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Retirement - 행복한 노후, 돈 못지 않게 사람·취미

Retirement - 행복한 노후, 돈 못지 않게 사람·취미

일본노인 치매 발생률 높은 이유는 폐쇄성 탓 … 은퇴 후 여가 선용 고민해야



4050세대는 은퇴 예비군이다. 조만간 다가올 중차대한 인생 전환점에 직면했다. 다만 준비는 ‘아직’이다. 현실은 외롭고 힘들며 아슬아슬하다. 은퇴난민 여부를 가를 티켓은 일자리인데 중년의 일은 꽤 불투명하다. 와중에 가족 갈등은 위험수위다. 황혼이혼(아내), 캥거루족(자녀), 간병지옥(부모)의 상징어처럼 가장은 월급 기계로 전락했다. 그런데 돈은 부족하다. 아파트 한 채라도 쟁여뒀다면 다행이다. 문제는 월급이다. 언제까지 받을지 갈수록 자신감은 떨어진다. 이대로라면 노후준비는 없다.

여기까지는 많은 이들이 학습·경험적으로 이해하는 불안근거다. 공통점은 ‘돈’이다. 그래서 노후준비라고 하면 대부분 자산 축적을 먼저 떠올린다. 4050세대의 노후준비는 곧 자산운용이다. 한국처럼 사회안전망이 취약하면 더 그렇다. 복지 시스템으로 제공받지 못하는 노후 수요라면 제값을 내고 스스로 구매할 수밖에 없다. 이게 시장원리다. 돈 없는 행복노후란 불가능한 셈이다.



패쇄적인 일본 노인다만 돈이 전부는 아니다. 절대량의 차이는 있지만 돈이 많지 않아도 행복 노후를 실현한 사례가 적잖다. 이때 중요한 게 인간 관계다. 좋은 인간 관계가 행복한 노후생활과 연결된다는 선행 연구도 많다. 노후준비가 일종의 종합예술이라면 그 최대변수는 사람이다.

사람만큼 중요한 게 또 있다. 취미다. 자산운용이 재무적 노후준비의 핵심이라면 취미는 건강·사람과 함께 비재무적인 항목을 구성하는 뼈대다. 그럼에도 은퇴 예비군이 잊기 쉬운 게 취미다. 중년이 될 때까지조차 낯선 단어인데다 굵직한 자산 마련의 난제 앞에 서 있으니 취미는 적잖이 여유롭고 한가한 이슈다. 선배 세대들이 통탄해 하며 후회하는 항목임을 이들은 잘 모른다.

일본은 이런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닛세이 기초연구소’의 보고서를 보자. ‘단카이(團塊) 퇴직자, 맘 둘 곳은 어디’라는 제목의 보고서다(2012년 11월). 부제는 ‘공립도서관의 인기 이유’다. 1946~48년생 단카이 세대가 65세에 달하면서 대량퇴직이 시작됐는데, 이들이 즐겨 찾는 공간으로 도서관이 인기 목록에 올랐다는 요지다. 도서관의 쾌적한 환경, 경제적 부담 경감, 여유있는 이용시간 등이 은퇴세대 특유의 불안감을 안심감으로 승화시키는데 기여했다는 의미다.

사견을 붙이자면, 도서관 인기 비결에는 민폐를 싫어하고 정적(靜的)생활을 즐기려는 특유의 일본문화가 작용한 듯 하다. 이는 이웃의 한국·중국과 비교해도 뚜렷한 일본 노인만의 독특한 은퇴 스토리다. 일본 노인의 여가생활은 한국엔 일종의 반면교사다.

실제 일본 노인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 간병이 필요한 노인환자야 그렇다 치더라도 건강한 노인조차 일상생활에서 움직임이 별로 없다. 꽃밭을 가꾸거나 화단을 정리하는 게 고작일 때가 많다. TV 앞에 앉아 기계적으로 리모컨을 돌리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더 많다. 20대의 하루 평균 TV 시청시간은 2시간 정도인데 60대는 4시간을 넘긴다(NHK방송문화연구소).

TV에서 라디오로 옮겨가는 고령인구도 만만찮다. 교통비가 비싸니 외출비용은 부담스럽다. 커튼을 드리운 채 은둔적인 외톨이로 집안에만 있는 경우가 많다. 집 밖 활동을 찾으려는 인구는 찾기 힘들다. 이웃과의 일상교류는 의외로 적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지하철 무료제공은 노년기 여가 생활을 응원하는 차별적인 포인트다.

활동영역이 좁으니 커뮤니케이션은 불통이다. 간병시설 등 동년배의 집단 공간조차 커뮤니케이션은 기대하기 힘들다. 동그랗게 둘러앉은 좋은 환경(?)에서도 대화는 상실이다. 묵묵부답의 무표정이다. 서로 간섭하지 않고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특유한 문화와 의식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펴낸 ‘고령사회 백서’를 보면 실제로 이웃과의 교류는 감소세다. 친하게 지낸다는 답은 1988년 64%에서 2008년 43%로 줄었다. 대신 간단한 인사 정도만 나눈 다는 응답은 31%에서 51%로 늘었다.

