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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 - 0% 확률 뒤집은 ‘믿음 야구’의 승부사

LEADERSHIP - 0% 확률 뒤집은 ‘믿음 야구’의 승부사

국내 프로야구 정규시즌 및 한국시리즈 통합 3연패를 처음 달성한 삼성 라이온즈 류중일 감독은 경영자가 스포츠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프로야구 출범 전 류중일 감독은 고교야구 스타로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야구와 기업 경영은 비슷한 점이 많다. 마케팅·재무·인사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기업을 이끌 듯 야구단에는 투수와 타자, 수비와 주루 등을 책임지는 코치가 모여 팀을 이끈다. 기업에서 이 모든 분야를 총괄하는 위치가 CEO라면 선수들을 이끄는 ‘그라운드의 CEO’는 감독이다. 물론 야구단의 운영을 책임지는 단장과 사장이 있지만 경기 운영에 관한 한 감독의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다.

올시즌 국내프로야구 역사상 첫 정규시즌 및 한국시리즈 통합 3연패를 달성한 삼성 라이온즈 류중일(50) 감독은 요즘 제일 잘 나가는 그라운드 CEO다. ‘믿음의 야구’로 불리는 그의 리더십은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1승3패의 벼랑 끝 열세를 딛고 기적적인 우승을 이끌며 진가를 발휘했다. 국내 프로야구 32년 역사에서 1승3패로 몰린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것은 올해 삼성이 처음이다.

삼성 라이온즈의 홈구장인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감독실에서 만난 류중일 감독은 당시 심정을 묻는 질문에 “졌다고 생각했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5차전을 앞두고)코치와 선수들에게 무슨 말을 할까 집에서 고민 많이 했어요. 결국 ‘한 번 더 지면 끝난다. 하지만 후회 없는 경기를 하자’고 독려했죠.” 2승1패로 앞선 두산의 김진욱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아직 게임이 많이 남아있다”며 다소 느슨했던 자세와는 대조적이다.

류중일 감독은 김재박·이종범·박진만 등과 함께 역대 국내 최고 유격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하지만 프로에서 삼성 선수로 뛰던 12년(1987~1998)간 준우승만 세 번했을 뿐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준우승하고 기자들 앞에서 울고 불고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싫었어요. 그럴 거면 후회없이 더 열심히 뛰었어야지 지고 나서 우는 건 가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11월 1일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7차전 승리로 우승을 확정지은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이 류중일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프로야구가 출범하기 한 해 전인 1981년, 고교 2학년이던 류중일 감독은 모교인 경북고를 전국대회 4관왕(대통령기·봉황대기·황금사자기·전국체전)으로 이끈 주역 중한 사람으로 요즘 아이돌 스타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당시 최고 스타였던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의 박노준이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홈에 들어오다가 발목을 다쳐 입원했다. 그 소식이 저녁 9시 뉴스 주요 소식으로 보도됐을 정도로 고교야구의 인기는 대단했다.



고교야구 시절 아이돌 못지 않은 인기“뉴스에서 박 선배의 병실 앞에 줄을 선 여학생들을 보며 나는 언제 저런 스타가 될까 생각했어요. 그 대회에서 우승 후 열린 한일 고교야구 경기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수 천장의 팬레터가 와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나이가 더 들어 심심할 때 아내와 하나씩 꺼내보려고 아직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웃음)

류중일 감독은 ‘잠실야구장 1호 홈런’의 주인공이다. 1982년 7월 16일, 잠실야구장 개장 기념 우수고교 초청경기로 진행된 부산고와 경북고의 경기에서 그는 부산고 투수 김종석을 상대로 역사적인 홈런을 날렸다. 고교야구의 영광스런 시절을 이끈 최고스타였지만 프로야구 정규시즌 및 한국시리즈 통합 3연패와 비교될 만한 기쁨을 그라운드에서 느껴본 적은 없다고 그는 말했다.

