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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줄 잇는 재판에 긴장의 갑오년

Issue - 줄 잇는 재판에 긴장의 갑오년

대기업 총수 5명 배임·횡령 등 혐의 … 경제 기여론과 건강이 판결에 미치는 영향 줄어



12월 26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형사 5부 심리로 공판이 열렸다. 피고인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그는 위장계열사의 빚을 갚기 위해 회사 자산을 부당하게 지출하고 계열사 주식을 가족에게 헐값에 팔아 회사에 손실을 미친 혐의로 소환됐다. 오전 공판과 오후 결심 공판에 모두 참석한 김 회장은 공판 내내 간이침대에 누워 재판을 지켜봤다.

검찰은 이날 오후 3시 열린 결심 공판에서 “사건의 본질은 한화그룹 총수인 김 회장이 계열사 자금을 불법 동원해 개인 회사의 부실 3000억원을 변제한 것”이라며 “횡령·배임죄의 법리적 구성에 문제 없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김 회장에게 징역 9년, 벌금 1500억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1심과 2심에서도 징역 9년과 벌금 1500억원을 구형했다.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 된 김 회장은 사비로 1186억원을 공탁하고 항소심에서 징역 3년으로 감형 받았다. 배임 인정 액수는 3024억원에서 1797억원으로 줄었다. 대법원은 2013년 9월 26일 김 회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3년과 벌금 51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배임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지만 배임액 산정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로 파기환송 했다.

김 회장의 변호인단은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했다. 배임액을 줄이고 공탁금을 내는 등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검찰은 여전히 1,2심과 같은 형량을 구형했다. 피해액도 항소심에서 인정한 1700억원이 아닌 3000억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 회장 측은 “계열사 지원은 경영상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고 주장하며 “유죄로 인정받은 횡령·배임액 1500억여원 이상을 공탁했다”며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다. 김 회장은 최후 변론에서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한화그룹이 앞으로 좋은 기업으로 재탄생 할 수 있게 선처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에 대한 법원 최종 판결은 2014년 2월 6일 내려질 예정이다.

‘경제민주화 실현’을 강조한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법원은 대기업 총수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2013년을 마무리 하는 12월 한 달 동안에만 김승연 한화 회장, 조석래 효성 회장, 이재현 CJ 회장, 현재현 동양 회장, 최태원 SK 회장이 법원에서 공판을 받았다. 특히 5명의 회장이 모두 법정에 출두한 12월 16일에서 20일 사이를 재계는 ‘고난의 한 주’라고 불렀다.

12월 16일 현재현 회장이 법원에 소환됐고, 12월 17일 이재현 회장의 공판이 열렸다. 18일에는 조석래 회장이 서울중앙지법에서 피의자 심문을 받았다. 19일 최태원 회장은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했고, 현재현 회장과 김승연 회장의 공판이 열렸다.

고난의 한 주 기간에 나온 판결 중 재계 입장에서 그나마 희소식은 19일 법원이 건강과 고령을 이유로 조석래 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일이다. 조 회장은 한숨을 돌렸지만 여전히 그의 앞에는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다. 조 회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조원대의 손실을 감추기 위해 분식회계를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200여개의 차명계좌를 통해 주식을 관리했고 1000억원대의 자산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법인세와 양도세를 내지 않은 혐의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계열사에 손해를 끼치고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도 있다. 검찰이 범죄사실로 추산한 탈세액은 1000억원이 넘는다. 배임 및 횡령 액수도 700억∼800억원대에 달하는 등 전체 범죄액수는 2000억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이 주요 범죄혐의에 관한 소명 정도, 피의자의 연령, 병력 등을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검찰은 조 회장이 입원 중인 서울대병원의 간호일지를 확보해 구속영장 재청구를 위한 증거 수집에 나섰다. 검찰이 확보한 간호일지에는 조 회장이 수시로 외출한 기록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구속영장 재청구를 위해 기각 사유를 검토하며 내용을 보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 당시 대검 중수부에 출두해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효성그룹은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09년에도 미국 부동산 구입과 관련한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들인 조현준 효성 사장만 기소됐다. 효성 관계자는 “일단 기소가 안된 상황이고 법원 판결을 기다려야 하기에 구체적 입장을 밝히기 어렵지만 (회장님이) 사법적 처리 대상에 오르내리면서 기업 활동이 많이 위축돼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현재현 회장은 고난의 한 주 동안 법원에 출석한 총수 중 가장 큰 고초를 겪었다. 그가 검찰에 소환된 19일 법원 입구에서 동양그룹의 기업어음을 샀다가 손해를 입은 피해자들에게 봉변을 당했다. 피해자들은 현 회장에게 다가가 심한 몸싸움을 벌였고 심지어 계란을 던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현 회장은 이마에 상처를 입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동양그룹 투자 피해자들이 12월 24일까지 신청한 분쟁 조정 건수는 1만9904건, 피해금액은 7343억원에 달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내년 3월 예정된 동양그룹 계열사에 대한 법원의 회생계획 인가 등으로 개별투자자의 손해액이 확정되면 4~5월 중 금융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배상비율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회장 5명 출두한 ‘고난의 한 주’현 회장은 수 만명의 투자자들에게 사기성 기업어음(CP)을 발행해 피해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2013년 7월부터 9월까지 법정관리를 앞둔 동양시멘트 주식을 담보로 1568억원 상당의 자산담보부 기업어음을 발행·판매했다는 것이다. 또 계열사인 동양파이낸셜대부를 통해 2013년 초부터 1년6개월 간 동양레저·동양인터내셔널 등 부실 계열사에 1조5621억원을 불법 대출해준 편법 지원 혐의도 있다. 현 회장은 검찰에서 15시간 동안 조사를 받고 12월 20일 새벽 3시에 귀가했다.

