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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irement 일본에서 배우는 은퇴의 지혜 - 방치된 외로운 노인 괴물로 변해

Retirement 일본에서 배우는 은퇴의 지혜 - 방치된 외로운 노인 괴물로 변해

가정·사회에 해악 끼쳐 … 존재감 느끼도록 활동 영역 만들어줘야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관심이 크다. 인생 2막, 인생 후반전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막상 인생의 2막을 아름답게 꾸미는 이는 많지 않다. 은퇴 후 라이프 스타일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심한 경우는 인간관계 단절과 좌절감으로 불행한 노후를 보내게 된다. 특히 심각한 사회문제까지 야기한다.

일본 노인들의 부적응 행태는 집 문턱을 경계로 구분된다. 집 안에 머물며 외로움과 싸우는 소극적 노인이 상당수다. 반대로 적극적으로 집을 나서 소통부재를 해소하려는 노인들도 있다. 전자가 관리대상이면 후자는 경계대상이다. 집 밖을 나선 노인들은 노소 갈등을 유발해 민폐를 끼치거나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후자를 일컬어 ‘망주(妄走)노인’ 혹은 ‘폭주(暴走)노인’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최근에는 이들과 관련한 책도 나왔다. 타카이 나오유키가 쓴 ?단카이 몬스터?다. 부제는 더욱 충격적이다. ‘망주 노인들의 사건부’다.

책에 따르면 이들은 괴물이다. 가정은 물론 지역과 기업에까지 피해를 준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본 경제잡지 니케이비즈니스는 2009년 연말특집으로 ‘단카이 몬스터’라는 커버스토리를 다뤘다. ‘베이비부머의 대량 퇴직이 기형화된 고령 괴물을 양산했다’고 기사는 지적한다. 최근 아사히TV도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해 정년 퇴직자와 사회의 갈등을 집중 보도했다. 그 밖에도 다양한 매체가 이 문제를 지적하고 분석하는데 열을 올린다.



‘망주(妄走)노인’ ‘폭주(暴走)노인’ 늘어나오유키의 책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자. 책에는 고령 근로자가 사회에 끼치는 민폐를 몇 가지 에피소드로 꾸몄다. 착각에 빠져사는 정년자, 시키기만 하는 관리직, 어린아이 같은 아저씨 등이 그렇다. 젊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고령세대의 부정적 이미지가 고스란히 담겼다. 이미 퇴직을 했음에도 회사에 나가 과거의 부하에게 이리 저리 명령을 하는 사람의 사례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정년퇴직 후 처음으로 세탁기를 돌려본 사람이 많다. 세탁작업에는 완전히 무경험자다. 때문에 세제·유연제·표백제를 구별하지 못한다. 모르면 주변에 물으면 되는데 어찌된 일인지 곧바로 메이커에 전화한다. 대뜸 “가타카나의 상품명만으로는 확실히 모르겠다. 내용물이 세제라고 바로 알 수 있도록 표시하라.

용기가 잘 미끄러진다” 등의 불만을 내뱉는다. 어차피 공짜전화라 부담 없이 오랫동안 통화한다. 게다가 자존심은 세고 성격은 급해 대응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바로 화를 낸다. 상사를 바꾸라는 명령부터 경영방침이 맘에 안 든다며 사장과 얘기할 것을 고집하는 경우도 많다. 자신의 지식·경험을 살려 개선요구를 하기 위해서다.’

망주 노인의 양산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이들은 젊었을 때 기존세력에 반발하던 반(反) 권위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오히려 권위를 즐기는데 익숙하다. 2030 시절에는 집단파워를 즐겼지만 이젠 그들을 단카이라고 뭉뚱그려 평가하면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다. 스스로 일본 경제를 일으킨 주역이란 자부심이 상당하다. 나이가 있음에도 스스로를 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퇴직 후 지역사회에서도 거친 목소리를 낸다.

반면 집에서는 큰 힘을 쓰지 못한다. 평생을 참고 살아온 아내에게 구박을 받아도 크게 저항하지 못한다. 자녀 자립 문제로 고민을 하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 평생 회사생활에만 익숙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준비하는 부분에서는 약점을 보인다. 시간은 넘치는데 마땅한 취미도 찾지 못한다.

30~40년 동안 이어진 고도성장의 온기 속에서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을 누려온 이들에겐 현역졸업 자체가 불안과 스트레스다. 자연스럽게 인생 2막에서 연착륙에 성공할 확률이 대단히 낮다. 급격한 추락을 겪는 사례가 자주 등장한다.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초조함은 가득한데 사실상 대안이 없다. 과거의 회사처럼 뒤를 봐줄 조직이 사라져서다. 사라진 존재감을 지키기 위해 ‘○○회사 OB(Old Boy)회’라는 명함을 만들기도 한다. 이마저도 없으면 불안해 견딜 수가 없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든 후배들은 이들의 투정을 받아줄 여유도 의지도 없다. 그렇다고 후배들이 함부로 대하기도 쉽지 않다. 본격적으로 소비를 해야 하는 이들이 잠재된 고객이기도 하다. 일부는 퇴직 이후 가정을 직장 삼아 관리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가정에서 갈등과 불화를 양산한다. 가정을 관리하겠다는 욕망은 버리기가 힘들다.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들려줄 곳이 가정밖에 없다.

망주노인들의 부적응 근원에는 외로움이 있다. 가족이 대화상대가 되고 가장대우를 해주면 해결될 수 있겠지만 기대하기 힘들다. 이들은 오랜 기간을 회사라는 조직에 몸담고 헌신했다. 이는 곧 그 기간 동안 가족을 무시하고 방치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은퇴한 가장이 갖는 가족에 대한 뒤늦은 관심은 불편한 간섭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나마 가족들로부터 복수라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퇴직한 남편을 비꼬는 말로 ‘물기 뭍은 낙엽’이나 ‘대형 쓰레기’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나마 금전적 압박이 크지 않다는 것은 다행이다. 다소 부족해도 공적연금으로 생활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 여유 때문에 알코올 중독자가 늘어난다는 분석도 있다.



경제적 여유가 알코올 중독자 양산?마지막 남은 해결책은 이들 고령 근로자를 사회가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사회활동으로 복귀시키고 네트워크를 구축해 고독과 소외로부터 구출해야 한다. 단순히 금전적 보조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도록 활동의 영역을 만들어줘야 한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 퇴직자들은 생각보다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모인 인재뱅크다.

이들이 활동하는 공간이 현역시절 익숙한 기업이나 도심일 필요는 없다. 해외 및 농촌 진출을 장려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현재 일본 농업은 오랜 침체기를 겪는다. 후계자는 없고 거주공간은 황폐해졌다. 이곳에 정년퇴직을 맞은 베이비부머를 투입하면 활로를 찾을 수 있다. 실제 일본의 몇몇 지자체가 이 방법을 활용해 성과를 냈다.

지금까지 망주노인의 사례는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사회에 민폐를 끼치고 누군가를 귀찮게 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급속도로 늘었다. 앞으로 계속해 늘어나는 추세다. 서둘러 해결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더욱 치명적이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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