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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혁의 ‘술로 만나는 중국·중국인’ ④ 쓰촨성의 명주 라오자오

모종혁의 ‘술로 만나는 중국·중국인’ ④ 쓰촨성의 명주 라오자오

400년 넘은 저장고서 지하수로 발효 매운 쓰촨음식과 찰떡궁합
루저우시 펑황산 아래에 있는 루저우라오자오의 저장고.



중국 쓰촨성 청두(成都)에서 자동차로 3시간을 달려 도착한 루저우(瀘州)시. 루저우는 양쯔강과 퉈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쓰촨·윈난(雲南)·구이저우(貴州)·충칭(重慶) 등 4개 성·시의 교차점에 자리 잡은 교통의 요지다.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상업도시로 성장했다.

2012년 기준 루저우는 인구 510만명, 지역내총생산(GRDP) 1050억 위안(약 18조3750억원)에 달하는 2급 도시다. 주류업이 GRDP의 28%를 차지하는 최대 산업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루저우 주류산업의 2012년 총 생산액은 285억2000만 위안(약 4조991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대비 21.6%나 성장했다. 이는 루저우 전체 공업생산액(588억1900만 위안)의 절반에 달하는 수치다.

루저우는 술의 도시(酒城)라 할 만큼 여러 술이 존재한다. 그 중 루저우라오자오와 랑주는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명주다. 중국 정부가 지정한 국가명주 17개 중 한 도시가 두 개의 브랜드를 가진 곳은 루저우가 유일하다. 특히 루저우라오자오는 ‘농향(濃香)형 바이주(白酒)의 비조(鼻祖)’ ‘술의 우두머리(酒中泰斗)’라 불릴 만큼 명성이 높다.

쓰촨요리의 대표적 발효음식 파오차이 판매점.


붉은 찰수수는 술 양조의 최상품1949년 사회주의정권이 들어설 당시 루저우에는 36개의 큰 양조장이 있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온영성조방이 10여 개의 양조장을 합병해 진촨(金川)술공장을 발족시켰다. 진촨술공장은 1952년 다시 17개 양조장을 흡수해 쓰촨성 국영제1곡술공장(曲酒廠)으로 전환했다. 1955년에는 4개의 양조장이 통합해 지방 국영술공장이 세워졌다. 1960년 두 회사가 합병해 루저우곡술공장이 됐고, 1990년 오늘날과 같은 ‘루저우라오자오술공장’(이하 ‘라오자오’)으로 이름을 바꿨다.

본래 라오자오는 ‘오래된 구덩이’를 뜻한다. 이는 루저우의 독특한 양조법에서 비롯됐다. 예부터 루저우 일대에서는 붉은 찰수수가 생산됐다. 이 찰수수의 껍질은 붉고 윤기가 나며 알갱이는 알차고 촘촘하다. 전분 함량이 62.8%나 된다. 우수한 품질을 지닌 찰수수는 술을 양조하는데 있어 최상품이다.

루저우 사람들은 찰수수를 수확한 뒤 먼저 수개월간 숙성시킨다. 숙성된 찰수수를 펑황산(鳳凰山) 아래 저장고에서 용천정(龍泉井) 지하수를 이용해 다른 원료들과 배합한다. 용천정의 물은 산속에 흐르는 산천수와 양쯔강의 강물이 오랜 세월 혼합된 독특한 지하수다. 산성이 적고 단맛이 돌아 효모를 발육하고 번식시키는데 일품이다.

용천정 바로 옆에 있는 저장고는 1573년부터 누룩을 배합해 발효하는 장소다. 600여종의 미생물이 숨쉬고 있다. 배합된 누룩이 수백년 동안 바닥과 벽에 침투하면서 깊고 짙은 향과 풍부한 미생물을 생성했다. 이곳 바닥에 판 구덩이에 담긴 누룩은 짧게는 2~3년에서, 길게는 30년 이상 발효된다. 심지어 50~100년 발효된 누룩도 있다. 이렇게 오래된 발효 구덩이가 바로 라오자오다.

