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일본에서 배우는 은퇴의 지혜 - 日 백금세대(소비 여력 풍부한 세대) 대표주자는 중·고령 여성

일본에서 배우는 은퇴의 지혜 - 日 백금세대(소비 여력 풍부한 세대) 대표주자는 중·고령 여성

돈·시간·건강 고루 갖춰 … 여행·패션업계 맞춤 마케팅 활발
도쿄 스가모 거리에서 쇼핑 중인 중·고령 여성들. 남편 은퇴 이후 경제권을 쥐면서 유력 소비 주체로 떠오른 이들은 백금세대로 주목 받고 있다.



‘인구 감소와 노인 증가’. 많은 선진국의 고민거리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인구분포를 보면 명실상부한 노인대국이다. 지난해 8월의 최신 통계를 보면 65세 이상 노인은 3083만명으로 일본 전체 인구의 24.4%다. 4명 중 1명이 노인이라는 소리다. 1차 베이비부머(단카이 세대)의 맏형인 1947년생이 65세가 되면서 생긴 변화다.

더욱 주목할 것은 고령 여성이다. 남자보다 500만명이 많은 1800만명이 여성이다. 이들은 평균수명도 남성보다 훨씬 길다. 덕분에 시장에서는 중·고령 여성을 겨냥한 마케팅이 활발하다. 내수침체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소비 주체로 여긴다. 고령 여성들은 남편의 굴레에서 벗어나 인생 후반을 즐기려는 욕구를 강하게 표출한다. 자녀양육에 대한 부담이 없어 시간 여유도 많다.

배우자 연금분할이 가능해지면서 황혼 이혼도 늘었다. 사회에서 역할을 잃은 남편은 아내로부터 권력이양 압박에 시달린다. 은퇴 임박 시점에서 아내에게 경제권이 넘어가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렇게 경제권을 획득한 여성 노인은 ‘돈·시간·건강’을 고루 갖춘 중요 고객이다.

이들 여성을 겨냥한 마케팅을 가장 활발하게 펼치는 곳이 여행업계다. 많은 여행사들이 중년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맞춤상품을 출시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년 여성이 가장 선호하는 취미는 여행이다. 동일 연령대의 남성이 선호하는 취미 1위로 ‘산책’을 꼽은 것과 대비된다. 거기다 씀씀이가 큰 편이어서 여행업계에서는 중년 여성 고객 잡기에 여념이 없다. 다만 이들 중년여성은 해외 여행을 적극적으로 즐기진 않는다. 은퇴 이후 30~40년을 생각하면 해외 여행에 들어가는 비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직접 운전을 해서 여행을 즐기는 여성도 늘었다. 일본의 여성 면허 소지자 연별 추이를 보자. 55세~69세 면허 소지 여성은 2000년 465만명에서 2010년 883만명으로 늘었다. 10년 사이 400만명 이상이 늘어난 것이다. 이와 달리 34세 이하 여성 면허 소지자는 10년 전보다 오히려 줄었다. 남성은 과거와 현재의 면허 소지 비중이 큰 차이가 없다. 많은 고령 여성이 운전을 하면서 여가생활의 트렌드도 바뀌고 있다.



여성 자가운전자 급증하면서 골프·캠핑도 인기여성 은퇴세대의 운전여행이 늘어난 반면, 대중교통이나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는 여행은 선호도가 낮아졌다.

일본 JTB 종합연구소가 2012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46~1950년생 여성의 경우 직접 숙박시설을 결정하고 운전하는 비율이 43%로 가장 높게 나왔다.

숙박시설을 직접 구하고 대중교통 이용을 선호하는 여행자는 전체의 27.5%다. 덕분에 차량이 필요한 골프나 캠핑 관련 여행의 빈도도 늘었다. 많은 고령 여성들은 스마트폰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여행에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

자가운전이 늘면서 여행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분다. 인기가 없는 패키지 상품을 줄이고 새로운 상품을 선보인다. 개인이 직접 챙기기 힘든 현지의 정보를 제공하고 새로운 관광루트를 발굴하고 연계하는 상품이다. 가사에서 자유로워진 고령 여성들은 점차 활동반경을 넓히며 소비생활을 주도하고 있다.

고령 여성의 증가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위주였던 시장 트렌드를 바꾸고 있다. 고령 여성들은 다양한 소비패턴을 보인다. 내수시장을 노리는 기업들은 그만큼 주도면밀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장수사회는 여성 중심의 사회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남성에 비해 여성의 수명이 길다.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 중심의 산업구조 변화가 사회의 여성화를 촉진한다. 여성이 유력한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 부각된다. 미츠비시종합연구소는 고령 여성을 ‘플라티나(백금) 세대’라고 명명했다.

