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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배상금 이자 288억 놓고 티격태격

Issue - 배상금 이자 288억 놓고 티격태격

주민과 소송 담당 변호사 승소 후 송사 … “성공보수” vs “터무니 없는 약정”



9월 5일 대구 동구 국민은행 방촌점 앞. 잔뜩 화가 난 주민 250여명이 은행 앞에 모였다. 1956년부터 60여년 간 공군기지 옆에서 전투기 이·착륙 소음에 시달린 이들이다. 주민들은 “서울 변호사가 나라에서 준 소음 피해보상금 이자를 몽땅 가져갔다.

은행은 이자의 절반을 내주라는 법원의 판결에 맞춰 변호사 통장에서 우리 몫만큼을 떼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이 지목한 서울 변호사는 2011년 국방부와 단 한 건의 소송으로 364억9000만원을 받아간 연세대 법대 출신의 최모(47·서울 서초구) 변호사다. 당시 그는 주민들 편에 서서 ‘대구 K-2 공군기지 전투기 소음 피해 소송’을 맡아 승소했다.

최 변호사가 가져간 364억9000만원 중 76억7000만원은 승소에 따른 성공보수, 나머지 288억2000만원은 배상금 지연이자(3심까지 가면서 배상금을 늦게 준데 따른 이자)였다. 최 변호사는 재판 전 작성한 약정서를 근거로 지연이자는 “변호사 몫”이라며 성공보수에 붙여 이자를 가져갔다.

그러나 주민들은 “당시 이런 약정이 체결된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지연이자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며 반발했다. 이 ‘288억원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가’를 두고 변호사와 주민들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지연이자 288억원의 주인은?사연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구 동구는 시끄러운 곳이다. 도심 주택가 옆에 있는 K-2 공군기지 때문이다. 하루 100여 차례 전투기와 민간항공기가 뜨고 내린다. 소음의 원인 대부분은 강력한 엔진을 장착한 전투기다.

동구 지저동과 검사동·지묘동 일대 주민 8만여명은 “못 참겠다”며 2004년 8월 수백 억원대 전투기 소음 피해 소송을 내기로 의견을 모았다. 2000년께 전북 군산 전투기 소음 소송 등 앞서 대구 동구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지역 주민들의 유사 항공기 소음 소송 사례가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전투기 소음 피해 대책본부’가 꾸려졌다. 당시 시민단체 활동을 많이 하던 주민 최종탁(49)씨가 대책본부 대표를 맡았다. 2005년 1월 서울에 사무실을 둔 최 변호사가 소송 대리인으로 결정됐다.

대책본부 최 대표는 당시 “소음 피해 소송 노하우가 있는데다 선임료를 받지 않고 재판을 진행하기로 해 서울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말했다.

최종 선임된 최 변호사뿐만 아니라 당시엔 변호사 2명씩 팀을 꾸린 3~4개 팀이 대구 전투기 소음 소송을 맡겠다며 주민들과 접촉했다고 한다. ‘기획소송’ 대상이 될 정도로 변호사들이 탐을 낸 집단 소송이었다.

주민들은 그 해 5월까지 9번에 나눠 국방부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냈다. 일단 1인당 3만원씩을 배상액으로 정해 시작했다. 통상 이런 피해배상 소송은 가액만 정해 재판을 시작한 뒤 감정을 통해 피해 정도를 다시 가려 최종 배상액이 정해진다. 소송 인원이 많아 똑같은 소송을 9번에 나눠 진행했다. 대법원은 2011년 5∼7월 사이 9건의 소송에 대한 판결을 잇따라 내놨다.

마주 앉아 대화하기 힘든 정도의 소음인 85웨클(WECPNL, 항공기의 소음측정 단위)을 넘는 곳 주민 2만6782명에게 799억6000만원의 피해보상을 하라는 판결이었다. 여기에는 피해 보상금 511억4000만원에 지연이자 288억2000만원이 포함돼 있었다. 지연이자는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판결이 있던 2008년 9월부터 대법원 판결이 난 2011년 5~7월 사이 3년치 피해 보상액의 이자다. 만약 이 상태로 주민들이 돈을 모두 받았다면 1인당 500만~600만원은 됐다.

