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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irement | 서명수 전문기자의 은퇴 성공학 - 원금보장의 함정 ‘비용만 들고 수익은 찔끔’

Retirement | 서명수 전문기자의 은퇴 성공학 - 원금보장의 함정 ‘비용만 들고 수익은 찔끔’

인기 속 팔린 원금보장형 ELS 만기에 원금만 남기도 … 은퇴자금 운용엔 부적절



대기업 부장 김모(52)씨는 2011년10월 증권사를 방문해 중간정산으로 받은 퇴직금을 어디다 투자하면 좋을지 물었다. 증권사 직원이 추천한 상품은 원금보장형 주가연계증권(ELS)이었다. 1년 6개월 후 만기 때까지 코스피 지수가 2000선을 넘지 않는다면 원금보장은 물론 최고 15%까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선뜻 투자했다.

김씨는 유럽 재정위기가 오랫동안 증시의 발목을 잡아 코스피 지수 2000선 회복은 당분간 어려울 거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가입 시점에 1680선이던 코스피 지수는 2000선을 여러 차례 넘나들더니 만기일엔 1980선에서 끝났다. 손에 주어진 수익은 고작 3%. 김씨는 울어야 할까 웃어야 할까.

퇴직금을 비롯한 은퇴자금은 절대 까먹어선 안 되는 돈이다. 안정적인 관리가 중요한 건 그래서다. 수익률을 최대한 끌어 올려야 하는 목돈 형성 등 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은퇴 전의 자금운용방식과는 다르다. 은퇴자금을 불려보겠다고 욕심을 내고 굴렸다간 노후에 쪽박을 차기 십상이다.

자금 운용에서 안전제일주의를 내세우는 은퇴자에게 ‘원금보장’은 복음처럼 들린다. 저금리·저성장이란 불확실성으로 위험이 갈수록 커지는 시대에 원금을 보장해준다니 이렇게 고마운 투자상품이 또 있을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양한 금융상품이 나오는 가운데 원금 100% 보장 ELS가 한때 소비자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2009년 2분기 6000억원이었던 원금보장형ELS 발행규모는 지난해 2분기 4조9000억원으로 4년 새 무려 8배 수준으로 뛰었다. 발행건수도 230건에서 1076건으로 증가했다. 아직도 은행이나 증권사에 가면 이 상품을 권유하는 곳이 흔하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원금을 지켜주는 데다 잘만 하면 두 자리 수익률도 올릴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되지 않을 사람이 거의 없을 듯하다.

그러나 최근 이 상품의 초라한 성적표는 그간의 인기를 무색케 한다. 1년에서 3년 사이인 가입기간이 지나도 고작해야 수익률 2~3%대로 은행이자보다 못한 상품이 부지기수다. 경우에 따라선 정말 원금만 돌려주기도 한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만기된 원금보장형 ELS 가운데 8% 정도가 원금만 지급한 채 상환됐다. 설령 수익을 냈더라도 수익률은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2010년만 해도 5~9%를 기록하던 원금보장형의 월 평균 상환수익률은 지난해 2.6%로 떨어졌다.

올 2월엔 수익률이 약간 회복돼 3.4%를 기록했다. 단, 이 수익률은 연 기준이 아닌 만기 상환 기준이다. 원금보장형 ELS의 대부분이 1년~3년 만기로 설정되는 만큼 연간 기준으로 따지면 수익률은 더 떨어진다. 연 평균으로 계산하면 은행 예금만도 못한 수준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수요 많아 발행사가 수익 관리할 이유 없어원금보장형ELS의 수익성이 이처럼 나빠진 이유는 간단하다. 발행물량이 급증한 때문이다. 수요가 탄탄해 물량소화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발행사로선 굳이 수익성을 높이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투자자들도 원금보장이라는 데 꽂혀 수익률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이 상품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구조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발행사가 절대 손해 볼 일이 없다는 점이다. 원금보장의 비용이 발생할 수 있으나 투자가가 포기한 수익의 일부로 상쇄가 가능하다. 예컨대 3년 만기 원금보장형ELS를 구입하면 3년 후 기초자산이 종가 기준으로 최초 가입시점의 가격을 밑돌더라도 원금을 돌려준다. 그러나 기초자산이 가입시점의 가격을 웃돌 경우 차익의 일부만 돌려받는다. 나머지는 원금보장을 위해 고객이 지불하는 비용인 셈이다.

그럼에도 원금보장형 상품이 먹히는 건 투자자들의 심리상태와 관련이 있다. 개인들은 주가의 바닥국면에서 위험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주가가 상승하는 시기엔 위험은 과소평가된다. 이는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받아들이려는 습성 때문이다. 그래서 원금보장형은 증시가 침체에 빠져 있을수록 많이 팔린다.

2008년 하반기 미국의 금융위기 때 그랬고, 2011년 10월 유럽의 재정위기 때도 그랬다. 이들 글로벌 악재에 시달린 국내 증시는 한동안 침체를 거듭했지만 얼마 후 어김없이 반등에 성공했다. 하지만 상당수의 투자자들은 원금보장형ELS 투자로 제 발목을 스스로 묶어 놓아 돈 벌 수 있는 기회를 발로 차버렸다.

원금보장형은 오히려 주가가 정점을 칠 때 투자를 하는 게 정상이지만 이렇게 하는 투자자는 별로 없다. 증시가 좋을 때 원금보장형 상품은 시장에 잘 나오지 않는다. 앞으로 주가가 내릴 일만 남은 상황에서 손해가 빤한 게임을 벌일 리 만무하다. 주가의 바닥국면에선 크게 힘들이지 않고 공포분위기에 사로잡힌 투자자들을 상대로 원금보장 장사를 할 수 있다.

결국 원금보장형 투자자는 수익을 포기한 대가로 많은 기회비용을 물어가며 불필요한 보장을 받는 셈이 된다. 경제엔 공짜가 없듯이 투자에서도 저절로 주어지는 원금보장이란 없다. 원금보장의 이면에 숨어있는 함정의 정체를 알아야 은퇴자금의 안정적 관리도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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