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Features WINE INDUSTRY - 와인은 노인과 농부의 술?

Features WINE INDUSTRY - 와인은 노인과 농부의 술?

세계 최대 와인 생산국인 이탈리아의 와인 소비 줄어 경기침체와 맥주나 칵테일 선호하는 젊은 층의 음주 취향 변화가 주요인
밀라노의 한 공원에서 맥주를 마시는 이탈리아 젊은이들.



술의 신 바커스가 실망할 만한 소식이 있다. 와인 생산과 판매, 소비의 역사가 깊은 세계 최대 와인 생산국 이탈리아의 와인 소비량이 줄고 있다. 반면 요즘 다른 나라들은 이탈리아 와인을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많이 마신다. 이탈리아는 올해 4500만 헥토리터(hℓ, 1hℓ = 100ℓ)의 와인을 생산해 경쟁국인 프랑스(4400만hℓ)를 제치고 세계 와인 생산 신기록을 세웠다. 이탈리아는 또 현재 세계 최대의 와인 수출국이자 미국에 와인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와인 소비 문화는 경기 침체와 인구학적 변화부터 크래프트 맥주(craft beers, 소량 생산 장인 맥주)의 인기, 음주 문화 변화까지 다양한 요인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

지난해 이탈리아는 미국에 295만 hℓ(7800만 갤런)의 와인을 수출했다. 주류업계 정보회사 베버리지 인포메이션 그룹(BIG)에 따르면 미국 전체 와인 수입량의 4분의1에 육박하는 양이다. 이탈리아는 또 1인당 와인 소비량이 연간 51.7ℓ로 프랑스에 이어 세계 2위다. 1인당 연간 와인 소비량이 13.4ℓ로 세계 42위에 머무는 미국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최근 이탈리아의 와인 소비가 점점 줄어든다. BIG에 따르면 5년 전 이탈리아의 1인당 연간 와인 소비량은 54.8ℓ로 2006년의 57.1ℓ보다 훨씬 줄었다. 이탈리아 포도주 양조학자 협회 아소에놀로지(Assoenology)에 따르면 1인당 연간 와인 소비량이 109.7ℓ에 달했던 1970년대에 비하면 급격한 변화다.

“이는 세계 3대 와인 생산국인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영국 경제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의 와인 평론가 잰시스 로빈슨이 말했다. “이들 나라의 전통과 역사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와인이 이제 노인이나 농부의 술로 받아들여진다. 반면 대대적인 광고로 뒷받침되는 맥주와 증류주, 탄산음료는 좀 더 젊고 현대적인 음료로 인식된다.”

한편 미국에서는 매년 와인 소비가 늘고 있다. 미국인들은 2012년 다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와인을 더 많이 마셨다. 테이블 와인 소비량이 19년 연속 증가해 약 2억9500만 상자(한 상자에 12병)에 달했다. 미국 와인 시장 협의회(WMC)의 ‘2012 와인 소비자 트렌드와 분석’에 따르면 2011년보다 3%, 2002년보다는 34% 증가한 수치다. 미국의 와인 소비가 꾸준히 증가하는 데 반해 이탈리아의 와인 소비는 2007~12년 4.5% 감소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에 있는 신흥 와인 명가 카스텔라레의 와이너리 ‘로카 디 프라시넬로’. 퐁피두 센터를 건축한 렌조 피아노의 작품이다.
“미국은 이탈리아의 와인 소비 문화를 뒤쫓고 있는 반면 이탈리아는 와인 소비가 줄면서 음주 문화가 현대화하고 있다.” 뉴욕의 이탈리아 음식 백화점 이틀리(Eataly)의 공동소유주 조 배스티애니치가 말했다. “예전엔 더 농업적이고 시골풍인 나라에서 와인을 많이 마셨다. 와인은 옥수수와 토마토처럼 농업 생산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이탈리아에서는 칵테일과 양조 맥주가 유행한다 … 반면 미국에서는 싸구려 술의 소비가 줄고 와인 소비가 늘어난다.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생활방식을 추구하고 와인에 대한 지식을 늘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로마제국이 세워지기 수세기 전부터 와인을 생산해 왔다. 이탈리아에서는 어린이들도 와인을 마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와인은 물보다 더 안전한 음료로 여겨졌다. “최근까지 이탈리아 사람들은 긴 점심 시간과 늦은 저녁 식사를 즐겼다. 점심 식사 때 와인을 한 병 남짓 마시는 사람들이 꽤 있었고, 아침 출근 길에도 커피와 함께 와인 한 잔을 마시는 경우가 허다했다.” 뉴욕타임스의 와인 평론가 에릭 아시모프가 말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가정에서 저녁 식탁에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식사를 하며 집안에서 만든 와인을 마시는 풍습은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다. 또 이탈리아 각 지방 와인의 지역적 특성 역시 예전에 비해 희미해졌다. 게다가 장기간의 극심한 경기침체와 실업률 증가(지난 9월 이탈리아의 실업률은 12.5%였으며 25세 미만 청년층의 실업률은 사상 최고 수준인 40.4%에 달했다)로 이탈리아인들은 고급 와인과 외식 등에 쓸 돈이 이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사람들이 돈에 쪼들릴 때 와인은 쇼핑 목록에서 제외되기 쉽다. “와인을 안 마신다고 죽지는 않기 때문이다.” 뉴욕에 있는 와인 소매업체 이탤리언 와인 머천츠의 CEO 세르조 에스포지토가 말했다. 게다가 최근 이탈리아에서 음주운전 단속이 강화됐다. 무거운 벌금이 따르는 엄격한 새 법 때문에 레스토랑의 와인 소비도 줄었다.

