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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irement - 열도 노인의 지갑 아직 두둑해요

Retirement - 열도 노인의 지갑 아직 두둑해요

10명 중 7명 연금·금융자산 덕에 돈 걱정 없어 … 노인 기초연금 논란인 한국과 대비



일본에서 말쑥한 차림의 노인을 만나는 건 그리 어렵잖다. 백화점이나 고급 레스토랑 같은 곳엔 고령 고객이 상당수에 이른다. 온천여행도 대부분 고령 고객이 흔하다.

압권은 스포츠카다. 젊었을 적 로망인 스포츠카를 몰며 해안가를 달리는 반백 노인이 많다. 별장·온천 등이 밀집한 일본 도쿄 남부 해안지역 도로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일본 노인은 꽤 부자다. 1500조엔의 가계 금융자산 중 60~70%가 65세 이상 은퇴 인구에 집중된다. 이른바 ‘노노(老老) 격차’가 심화되고 있지만 평균적인 부자 이미지는 뚜렷하다.

이들이 유유자적한 노후생활을 보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은퇴 이후 받는 연금소득이 많아 여유로운 은퇴생활이 가능하다. 연금소득이 다소 부족해도 금융자산이 많아 큰 걱정이 없다.



스포츠카 모는 반백 노인 흔해실제 일본 노인의 은퇴생활 만족도는 꽤 높다. 55세 이상 상대로 벌인 2007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유가 없어도 걱정 없이 산다’는 노인이 절반(49.2%)에 달했다. ‘여유롭다’(11.5%)까지 합하면 60.7%가 돈 걱정 없이 사는 것이다(고령자 경제생활에 관한 의식조사, 내각부). 2002년 조사 때보다 사정이 나빠진 게 이 정도다.

당시 ‘걱정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71.5%였다. 2009년 60세 이상을 상대로 한 조사도 이를 뒷받침한다. ‘힘들다’는 응답이 26.4%인데 비해 ‘그저 그렇다(보통)’가 65.2%였다. 10명 중 6~7명이 금전압박은 없다는 것이다. 적자 가계부가 40.4%인데도 현역 시절 축적한 금융자산 덕에 만족도가 높다(고령자의 생활실태에 관한 조사결과, 내각부).

넉넉한 연금생활을 보여주는 통계는 많다. 2010년의 경우 여유는 없지만 연금만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48.9%였다(가계금융행동에 관한 여론조사, 금융광보중앙위원회). 이는 2000년대 이후 별다른 변화가 없는 흐름이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80.6%가 공적연금을 노후생활비로 쓴다고 답했다. 기업연금·개인연금·보험금(36.4%)과 근로소득(38.4%), 금융자산 인출(42.1%)이 뒤를 이었다.

은퇴 세대의 연금 의존도는 근로 세대와 비교하면 더욱 뚜렷하다. 2008년 세대당 평균소득 구성비를 보자. 전체세대의 소득 중근로·사업소득 비중이 77.5%를 차지했다. 공적연금·은급(恩給, 공무원의 공제연금 시행 이전에 마련된 연금)은 17%에 불과했다. 이와 달리 은퇴 세대는 공적연금·은급이 70.8%로 근로·사업소득(16.9%)을 크게 웃돌았다. 공적연금이 수입의 전부라는 응답도 61.2%였다(국민생활기초조사개황). 바람직한 소득대체율이 60%라고 볼 때 일본은 그 이상이다.

일본의 은퇴자 10명 중 6~7명은 연금 수입 덕분에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영위한다.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지만 연금소득이 노후자금의 원천인 건 사실이다. 다만 연금 수입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연금 수급 개시연령 연장조치를 필두로 갈수록 연금 수령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 현재 기준으로 고령 세대만이 연금을 덜 내고 더 받는다. 현역 세대일수록 더 내고 덜 받거나 혹은 못 받을 우려가 있다.

일본 은퇴 가구의 가계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2007년 현재 65세 이상 고령자가 있는 세대는 전체 세대(4803만)의 40.1%(1926만)에 달한다. 물론 여기엔 다양한 가족 구성 형태가 있다. 1926만 세대 중 세대주가 65세 이상인 경우(1539만)가 압도적으로 많다.

세대주가 65세 미만인 가구(387만)도 일부 존재한다. 세대주가 65세 이상인 경우는 복수 세대(1106만)가 대부분이다. 나머지는 단신 세대(433만)로 구분된다. 복수 세대 중 부부세대(559만)가 절반이 넘는다. 부부 세대의 경우 부부 모두 65세 이상(439만)이 절대적으로 많다(국민생활기초조사).

