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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HADISTS - 시리아 내전의 외국인 성전주의자들

JIHADISTS - 시리아 내전의 외국인 성전주의자들

서방 출신 600명 안팎이 전투에 참가 급진 무슬림 단체에 세뇌되어 구미로 귀국할 때 안보에 큰 위협



영국 MI5(국내정보 담당)의 신임 국장인 앤드류 파커 경이 지난 10월 런던에서 첫 공개 연설을 했다. 그는 시리아로 유입되는 지하드(성전) 전사들이 영국·유럽과 기타 지역에 안보상 큰 위협이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그것이 세상을 더 위험하게 만든다는 주장이었다. “세상이 더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해졌다.” 영국 정부 심장부인 화이트홀의 왕립합동군사연구소에서 파커가 말했다.

시리아 내전의 민간인 사망자가 10만 명을 웃돌고 보금자리를 잃은 난민이 200만 명을 넘어섰다. 그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4년째에 가까워지면서 또 다른 치명적이고 더 현실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슬람 수니파를 위한 싸움에 참여해야 한다고 세뇌되는 외국인 전사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시아파가 후원하는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시리아에 관해 충분히 우려할 만한 근거가 있다”고 파커가 말했다. “우리의 관찰 대상자 중 현재 어느 정도 시리아와 관련된 자들의 비중이 높아진다. 주로 시리아 내전에 참가하기 위해 건너갔거나 그런 계획을 가진 영국 출신자들이 관련됐다. 시리아에서 알카에다와 연계된 알 누스라와 기타 극단주의 수니파 단체들은 서방 국가들에 대한 공격의 열의를 불태운다.”

영국 내에서 활동하는 수 천 명의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은 영국 국민을 정당한 공격 표적으로 간주한다고 파커는 경고했다. 2001년 9월 11일~2013년 3월 31일 영국에서 테러 관련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330명 선이었다. 영국인 재판 4건이 테러 음모와 관련됐다. ‘7/7’ 배낭폭탄 테러공격을 재현하려다 발각된 계획이 대표적이다. 2005년 7월 런던에서 발생한 그 테러로 56명이 숨지고 700명이 부상했다.

시리아에 외국인 전사가 몰려드는 현상은 분명 유럽 정부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커다란 위협이다. 마리오 마우로 이탈리아 국방장관에 따르면 “다수의 유럽 정부 기관이 가장 우려하는 문제 중 하나”였다. 시리아 내전에 참여하고 있는 미국인 무슬림이 수백 명에 달한다고 미 연방수사국(FBI)은 추산한다.

가끔씩 전투에 참여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한 시리아인 및 외국인 전사들이 수만 명에 이른다고 여겨진다. 온라인 뉴스매체 프로퍼블리카에 따르면 추정치는 6만 명에서 10만 명 사이다. 아사드의 강력한 시아파 원군(헤즈볼라와 이란)들에 맞서 싸우기 위해 무슬림 세계 전체에서 수니파 외국인 전사들이 더 많이 몰려든다. 지금은 외국인 전사가 전체 반군 중 최대 10%를 차지한다.

시리아 내전은 외국인 무자헤딘(이슬람 전사) 동원 규모 면에서 역대 3위다. 1980년 대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 침략자들을 몰아내기 위한 싸움, 그리고 지난 10년 사이 이라크의 미국인 침략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전쟁 다음이다. 소말리아·아프가니스탄 또는 예멘 전쟁보다 시리아 내전에 참여한 외국인 전사가 더 많다.

전사들은 단기간에 크게 불어났다. “동원 과정이 놀랄 정도로 신속했다”고 프로퍼블리카가 전했다. “미군의 이라크 점령이 절정에 달했을 때 6년이 걸렸던 규모가 시리아에선 그 절반의 시간도 안 걸렸을지 모른다.” 미국 국가테러대응센터의 매튜 G 올슨 소장이 지난 7월 애스펀 안보 포럼에서 연설했다. 그는 시리아가 세계에서 가장 큰 성전주의자 전쟁터가 됐다고 주장했다.