인구학적 변화도 와인 소비 감소의 한 요인이다. 이탈리아는 갈수록 고령화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따르면 이탈리아와 독일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6%로 유럽연합(EU) 내에서 가장 높다. 이탈리아는 또 어머니 한 명당 자녀 1.41명으로 출산율이 세계 224개국 중 203위로 최하위 그룹에 속한다.

나이가 들면 병에 걸리기 쉽고 병에 걸리면 의사들은 알코올 섭취를 줄이라고 조언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탈리아인들은 ‘하루에 와인 한 잔을 마시면 의사가 필요 없다’고 믿었다. 낡은 사고방식이다.” 와인 전문 잡지 ‘와인 애드버킷’의 이탈리아 특파원 모니카 라너가 말했다. “사람들은 흔히 와인은 일반 술과 달리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알코올은 모두 건강에 해롭다.”

일자리 구하기에 곤란을 겪는 이탈리아 젊은이들은 고유 문화 유산에 갈수록 흥미를 잃어간다. 와인 평론가 앤서니 질리오의 말을 들어보자. “요즘 이탈리아 젊은이들은 와인을 부모나 조부모 세대의 술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들은 좀 더 자극적인 뭔가를 찾는다. 예를 들면 요즘 이탈리아 전역에서 생산되는 크래프트 맥주나 같은 돈으로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칵테일 등이다.”

뉴욕의 와인 이벤트 회사 ‘아 카사(A Casa)’를 설립한 소믈리에 겸 요리사 폴 랭은 20년 동안 미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살았다. 그는 시칠리아 섬 출신인 한 친구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친구는 진로를 선택할 당시 이탈리아 본토로 가서 남의 밑에서 일하기보다는 시칠리아에 있는 부모님 집 창고에서 와인을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요즘 이탈리아에서 이런 진로 선택은 갈수록 보기 드물어진다. “사람들은 더 쉽고 빠른 일을 원한다”고 랭은 말했다. “와인 제조는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다. 미국의 영향을 받은 젊은 세대가 포용할 만한 일이 아니다.”

사실 요즘 이탈리아인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주류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크래프트 맥주와 칵테일의 인기 상승이 이탈리아의 음주 문화를 바꿔 놓았다. 조부모들이 좋아하는 술과는 다른 뭔가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경우엔 특히 그렇다.

1996년 테오 무소가 토리노 외곽의 피오조에 발라딘이라는 맥주회사를 설립한 이후 이탈리아에 소형 양조장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로마에서 활동하는 음식·음료 전문 작가 케이티 팔라는 지난 4년 동안 이탈리아에서 크래프트 맥주의 인기가 급상승했다고 말했다. “현재 이탈리아의 소형 양조장은 500~600개 정도 되는 듯하다. 품질은 형편없는 것부터 세계 수준까지 천차만별이다.”

