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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lifestyle - “난 뱀파이어 치과의사다”

culture lifestyle - “난 뱀파이어 치과의사다”

뱀파이어 송곳니 전문 제작자 파더 서배스천 밴 호튼 … 애호가들에게 정교한 맞춤 서비스 제공



만성절(핼러윈) 가면 파티 때 뱀파이어 분장을 원했던 사람이라면 잡화점에서 싸구려 플라스틱 송곳니를 사 봤을 것이다. 사이즈가 하나뿐인 이 엉성한 제품을 이에 끼고 있으면 잇몸에 상처가 나기 쉽다. 그리고 잇몸이 아파 얼굴을 찡그리거나 입에 연신 고이는 침을 들이마시느라 파티를 제대로 즐길 수가 없다. 게다가 뱀파이어처럼 보이기는커녕 치과교정 전문의가 당신의 치아에 못된 장난을 쳐 놓은 듯 보인다. 전혀 무섭거나 멋져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전문적인 ‘송곳니 제작자(fangsmith)’ 파더 서배스천 밴 호튼을 찾아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웹사이트에 자신을 공연예술 기획자 겸 작가이자 “뱀파이어 소문화의 중심 인물”로 소개한 그는 지난 18년 동안 자신을 추종하는 ‘송곳니 클럽(fang club)’을 위해 맞춤 뱀파이어 송곳니를 제작해 왔다.

치과교정 전문의의 손자이며 치과의사의 조카인 밴 호튼은 할아버지가 쓰던 치과용연장을 이용해 1994년 처음 뱀파이어 송곳니를 제작했다. 첫 작품은 어머니를 위한 것이었다. 자신의 것은 그 전에 특수효과 분장사에게 의뢰해 제작했다. 그는 지금까지 뉴욕과 암스테르담, 베를린, 프라하, 바르셀로나, 런던, 파리(현재 그가 사는 곳) 등지에서 맞춤 뱀파이어 송곳니를 제작해 왔다. 치과용 아크릴 충진재를 재료로 이용하며 치아본뜨기와 조각, 시험 착용 후 교정 등의 과정을 거친다.

밴 호튼이 만든 뱀파이어 송곳니의 가격은 한 쌍에 약 100달러부터 시작한다. 앞니에 끼우는 ‘릴리스’형과 송곳니에 끼우는 ‘클래식’형이 있다. 제품을 낀 채 식사를 하거나 잠을 자지 않도록 조심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보관하면 3년까지 사용할 수 있다. 밴 호튼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 송곳니는 “압생트를 마실 때와 섹스를 할 때” 착용하기에도 적합하다. 그는 내게 이 제품이 기막힌 섹스토이(성자극 기구)도 된다고 여러 번 귀띔했다. 하지만 그에게 상세한 설명을 요청할 생각은 없었다.

밴 호튼은 만성절 파티 때 참신한 분장으로 주목을 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나 뱀파이어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믿으며 그 생활방식을 따르려는 사람들 모두에게 도움을 준다.

만성절을 전후한 시기는 뱀파이어 시즌이다. 지난 10월 말 밴 호튼을 만났을 때 그는 만성절 전 주말에 뉴올리언스의 콘서트를 하우스 오브 블루스에서 ‘엔들리스 나이트 뱀파이어 볼’을 주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행사장 앞에는 구급차를 개조해 만든 팽밴(Fangban)을 관광버스처럼 세워놓을 생각이라고 했다. 팽밴은 현재 밴 호튼이 제작 중인 10회짜리 새 웹시리즈(내년 2월 방송 시작)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는 뱀파이어 송곳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몇몇 열성적인 애호가들이 ‘엔들리스 나이트 뱀파이어 볼’에 참석하기 위해 팽밴을 타고 뉴욕에서 뉴올리언스까지 가는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밴 호튼은 “뱀파이어들이 뉴올리언스(뱀파이어 문화의 중심지로 알려졌다)를 찾는 것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향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말했다.

밴 호튼은 만성절 저녁에는 뉴욕에서 ‘엔들리스 나이트 볼’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때까지는 하루에 몇 시간씩 팽밴의 뒷좌석에 앉아 차문을 열어놓고 행인들의 질문에 답할 생각이라고 했다. 주차위반 단속원이 지나가는지 살펴보면서 잠재 고객들을 만나겠다는 말이다.

내가 밴 호튼을 찾아갔던 날 밤 그는 뉴욕 이스트 빌리지 4번가의 코스튬 숍 앞에 팽밴을 세워놓고 있었다. 전문직 종사자로 보이는 30대 중반의 여자 손님 데비가 차 안에서 밴 호튼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멋진 오렌지색 원피스에 디자이너 슈즈를 신고 마이클 코어스 가방을 든 그녀는 밴 호튼의 단골 고객이었다.

