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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 김갑수, 新중년의 이 몹쓸 사랑!

Essay | 김갑수, 新중년의 이 몹쓸 사랑!

섹스 못지 않게 언어적 교감도 중요 … 언어폭력과는 구분해야



“신중년의 러브로망을 설파한다기에 뭔 충격적인 발언이 나올까 기대했는데 고작 ‘자기를 사랑하자’ 정도란 말이오?” “변태가 되자는 말의 뜻이 겨우 ‘창의적인 삶’ 따위란 말이유?” 충격발언을 기대한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야동·야설 사이트의 혼음난교 파티쯤을 미리 떠올렸다면 그것 또한 죄송하다. 이것은 ‘착한 세상’의 이야기라는 것을 숨기지 않겠다. 그런데 착한 세상의 이면, 그 뒷골목 담화가 실제 세상에 훨씬 넘쳐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밥을 먹듯이 배설해야 하고 배설하듯이 성교를 갈구하는 생물학적 인간상 속에 메뉴의 다양성이야 오죽하겠는가. 당신 옆자리의 점잖은 동료가 실은 야노(야외노출) 촬영 동호회 멤버로 암약 중일지 모른다. 교회활동에 열심인 그 여집사가 어떤 괴이한 사생활을 누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이미 술자리 객담으로 넘쳐나고 다들 안다. 나이는 들었지만 나도 사랑을, 섹스를 하고 싶다. 하지만 마땅한 대상이 없고 어찌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겠다. 이것이 착한 세상 러브 로망의 출발점이다.

야설도 정설도 아닌, 규정불가의 좀 재미있는 실화를 하나 공개한다. 일없이 뜬금없이 오다가다 들르는 내 작업실 ‘줄라이홀’의 방문객이 제법 된다. 그중에 개화기 일본 신여성 차림의 중년 여인이 하나 있다. 무슨 이유인지 꼭 다채로운 신여성 모자를 착용하고 다닌다. 그런데 그 여성과 더불어 커피와 음악을 함께 하는 동안 자주 일어나는 신체반응이 있다. 그에 관한 대화가 이랬다. “00씨 만나면 자꾸 발기가 되네. 웃긴다. 어쩌죠?” “어머, 잘 됐네요. 저도 기뻐요. 저 가고 나면 얼른 혼자 해결하세용!”



언어유희가 폰섹스 대용?물론 하라는 대로 했지만, 그런 식의 대화가 참 좋았다. 그녀도 나를 놀리는 것이 결코 아니었고 나 역시 담담하고 평온한 사실 설명이었다. 그 얘기를 들은 친구에게서 “야 이 미친 놈아, 그 여자가 얼마나 욕했겠냐. 이기적인 놈” 운운의 비난이 쏟아졌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꼭 무슨 일이 벌어져야 맛이 아니니까.

첫째 그녀에게 남다른 사랑의 열정이 치솟는 것이 아니었다. 둘째 본격적인 신체동작으로 이어지기에는 서로 머리 속이 너무 복잡했다. 얽히고설킨 관계들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셋째 가벼운 테니스 치듯이 신체활동으로 비화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으나,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으나, 그보다 더 강하고 나은 쾌감이 그 직전의 애매한 상태에서 온다는 것을 피차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케미스트리’라는 용어가 유행 중이다. 상호 감정상 신체상 화학반응 같이 일어나는 현상이랄까. ‘케미가 통한다’고 표현한다. 문제는 케미가 통할 때마다 뭘 어찌해볼 수는 없다는 점이다. 통한다고 죄다 신체활동에 전념한다면 그거야 말로 포르노 월드다. 칼리큘라 황제가 아닌 담에야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자들 경우는 특히 혼자 케미가 통해(?) 좌충우돌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그러다 성추행으로 고소당한다.

최초 단계에서 가장 유의할 점은 상대 역시 내가 느끼는 야릇한 기분을 공유하고 있는지 섬세하게 살피는 일이다. 전혀 아니면서 모든 남성에게 습관적으로 색을 뿌리는 여성도 의외로 많으니 매우 주의해야 한다. 다음 단계는 언어의 문제다. 섹스의 감흥에서 신체 접촉 이상의 것이 다양하게 존재하는데 시각 후각 못지 않게 작동하는 것이 언어자극이다. 케미가 통할 듯한 이성과 언어적 교감이 얼마나 가능한지 잘 살핀다. 그리고 최종 단계가 남는다.

케미가 통하는 대상과 여러 정황이 맞아떨어지면 대체로 신체활동에 들어간다. 그래서 세상에는 그토록 많은 숙박업소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케미가 서로 통하고 말도 통하는데 그럴 수 없는 관계가 더 많다. 신체활동의 즐거움이 뭐라고 위험한 관계에 인생 걸겠는가. 연고가 너무 복잡하다든가 위험하다든가 혹은 그렇게 치열한 연정이 아닌 경우 그런 대상과 기쁘게 나눌 수 있는 것이 바로 언어유희다.

먼저 유의할 점부터 명심해 두자. 첫째 한국사회 특유의 언어적 성폭력과는 철저히 구분돼야 한다는 점이다. 상대 특히 여성 쪽이 수치심을 느낄 일방적 언어 폭력이 만연한 우리 사회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모든 글에서 극구 강조하는 것이 ‘신사됨, 신사다움’인데 그건 중년기 러브로망의 핵심이기도 하다. 준비도 안 된 상대에게 색담을 마구 늘어놓는 식이면 개망신하기 첩경이다. 또 하나 언어유희는 폰섹스 같은 유형의 성행위 대치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서로 케미가 통해 모종의 교감은 느끼는데 그 이상으로 돌입하기 어려운 뭇 상황 속에서 성숙한 인간이 나눌 수 있는 방법의 모색이 바로 언어유희다. 출발은 먼저 솔직하게 나를 까는 일이다. 당신과의 한계는 잘 알겠는데 뭔가 스멀거리는 이 기분은 뭐냐고. 당신도 혹시 마찬가지냐고. 좀 웃기고 이상하지 않냐고. 이건 조심스러운 구애가 아니다. 말 그대로 대화를 나누는 일이다. 이 경우 핵심 중의 핵심은 상대의 반응이다.



아슬아슬하고 유혹적인 감정의 관계아슬아슬하고 유혹적인 감정의 관계를 말로만 즐길 수 있는 대상을 찾을 수 있다면 러브로망의 지평은 탁트인 벌판으로 넓어진다. 그때의 말은 조그마한 단서에 다채로운 색깔을 입히고 살을 붙여나가는 행위다. 함께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면서 마치 둘 만의 비밀결사인 양 남모르게 나누는 교감은 배우자, 아니 하나님이 있어도 터치할 수 없는 프라이버시다. 아무리 표면상의 동방도덕지국일지라도 그 정도 비밀은 누릴 자격이 중년기 인생에게 있다.

가능하면 그런 비밀의 언어유희 상대자가 단 한 명이 아닌 편이 낫다. 이것은 본격적인 연인관계가 아니므로. 관계의 위험성을 벗어나 비교적 안전지대에서 한정된 기쁨을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비밀이 없는 인간은 불행하다고 시인 이상이 말했다. 연인이 아닌 중년의 남녀가 카톡이든 메일이든 혹은 전화 통화든 가끔씩 별 말, 별 얘기를 다 주고받는 비밀의 화원이 있다면 그 얼마나 화사한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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