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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NUCLEAR DISASTER -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FEATURES NUCLEAR DISASTER -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1년의 사고를 재조명한 신간 ‘후쿠시마, 핵재앙 이야기’ 알려지지 않았던 문제들을 깊이 있게 파헤쳐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최근 비영리 사회운동 단체 ‘우려하는 과학자모임(UCS)’이 책 한 권 분량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를 재조명한 내용이다.

‘후쿠시마, 핵재앙 이야기’는 3인이 공동 저술했다. UCS의 원자력 안전프로젝트 책임자이자 17년간 원자력 엔지니어로 일한 데이비드 로크봄, UCS 글로벌 안전 프로그램의 선임 과학자 에드윈 라이먼, 펜실베이니아주 도핀의 스리마일 섬 사고에 관한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신문의 취재를 이끌었던 수전 스트래너헌 기자다(그 기사로 신문은 1980년 지역 종합보도 부문 퓰리처상을 받았다).

로크봄과 공저자들이 엮어내는 스토리는 마치 스릴러처럼 치밀하고 빠르게 전개된다. 그러나 내용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사실적이다. 벌써 속편 발행 이야기가 거론된다. “후쿠시마 제1원전은 원전 설계의 약점과 운영 및 규제 감독의 오랜 결함을 드러냈다”고 저자들은 썼다. “일본에도 일말의 책임이 있지만 이는 일본의 핵사고가 아니었다. 우연찮게 일본에서 발생한 핵사고였을 뿐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를 초래한 문제들은 원자로가 가동되는 곳 어디에든 존재한다.”

책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뛰어넘어 더 깊숙이 사고를 파고든다.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사실과 분석을 추려봤다.



1 지진 후 후쿠시마 원전의 초기 가동 중단은 계획대로 진행됐다. 진짜 문제는 쓰나미였다.도호쿠 지진은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46분(일본 시각)에 시작됐다. 오후 2시47분 후쿠시마 제1원전의 첫 원자로가 자동으로 폐쇄되기 시작했다. 센서에 지진이 감지된 뒤였다. 진짜 문제는 45분가량 뒤에 시작됐다. 2차 쓰나미가 밀어닥쳤다. 첫 쓰나미는 4m 높이였다. 원전 방파제에 튕겨나갔다. 하지만 2파(波)는 15m 높이였다. 방파제를 가볍게 넘어섰다. 해수펌프를 결딴내고 문을 박살내고 원전의 전력시스템을 덮쳤다. 배전반과 비상 예비 발전기들이 물에 잠기며 발전소 정전이 발생했다.

발전소 정전은 원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사고 중 하나다. 원전 규제 당국자들 사이에선 주지의 사실이다. “냉각수의 안정적인 공급에 필요한 펌프 및 밸브를 가동할 전력이 끊어진다. 그렇게 되면 방사성 연료가 과열되고 남아 있는 물이 끓어오르며 노심 용융이 가차없이 진행된다.”



2 쓰나미가 얼마나 강했을까? 남극에서 뉴욕 만한 면적이 떨어져나갈 만큼 강력했다.“쓰나미는 진앙지 남쪽 대략 1만2900㎞ 거리의 남극을 강타했다. 그때까지도 130㎢ 이상의 빙붕이 떨어져 나갈 만큼 힘이 남아 있었다. 맨해튼의 2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3 정전 초기 몇 시간 동안 심각한 의사소통 문제로 인해 복구작업이 차질을 빚었다.“(원전 내) 호출 시스템이 먹통이 됐다. 원전 운영사 도쿄전력(TEPCO)이 일부 모바일 기기 용으로 제공한 배터리는 한 시간짜리뿐이었다. 재충전할 방법이 없었다. 복구대원들이 종종 간단한 사항을 보고하기 위해 비상대책본부까지 돌아가야 했다. 시간 낭비에 위험하기까지 한 절차였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진짜 문제는 쓰나미였다.


4 일본의 거대 원자력 관료체제도 문제당시 일본의 54개 상업용 원전은 경제산업성 산하 원자력안전보안원(NISA)의 규제를 받았다. 문부과학성도 원자력 발전을 장려하는 한편 방사능 모니터링을 담당했다. 일본 정부 내 독립기구인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원자력안전기반기구도 있다. 또한 일본의 현청들도 자체적으로 방사능 모니터링과 대피작업 조율을 담당했다. “이론상으로는 모두 의무와 책임이 명확한 듯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론 시스템이 뒤죽박죽인 것으로 드러났다.”



5 원전 붕괴 사고 후 피난민 신세가 됐다고? 형식주의 관료행정을 각오하라.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주거를 잃은 모든 가구에 100만 엔(약 1040만원)을 지불하겠다고 2011년 4월 발표했다. “그러나 급전이 필요한 난민의 경우엔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쿄전력은 3가지 양식을 작성해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그중 하나는 56쪽에 달했으며 156쪽짜리 안내 소책자가 딸려 있었다. 혼잡한 대피소에서 생활했던 난민 중 다수는 생활비 지출을 입증하는 영수증을 제출해야 했다. 진료기록과 임금손실 증빙서류도 제출하도록 요구받았다.”



6 비난과 손해배상 청구를 모면하려는 도쿄전력의 노력은 곧 코미디의 경계를 넘나들었다.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48㎞ 가량 떨어진 한 골프클럽 소유주들이 링크가 방사능에 노출됐다며 도쿄전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도쿄전력은 기발한 반론을 펼쳤다. 코스에 떨어진 방사능 물질은 ‘땅 주인의 것이지 도쿄전력 소유가 아니다.’ … 그들은 또한 골프코스의 방사능 수치가 학교 운동장의 허용기준치에 미달하므로 위험 요소가 아니라고도 주장했다.”



7 일본 정부는 건강에 미치는 잠재적인 영향에 관해 어정쩡한 입장을 보였다.에다노 유키오 당시 관방장관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후쿠시마에서 유출된 방사능 양을 두고 국민 앞에 나가 이렇게 말했다. “‘건강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 그 표현은 두 가지 상반된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방사능이 무해하다는 의미, 또는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라는 의미다.”



8 문제가 더 심각할 수도 있었다. 후쿠시마의 작업자들이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제대로 한 덕분에 그런 상황을 모면했다.사용후핵연료저장조는 원자로에서 제거한 방사능 연료봉을 저장하는 곳이다. 미국의 많은 원자로에선 핵연료저장조가 가득 찼다. 원전에 사고가 일어나거나 테러 공격이 있을 경우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후쿠시마 관계자들은 예방적인 차원에서 ‘건식저장’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사용후 연료봉을 콘크리트와 강철 통 안의 금속 용기 안에 넣고 봉인한다. 그리고 수동냉각(자연대류로 냉각)으로 연료의 열을 식히는 방식이다. 연료가 방사능을 배출하지 않도록 물을 공급하는 데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후쿠시마의 건식저장된 사용후 핵연료 집합체 408개가 지진으로 굴러 다녔으며 일시적으로 쓰나미의 물결 속에 잠겼다. 하지만 그밖에 다른 피해는 없었다. 저장조의 사용후 연료와는 달리 건식저장된 연료는 즉각적인 위협이 아니었다.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거나 헬리콥터로 물을 쏟아 부어서 식힐 필요가 없었다. “후쿠시마 사태에서 드러난 문제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로크봄, 라이먼, 스트래너헌이 썼다. “하지만 잘한 일에서도 마찬가지로 배울 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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