“개인들이 시리아를 방문해 더 급진화하면서 훈련을 받은 뒤 글로벌 성전주의자 운동의 일원이 되어 서유럽 그리고 잠재적으로 미국으로 복귀한다”고 올슨이 말했다. 정보당국은 시리아로 건너가 내전에 참여한 북미·호주·유럽 출신 전사 숫자를 600명 안팎으로 추산한다. 그 나라에서 활동하는 전체 외국인 전사의 10% 안팎이다. 나머지는 주로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흘러 든다.

시리아가 지하드의 새 근거지가 되기는 쉽다. 터키의 시리아 접경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수백 명이 육상으로 국경을 넘어 알레포나 이들리브의 반군 병력에 합류한다. 터키와 시리아는 유럽의 주요 공항에서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인터넷이 시리아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무슬림 청년들을 부채질한다. 선동적인 페이스북 페이지와 신병 모집 사이트들이 대표적이다.

일단 발을 들여 놓으면 시리아 북부를 휩쓸며 갈수록 과격해지는 수니파 단체들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 그리고 본국으로 돌아간 뒤 새로 익힌 테러 기술을 서방에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글로벌 지하드는 시리아 내전에 우선순위를 부여해 그들의 주요 전선으로 간주한다”고 스페인의 고위 정보 당국자가 말했다. 우려되는 점은 서방 성전주의자들의 경험이 “유럽 국가로 돌아가 자국에서 테러 공격을 실행하기 위한 준비과정, 훈련과정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테러에 의존하는 외국인 전사들의 숫자는 전투에 참여하는 숫자에 비해 얼마 되지 않는다고 일부 사회학자는 주장한다. 노르웨이 국방연구기구의 토마스 헤가메르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숫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미국 외교협회의 로버트 대닌은 주장한다. “이들 전사는 시리아 같은 곳으로 건너가 세뇌교육을 받고 이념에 노출된 뒤 전문지식을 얻는다. 그들은 자신이 일원으로 참여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이것이야말로 엄청난 위험이라고 생각한다.”

시리아가 파탄국가의 길을 걸으면서 급진주의자들의 온상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누가 시리아에 돈을 쏟아 붓고 있는지(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걸프만 연안국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숫자가 정말 이념적으로 무장됐는지 알아야 한다고 대닌은 말한다.

“아사드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다”고 그가 말했다. 자금지원을 더 많이 받고 군비를 더 많이 갖춘 급진 단체들에 매력을 느낀 일부는 세뇌교육에 넘어가기 쉽다. “그 때문에 그들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 더 위험해진다.”

동기유발과 기회의 이 같은 치명적인 칵테일에 한 가지 중요한 측면이 있다. 많은 외국인 전사들이 유럽이나 북미 국가에서 태어났거나 성장한 무슬림이며 특히 프랑스·독일·영국에서 강한 소외감을 느끼며 성장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프랑스의 무슬림들은 노동시장과 직장에서, 그리고 주거를 구할 때 차별을 받는다. 또한 대도시에서 밀려나 변두리나 외곽에서 살아야 한다. 이 같은 환경에서 시리아 내전 참여는 불만을 품은 무슬림 청년들에게 자신의 믿음을 지킬 뿐 아니라, 분노하고 박탈당한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낭만적인 자유의 전사로 자신들의 지위를 높일 기회가 된다.

“그런 측면에서 시리아로부터 서방의 세속적인 일상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걱정스럽다”고 대닌이 말했다. “그들은 전투로 단련됐다. 이슈와 우려를 안고 귀환한다. 조종을 당하기 쉽다. 전투 훈련을 받고 장비를 갖췄다. 살상 훈련을 받았으며 특정하고 명확한 세계관에 노출됐다. 그리고 아주 혼란스러운 세계로 복귀한다.”

