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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형 저성장·디플레 피하는 게 관건

일본형 저성장·디플레 피하는 게 관건

미국과 유럽 사례에 비추어 고령화는 큰 문제 아니라는 분석도



부동산 경기가 꿈틀대고 있다. 하지만 장기간의 침체를 겪은 탓에 시장이 회복세를 이어갈지 불안감도 만만치 않다. 특히 시장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부동산으로 돈을 벌겠다는 투자 열기는 예전만 못하다. ‘이제 정말 한계가 아닌가’라는 불신이 자리 잡고 있어서다. 실제로 일각에서는 국내 부동산 가격의 상승 여력이 더 이상 없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이른바 ‘부동산 시장 대세 하락론’이다.

부동산 대세 하락론의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저성장과 인구구조 변화, 그리고 이에 따른 수요-공급 측면이다. 그동안 부동산 가격을 받쳐온 건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감이다. 집을 사두면 몇 년 뒤에는 집값이 몇 배 뛰는 게 당연한 시절이었다. 전세라는 독특한 부동산 시스템이 굳건했던 것도 재테크용 주택 구매가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사두면 언젠가 오르겠지’ 막연한 기대는 무리지금은 다르다. 경제가 저성장기에 접어들면 ‘집을 사두면 언젠가는 오른다’라는 기대가 먹히지 않게 됐다. 집을 사서 전세를 놔도 실익은 크지 않다. 결국 고소득층의 부동산 구매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산·서민층은 다른 측면에서 구매력이 떨어진다. 저성장이 지속되면 가계소득과 이에 따른 가계저축이 충분히 증가하기 어렵다. 실수요자의 부동산 구매 여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결국 저성장 탓에 자연히 부동산 수요가 줄어든다는 게 하락론자들의 주장이다.

인구구조와 이에 따른 주택수급 변화도 부동산 시장의 변수다. 국내 인구는 2030년까지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주택을 구매하는 주요 수요층인 30~45세 인구는 앞서 줄어들 전망이다.

또 60세 이상 세대는 노후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부동산을 매각할 가능성이 있다. 수요는 줄고 공급은 늘어나는 셈이다. 또한 그동안 적지 않은 젊은 세대는 부모의 도움을 받아 주택을 구매했다.

그러나 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탓에 부모 도움받기도 녹록하지 않다. 자녀 세대가 돈을 모아 주택을 사야 하니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1000조원 규모의 가계부채도 부동산 시장에 악재다. 국내 가계부채 규모는 2012년 말 기준으로 959조원, 지난해는 100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빚 부담이 클수록 부동산 구매력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소득 대비 높은 가격 자체도 부담이다. 서울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배수(PIR)는 거품 붕괴 직전 일본 도쿄와 비슷한 수준이다.

PIR은 평균 주택 매매가격을 중산층 가구의 연간 총소득으로 나눈 값을 말한다. 보통 ‘중위 주택가격/중위 소득’으로 계산한다. 예컨대 PIR이 10배라면 중위 소득의 사람이 10년치 소득을 모아야 중위 가격의 주택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주택구매 여력을 조사하는 데 주로 쓰인다.

1990년 가장 높았던 도쿄의 PIR은 9.78이었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주요국의 주택가격 비교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은 9.4다. 홍콩·밴쿠버 다음으로 높다. 런던·도쿄·뉴욕은 서울보다 낮다. 보고서는 한국의 경제 규모에 비해 부동산 가격이 높은 점이 주택 매수 심리를 위축시켜 가격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가계부채는 공급 증가도 부추긴다. 한국의 많은 가계의 재산이 대부분 부동산에 몰린 상황에서 부채 조정 시점이 오면 부동산을 처분하려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추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수치상 주택 보급율이 10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이 일정 수준 밑으로 떨어지면, 투기세력들이 보유한 물량을 대거 쏟아내는 ‘가속도 이론’도 부동산 하락설의 한 근거다.

일각에서는 일본식 부동산 장기 침체를 주장한다. 이미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이 이 시나리오의 중간 단계에 와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일본과 우리는 부동산 버블의 형성과 진행 과정이 비슷한 점이 많은 게 사실이다. 일본의 부동산 폭락도 저성장과 함께 시작됐다. 수출을 통한 경기호황을 이끌었던 엔화 가치가 1985년 플라자 합의로 크게 오르면서다. 경제성장에 기대 프리미엄 효과를 누리던 일본 부동산 가격도 이때 하락을 면치못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금리를 내렸다. 이자율이 낮으면 빚을 내기 쉽다. 사람들이 대출을 받아 내 집 마련에 나섰다. 주춤했던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는 조짐을 보였다. 이때 ‘고점 때 비해 분양가가 훨씬 낮다’ ‘이제는 바닥을 찍었으니 집을 사둘 때다’라는 의견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는 경제성장과 소득수준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높은 가격대에 이뤄진 거래였다. 곧 거품의 한계가 드러났다. 가격은 오를 대로 올랐지만 거래는 실종됐다.

저금리 정책이 버블의 근본 원인임을 뒤늦게 깨닫고 일본 정부가 뒤늦게 각종 대책을 내놨지만 오히려 버블 경제의 실체를 드러나게 하는 시발점이 됐다. 이후 부동산 가격은 곤두박질쳐 ‘이제 바닥이다’라고 했던 시기의 반 토막 이하로 떨어졌다. 버블 시기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집을 샀던 사람들은 ‘하우스푸어’로 전락했다. 이후 일본 부동산은 초장기 침체에 빠져들었다.

1990년대 시작된 일본 부동산 대폭락의 과정을 보면 언뜻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이 이와 흡사해 보인다. 2007년 서울 강남 등 이른바 ‘버블 세븐’ 지역이 고점을 찍은 뒤 세계 금융위기를 거쳐 지금까지 이른 상승·하락 패턴이 폭락 직전의 일본과 유사하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은 “물론 이런 흐름이 향후 일본식의 급락세로 이어질지, 상대적으로 완만한 하락세의 지속으로 나타날지는 미지수지만 어떤 경우든 장기 대세 하락 흐름은 피해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일본 대폭락 반면교사 삼으면 다른 양상 보일 수도그러나 이런 시각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우선 일본의 부동산 대폭락 시기와 지금 한국이 처한 환경, 부동산 시장의 성격 등이 다르다.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주택 수는 전국 평균 363.8이고 서울은 그보다 더 낮다. 일본과 프랑스처럼 주택가격이 안정된 수준에 도달하려면 약 500만호가 더 공급돼야 한다. 이 때문에 주택공급 과잉으로 주택가격이 상승할 수 없다는 말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또 우리의 주택은 전체의 25% 정도가 1980년대 이전에 지어졌다. 주택 교체 수요는 당분간 주택시장을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고령화도 반드시 부동산 가격 하락을 부르는 건 아니다. 고령화를 비롯한 인구 구조 변화가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주장은 1980년대 말 미국에서 처음 나왔다. 그러나 그 뒤로 미국 부동산 가격은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집값이 크게 떨어진 지금도 1990년대 초보다 높다. 일본과 같은 급격한 부동산 시장 변화는 매우 드문 경우다. 또한 무엇보다도 앞서 비슷한 사례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도 크다. 선대인 소장은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으면 국내 부동산 시장의 양상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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