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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ANIMAL RIGHTS - ‘회색지대’ 속의 실험용 쥐

FEATURES ANIMAL RIGHTS - ‘회색지대’ 속의 실험용 쥐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인구 늘어나면서 필요성과 도덕성 사이의 딜레마가 부각된다
미국 내 실험실에서 이용되는 동물 약 2500만 마리 중 90% 이상은 쥐다.



미국 내에서만 매년 2500만 마리 이상의 동물들이 과학실험에 사용된다. 이 중 90% 이상은 쥐다. 쥐는 쥐인데 실험실 밖 친구들처럼 땅을 파거나 무리짓지 않는다. 생김새는 쥐를 닮았지만 쥐라기보다 인간 질병의 상징이자 특정 방식으로 죽도록 유전적으로 조작된 생명체에 가깝다.

“동물 실험의 가장 근본적인 모순이다. 쥐는 인간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슷하기 때문에 인간 대신 실험에 사용된다. 그러나 그 유사성이 갖는 도덕적 함의는 무시당한다.” 코네티컷대에서 과학자들이 원숭이 머리에 드릴로 구멍을 뚫는 장면을 본 이래 동물 권리 운동을 벌여 온 저스틴 굿먼은 말했다. 동물보호단체 PETA가 진상 조사에 나서면서 그 연구실은 결국 벌금을 물고 문을 닫았다.

굿먼은 현재 PETA에서 실험실 전담 수사과장을 맡고 있다. 1980년대부터 떠오른 유전자 이식기술은 생명과학에 돌파구를 열어주는 듯했지만, 그와 동시에 끔찍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연구분야도 활짝 열어젖혔다. “영장류를 연구에 사용하는 사례가 늘어났으며 실험용 쥐 사용 사례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굿먼은 말했다.

멕시코에서 동물권리 운동가들이 동물실험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구자들도 윤리적 딜레마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예일대 예방의학연구소 이사를 맡고 있는 데이비드 캐츠 박사는 이 문제에 대해 학계에서도 여러 의견이 뒤섞여 갈등을 빚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다수 과학자들은 동물실험을 전면 금지하기보다 가능한 한 최소화하는 방안을 거론한다.

최근 굿먼의 뜻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갤럽이 실시한 설문조사들을 보면 갈수록 많은 미국인들이 쥐를 비롯한 동물들이 실험실에서 사용되는 데 우려를 표한다. 1949년에서 2001년 사이 대중의 동물실험 반대 의견은 10%에서 30%로 상승했다. 2014년에는 응답자의 43%가 동물실험에 반대했으며 특히 2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런 의견이 우세했다. “미래의 과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은 동물실험 관행에 보다 덜 관용적일 것”이라고 굿먼은 내다봤다.

그렇게 되면 과학자 사회에 가해지는 압력도 더 커질 것이다. 미국과학진흥회(AAAS)는 그런 압력을 이겨낼 전략을 후원한다. AAAS는 책임감 있는 방식으로 수행되는 경우에 한해 동물 실험을 공개적으로 지지한다. 그럼에도 AAAS 이사진은 침팬지같은 영장류를 대상으로 외과적 실험을 금지하는 대형유인원 보호 및 비용절감법(GAPCSA)에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이 법안은 2013년 의회에서 4번이나 부결됐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예컨대 동물권리 운동가들이 의회와 학계를 장악하고 대중의 분노를 고취시켜 철창을 때려부순 다음 실험실 동물들을 야생으로 돌려보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생명과학연구재단(FBR)의 프랭키 트럴 이사장은 “미국에서 동물실험을 즉각 중단하면 전 세계 수백만 인구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번이라도 항생제나 백신, 항암치료, MRI, 수혈, 투석, 장기이식, 혈관우회로술이나 인공관절치환술 등의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동물실험의 혜택을 받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동물실험이 금지될 경우 신경퇴행성 질환 연구 분야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알츠하이머 같은 질병을 막으려는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안 그래도 어려움이 산적한 분야인데다 모든 연구가 생명체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AAAS나 FBR 등 동물실험 지지세력은 동물실험의 여건을 개선하고 빈도를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접근법이라고 말한다.

굿먼과 그의 동료 케이시 보취가 달성하려는 목표는 이미 선례가 있다. 유럽연합은 다른 방식으로 연구가 가능할 경우에 한 해 동물실험을 금지한다. 미국에선 대중들이 동물윤리를 지지하는 데 망설임이 없음에도 동물실험을 완전히 폐지하자는 목소리는 소수에 불과하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고대 그리스로부터 전해지는 ‘무더기의 역설’과 비슷하다. 쌀알 몇 개가 모였을 때 비로소 그 쌀알들을 ‘무더기’라고 할 수 있을까? 대중들은 파리를 때려잡거나 항생제를 복용하는 데는 아무 거리낌이 없지만 개를 재미로 죽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생명체가 어느 선에서부터 살아 숨쉬는 존재이자 보호받아 마땅할 정도로 인간과 가깝다고 인식되는지 구분하기란 매우 어렵다. 캐츠에 따르면 이런 윤리적 수수께끼를 풀고자 하는 노력은 실패하게 돼 있다. “이 성가신 질문에 대한 답은 흑이나 백으로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회색지대에 놓여 있다”고 캐츠는 말했다. 실험용 쥐도 그 회색지대에 위치한 생명체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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