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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 2차 특허전쟁 격전지는 전기차

Special Report - 2차 특허전쟁 격전지는 전기차

하이브리드차 특허 도요타가 장악 … ‘특허괴물(특허권 수익만 노리는 회사)’의 표적은 완성차 업체



2011년 세계 전자업계에 특허전쟁이 발발했다. 애플이 후발주자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특허 소송을 일으켰다. 천문학적인 배상금과 판매금지 등으로 전자업계를 압박했다.

파장은 다른 산업으로 퍼졌다. 특히 미래산업인 전기자동차 시장이 요동칠 조짐이다. 특허 전문가들은 스마트폰을 잇는 ‘2차 특허전쟁’의 격전지로 전기차 시장을 지목한다. 전기차 시장의 특허 분쟁 동향을 1차 격전지인 스마트폰 업계에 비춰 알아봤다.


그동안 자동차 시장은 특허 분쟁의 무풍지대였다. 하지만 분위기가 달라졌다. 특허 전문가들은 “폭풍 조짐이 보인다”고 입을 모은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친환경 자동차 개발을 놓고 관련 업계의 특허 출원 증가와 함께 침해를 둘러싼 소송도 크게 늘고 있다고 11월 4일 보도했다.

친환경 자동차 기술을 선점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와 관련된 세계 자동차 업계의 특허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1년 세계 전기차 관련 특허 건수는 5년 전보다 80% 증가했다. 전체 자동차 관련 특허 중 전기차 특허가 차지하는 비율도 3년 새 2배로 늘었다.



5년 전 스마트폰 시장처럼 전운 감돌아전문가들은 최근 자동차 업계에 일고 있는 혁신 경쟁이 스마트폰업계의 5년 전 분위기와 비슷하다며 앞으로 이 분야에서 특허 침해 관련 소송이 급증할 것으로 본다. 치열한 스마트폰 업체 간 특허전쟁과는 달리 그동안 자동차 분야는 조용했다. ‘둥근 모서리 디자인’ 하나까지 걸고 넘어진 애플-삼성 소송과 비교하면 특허소송을 할 만한 사례가 부지기수인데도 분쟁이 적었다.

전문가들은 기존 완성차 업체끼리 특허 분쟁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특허 패권이 균등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암묵적으로 서로 기술·디자인을 어느 정도 차용하기 때문에 섣불리 소송을 걸었다가는 반격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 업계나 특허 전문가 사이에선 향후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카 등 친환경차 시장에선 사정이 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장 참여자가 많아진 때문이다. 전기차는 스마트폰처럼 다양한 분야의 기술이 집약돼 있다. 특허 포트폴리오의 범위도 광범위하다.

전기 계통의 핵심 기술만 있어도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 진입장벽이 낮아진 것이다. 이에 따라 전통 자동차 업체가 아닌 새로운 경쟁자가 자동차 시장에 진입했다. 미국의 테슬라, 프랑스의 볼로레가 대표적이다. 볼로레는 올해 9월 자사의 전기차‘블루카’와 관련된 기술 정보를 몰래 빼내려 했다는 혐의로 BMW를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업체뿐 아니라 배터리 공급업체인 파나소닉과 LG화학, 정보기술(IT) 공룡인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도 특허 기술을 통해 기존 자동차 업체들의 텃밭을 위협하고 있다. 구글은 2010년 자동 운전 자동차의 프로토 타입(원형)을 선보여 업계에 충격을 줬다. 미국 통신사 AT&T는 자동차와 인터넷을 연결하는 기술에서 우위를 점한다. 자동차부품 회사인 컨티넨탈은 9월 IBM과 자동차 네트워킹 시스템 개발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제품을 생산하지 않고 특허권 수집과 수익만 노리는 이른바 ‘특허괴물(NPE)’도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원일 유미특허법인 변리사는 “전기차는 특허괴물이 좋아할 만한 영역”이라고 말했다. 전자와 기계가 융합하는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아이디어 하나만으로도 핵심 특허를 획득하기 쉽다고 한다.

소송 상대가 매출 규모가 큰 회사들이기 때문에 특허권으로 받는 수익도 크다. 이들은 기존 완성차 업체의 맞소송 눈치를 볼 이유가 없다. 한 특허 전문가는 “자동차 시장이 완성차 업체만의 시장이었을 때는 평화로웠지만 앞으로 시장 참여자가 늘고 특허권자가 다양해지면 특허 분쟁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분야 특허관리 기업인 파이스가 2006년부터 도요타와 포드에 특허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는 등 특허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이 회사는 하이브리드카와 관련 도요타와 8년간 소송을 벌인 끝에 2010년 합의했다. 미국 포드와도 퓨전 하이브리드 차량이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 라이선스를 받기로 하고 합의한 바 있다.