이상에서 유추하면 표준적인 고령자 세대는 부부·무직 세대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단신 세대도 부부 세대였다 배우자 사망 후 혼자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부 세대였던 시절의 보유 자산을 승계했다는 점에서 부부·무직 세대에 준해 이해할 수 있다(니세이기초연구소, 2010년).

이를 외벌이 부부, 2인 자녀로 구성된 4인 가구 세대와 비교해보자(2007년 기준). 평균적인 현역 세대 모습이다. 일반적인 가계수입은 근로소득·사회보장급부·자산수입 등으로 나뉜다. 이때 표준 노인으로 규정한 고령 부부·무직 세대의 주요 수입은 공적연금이다.

이들의 월 평균 수입 내역(22만3459엔) 중 92.4%(20만7574엔)를 차지하는 건 사회보장급부(연금)다. 나머지 근로·사업·자산·특별소득을 다 합해봐야 7%에 불과하다. 이와 달리 현역 세대의 표본 모델인 외벌이 4인 가족은 근로소득이 가처분소득의 97.3%다. 월 합계로 53만1509엔을 버는데 이 중 근로소득이 51만7192엔이다. 사회보장급부는 0.8%뿐이다.

그렇다면 지출 상황은 어떨까. 고령 부부·무직 세대의 월 수입(22만3459엔) 중 세금·보험료 등을 뺀 세후 수령액은 19만1000엔 정도다. 하지만 소비는 23만7475엔 정도로 파악된다. 가처분소득과 소비와의 격차(마이너스 4만6000엔)가 발생한다. 적자다. 저축예금을 인출해 벌충하든 허리띠를 졸라매든, 혹은 용돈을 받든 돈이 더 필요하다.

식료(24.5%)와 교양·오락(11.6%)이 단일 항목으로는 소비 지출이 높은 편이다. 현역 세대 소비 지출은 31만5453엔으로 평균 소득을 다 못 쓴다. 세후 수령액으로 따져도 15만엔 정도 남는다. 흑자 가계부다. 지출 항목 중 상위는 식료(22.0%)와 교통·통신(13.9%), 교양·오락(12.1%), 교육(10.3%)의 순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르면 고령 가구는 4인 가족 세대와 비교해 실수입과 가처분소득의 격차는 큰데, 지출 수준은 현역 세대의 75%에 달해 큰 차이가 없다. 특히 1인당 소비액으로 환산하면 고령 세대는 11만9000엔이다. 현역 세대는 7만9000엔에 불과하다. 고령 세대의 생활 수준이 현역 세대보다 낫다.



부동산 자산만 평균 3291만엔고령 세대는 집 보수, 보건의료서비스, 여행비, 증여금 등으로 돈을 많이 쓴다. 부족분은 금융자산에서 벌충한다. 고령 가구의 금융자산 잔고가 조금씩 감소한다는 통계와도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노인=부자’라는 일반적인 인식답게 적자 벌충에 큰 어려움은 없다.

2010년 현재 고령 부부·무직 세대의 금융자산 잔고는 평균 2179만엔 수준이다. 소비자물가·공적연금급부액·금리 변화가 없다고 가정하면 연간 적자액(55만4000엔) 39년 간 메울 수 있다. 65세 시점 평균 여명이 남성 19세, 여성 24세임을 감안하면 자금 사정이 여유롭다. 긴급 용도로 사용할 예비자금 1000만엔 정도를 빼도 21년은 버틸 수 있는 규모다.

그나마 이건 금융자산만 갖고 계산한 것이다. 2004년 기준 세대주 65세 이상 가구의 총자산은 무려 5679만엔에 달한다. 여기에서 금융자산(2179만엔)과 부채(209만엔)를 빼면 주택·토지 등 부동산 자산만 3291만엔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부동산 자산을 활용하면 좀 더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실물 자산이 없어도 금융자산을 활용해 종신연금보험형의 개인연금에 가입하면 역시 비교적 윤택한 삶을 즐길 수 있다.

이 정도만 봐도 일본 노인의 노후는 밝다. 골프를 치고 스포츠카를 몰아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연금소득이 탄탄하고 적자가 나도 이를 메울 금융자산이 충분하다. 실물자산도 만만치 않다. 상당수가 ‘노인=빈곤’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의 은퇴세대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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