뱀파이어 송곳니를 교체하러 왔던 길에 ‘엔들리스 나이트 볼’에 갈지 말지를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전에는 보통 친구들과 함께 갔다”고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이 지금은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혼자 가는 건 썩 내키지 않는다.”

뱀파이어 송곳니를 맞출 때 첫 단계는 그다지 매혹적이지 않다. 밴 호튼은 직접 만든 치과용 아크릴 반죽으로 송곳니를 끼울 치아의 본을 뜬다. 그는 손님에게 양손의 주먹을 쥐고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치켜 세운 다음 엄지손가락으로 양쪽 윗입술을 들어올려 받치고 있으라고 요청한다. 아크릴 반죽이 잘 말라서 굳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과정은 10분 정도 걸린다. 그러고 나서 그는 본을 치아에서 떼어낸 다음 치과용 연마기로 조각해 뱀파이어 송곳니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송곳니를 치아 위에 모자처럼 직접씌운다. “처음 이 송곳니를 끼면 말을 할 때 혀 짧은 소리가 난다”고 데비가 말했다. “하지만 곧 익숙해진다.” 뱀파이어 송곳니가 완성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한 시간이다.

밴 호튼은 손님들이 이 송곳니를 끼고 처음 거울을 볼 때면 그들에게 “의식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몇 시간 동안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으르렁거리기도 한다. 그는 송곳니가 사람을 섹시해 보이게 만든다는 사실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너무 뻔해서일까?

‘트와일라잇’ 시리즈, ‘로스트 보이즈’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등 많은 영화들이 ‘뱀파이어는 몬스터 세계의 유혹자’라는 이미지를 확고하게 굳혔다.

난 밴 호튼이 아름다운 20대 여자 손님 에어리얼을 위해 릴리스형 송곳니를 만드는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봤다. 발레 댄서 출신의 가수인 그녀는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한 영국의 인기 TV 드라마 ‘다운튼 애비’에 경의를 표하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긴 진홍색 스커트에 타이넥 스타일의 흰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1920년대식으로 자른 매력적인 보브 단발머리에 종 모양의 모자를 썼다.

에어리얼은 방금 뉴욕대 연극 수업에서 안전한 칼싸움 테크닉을 가르치고 오는 길이었다. 그녀는 가수 스크릴렉스처럼 머리 한쪽을 면도했다. 그녀의 가방 밖으로 생가죽 채찍 일부가 삐져나왔다. 그녀가 방금 끝내고 온 연극 리허설에 쓰인 소품이었기를 바랐다.

에어리얼이 뱀파이어 송곳니를 맞춤 제작하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그녀는 1년 전 처음 밴 호튼의 이야기를 듣고는 송곳니를 맞추러 파리까지 찾아갔다. 그후로 두 사람은 친구가 됐다. 그녀는 새로 만든 뱀파이어 송곳니를 끼고 치아를 활짝 드러낸 채 손거울로 얼굴 이쪽 저쪽을 비춰보며 “뱀파이어는 원시적이고 동물적이며 아름답다”고 말했다.

몇 분 뒤 드라가타라는 여자 손님이 팽밴에 올라탔다. 그녀는 뉴욕의 국제 법률회사에서 특허심사 전문가로 일한다. 지역 뱀파이어 동호회에 가입했고 가끔 집시 스타일의 민속춤을 춘다. 드라가타는 밴 호튼의 뱀파이어 송곳니를 맞춰 쓰기 시작한 지 7년이나 됐다.

그날 그녀는 밴 호튼에게 선물을 하나 가져왔다. 직접 만든 관 모양의 상자 안에 루마니아산 와인을 담았다. 그녀는 어깨가 뾰족하게 올라가고 보석이 잔뜩 박힌 데다 여자 가슴 모양이 그려진 괴상한 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에는 체인을 늘어뜨렸다. 하지만 드라가타의 그런 차림새는 앞에 왔던 손님 데비의 오렌지색 원피스만큼이나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다.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팽밴에 밴 호튼의 멘토이자 조언자인 빅터 매그너스가 올라탔다. 드라가타가 맞춤 송곳니 시험 착용을 위한 의자로 옮겨 앉았다. 에어리얼은 자신의 물건을 주섬주섬 챙겨 떠날 채비를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트레이더 조스(전문 식료품 매장)에 가는 길인데 뭐 필요한 사람 있나요?” 그녀의 입 속에서 새로 맞춰 낀 네 개의 송곳니가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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