지난 9월 미국 주도의 시리아 내전 개입이 실패로 돌아갔다. 그 여파로 반정부 전사들 특히 자유시리아군(Free Syrian Army)은 사기가 꺾이고 서방에 버림을 받았다고 느낀다. 그로 인해 생긴 공백을 더 과격한 단체들이 메운다. ‘이슬람국가 시리아’와 ‘알누스라 전선’이다. 모두 칼리프(이슬람 지도자) 체제 수립을 추구한다.

알누스라 전선은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AQI)의 계열 단체다. 2001년 11월 이후 시리아 전역의 주요 도시 중심지에서 테러가 발생해 민간인이 사망 또는 부상했다. 그중 600건에 육박하는 공격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국무부의 통계다. AQI는 또한 시리아군 공격을 위한 자금·인력·물자를 이라크에서 시리아로 보냈다.

“진짜 위협은 그들이라고 본다”고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의 앤드류 태블러가 말했다. “아사드와 헤즈볼라의 결합은 수니파 전사들에게는 밤나방을 부르는 불빛과 같다. 수니파들은 그들과 싸우기 위해 전례 없이 많은 숫자가 시리아로 날아든다. 이라크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지만 시리아에선 다층적인 성격을 띤다. 시리아의 역사적인 중요성도 영향을 미친다. 유럽인들 입장에서는 접근성이 좋다. 아프가니스탄 입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몇 시간이면 터키로 날아갈 수 있다.”

지난 9월 스페인 경찰은 세우타의 한 언덕지대 빈민가를 급습했다. 북아프리카의 이 스페인령에는 와하브파가 살고 있었다. 와하브파는 코란의 초창기 발원지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무슬림들이다. 경찰은 시리아에 50명의 전사를 파견한 혐의로 한 극단주의 조직을 소탕했다.

1990년대 잇따라 치명적인 테러 공격을 받았던 프랑스에서도 우려가 커진다. 프랑스 소식통에 따르면 2001~2010년 50명의 성전주의자가 프랑스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건너간 것으로 확인됐다. 시리아의 경우엔 단 한 해 사이 성전주의자 135명의 출국이 확인됐다. “아주 빠르고 규모가 컸다”고 프랑스의 한 테러대응 당국자가 말했다.

프랑스의 6분의 1 규모인 벨기에의 통계는 더 충격적이다. 그 나라의 극단주의 조직들로부터 100~300명의 성전주의자가 시리아로 건너갔다. “문제는 그들이 귀국한 뒤 무엇을 하느냐는 점”이라고 태블러가 의문을 제기했다.





한 아일랜드 성전주의자 청년기의 초상화무슬림은 무엇 때문에 시리아 내전에 뛰어들까? 후삼 나자이르(34), 일명 ‘아이리시샘’에게 그것은 정체성의 문제였다. 리비아인과 아일랜드인의 피가 반씩 섞인 그의 모친은 30년 전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아일랜드에서 히잡(이슬람식 두건)을 착용한 최초의 여성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아일랜드에서 독실한 무슬림으로 성장하는 동안 세상에서 자신의 위상에 혼란을 느꼈다.

“자라는 동안 정말 큰 정체성 위기를 겪었다”고 그가 털어놓았다. “나는 무슬림을 자처했지만 서방 문화 속에 있었다.”

2011년 아랍의 봄 사태를 TV로 지켜보고 급진적인 페이스북 페이지를 읽은 뒤 나자이르는 깊은 혼란에 빠졌다. “무엇 때문에 전쟁으로 황폐화된 리비아로 향하는 편도 항공권을 구입할 생각을 하게 됐을까?” 그가 자문했다. 외국인 용병들이 리비아 여성들을 강간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계시와 같은 깨달음이 찾아왔다.