시즌 초부터 줄곧 선두를 달리던 정규리그 중에도 위기는 있었다. 유격수 김상수와 포수 진갑용, ‘국민타자’ 이승엽 등 주전들이 줄줄이 부상당했고, 8월 중순에는 LG 트윈스에 1위를 내줬다. 류중일 감독은 부상선수를 탓하지 않고 ‘기회가 왔을 때 잡으라’고 대체선수들을 독려해 선전을 이끌었다. 이는 시즌 막바지에 8연승으로 우승을 확정 짓는 원동력이 됐다.

“선수가 없어서 졌다는 말은 지도자가 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없으면 안된다’는 말도 싫어합니다. 정규리그 133게임을 치르는 동안 위기가 닥칠 때마다 후보 선수들의 분발을 독려해 경쟁을 유도합니다.” 프로스포츠에서 선수 간의 주전경쟁은 비즈니스 현장과 마찬가지로 ‘총성 없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렵게 출전 기회를 잡은 후보 선수가 부상 사실을 숨기고 경기에 출전하는 일도 종종있다. 류중일 감독은 프로데뷔 이후 20년 넘게 줄곧 한 팀에 몸담은 ‘삼성맨’이다. 선수들에게 틈만 나면 “삼성은 위기에 강하고 지고는 못사는 DNA가 있다”며 정신무장을 시켰다.

오랜 세월 2군 선수들을 체계적으로 조련해온 결과물인 두터운 선수층도 삼성 야구의 큰 경쟁력이다. 삼성은 일찌감치 대구 인근 경산에 2군 선수단 숙소와 실내연습장, 경기장을 아우르는 대규모 ‘볼파크’를 만들어 2군 선수들의 경기력을 향상시켰다. 그들은 하나 둘씩 삼성의 핵심전력으로 성장했다. 또 위기의 순간마다 주전 공백을 메워줄 훌륭한 백업요원들이 속속 등장했다.

류중일 감독은 “2군에서도 1군 활약을 대비해 철저한 역할 분담 아래 훈련을 진행한다”고 했다. 1군에서 선발투수를 맡을 선수는 2군에서도 선발로, 마무리를 맡길 선수에게는 2군에서도 마무리 역할을 전담시키는 식이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선수라 해도 특정 역할은 반복된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전문인력 양성과 모양새가 비슷하다.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되는 시대이다 보니 기업마다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하는 인재가 모여든다. 상하관계와 규율이 강조되는 스포츠 구단에도 변화의 바람이 분지 오래다. 삼성만 하더라도 ‘그라운드의 개그맨’으로 불리는 박석민, 모자를 늘 옆으로 비틀어 써서 ‘힙합 전사’로 불리는 투수 안지만, 언제 어떤 질문을 받아도 무표정하게 단답형으로 말하는 오승환 등 개성파가 넘쳐난다.

류중일 감독은 “선수의 성향에 참견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인성에 문제가 있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는 선수는 함께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야구단을 기업보다는 학교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감독은 교장, 수석코치는 교감, 나머지 코치들은 과목 담당 교사인 셈이죠. 처음 삼성 감독을 맡아 코치들에게 ‘인성을 가르치라’고 강조했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인사성과 언행이 올바르지 않으면 감독이나 구단에 누가 될 수 밖에 없거든요.”

삼성 라이온즈의 김성래 수석코치는 류중일 감독의 경북고 2년 선배다. 하늘 같은 고교 선배가 코치여서 불편하지는 않을까. “키스톤(2루수와 유격수) 콤비로 오랫동안 한 팀에서 호흡을 맞췄고 의형제처럼 지낸 사이라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수석코치 자리를 제안했을 때 흔쾌히 받아줬고요. 예전과 달라진 점은 내게 깎듯이 존댓말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김 수석코치도 “내가 선배이긴 해도 감독 대우는 당연한 일”이라며 “불편함이 없다”고 했다.

선수와 지도자 간의 믿음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류중일 감독은 “감독은 큰 그림을 그려야지 사사건건 다 참견하면 안된다”고 강조한다. 경기 중 중요한 결정도 코치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투수교체 때 투수코치와 이야기를 많이 나눕니다. 생각이 다르면 그 이유를 묻습니다. 물론 최종결정은 내가 내리지만요.”



