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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DIPLOMACY - 딜레마에 빠진 미국 외교

FEATURES DIPLOMACY - 딜레마에 빠진 미국 외교

이란·시리아 불량 정권의 ‘체제 교체’는 희망사항에 불과한 듯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미국이 이란의 체제 교체를 강요하려 한다고 의심한다.



미국이 추구하던 독재국가들의 ‘체제(정권) 교체’ 정책이 실종된듯하다. 오바마 행정부의 관리들은 이 나라나 저 나라의 지도자가 ‘정통성’을 잃었다고 자주 말한다. 그들은 외교를 통해 그 지도자들을 퇴진시키려고 다른 나라들과 협력한다. 외국에서 국내정치를 재연하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체제 교체’를 추진하지는 않는다고 강변한다.

2009년 버락 오바마 신임 대통령은 이란의 거리 시위에 냉담했다. 30년 동안 이란을 지배한 신정체제를 중단시키는 것이 자신의 중동 정책에서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오바마의 정책은 과거나 지금이나 이란 지도부를 퇴진시키고 덜 적대적인 지도자로 교체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압박해 행동을 바꾸도록 함으로써 이란의 핵무장 야망을 종식시키는 것이다.

1981년 1월 19일 미국 정부는 이란과 협정을 체결해 인질 위기를 끝냈다. 그 위기가 미국-이란 관계를 영구히 바꿔 놓았다.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나 친서방 국왕이 쫓겨나고 ‘미국 타도!’를 외치는 이슬람 성직자들이 권력을 잡은 직후였다. 알제리가 중재하고 지미 카터 대통령의 임기 막바지에 서명된 그 협정에는 이란의 내정에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약속이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도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를 포함한 이란 관리들은 미국의 진정한 목표가 ‘체제 교체’라는 확신을 종종 표명한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이란 관측통 수잰 멀로니는 그런 협정에도 불구하고 “체제 교체의 두려움이 지속됐다”고 말했다. 멀로니는 현재 오바마 행정부의 대 이란 외교협상을 지지하면서도 체제 교체를 원치 않는다고 이란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하메네이는 편집증이 심하다”고 멀로니는 말했다.

체제 교체의 황금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당시 미국은 연합군을 이끌고 독일부터 일본까지 강력한 적대국을 통치하던 호전적인 독재 정권을 강압적으로 몰아내고 진보적 민주체제를 안겼다. 그러나 5년에 걸친 전쟁과 미국이 자금을 댄 마셜 플랜의 값비싼 재건 노력 후 독일과 일본이 민주화되자 세계가 평화롭기는 커녕 냉전이 시작됐다. 그러면서 외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이 과연 이로운 일인가를 두고 의문이 제기됐다. 그레이엄 그린과 존 르 카레의 소설들에 나오는 그 모호한 인물들을 생각해 보라.

그러나 ‘추악한 미국인(ugly American)’이라는 별명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그 당시만해도 여러 나라의 체제 교체에 성공했다. 그것이 결국 세계 주도권 다툼에서 미국의 최대 숙적이던 소련의 붕괴로 이어졌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거대한 전쟁에서 궁극적으로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이라크에서 철수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곧 철수를 완료할 계획이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은 이제 ‘체제 교체’라는 단어를 언급하기조차 꺼린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지도자는 서방이 지원한 반군에 의해 사살됐다.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은 2011년 3월 이렇게 말했다. “거듭 말했듯이 우리 군사 작전은 체제 교체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 리비아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은 리비아 국민의 몫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는 리비아 국민의 민주화 염원을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카다피가 국민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제거돼야 한다고 천명했다.”

2011년 10월 카다피가 반군에 의해 사살되면서 그의 42년 장기집권이 막을 내렸다.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한 공습에 참여하고 관련 첩보를 제공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추진한 리비아의 체제 교체에 기여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미국의 그런 행동을 용서하지 않았다.