현 회장은 검찰에서 “개인 재산 대부분을 우리 회사 CP 매입에 쓰는 등 회사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고 사기 고의성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검찰은 피해자가 많은 만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배임 혐의로 현 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다.

2013년 이재현 회장의 해외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시작된 검찰의 CJ그룹 수사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검찰은 CJ그룹이 2006년 하반기 세무조사를 무마해달라며 국세청 간부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포착해 수사를 확대해 이재현 회장을 법정에 세웠다. 12월 17일 이 회장이 소환됐고, 23일 두 번째 공판이 열렸다. 이 회장은 두 번의 공판 모두 마스크를 착용한 채 재판장으로 향했다. 이 회장은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후 구속집행정지 상태다.

이 회장은 2000억원대의 비자금 조성 및 탈세,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CJ그룹 임직원을 동원해 국내외 비자금을 차명으로 운용·관리하면서 세금 546억원을 탈루한 혐의와 국내외 법인 자산 963억원가량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일본 도쿄 소재 빌딩을 매입하면서 CJ 일본법인에 569억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도 있다.

검찰은 “월 몇 차례씩 1만원권 현금 다발이 은밀히 재무팀에 전달됐고 개인재산 장부에 등재된 채 사용됐다”며 “비자금 조성 시점에 이미 불법영득(불법영리취득) 의사가 명확해 조성 자체를 횡령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2월 법원 인사이동 이전 판결할 계획인데 계속 증거가 새로 나온다면 선고가 4~5월로 미뤄질 수도 있다”며 “내년 1월 14일에는 결심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현 회장은 계란 세례 받아12월 19일에는 구속 수감 11개월째를 맞은 최태원 회장이 법원에 출석했다. 그는 경기도 의왕시 포일동의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최 회장은 자신의 공범으로 기소된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의 재판에 증인으로 소환됐다. 증인 심문에서 검찰은 김 전 고문이 대만 현지 경찰에 체포돼 최 회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 직전 한국으로 송환된 경위를 추궁했다.

검찰은 “김 전 고문이 대만에서 체포되기 보름 전인 7월15일께 한국 경찰청 인터폴수사대가 검찰에 사전 통보 없이 김 전 고문의 체포를 요청하는 공문을 대만에 보냈다”며 김 전 고문의 기획입국설을 겨냥했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은 “대만에 가서 김 전 고문을 몇 번 만난 일은 있다”면서도 “김 전 고문이 제가 묵고 있는 숙소로 찾아와 만났기에 그의 거주지는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 회장은 “50대에 들어서면서까지 부끄러운 방법으로 돈을 벌 생각은 해본 적이 없고,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며 “내 이름과 하느님 앞에 맹세를 하건대 결코 횡령 사실을 알지 못했고, 그럴 의도도 없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SK텔레콤 등에서 베넥스에 선지급한 펀드투자금 가운데 465억원을 빼돌려 김 전 고문에게 송금한 혐의로 구속됐다. 2013년 9월 27일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문용선)는 SK그룹 계열사 자금 45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최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최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SK그룹 수석 부회장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2심에서 징역 3년 6개월형을 받았다. 김 전 고문은 최 회장 형제에 대한 항소심 선고를 하루 앞둔 9월26일 대만 당국으로부터 추방됐다. 최 회장 형제는 모두 대법원에 상고했다.



SK는 오너 형제 동반 구속2013년은 유난히 법원에 불려 다닌 회장이 많은 시련의 한 해였다. 그동안 대기업 총수들은 법적인 문제가 생길 때면 병원 입원, 사회공헌이란 카드를 꺼내 법의 심판을 피해왔다. 실형을 받고 수감된 이후에는 특별사면을 통해 풀려나 특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박근혜정부가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구속 수감되는 회장이 늘기 시작했고, SK그룹의 경우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이 동시에 수감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전경련 관계자는 “새 정부 들어서며 많은 기업 총수가 사법 처리 대상에 오르내리면서 기업의 활동이 많이 위축돼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어려웠다”면서 “고난의 한 주를 끝으로 2014년에는 이런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대기업 총수의 법정구속이 도산·부도 등 기업 경영에 손실을 초래하지는 않았다”면서 “경제 활성화를 저해한다는 이유로 모호한 법 적용을 해서는 안 되며 기업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갑오년은 60년 만에 돌아온 ‘청마(靑馬)의 해’다.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이 이들 회장이 경영 현장을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을지 영어의 몸으로 2014년을 보낼지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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