여성 중심의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시장은 패션업계다. 2009년 고령자 일상생활에 관한 의식조사에서 60세 전후의 여성 60.2%가 “멋지게 꾸미고 싶다”고 말했다. 2004년(53.4%)보다 비중이 커졌다. 70대 전후의 여성은 미국의 영향을 받아 할리우드 여배우 스타일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에도 유행에 민감한 패션 소비 경향을 보인다. 이들 고령 여성의 패션시장 규모가 3조4000억엔에 이르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미래의 잠재수요까지 더하면 6조엔이 넘는다. 60세 이상 고령 여성의 월 평균 의류구입비는 6000~7000엔이다. 이들은 멋진 패션 아이템이 있다면 2배 이상의 돈을 들여서라도 구입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기업들의 전략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보인다. 일본의 유명 통판회사 ‘닛센’은 2011년 60~70대를 겨냥한 계절패션 카탈로그를 제작했다. 대부분의 패션 카탈로그에 젊고 아름다운 20~30대 여성 모델이 등장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시도다. 시니어마켓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최근까지 5종류의 카탈로그 100만부를 제작해 배포했다. 닛센의 전략은 성공을 거뒀다. 매출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고령 여성을 위한 전용매장을 별도 층에 마련한 백화점도 등장했다. 일본 교토의 다이마루 백화점은 60~70대를 위한 전용공간 ‘마담설렉션’을 열었다. 여유로운 쇼핑을 위해 브랜드 수를 줄이고 곳곳에 휴게공간까지 갖췄다.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피팅룸은 다른 곳의 1.5배 크기로 늘렸다. 피팅룸 안에는 의자와 손잡이를 만들었다.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고령 여성의 취향에 맞는 강좌나 체험 이벤트도 마련했다.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춘 즐거운 쇼핑 문화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시니어 모델이 등장하는 패션쇼 역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모델이 고령자라고 패션 스타일까지 고루한 것은 아니다. 화려한 가발에 최신 유행의 옷을 입고 무대를 빛낸다. 과거 시니어를 위한 옷은 대부분 소박한 색상에 단조로운 패턴이 주류였다. 패션업계에서 멋진 인생 2막을 꾸미고 싶어하는 고령 여성의 심리를 적절하게 읽은 것이다. 여러 매체에서 유명 할머니 모델의 활약상을 다룬 기사를 쏟아내면서 홍보효과까지 얻었다.



패션업계에 할머니 모델 속속 등장많은 고령 여성이 화려한 옷을 입고 싶어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체형의 변화로 최신 트렌드의 옷을 소화하기가 어렵다. 이런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기업도 늘었다. 노인 체형에 맞게 옷을 만들어 기능성을 강화하고, 동시에 젊은 컬러로 멋스러운 옷을 만든다. 과거의 옷을 최신 트렌드에 맞게 변형해주는 업체도 생겼다.

대표적인 곳이 ‘마담토모코’다. 등과 허리가 맞지 않는 옛날 옷을 수선해 새로운 옷으로 만들어 준다. 늙어서 등이 굽은 여성을 위해 뒤쪽에 길게 주름을 넣어 체형을 최대한 숨길 수 있도록 했다. 주름을 늘린 옷으로 특허 출원까지 했다. 2004년 전업 주부가 혼자서 창업해 회사를 키웠다. 통신판매와 인터넷 판매위주로 1억엔의 연 매출을 달성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1116회 로또 1등 ‘15·16·17·25·30·31’...보너스 번호 ‘32’

2 의협, 의대 자율 증원안 수용 거부...의료개혁특위 불참

3이창용 한은 총재 "중동 확전 않는다면 환율 안정세 전환"

4권은비부터 김지원까지...부동산 큰손 ‘연예인 갓물주’

5현대차그룹 계열사 KT?...대주주 심사 받는다

6尹, 24일 용산서 이재명 회담?...“아직 모른다”

71000만 영화 ‘파묘’ 속 돼지 사체 진짜였다...동물단체 지적

8비트코인 반감기 끝났다...4년 만에 가격 또 오를까

9‘계곡 살인’ 이은해, 피해자 남편과 혼인 무효

실시간 뉴스

11116회 로또 1등 ‘15·16·17·25·30·31’...보너스 번호 ‘32’

2 의협, 의대 자율 증원안 수용 거부...의료개혁특위 불참

3이창용 한은 총재 "중동 확전 않는다면 환율 안정세 전환"

4권은비부터 김지원까지...부동산 큰손 ‘연예인 갓물주’

5현대차그룹 계열사 KT?...대주주 심사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