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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with Bike | 전남 신안 흑산도

Travel with Bike | 전남 신안 흑산도

해안도로 25㎞ … 동해의 장쾌함, 서해의 애잔함, 남해의 잔잔함 공존
상라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황혼의 12구비길. 바다 저편의 섬은 다물도와 대둔도.



흑산도 하면 옛 가요로도 알려진 ‘흑산도 아가씨’와 콕 찌르면서 입안을 시원하게 만드는 ‘흑산도 홍어’가 떠오른다. 흑산도 아가씨와 홍어는 어딘가 설화적인 인상을 주는데, 그만큼 흑산도는 직접 가기에는 너무 먼 섬으로도 느껴진다.

실제로 흑산도는 먼 섬이다. 목포에서 93㎞나 떨어져 있어서 육지가 보이지 않는다. 아주 맑은 날 동쪽으로 보이는 산들은 육지가 아니라 비금도 같은 신안군의 다른 섬이다. 웬만해서는 가장 가까운 홍도마저 가물가물 하고 사방이 수평선으로 둘러싸인 망망대해다. 흑산도는 길이 8㎞, 폭 4㎞에 면적은 19.7㎢의 작은 섬이다.

근처에 영산도·대둔도·다물도·대장도 같은 작은 섬이 빙 둘러싸고 있는데 이들 섬들이 모여 흑산면을 이룬다. 흑산도에서 가장 높은 산은 문암산으로, 섬 면적에 비하면 꽤 높은 편인 405m에 달한다. 이 때문에 흑산도는 전체가 빼곡한 산악지형을 이뤄 들판을 찾아볼 수 없다. 오랜 시간 대양에서 밀려드는 거친 파도에 씻긴 해안은 백사장 대신 단애를 이루며 바다와 거칠게 맞서고 있다.

‘흑산도 아가씨’는 1960년대에 어업이 성한 포구에서 비정기적으로 열린 바다시장인 파시(波市)의 산물이다. 당시 흑산도 예리항은 파시가 서면 2000대 이상의 배가 몰려들어 대성황을 이루며 흥청거렸다. 술집과 다방이 성업하면서 외지에서 ‘아가씨’들이 모여들어 많을 때는 400~5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당시 이들을 ‘흑산도 아가씨’라고 불렀고, 노래는 고향을 떠나온 이들 아가씨들의 애환을 담고 있다.

1. 상라산 12구비길 정상에 서 있는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 2. 섬의 동남쪽, 샛개해수욕장을 지나 심리로 넘어가는 묵령고개. 흑산도 일주도로는 온통 고갯길이어서 체력소모가 심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뒤쪽의 산은 섬 최고봉인 문암산(405m) 연봉. 3. 자산어보 전망대에서 바라본 사리항과 섬 동남단의 해안절벽지대.


외지에서 모인 ‘흑산도 아가씨’결론부터 말하자면, 흑산도의 해안도로는 동해의 장쾌함과 서해의 애잔함 그리고 남해의 잔잔함을 함께 모은 듯,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의 최고조에 달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작은 섬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길과 경치가 다채롭다.

해안도로를 일주해봐야 25㎞ 밖에 되지 않지만 자전거로 경치를 제대로 보려면 거의 종일을 잡아야 한다. 우선 길부터 오르락내리락 해서 8, 9개의 고개를 넘어야 하고, 놀라운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수시로 멈추다 보면 태양은 어느새 서쪽 자락으로 넘어가 있다.

흑산도는 홍어의 집산지이면서 어업 전진기지이자 홍도와 더불어 관광지로도 알려져 오가는 사람과 배가 많고 그만큼 풍요롭다. 포구는 깨끗하게 정리됐으며 해안도로는 아스팔트로 말끔히 포장됐고 집들은 세련되게 바뀌었다. 생활 속의 미학도 상당한 수준을 유지해서 풍경은 가치를 얻고, 사람들은 품격을 높였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한번 가면 나오기 힘든 유배지로서 애절한 흔적을 남긴데다 ‘흑산도 아가씨’마저 연민의 정에 젖게 하지만 지금은 쾌적한 여행지다.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이 천주교를 전파하다 이곳에 유배돼 생을 마감했다. 흑산도 연해의 어류들을 조사해 어류도감이라고 할 수 있는 『자산어보(玆山魚譜)』를 펴냈다.

조선 말 독립운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최익현도 이곳에 유배돼 울분을 삭였다. 해안도로는 최익현이 비분강개하며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는 글을 새겨 넣은 지장암을 지나 정약전이 암울한 유배생활 중에도 아이들을 가르치고, 어류도감을 지은 사촌서당을 지난다. 서쪽 절벽 위에 걸린 ‘하늘도로’나 상라산 전망대에서 얼핏 노을이라도 만나면 이 멀고 작은 섬이 주는 강렬한 인상에 기어이 다시 올 다짐을 하고 만다.



코스 예리항→예리2구→천촌리→최익현 유배지→샛게해수욕장→자산어보전망대→사리(정약전 유배지)→한다령→심리→깃대봉약수터→하늘도로→상라산전망대→12구비길→예리항. 25㎞, 5시간 소요



찾아가기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 5차례 쾌속선이 운항한다. 2시간 소요. 편도 운임 3만4300원. 도중에 비금도와 도초도를 거쳐 가며, 홍도와 가거도행 배도 흑산도를 경유한다. 이왕 흑산도까지 오는 길이라면 시간을 좀더 내서 홍도와 가거도도 함께 찾아보기를 권한다. (주)동양훼리 061-243-2111~4 www.ihongdo.co.kr 남해고속 061-244-9915~6 www.namhaegosok.co.kr



체크 포인트

숙박 : 예리항에 여관이 많이 있다. 진리에는 흑산비치호텔도 있다.

식사 : 흑산도는 역시 홍어의 본고장답게 홍어 요리가 기본이다. 전복과 생선회도 신선하다. 15번 홍어집은 예리항에 있으며, 홍어 요리 전문(061-275-5033), 영생식당도 예리항에 있으며 전복죽·해물된장찌개 등을 내놓는다(061-275-7978).

휴식 : 최익현 유배지, 샛게해수욕장, 자산어보 전망대, 사리 정약전 유배지, 깃대봉 약수터, 상라산 전망대, 진리해수욕장 등은 쉬어가지 않을 수 없는 명소들이다.

주의 : 섬 일주도로는 아스팔트로 포장돼 있고, 자동차는 관광용 택시 밖에 없을 정도로 한적하다. 오르막이 많은 만큼 내리막도 가파르고 길어서 과속에 주의하고, 만약을 대비해 차선을 잘 지켜야 한다. 예리항 외에는 식당이 없어 행동식과 식수를 여유 있게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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