하지만 주민들은 소음 피해 정도에 따라 150만~400만원만 받았다. 이유는 변호사의 성공보수와 지연이자 때문이었다. 거액의 소송에서 승소한 최 변호사는 피해 보상금 원금 511억4000만원의 15%와 288억원에 달하는 지연이자를 받아갔다. 승소한 기쁨도 잠시. 주민들과 변호사 간 갈등이 시작됐다. 주민들은 다시 소송을 하겠다고 나섰다. 이번엔 자신들의 소송을 맡았던 최 변호사 상대였다. 지연이자 288억2000만원을 돌려 받기 위해서였다.



주민 1만1000명 참여한 대규모 소송주민들은 최 변호사에게 성공보수를 제외한 지연이자를 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최 변호사는 “지연이자와 별도로 판결 후 정당한 손해배상금은 소음 정도에 따라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지연이자는 변호사의 몫으로 한다는 계약이 있다”며 거절했다.

최 변호사의 주장은 이렇다. “2004년 8월쯤 소송에 참여한 주민 대표 87명과 성공보수를 판결 원금 20%로 하는 수임계약을 했다. 그리고 그 해 기억으론 10월쯤 다시 주민을 대표하는 4명과 성공 보수를 15%로 낮추는 대신 지연이자를 변호사 몫으로 한다고 합의했다. 전체 주민을 대신해 ‘추인’을 받는 방식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주민들의 말은 다르다. 김선희(50)씨는 “변호사의 성공보수에 지연이자가 포함된다는 것을 설명하지 않아 전혀 몰랐다. 최 변호사가 대법원에서 승소할 게 확실해지자 2011년 1월쯤 주민들에게 안내문을 보내면서 지연이자를 처음 거론했다”고 했다.

“왜 7년이 지나서 안내문을 보냈고, 그것도 소송참여자 수보다 많은 5만장을 보낸 이유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최 변호사는 “당시 대책본부에서 주민들에게 이런 내용을 고지한 것으로 알았다. 실제 대책본부 사무실에 약정서 열람이 가능하도록 보관돼 있었다. 2011년 초 5만장의 안내문을 우편으로 배송한 것은 주소가 바뀐 주민이 있고, 혹 안내를 못 본 주민이 있을 수 있어서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구 한 주민은 “2011년 최 변호사가 보내온 안내문은 너무 복잡하게 돼 있어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리고 뒷면에 지연이자 등 보수에 대해 적어둬 누구든지 제대로 챙겨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반박했다.

지연이자 반환운동을 하는 대구경북녹색연합 이재혁 운영위원장은 약정 자체가 아예 무효라는 입장이다. “당시 처음 변호사와 수임을 계약한 주민 87명의 대표성이 의심스럽다. 약정서를 체결하는 장소에 참석했다가 그냥 서명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후 약관을 다시 쓸 때에는 이들 중 4명만 서명해 대표성이 전혀 없다.”

공방이 이어지자 동구주민자치연합회와 대구경북녹색연합이 중심이 돼 2011년 9월 최 변호사와 그를 선임한 최 대표를 사기 등의 혐의로 대구지검에 고발했다. 주민들에게 약정 내용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고, 전체 동의 없이 약정서를 체결했다는 이유였다. 이무렵 최 변호사는 다시 안내문을 주민들에게 보냈다.

안내문에는 ‘민·형사상 문제를 더 이상 제기하지 않는다고 서명하면 지연이자의 50%를 주민들과 나누겠다’고 쓰여 있었다. 검찰 조사에서 최 변호사 등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사기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했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법률가와 일반 주민들의 싸움이었으니 논리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는 게 지역 주민들의 반응이다.

주민들은 8월 다시 경찰에 최 변호사 등을 사기 등으로 고발했다. 최 변호사도 일부 주민에 대한 법적 대응 의사를 밝혔다. 문제의 소송이 시작됐다. 동구 주민 2만6700여명은 2011년 10월 “지연이자를 변호사에게 주기로 약정하지 않았다”며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이 중 1만5000명 정도는 소송 제기 직후 최 변호사 측과 합의하고 일부 지연이자를 받은 뒤 소송에서 빠졌다. 최 변호사가 안내문을 보내면 주민이 이 안내문에 서명해 다시 최 변호사에게 보내고 돈을 송금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최종 소송 명단에는 주민 1만1000여명이 참여했다.