NATO가 리비아의 체제 교체를 강요한 법적 근거인 유엔 안보리 결의 1973호가 군사행동을 승인하지 않았다고 러시아는 주장했다(거부권을 가진 러시아도 찬성한 결의안이다). 그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미군 주도 연합군의 공격에 패해 체포된 뒤 처형됐다.
후 러시아와 중국은 안보리에서 군사력으로 강요하는 체제교체의 기미만 보여도 협조를 거부했다. 서방 외교관들이 체제교체를 추진하지는 않는다고 안심시키려 해도 소용 없었다. 미국은 아무리 부인해도 체제 교체를 강요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오바마 시대의 역설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을,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의 바트당을 무너뜨리려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군사 전략은 모호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 이후 미국은 완전히 새로운 민주 정권을 창출하려는 헛된 노력에 피와 자원을 투입하는데 지쳐버렸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극심한 내전에도 장기 독재 체제를 유지한다.
따라서 3년째로 접어든 시리아 내전에서 오바마가 미국의 선택안을 재평가하는 동안 시리아 정권에 반대하는 나라들은 미국이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정통성을 잃었다”고 거듭 주장하는 것 외에는 그를 몰아내는 의미 있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한다.

적대적이고 위험한 북한 정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반인도주의 범죄를 소상히 밝히며 김정은의 통치를 나치에 견준 최근의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보고서가 발표됐지만 미국 정가에선 아무도 북한 체제를 교체하는 문제나 한국의 주도로 한반도를 통일하는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이란 핵협상의 결과는 오바마의 유산을 규정할 외교정책의 명제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엘리엇 에이브럼스 미 외교협회(CFR) 중동 담당 선임연구원(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중동 정책 고문을 지냈다)은 “이란의 경우 나는 우리가 소련과 가졌던 관계가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냉전 전략을 이념 전쟁으로 규정한다. 그런 전략이 미국의 대이란 정책이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 관리들은 미국이 이란에 적대적인 의도를 천명하면 이란의 실용주의자들이 하메네이와 그를 둘러싼 강경파를 설득해 협상에 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2013년 12월 10일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란 지도부는 우리가 체제 교체를 추구하며 자신들을 공격하고 추가 제재를 강요하고 싶어한다고 판단한다.” 케리는 이란을 깊이 불신하는 의원들을 염두에 두고 이란에도 미국의 의도를 의심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란은 미국이 협상을 할 의도가 있고 그 합의를 지킬 생각이 있다고 믿지 못한다.”

두 달 전 미국은 오만에서 이란 관리들과 비밀 협상을 진행했다. 현재 ‘5+1’(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독일)과 이란의 협상에서 미국 대표를 이끄는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차관은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전략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란은 지금까지 고립을 선택했다. 그들이 그 노선을 바꿀 시간은 아직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이 무한정이지는 않다. 우리 정책은 체제 교체가 아니라 체제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 목표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미국 연구기관인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마크 두보위츠 사무국장은 그런 접근법이 “잘못됐다”고 말했다. 두보위츠는 의원들과 긴밀한 협력 아래 미국의 현행 이란 제재의 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오바마는 그 제재가 이란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판단한다.

두보위츠는 이렇게 말했다. “이란 핵외교가 성공하려면 하메네이에게 핵무장이냐 정권 존립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해야 한다. 오바마 행정부가 약속한 ‘치명적’인 경제 제재에다 2009년 민주적인 반혁명 후 이란 반체제 세력에 의미 있는 지원을 제공하는 방안이 합쳐지면 하메네이는 체제 존립이 위태롭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상황은 불행하게도 사라졌다. 경제제재 압력이 크게 약화된 반면 민주화 지원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란 안팎의 하메네이 정권 반대자들은 지금도 미국의 도움이 있으며 이란의 신정체재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좋은 생각이다. 그러나 그건 오바마의 선택안에 들어 있지 않다. 미국은 이제 체제 교체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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