기와 결단력으로 추진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하다. 같은 보수 정치인으로서 독일과 유럽을 넘어 전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힘 있는 인물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대처는 옥스퍼드대에서 화학을, 메르켈은 라이프치히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자연과학도라는 점도 닮았다. 카리스마와 결단력에선 닮았지만 정치 과정에선 대조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대처처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 화해와 조정력을 발휘하며 때를 기다리다 결정적인 순간 결단을 내리는 스타일이다.

대처보다 상대발언을 경청하고 협상하는 능력, 그리고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순발력에서 더 뛰어나다는 평이다. 대처보다 더 차분하면서 부드러운 수사법을 사용한다는 장점도 평가 받는다. 이번 총선 승리 이후 전 세계 수많은 언론은 그를 대처에 빗대 ‘철의 여인’으로 불렀다. 뮌헨에서 발행되는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은 9월 23일 대처리즘에 비유해 메르켈리즘의 시대가 만개했다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메르켈은 정치적인 출세가 빨랐다. 1990년 기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이듬해 여성청소년 장관으로 처음 입각했다. 의원이 되자마자 장관에 발탁된 것이다. 이 때문에 독일 통일을 이룬 헬무트 콜 당시 총리의 정치적 양녀라는 소리를 들었다. 독일 통일을 이룬 콜 총리가 서독 출신으로 개신교 목사인 부모를 따라 동독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메르켈을 통독 시대의 상징적인 보수 정치인으로 키우려고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로 메르켈은 이후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하며 독일 총리가 됐다.

재선 이후로는 유로존 재정위기를 헤쳐 나가며 국민의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다. 물론 메르켈은 돈을 풀어 유로존의 경제발전을 도모하는 대신 독일 유권자의 예금을 보호하기 위해 유로존 국가에 긴축재정만 요구한다는 비난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독일의 해법을 거부할 수 있는 유럽 국가는 어디에도 없다.

메르켈의 현재 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올해 여름 휴가다. 메르켈은 유럽의 지도자 중에서 올해 여름 휴가를 가장 마음껏 즐긴 인물이다. 그는 7월에 3주간의 여름 휴가를 보냈다. 남편과 함께 알프스 산맥에서 하이킹을 즐겼다. 여름 휴가가 긴 유럽에선 지도자가 그 정도 휴가를 가는 건 예사였다. 하지만 재정위기로 수많은 사람이 고통 받는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바캉스로 유명한 프랑스의 사회당 소속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도 올해는 파리 근교에서 1주일의 여름 휴가만 보냈을 뿐이다. 개인 재산이 많기로 유명한 영국의 보수당 소속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도 저비용항공을 이용하며 국내에서 휴가를 보냈다. 휴가가 한달씩 되고 해외 휴가가 일반화한 유럽에서도 이젠 지도자들이 국민 눈치를 보며 짧고 검소한 여름 휴가를 보내는 것이다.

경기 침체로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때이니만큼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눈초리가 날카롭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메르켈만 당당하게 장기휴가를 즐겼다. 게다가 9월 총선까지 앞두고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85%에 이르는 압도적인 국민 지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치 수용소 전격 방문해 과거사 반성그런 메르켈이 8월 20일(현지시간) 전 세계에 감동을 주는 용기있는 행동을 했다. 그는 이날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뮌헨 인근 다하우 나치 수용소 유적을 찾았다. 나치 수용소에 대한 독일 현직 총리의 첫 방문이다. 이 수용소는 1933년 나치 집권 뒤 처음 지어진 곳으로 성직자·유대인, 점령지의 외국인 정치범과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전쟁포로까지 수용됐다.

동성애자·집시·장애인 등 나치가 반사회적이라고 차별한 사람들도 포함됐다. 차별이 왜 인류에 대한 범죄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다. 12년 동안 30개국 출신의 20만6206명이 수용돼 이 중 3만1951명이 처형·구타·학대·동사·굶주림·질병으로 숨진 것으로 기록됐다. 그는 현지에서 “깊은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나의 방문이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를 잇는 다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통일과 경제적 번영으로 유럽의 강대국으로 자리 잡고 유로존 재정위기 해결과정에서 엄청난 힘을 보여줬음에도 독일은 과거사에 대해 변함없는 반성의 자세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웅변한 셈이다. 과거사와 관련해 유럽 각국에 끝까지 겸허한 태도를 유지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과거사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와 비교되는 울림 있는 행동이다.

현장에는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생존자로 다하우 수용소 수감자위원회장인 막스 만하이머와 루트비히 스팬레 바이에른주 교육부 장관, 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인 장 사뮈엘 등이 동행했다. 어떻게 행동해야 진정으로 강하고 존경 받는 지도자가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메르켈의 다하우 방문이었다.

만하이머는 “메르켈 총리의 이번 방문은 과거 수감자들에 대한 사죄의 표시다. 독일에서 반 유대주의와 유대인에 대한 적대감이 증가하는 가운데 이뤄진 이번 방문은 정치적·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사뮈엘은 영국 BBC방송에 “역사에 대한 기억은 우리의 의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13년간 돈독한 관계메르켈의 행동은 1970년 12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한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벌어진 바르샤바 게토 유대인 봉기 당시 희생자들의 추모비 앞에 갑자기 무릎을 꿇은 일을 연상시킨다. 당시 브란트의 행동은 독일이 과거 전쟁의 피해국들에 진실하게 사죄의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 받는다. 이 사건으로 독일은 유럽 각국에 다시 강력해져도 어리석은 침략의 과거사를 반복하지도, 자랑스럽게 여기지도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번 메르켈의 다하우 방문도 일련의 과거사 반성 행보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다시 강해진 독일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메르켈의 다하우 방문 2주 뒤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4년 6월10일 당시 나치가 대학살을 벌인 프랑스 북부 오라두쉬르글란 마을을 방문해 희생자를 추모했다. 이곳에선 200여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640여명의 마을 주민이 살해됐다. 독일 지도자가 외국의 나치 만행 현장을 찾은 것은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 메르켈 총리가 9월 6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러시아를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메르켈 총리의 초청에 따라 박 대통령이 메르켈 총리 숙소를 방문해 이뤄졌다. 한·독 수교 130주년 및 파독 광부 50주년을 맞은 올해 두 나라 지도자가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별도 만남을 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사실 박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는 지난 13년 동안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두 사람의 만남은 메르켈의 취임 후 이번이 네 번째이며 박 대통령 취임 뒤에는 처음이다. 두 사람이 각각 한국과 독일의 정상으로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자리에서 메르켈 총리는 “한국의 통일이 이뤄지길 바라며 먼저 통일을 이룬 독일이 많은 지원을 하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메르켈은 지난해 대선 기간 중에 박 대통령에게 승리를 기원하는 서신을 보냈으며, 선거 직후엔 외국 수반 가운데 처음으로 당선 축하 전화를 걸어왔다. 올해 2월에는 취임식 경축특사를 통해 친서를 전달하고 독일 방문을 공식 초청했다. 박 대통령은 “추후 적절한 시기에 독일을 방문하고 싶다”고 메르켈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져 두사람의 만남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두 지도자의 돈독한 관계가 양국 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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