“로마 시내 중심가에 살면서 지켜 보니 지난 몇 년 동안 와인 바보다 아일랜드식 펍이 더 많이 생겨났다.” 와인 애드버킷의 라너가 말했다. “동네의 와인 바가 문을 닫는 걸 많이 봤다. 그때마다 그 자리엔 요즘 인기 있는 아일랜드식 펍이 들어섰다.”

요즘 이탈리아 대도시에서는 칵테일의 인기가 상승하는 추세다. 하지만 증류주가 와인 판매를 잠식하지는 않는다. “30세 미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칵테일이 단연 인기”라고 와인 평론가 질리오는 말했다. “제한된 구매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려는 젊은이들에게는 와인보다 칵테일이 더 매력적이다.”

음식·음료 전문 작가 팔라도 같은 생각이다. “젊은이들은 대체로 한 바에서 칵테일 한 잔으로 끝낸다. 여러 잔을 마시는 경우는 드물다”고 그녀는 말했다. “칵테일 문화는 로마 시내를 중심으로 작은 지역에 국한돼 있다. 로마 시내에 아주 훌륭한 칵테일 바 세 곳이 있다. 호텔에도 칵테일 바가 있지만 로마 시민보다는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곳이다.

이탈리아 와인 산업은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 인구학적 변화와 음주 트렌드의 변화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그렇다면 미래를 어떻게 헤쳐가야 할까? 와인의 민주화와 세계화는 와인 소비가 감소 추세인 이탈리아에 좋은 소식이다. WMC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만 해도 2012년 와인 마시는 인구가 1억 명에 달했다. 독일 인구(8200만 명)나 이탈리아 인구(6100만 명)보다 더 많으며 남아공 인구(5200만 명)의 거의 두 배다.

패션업계에 몸담고 있던 파비오 데 암브로지는 10년 전 그 일을 접고 집안에서 운영하는 포도원 파토리아 디 그라테나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아레조에 있는 이 포도원은 이탈리아 최초의 인증 받은 유기농 포도원 중 하나다. “문제 많은 요즘 세상에 와인은 인생을 즐기는 한 방법”이라고 그는 말했다.

“와인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업을 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좋은 와인은 비싸기 때문에 누구나 마실 수 있는 건 아니다.”

암브로지의 포도원에서 생산되는 와인 중 70%는 스웨덴으로 수출되며, 독일과 벨기에, 일본, 네덜란드에도 수출된다. 이탈리아에서 소비되는 물량은 전체의 5% 정도에 불과하다. 그의 유럽 내 고객 대다수는 식당업자다. “이 사업은 단지 돈을 벌려는 사람이 아니라 와인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암브로지는 말했다. “좋은 와인을 생산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너무 긴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 국내 와인 판매는 포화 상태에 이른지 이미 오래”라고 라너는 말했다. 이탈리아 와인 생산업자들이 국내 판매에만 의존한다면 위험 부담이 크다. “유로존에 경제위기가 고조된 지금 이탈리아 와인 시장에 의존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 없다. 수출이 살 길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1116회 로또 1등 ‘15·16·17·25·30·31’...보너스 번호 ‘32’

2 의협, 의대 자율 증원안 수용 거부...의료개혁특위 불참

3이창용 한은 총재 "중동 확전 않는다면 환율 안정세 전환"

4권은비부터 김지원까지...부동산 큰손 ‘연예인 갓물주’

5현대차그룹 계열사 KT?...대주주 심사 받는다

6尹, 24일 용산서 이재명 회담?...“아직 모른다”

71000만 영화 ‘파묘’ 속 돼지 사체 진짜였다...동물단체 지적

8비트코인 반감기 끝났다...4년 만에 가격 또 오를까

9‘계곡 살인’ 이은해, 피해자 남편과 혼인 무효

실시간 뉴스

11116회 로또 1등 ‘15·16·17·25·30·31’...보너스 번호 ‘32’

2 의협, 의대 자율 증원안 수용 거부...의료개혁특위 불참

3이창용 한은 총재 "중동 확전 않는다면 환율 안정세 전환"

4권은비부터 김지원까지...부동산 큰손 ‘연예인 갓물주’

5현대차그룹 계열사 KT?...대주주 심사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