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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파워피플[41] 찰스 사치 사치갤러리 창립자 겸 미술품 수집가

글로벌 파워피플[41] 찰스 사치 사치갤러리 창립자 겸 미술품 수집가

런던의 창의적인 문화 아이콘 … 신진 작가 후견해 세계적인 미술가로 키워
찰스 사치 사치갤러리 창립자 겸 미술품 수집가.



세계 미술 시장을 이야기할 때 영국 런던의 사치갤러리 설립자이자 세계적인 미술품 수집가인 찰스 사치(70)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사치는 형인 모리스와 함께 창업한 광고회사 ‘사치&사치’가 성공을 거두자 거기서 모은 돈으로 미술품 수집가로 변신했다.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다량 수집해 일약 세계적인 수집가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수집가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엄청난 자금력을 바탕으로 다량의 현대미술 작품을 기획 수집해 미술계에 힘을 발휘하면서 ‘수퍼 컬렉터’로 불려왔다. ‘수퍼 컬렉터’는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특정 작가나 경향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구매하는 방식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미술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글로벌 컬렉터를 일컫는다.

사치는 글로벌 컬렉터이자 창조적인 컬렉터이기도 하다. 자신이 눈여겨본 분야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매입해 해당 분야에 대한 세계적인 붐을 일으켜왔다. 이를 통해 미술 사조를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냈다.



자금력 가진 컬렉터가 새로운 사조 만드는 시대 열어엄청난 자금이 투여된 특정 작가나 성향의 작가그룹은 작품가격이 오르고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후발주자들이 연쇄적으로 이들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하나의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게 된다. 작가가 아닌 수퍼 컬렉터들이 하나의 사조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퍼 컬렉터들을 컬렉터가 아닌 미술품 딜러로 봐야 한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수퍼 컬렉터는 이제 미술계의 도도한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자금력을 가진 컬렉터들이 직접 사조를 창조하는 시대를 연 인물이 바로 사치다. 수퍼 컬렉터의 시초이자 핵심 인물이 바로 그인 것이다. 사치는 현대미술의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현대미술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사치는 ‘사조를 창조한 컬렉터’로 통한다. 그는 1980~90년대 가난하지만 창의적인 젊은 영국 미술가들을 집중적으로 후원했다. 영국 곳곳에 다니며 장래성이 보이는 작가를 직접 발굴하고 작품을 사주면서 이들을 지원해 결국 세계적인 작가로 키워냈다. 이들을 세계 미술계에서는 ‘젊은 영국 작가들(young British artists=yBa)’이라고 부른다. 장기적인 투자를 통해 무명의 젊은 화가들을 세계적인 작가로 길러낸 것이다.

그가 키운 대표적인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인 데미언 허스트(49)다. 기상천외하고, 가치전복적 아이디어로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센세이셔널 작가다. 작품 가격에서 사상 최고가를 연거푸 갱신한 인기 작가이기도 하다. 허스트는 1991년 방부제인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담근 상어를 쇠와 플라스틱으로 만든 어항에 넣어 전시한 작품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이라는 난해한 이름의 작품이다. 삶과 죽음, 죽음과 부활을 다룬 설치미술 작품이다. 그는 2008년 9월 소더비 경매에 내놓은 작품을 ‘완판’하는 기록을 세우며 기염을 토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액수인 1억1100만 파운드(약 2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한 작가의 작품 경매로는 세계 최고의 기록이다. 이 때 내놓은 ‘황금 송아지(Golden Calf)’라는 작품이 자신의 작품 중 최고가인 1030만 파운드에 낙찰되는 기록도 세웠다.

2007년에는 진짜 인간의 치아가 달린 백금 해골 모형에 무려 8601개나 되는 다이아몬드를 박아 넣은 ‘신의 사랑을 위하여 (For the Love of God)’라는 작품을 내놓았다. 이 작품은 전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해골의 이마에는 커다란 핑크빛 물방울 모양 다이아몬드를 붙여 악센트를 줬다.