일본 남자 노인에겐 취미 자체가 거의 없다. 일본의 경우 노인 대상 프로그램 중 사교댄스는 찾기 힘들다. 배울 의지도 기반도 없다. 취미라면 서예·독서 등 정적인 게 대세다. 당연히 노후 여가는 집안에 매몰된다. 과거엔 노인의 지역사회 참가율이 높았다. 마을 축제 준비나 공동작업·장례접수계 등을 노인들이 맡았다. 죽을 때까지 할 일이 있었던 셈이다. 근대화·도시화·핵가족화는

이들에게 일을 뺏어버렸다.

그러니 일본노인은 많이 아프다. ‘취미→관계→행복’의 단절에 따른 생활 환자가 많다. 치매가 대표적이다. 일본의 노인 평균 유병(有病)비율은 3~3.8%에 달한다. 치매환자를 위한 시설·인적지원이 많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다. 한국은 일본보다는 치매 비율이 낮다. 다만 한국도 노인 치매가 이제 가족붕괴를 넘어 사회병폐로 연결 중이다. 그나마 일본노인보다 활동적인 게 다행이다. 동네공원에서 운동을 즐기는 노인수요는 꾸준하다.



스포츠·지역행사에 관심 많아취미를 대체하는 강력한 카드는 손자 양육이다. 한국의 은퇴세대에게 손자양육은 ‘뜨거운 감자’다. 피하려 해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맞벌이가 대세인 상황에서 아들·딸의 생존 문제를 무시할 수 없는 내리 사랑의 결과다. 자녀세대도 직장과 가정 양립이 힘든 탓에 부모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반면 일본은 웬만하면 손자를 돌봐주지 않는다. 최근 늘고는 있지만 아직 극소수다. 이는 세대 단절로 이어진다. 일본은 결혼 이후에 부모와의 관계가 희박한 편이다. 즉 손자양육은 일반적이지 않다. 이는 일본 노인의 여가생활이 한층 독립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지만 반대로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일본 노인의 여가생활은 폐쇄적이고 단절적이다. 망망대해의 외로운 돛단배처럼 은퇴 이후 ‘누구와 무엇을’ 하며 관계 유지를 할지 고민스럽다. 일도 없고 취미마저 없다면 은퇴생활은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회사 인간’으로 30~40년을 살아온 남성 은퇴자라면 특히 노후생활은 피폐해진다.

다행스러운 건 변화 조짐이다. 길어진 인생 2막을 즐기려고 취미나 사회 참여에 관심을 갖는 노인이 늘고 있다. 고령자의 집단활동 참가 여부를 물었더니 1998년 44%에서 2008년 60%로 늘었다. 건강과 유대를 챙기는 스포츠(31%)·지역행사(24%) 등이 주된 활동이다.

배우려는 노인도 늘었다. 학습·자기계발·훈련 등을 경험한 고령자가 10명 중 3명으로 집계됐다(2011년). 베이비부머 등 젊은 고령자가 새롭게 합류하고 노인 활력을 높이는 각종 제도 정책이 겸비된 결과다. 갓 은퇴자나 은퇴 예비군 중 적잖은 수가 노후생활을 즐기고자 새로운 취미를 찾는다는 얘기다.

선배 세대를 통해 돈보다 중요한 가치를 배운 덕분이다. 핵심은 사람과의 관계다. 이를 더 갈무리한 게 취미다. 취미가 타인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열쇠인 셈이다. 노년에 즐길만한 여가생활이 없다면 서둘러 마련하는 게 좋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G20 일부 회원국 “억만장자 3000명에 부유세 걷어 불평등 해소하자”

2이재명-조국 “수시로 대화하자…공동법안·정책 추진”

3 미국 1분기 GDP 경제성장률 1.6%…예상치 하회

4연세대·고려대 의대 교수들, 5월 말까지 주 1회 휴진한다

5경찰, ‘이선균 수사정보 유출’ 관련 인천지검 압수수색

6독일 Z세대 3명 중 1명 “유대인에 역사적 책임 동의 못한다”

7미국, 마이크론에 반도체 보조금 8.4조원…삼성전자와 규모 비슷

8이재명, 조국에 “정국상황 교감할 게 있어” 러브콜…오늘 비공개 만찬

9크라우드웍스, AI 언어 모델 사업 ‘본격화’…웍스원 개발

실시간 뉴스

1G20 일부 회원국 “억만장자 3000명에 부유세 걷어 불평등 해소하자”

2이재명-조국 “수시로 대화하자…공동법안·정책 추진”

3 미국 1분기 GDP 경제성장률 1.6%…예상치 하회

4연세대·고려대 의대 교수들, 5월 말까지 주 1회 휴진한다

5경찰, ‘이선균 수사정보 유출’ 관련 인천지검 압수수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