“강간이 전쟁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사실이 그곳을 찾아가, 뭔가를 하고 싶도록 만들었다.” 나자이르가 더블린의 자택에서 말했다. 그의 매형 마흐디 하라티는 그보다 먼저 시리아로 건너가 트리폴리 여단(Tripoli Brigade)을 결성했다. 그 단체는 그뒤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렸다. 나자이르가 지닌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았다. 그는 아랍어와 영어를 구사하고, 군대 경험이 있었으며, 실용적이었다. 리비아에 도착해 저격수와 무기 전문가 훈련을 받고 여단에 합류했다.

트리폴리 여단은 6개월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인 뒤 2011년 8월 말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 입성했다. “카다피가 몰락한 날 건물을 하나 하나 확보하며 나라를 해방시킨 사람들이 우리였다”고 나자이르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가 그 일을 해낸 당사자들이었다.”

카다피가 몰락한 뒤 나자이르는 아일랜드로 귀국했다. 하지만 문화적 이질감이 더 아프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인가?” 그가 자문했다. 그는 자신의 리비아 경험을 소재로 ‘여름의 군인(Soldier for a Summer)’이란 책을 써냈다. 2012년 시리아 내전이 가장 많은 피를 뿌리던 시점에 터키로 날아갔다. 시리아 이들리브로 건너간 뒤 매형 하라티와 합류했다. 그리고 수니파 형제들을 지원하러 찾아온 리비아 전사들의 군대를 결성했다.

“뭔가 도와줄 게 있다고 판단했다. 트리폴리 내전에서 우리가 쌓은 모든 경험을 전수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나자이르가 말했다.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시리아인들을 훈련시키고자 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밤에 더 마음 편히 잘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이들리브 현장에 도착한 뒤 나자이르는 훈련 받은 군인이 턱없이 부족한 데 충격을 받았다. 반정부단체 자유시리아군의 대원 중 다수가 의사·학생·농민이었다. “아무 경험도 없었다. 이라크에서 들여온 낡은 무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작동되지 않는 망가진 장비였다.”

리비아 내전에서 이미 독재자를 쓰러뜨렸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에게 군사작전을 가르치고 더 좋은 무기를 조달해주고 인도적 지원을 제공했다.

“우리는 그들의 무기를 쓸 만하게 만들어 주려 했다.” 결국에는 리비아 전사들이 시리아 내에 머무는 게 너무 위험해졌다고 한다. 아사드의 악명 높은 비밀정보국 무카바라트 때문이었다. “상황이 너무 위태로워졌다”고 나자이르가 말했다. “아사드 정권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4개월 동안 공습과 매복공격을 겪으며 나자이르는 터키-시리아 접경으로 이동한 뒤 아일랜드로 귀국했다. 요즘 그 운동이 갈수록 과격해지는 양상을 지켜보며 그는 낭만적인 생각에서 그 운동에 뛰어들려는 젊은이들을 걱정한다. 시리아는 스페인 내전이 아니라고 그는 경고한다. 자유시리아군은 와해되는 중이다. 여전히 “인민의 군대”이지만 원리주의 성향이 강한 단체들에 밀려 “약화되고 있다.”

나자이르에게 걱정거리가 하나 더 있다. 전쟁 경험이 없는 많은 청년이 젊은 혈기만으로 시리아행 편도 비행기표를 구입하는 일이다. 그뒤 아사드 정권과 손을 잡은 노련한 헤즈볼라 전사들을 상대해야 한다. “헤즈볼라는 도시전에 능한 강한 전사들이다. 시리아에 싸우러 가겠다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가지 말라! 갈 생각도 하지 말라. 군대에 인력이 필요하지 않다. 그것 말고도 할 만한 인도주의 활동이 많다. 그러나 전투 참여는 자살행위다.’”

“나도 그들에게 전수할 경험이 없었다면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싸우러 갈까? 그는 신중하게 생각한다. 공습, 녹슨 무기, 기습작전, 아사드 정부군의 막강함을 떠올린다. “나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마쳤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떠날 때가 된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우리는 임무를 완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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