특허괴물도 전기차 시장 노려최근에는 현대·기아자동차가 파이스로부터 특허 공격을 받았다. 파이스는 현대·기아자동차의 쏘나타와 K5 하이브리드 차량이 파이스사의 자동차 동력 전달 기술 등 특허 3건을 침해했다며 지난해 2월 볼티모어 연방법원에 특허권 소송을 제기했다. 둘의 소송은 아직 초기 단계다. 하지만 파이스가 도요타의 프리우스가 미국 시장에 진출하자마자 특허 소송을 제기해 8년여의 법정공방을 끌고 갔던 만큼 길고 지루한 싸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대자동차 측은 소송 진행상황에 대해 공식적인 답변을 피했다.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하이브리드카 시장은 특허 소송의 최대 격전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 특허는 1906년 처음 출원된 이후 1990년대 초부터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하이브리드차 한 대를 제조하는 데 필요한 특허만 약 5만8000건으로 추산된다. 하이브리드차 관련 특허는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자동차 업체가 패권을 쥐고 있다. 하이브리드차 특허의 67%(도요타 43%, 닛산 15%, 혼다 9%)를 일본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세계 40개국의 전체 전기차 관련 특허출원은 3만6500건이다. 이 중 일본이 2만4416건을 출원했다. 2006년을 기점으로 급증해 2010년 이후에는 한 해 4000건 넘는 특허를 내고 있다. 유럽 자동차 업체가 연비를 줄이는 디젤차에 집중하다가 바로 순수 전기차로 넘어가는 동안 일본차 업체가 하이브리드 기술 개발에 주력한 결과다.

규모와 상관없이 특허가 없는 업체는 특허 소송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친환경 미래자동차 시장 선점을 노리는 현대·기아자동차 등 후발 자동차 업체로서는 매우 불리하다. 업계에서는 도요타가 후발 경쟁자들을 상대로 특허 공세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이 나돈 지 오래다. 아직 도요타는 하이브리드 기술관련 특허 공세에 나서지 않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경쟁업체의 성장이 가시적이지 않기 때문에 아직 특허 소송을 걸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술 산업의 흐름은 대체로 ‘선발 주자의 기술혁신→후발 주자 참여 후 가격 경쟁→기존 업체의 엑시트(자금 회수)’로 이어진다. 이 가운데 특허분쟁이 가장 치열해지는 것은 가격경쟁 단계다. 해당 기술이 보편화돼 기술 프리미엄이 떨어지고 가격 경쟁력이 약해지면 선두 업체가 특허를 후발 업체 견제 수단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애플과 삼성의 특허 분쟁 사례도 마찬가지다. 한 특허 전문가는 “특허 소송은 물건이 잘 팔릴 때가 아니라 안 팔리기 시작할 때 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하이브리드차 시장은 아직 가격경쟁 단계에 접어들지 않았다. 다른 완성차 업체가 속속 진입하고 있지만 도요타가 기술과 시장 점유율 모두 앞선 상황이다. 경쟁사라고 할 만한 후발주자가 없다. 굳이 특허 소송을 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특허 분쟁은 시간 문제라는 얘기가 된다. 일각에서는 “도요타 측이 충분한 보상금을 받을 정도로 후발주자들이 하이브리드차를 많이 팔기 시작하는 때를 기다리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전기차 부품 업체 특허경쟁도 치열전기차 관련 부품 업체도 특허 분쟁을 피할 수 없다. 특히 2차 전지 분야의 분쟁이 치열하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셀가드와 전기자동차 배터리 사업과 관련해 특허침해 소송에 휘말렸다.

올해 4월 셀가드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서부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특허침해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셀가드는 세계 2위의 2차전지 분리막 업체다.

셀가드는 SK이노베이션이 2010년 이후 미국 자동차 업체와 2차전지 제조업체에 자사의 특허 기술을 사용한 분리막을 공급했다고 주장한다. 현재 이 소송은 1심 평결을 기다리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과도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다. 두 회사의 갈등은 현대·기아자동차가 배터리 분야에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을 경쟁시키면서 시작됐다. 현대·기아자동차가 SK이노베이션과 제휴를 확대하자 2011년 말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자사의 배터리 분리막 특허를 침해했다며 서울지방법원에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SK이노베이션은 특허청에 LG화학의 해당 특허에 대한 무효심판으로 맞대응 했다.

지난해 8월 특허청 특허심판원은 SK이노베이션의 손을 들어줬다. LG화학이 특허법원에 이를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이번에도 패소했다. 양측의 민사 소송은 현재 진행 중이다. 순수 전기차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충전소와 같은 인프라 시설에 대한 특허 분쟁도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충전 방식의 표준을 둘러싼 싸움이 예상된다.

자동차 업체들은 비전통적인 경쟁자들에게 시장의 일부를 양보하거나 법정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특허 분쟁은 소송 당사자가 누구인지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최세환 제일특허법인 변리사는 “전통 완성차 업체끼리의 분쟁은 비교적 평화적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크지만 특허괴물 업체가 당사자가 되면 소송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기차 특허분쟁이 늘면 기술 노하우에 비해 핵심기술 특허가 많지 않은 완성차 업체는 특허괴물에게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완성차 업체도 대응책을 마련 중이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지난해 특허 업무 강화에 나섰다. 지난해 경기도 화성 남양기술연구소 내 특허팀을 특허실로 격상했다. 당시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70여명 수준에 불과한 특허실 인력을 “최대 3배까지 늘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보유 특허 수도 공격적으로 늘려가고 있다. 전기차 특허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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