소송 대상자를 가리는 데만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1심 판결은 올 5월이 돼서야 열렸다. 재판부는 “지연이자의 절반인 144억원을 주민들에게 반환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구지법 제15민사부(부장판사 황영수)는 “국가배상금 지연이자 288억원 전액을 가져가기로 했다는 약정은 유효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지연이자가 원·피고 모두 예상하지 못할 만큼 큰 액수이고, 피고가 안내문을 통해 주민들에게 지연이자의 50% 반환의사를 밝힌 점 등을 고려할 때 지연이자 전액을 성공보수로 취득하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이날 판결은 가장 먼저 소송을 낸 주민 4628명에 대한 선고였다. 남은 주민들에 대한 재판은 10월 초까지 계속 된다.

1차 선고를 받은 주민들은 지연이자 전액을 돌려받겠다며 항소했다. 그리고 승소한 주민 중 1600여명은 재판 후 추가로 합의했거나 항소 결과를 기다리고, 주민 3000여명은 이와 별도로 9월 초 지연이자 일부 반환 판결을 근거로 최 변호사의 거래은행인 국민은행을 찾아갔다. 예금계좌에서 지연이자 3000여명분인 25억원을 우선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지연이자 반환 항소심 내년 1월2011년 9월부터 진행된 지연이자 반환 소송은 대구 변호사가 맡았다. 경희대 법대 출신의 권모(55) 변호사다. 권 변호사는 “곧바로 최 변호사에게 가서 돈을 받으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더 이상 법적인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서명을 해줘야 돈을 주고 돈 계산도 명확하지 않아 한번에 은행에서 받아 공정하게 나누기 위해 판결금 가집행을 시도하게 됐다”고 말했다.

여기서 또 새로운 갈등이 불거졌다. 은행이 주민들에게 지급을 거절한 것이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은행 측이 돈을 펀드에 투자한 상태다. 지금 빼면 손실이 나기 때문에 줄 수 없다. 추심금 청구 소송을 하거나 직접 최 변호사에 받으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권 변호사는 “은행을 상대로 추심금 청구소송을 하면 승소할 수 있겠지만 주민들에게 다시 위임장을 받고 몇 달 동안 재판을 또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억울하다는 논리를 편다. 돈 지급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판결 후 7월부터 개별 주민 계좌(이중 지급자 제외)로 돈을 보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미 돈을 받은 주민이 돈을 또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가려야 하고 받아간 손해배상 원금에 따라 개인별로 딱 맞춰 돈을 줘야 하기 때문에 은행이 일괄지급을 하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최 변호사가 수백 억원의 성공보수로 지인들에게 ‘돈잔치’까지 했다고 주장한다. 변호사가 지인들에게는 호의를 베풀어 빌린 돈의 원금 외에 최대 400% 이자를 붙여 상환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 변호사는 “돈 한푼 안 받고 소송을 7년 이상 진행했다. 받은 돈의 50%는 각종 세금으로 나갔다”며 “부가가치세 10%, 소득세 35%, 주민세 3.5%, 의료보험료 등의 명목이었다. 소음 감정비, 인건비, 월세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용증 한 장 안 쓰고 수 억원을 빌려 지금까지 소송을 진행했다. 4배까진 아니지만 당연히 두 배 이상 이자는 줘야 하지 않겠느냐. 저축은행, 사채 이자를 봐도 그 정도는 된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현재 소송으로 받은 전체 수익 중 돌려줘야 할 144억원의 지연이자를 제외하면 60억원 정도가 남았다고 한다. 그는 “모든 절차가 합법적이라는 법원의 판단도 있다. 관련 서류도 있다. 이런 갈등은 또 다른 ‘배 아픈’ 변호사가 주민들을 부추겨서다”라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대구경북녹색연합 이재혁 운영위원장은 “돈도 문제지만 법에 무지한 사람들의 피해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연이자를 모두 돌려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288억원의 주인을 가리는 지연이자 반환 항소심은 내년 1월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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