펑황산 저장고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누룩 발효지로 인정돼 1996년 전국중점유적지로 지정됐다. 2006년 5월에는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됐다. 오늘날 중국에서 가장 비싼 농향형 바이주 ‘궈자오 1573’은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다. 중국술 중 국(國)자를 상표로 사용하는 브랜드는 ‘국주(國酒) 마오타이’, ‘국밀(國密) 동주(董酒)’와 궈자오1573뿐이다.



쓰촨요리는 서민음식의 대명사궈자오1573이 인기를 끈 이유는 쓰촨요리와 궁합이 잘 맞는 술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각 지방마다 특색있는 요리를 발전시켰다. 그 중 산둥(山東)의 ‘루차이(魯菜)’, 장쑤(江蘇)의 ‘화이양차이(淮揚菜)’, 광둥(廣東)의 ‘웨차이’, 쓰촨의 ‘촨차이(川菜)’는 중국 4대 요리로 손꼽힌다.

중국 내 식당 수가 가장 많은 것은 광둥요리와 쓰촨요리다. 광둥요리는 해삼·전복·바다가재·상어 지느러미 등 진귀한 해산물을 재료로 한다. 값이 비싼 귀족음식이다. 쓰촨요리는 서민음식의 대명사다. 중국 주택가에 차지한 식당은 대개 쓰촨요리점이다.

쓰촨요리는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주재료로 다양한 소스와 향료를 넣어 만든다. 맵고 얼얼하며 신맛이 특징이다. 쓰촨 사람들은 음식에 말린 고추와 산초(花椒)를 그대로 넣는다. 그래야 맛에 색과 향이 더해져 모양을 낼 수 있다고 한다. 쓰촨에서 매운 요리가 발달한 것은 자연조건과 관련 깊다. 쓰촨은 분지 지형으로 강과 하천이 많다. 여름에는 덥고 습도가 높다. 겨울에는 햇빛을 보기 힘들다. 쓰촨인은 이런 기후를 이겨내기 위해 매운 음식을 먹고 땀을 흘려 건강을 유지했다.

요리는 먹는 사람의 기질도 바꿨다. 쓰촨인은 열정적이고 솔직담백하다. 중국인답지 않게 속마음을 잘 드러내고 다혈질이다. 쓰촨에서는 혁명가가 많이 태어났다. 중국공산당 지도자인 덩샤오핑(鄧小平)·주더(朱德)·류보청(劉伯承) 등이 쓰촨 출신이다.

라오자오를 즐겨 마신 대표적인 인물이 중국 개혁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이다. 본래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은 마오타이(茅臺)를 선호했다. 하지만 쓰촨성 출신인 그는 고향 음식과 술을 즐겼다. 특히 1949년부터 4년간 충칭(重慶)에서 중국공산당 서남국 제1서기로 재직했을 때 라오자오는 그의 식탁에서 떠나질 않았다.

라오자오의 술맛은 깊고 진하다. 오래된 구덩이에서 발효된 누룩을 이용해 증류한 뒤 춘양(春陽)동굴에서 숙성시켰기 때문이다. 춘양동굴에는 7647개 술 항아리가 있다. 이 항아리도 수십년의 역사를 지닌 물건이다. 동굴은 20도의 온도와 90도의 습도를 유지하면서 술에 극음(極陰)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모든 숙성이 끝난 라오자오의 술맛은 매운 쓰촨요리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중국 음식업을 장악한 쓰촨요리의 단짝답게 라오자오는 지난 10여년간 성공대로를 달려왔다. 2012년 총판매액은 115억5000만 위안(약 2조212억원), 영업이익은 43억9000만 위안(약 7682억원)이다. 전년대비 각각 37.1%, 51.1% 급증했다. 지난해 영업실적은 좋지 않았지만 다른 술회사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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