해골에 진짜 다이아몬드를 박는다는, 이전까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 작품은 단박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상어에 이어 해골까지 죽음에 천착하는 그의 그로테스크한 작품 세계는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유명한 라틴어 격언을 떠오르게 하면서 대중의 인기를 모았다.

그러면서 허스트는 ‘현대 미술의 악동’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찬사와 비난이 동시에 쏟아졌다. 이에 따라 마케팅 측면에선 노이즈 마케팅의 승리라고 풀이할 만했다. 지구상에서 제작된 미술 작품 중 가장 높은 비용인 5000만 파운드의 제작비도 관심거리였다.

그 해 영국 런던의 화이트 큐브 갤러리에서 열린 ‘믿음을 넘어서’라는 전시회에서 첫 공개된 이 작품은 제안가격이 5000만 파운드에 이르렀다. 생존 작가의 작품에 매겨진 가격으로는 사상 최고가다. 세계적인 부자 미술작가이기도 하다. 2010년 선데이 타임스는 그의 재산이 2억1500만 파운드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이런 인물을 발굴해서 키운 사람이 바로 사치다.

yBa 중 여성으로는 드레이시 에민(51)이 가장 유명하다. 에민은 1995년 ‘1963-1995 내가 함께 잠을 잔 모든 사람들(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 1963?1995)’이라는 작품으로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텐트에 자신이 동침한 모든 사람의 이름을 적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97년 9~12월 런던 로열 아카데미 오브 아트에서 사치갤러리가 주최한 ‘센세이션’ 전에 출품돼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 해 영국 채널4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에민은 취한 모습으로 등장해 육두문자를 내뱉으면서 다시 한 번 화제의 인물이 됐다. 1999년 에민은 ‘내 침대(My Bed)’라는 작품으로 다시 한 번 화제를 불렀다. 사용한 콘돔과 피 묻은 여자 속옷 등 온갖 잡동사니가 주변에 굴러다니는 흐트러진 침대를 전시실 한복판에 덩그러니 가져다 둔 작품이다. 실제 자신이 사용하던 침대를 그대로 가져왔다고 한다. 이런 창조적인 반항아를 키워서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 인물이 바로 사치인 것이다.

찰스 사치가 후원해 키운 현대미술계의 거장 데미언 허스트.





세계 최대 광고회사 키우기도사치는 특이하게도 이라크 바그다드 출신의 유대인이다. 기원전 6세기 당시 유대인의 바빌론 유수 바빌로니아 지역으로 이주한 유대인의 후손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것처럼 상당수 유대인은 기원전 587년 유다 왕국이 멸망한 뒤 바빌로니아 수도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 기원전 538년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가 귀환시킬 때까지 그곳에 살았다. 일부는 그곳에 남아 공동체를 유지했는데 사치는 그 후손이다.

사치는 이라크 지역에서 쓰는 아랍어로 ‘시계 만드는 장인’이라는 뜻이다. 사치가 어렸을 때 중동 전역은 반유대 정서에 휩싸였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스라엘 건국이 추진되자 아랍인들이 반발한 것이다. 이슬람 사회 한가운데였던 바그다드에 살던 부유한 사치 집안은 박해를 피해 서구로 이주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사치는 네 살때 부모인 나단과 데이지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해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 나단은 런던의 섬유공장을 구입해 운영했으며 곧 가세를 회복해 런던 북부의 저택에서 거주했다. 어린 시절 수집에 취미가 있던 사치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현대미술가 잭슨 폴락의 작품을 본 뒤 인생 여정을 새롭게 잡았다. 그는 런던 칼리지 오브 커뮤니케이션에서 공부한 뒤 광고업계에 뛰어들면서 미술품 수집에 나섰다.