김경문 감독의 ‘뚝심야구’ 배우려고 노력류중일 감독의 ‘믿음 야구’는 한국시리즈 내내 극심한 부진에 빠져있던 ‘국민타자’ 이승엽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6차전까지 23타수 3안타로 타율이 1할3푼에 불과했다. 하지만 류중일 감독은 “이제 이승엽 이야기는 안 했으면 좋겠다. 본인은 얼마나 답답하겠느냐”고 감싸 안으며 이승엽을 끝까지 중용했다.

그 믿음에 보답하듯 이승엽은 우승의 향방을 가릴 최종 7차전에서 1대2로 뒤지던 5회 1사 만루에서 유희관의 4구 체인지업을 받아쳐 동점타를 터뜨렸다. 기세를 탄 삼성 타선은 6회말 대량 득점을 올리며 결국 7대3으로 승리, 우승 샴페인을 터뜨렸다.

류중일 감독은 당시를 회상하며 “성실성, 게임에 임하는 자세, 사생활, 훈련모습 등 존재만으로도 후배들에게 많은 도움이 됐기에 끝까지 믿었다”고 말했다. “국민타자 이승엽을 조금 못한다고 해서 내칠 수는 없었죠. 경기력이 부진한 데 계속 기용한다고 욕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이승엽을 계속 보기를 원하는 사람이 적어도 절반 이상은 된다고 믿었습니다.”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최근 해외진출을 타진 중인 국내 최고 마무리 투수 오승환으로 넘어갔다. 그는 이대호와 류중일현진 등 간판 스타의 해외 진출로 프로야구 인기 하락이 우려된다(실제로 국내 프로야구는 지난 두 시즌 연속으로 700만 명 이상의 관중을 동원하며 흥행몰이에 성공했지만 올시즌 600만 명대로 감소했다)는 기자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도 “한국 선수가 더 큰 무대에서 잘하면 국위를 선양하는 것”이라며 “오승환이 해외무대에서도 꼭 성공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류중일 감독은 현역 은퇴 2년 뒤인 2000년 삼성의 수비코치로 지도자 생활에 입문했다. 이때 2군 감독이던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과 전임자 선동렬 기아 타이거즈 감독을 비롯해 많은 선배 지도자의 장점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다.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김경문 NC 다이노스 감독의 두산 시절 야구를 좋아해 배우고 싶었습니다. 정수빈·민병헌·이종욱 등 발빠른 선수를 승부처에 대주자로 기용하는 등 기동력을 발판으로 특유의 ‘뚝심야구’를 완성했죠.”

자신이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는 역대 최고 유격수로는 김재박 전 현대 유니콘스 감독을 주저없이 꼽았다. “중학교 때 당시 실업팀 한국화장품 소속이던 김 전 감독이 대구에서 시합이 있어 구경 갔는데 세 번 놀랐습니다. 기습번트로 안타를 만드는 기동력과 재치에, 깊숙한 타구를 잡아 빨랫줄 같은 송구로 1루에 던져 정확히 아웃시키는 모습에 놀랬죠. 9회에는 구원투수로 등장해 또 한번 놀랐습니다. 그때 ‘저런 만능 선수가 돼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는 1990년 백년가약을 맺은 배태연 씨와 슬하에 대학에 다니는 두 아들을 두고 있다. 그는 지인들에게 “내 생애 최고의 선택이자 행운”이라고 말할 만큼 배 씨와의 결혼을 천운처럼 여긴다. 사상 첫 정규시즌 및 한국시리즈 통합 3연패를 달성한 뒤에는 “아내의 정성스런 기도 덕분”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야구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나와 결혼했어요. 지금은 내 전화 목소리만 들어도 그날 경기의 승패를 맞춥니다.”

내년 시즌 목표를 묻자 “당연히 4연패”라는 답이 돌아왔다. “오승환이 빠지면 어느 정도 전력 공백이 있을 것이고, 최근 몇 년간 신인선수 지명에서도 큰 재미를 못봤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반드시 목표를 달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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