그는 1969년 26세의 나이에 미술품 수집을 시작했다. 1970년 형인 모리스와 함께 광고회사 ‘사치&사치’를 창업했다. 사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1980년대에 이 회사를 영국 최고의 광고회사로 키웠다. 1986년 이 회사는 전 세계에 600개의 사무소를 보유한 세계 최대의 광고회사로 성장했다. 사치&사치는 마거릿 대처의 보수당 홍보를 맡아 ‘노동당은 일하지 않는다(작동하지 않는다는 뜻도 됨)’는 광고 카피로 큰 방향을 얻었다.

사치는 1985년 자신의 작품을 일반에 전시하기 위해 사치갤러리의 문을 열었다. 이 미술관은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미술작품의 기획 전시로 명성을 얻었으며 런던의 창의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처음 런던 북부에 문을 열었던 갤러리는 템즈 강변의 사우스 뱅크로 옮겼다가 지금은 런던의 부촌이자 화랑과 미술관으로 가득한 첼시에 자리 잡고 있다. 사치갤러리는 통상 1년에 3회 전시를 연다. 사치갤러리의 컬렉션 작품 수는 2만5000점에 이른다. 전시는 가장 최근에 구입한 작품을 주제에 따라 큐레이팅해 전시한다.

사치갤러리는 1991년 허스트의 ‘천년(A Thousand Years)’이라는 작품을 전시하면서 화제의 중심에 우뚝 섰다. 당시 이 전시회를 보도한 주요 언론의 헤드라인에 쇼킹·센세이션·충격·가치전복 등의 단어가 굵직하게 자리 잡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잘린 소머리를 유리 케이스 안에 넣어뒀는데 바닥에는 흘러내린 피가 흥건했으며 주변에는 수많은 파리가 들끓었기 때문이다.

전시장을 방문한 아이들은 파리들이 내는 웽웽 소리를 흉내 내며 갤러리 안을 뛰어 다녔다. 여기저기에서 비명소리도 들렸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까지 관객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조용히 작품을 보기만 하는 전통적인 미술 전시회의 개념에서 벗어나서 일종의 상호 반응을 유도한 것이다.

2001년 사치갤러리가 ‘나는 카메라다(I am a Camera)’라는 전시회에선 심지어 경찰이 갤러리에 들이닥쳐 전시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작품 중 신체를 노출한 아동 사진이 문제였다. 작품을 일종의 아동 포르노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자 다음날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전시를 지지하는 몇몇 관중이 바바리코트만 걸치고 갤러리를 방문했다. 이들은 갤러리 안에 들어온 뒤로는 코트를 벗고 나체로 전시를 관람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사치갤러리는 영국 창의성과 새로운 예술의 상징이자 중심지가 됐다.



컬렉터라기보다 미술품 딜러라고 비난 받기도물론 사치도 비난을 받는다. 컬렉터라기보다 미술품 딜러에 가깝다는 비난이 가장 많다. yBa를 길러내고 하나의 사조를 만들어내면서 큰 이익을 얻은 때문이다. 그는 젊은 시절의 yBa 작가들로 부터 싼값에 구입한 작품 값이 오르자 즉시 팔아서 현금을 챙겼다. 이들이 하나의 사조를 이루고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면서 비싼 가격이 형성됐을 때다. 그것도 남김없이 팔아 치웠다. 그가 키우다시피 한 yBa의 작품은 이젠 더 이상 소유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미술 작품의 수집과 작가 양성보다 투자와 수입 확보에 더욱 관심이 많다는 비판을 듣는다. 하지만 수집가가 영원히 작품을 소장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는 반론도 있다. 컬렉터가 작가의 싹이 보일 때 투자해서 나중에 값이 오르면 파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소리다. 컬렉터로서 이성적이고 정상적인 수집과 판매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치만큼 현재 미술 작품에 대한 뛰어난 안목을 가지고 오랜 세월 투자하고 작품을 소장한 인물이 어디 있느냐는 반문이다. 세계 미술계에서 사치의 위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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