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UKRAINE CRISIS - 핵 넘겨준 우크라이나의 뒤늦은 후회

UKRAINE CRISIS - 핵 넘겨준 우크라이나의 뒤늦은 후회

우크라이나는 1996년 6월 마지막 ICBM을 양도하면서 핵무장한 이웃 러시아에 무방비 상태가 됐다. 훈련중인 우크라이나 예비군들.



우크라이나는 한때 세계 3위 규모의 핵무기 보유국이었다. 1991년 옛 소련 붕괴의 여파로 새로 독립한 우크라이나 정부가 핵무기를 떠안게 됐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장치 176기, 핵탄두 1240개와 함께 3000점이 넘는 전술핵무기를 보유하게 됐다.

러시아가 어떻게 나올지 불안했던 우크라이나는 대량살상무기를 성급히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서방은 그들대로 핵무기가 자칫 악의 무리 손에 들어가지 않을까 불안했다. 1992년 우크라이나가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란에 판매하기 시작한 뒤였다. 부랴부랴 신생 탈소비에트 공화국들의 무장해제에 나섰다.

1994년 2월 5일 빌 클린턴, 보리스 옐친, 존 메이저, 레오니드 쿠치마 사이에 계약이 체결됐다. 당시 미국·러시아·영국·우크라이나의 지도자들이었다. ICBM을 러시아의 품으로 돌려주는 대가로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하는 내용이었다.

부다페스트안전보장각서로 알려진 그 계약은 공식 조약이 아니라 외교상의 양해 각서였다. 하지만 러시아·미국·영국이 합의한 내용은 더 없이 명확했다.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주권, 기존 국경을 존중한다 … 우크라이나 영토의 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성에 대한 위협이나 무력사용을 삼가는 계약 당사국의 책임을 재확인한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대해 앞으로 어떤 무기도 사용하지 않는다.”

20년이 지난 지금 우크라이나 정치인들은 가슴을 치며 후회한다. 미국과 영국의 약속을 신뢰하기로 한 결정 말이다. “우리는 이 계약 때문에 핵무기를 포기했다.” 우크라이나 차기 대권 후보 비탈리 클리츠코가 이끄는 ‘개혁을 위한 우크라이나 민주동맹(UDAR)’ 당 소속인 파블로 리자넨코 의원이 말했다. “요즘 우크라이나에선 우리가 큰 실수를 했다는 여론이 들끓는다.”

러시아는 부다페스트 각서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식별표시 없는 군복 차림의 병력 2만 명 안팎이 크림반도의 우크라이나군 주둔지를 에워쌌다. 그들은 러시아 정규군이 아니라 “지역 자위대”라고 러시아 국영매체는 주장한다. 3월 중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누구나 상점에서 러시아 군복을 구입할 수 있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 외부(어느 나라보다 미국과 영국)에선 그런 외교적인 꼼수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것이 실제로 러시아의 크림 반도 침략일 경우, 그리고 부다페스트 각서가 법적 구속력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러시아와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결론을 피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2004~2008년 모스크바 주재 영국 대사를 지낸 토니 브렌턴 경이 지난 15일 BBC에 말했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러시아의 사실상 크림 반도 합병은 우크라이나의 영토적 주권의 침해라는 점이다. 그뿐 아니라 훨씬 우려스러운 점은 그것이 세계 핵확산금지 조약에 대한 도전이라는 사실이다. 옛 소련 지역의 비핵화는 클린턴 정부의 알려지지 않은 커다란 승리로 손꼽혔다. 유엔의 중재로 미국과 영국의 약속이 지켜질 수 없다면 이란 같은 잠재 핵보유국이 핵확산금지 조약을 지키도록 할 가망이 거의 없다고 많은 외교관들은 우려한다.

“좋든 나쁘든 미국이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하리라고 모두가 믿었다”고 리자넨코가 말했다. 지금은 오바마 대통령이 그 역할을 외면한다. 그 때문에 러시아가 크림공화국을 침략했다.” 쉽게 말해 리자넨코에 따르면 크림 공화국의 교훈은 “핵무기가 있으면 남들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모순된 메시지를 보낼 위험이 크다.” 2013년 미국·이란·중국 간의 막후 협상에 정통한 고위 외교 소식통이 말했다. “미국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면 안전을 보장해주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에 우크라이나에 그런 말을 한 뒤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보라고 이란은 말할 수 있다.”

전후 세계의 기본적인 안정을 해칠 또 다른 위험도 있다. 유엔헌장 2조에서 밝힌 세계 안정의 토대가 흔들리게 된다. “모든 국가의 영토 보전과 정치적 독립에 대한 위협이나 무력사용의 불용 … 그리고 위협이나 무력사용의 결과로 인한 영토 확보의 불인정”이다. 3월 15일 러시아는 크림반도에서 러시아의 행동을 분명하게 강경한 어조로 비난하는 유엔안보리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중국은 기권했다.

크림 반도에서 러시아의 행동이 위반하는 더 구체적이고 구속력 있는 또 다른 조약이 있다. 1975년 옛 소련이 서명한 헬싱키 협약이다. 냉전의 주요 국가들이 서로의 국경을 존중해야 한다고 못박은 내용이다.

그 조약을 추진한 건 소련이었다. 서방이 동독을 설득해 더 잘 사는 서독과 재합병하도록 설득하려 한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푸틴은 헬싱키 협약을 파기함으로써 옛 소련 붕괴 후의 지역안보 구조 자체에 관한 논란의 불씨를 키워 놓았다. 그에 따라 갖가지 복잡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러시아는 이미 몰도바에서 혼란을 유발하기 시작했다. 친러시아 성향의 가가우즈 소수민족을 동원해 EU 합병 합의에 반대하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보스니아의 스르프스카 공화국에서 새 정치연합에 대한 세르비아인들의 저항을 후원한다.

푸틴이 정말로 억압받는 러시아 민족의 권리를 내세워 옛 소련 제국의 지도를 다시 그릴 계획이라면 카자흐스탄도 그의 의중에 포함될 수 있다. 러시아 민족이 인구의 4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 회원국인 라트비아도 마찬가지다. 에스토니아 공화국의 나르바시도 러시아 민족이 과반수를 차지한다.

그러나 푸틴은 러시아 내부에서의 독립요구에 대처할 태세가 돼 있을까? 무슬림 공화국들인 타타르스탄·다게스탄·체첸 또는 석유와 다이아몬드가 풍부한 시베리아의 사하 공화국이 독립을 요구한다면?

백악관은 크림공화국의 16일 국민투표를 “위험하고 안정을 해치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난했다. 한편 러시아 언론은 국내에서 반미 선전공세에 열을 올렸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미국을 방사능 잿더미로 만들 태세를 갖춘 유일한 나라다.” 국영 TV 러시아 원 채널의 앵커맨인 드미트리 키셀료프가 말했다.

크렘린이 통제하는 국영 언론은 서방이 안절부절못하고 우크라이나가 무력감과 정치적 기능마비에 빠져 있는 동안 푸틴이 크림 반도에서 단호한 행동으로 큰 승리를 거뒀다고 묘사한다. 사실상 푸틴은 위험한 길에 들어섰다. 세계의 안보구조를 크게 뒤흔들고 자신들의 다민족 국가에 치명적인 역풍을 초래할 수 있는 길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전자담배 발명 보상 못받아”…KT&G 前연구원, 2.8조 소송

2전신 굳어가지만…셀린디옹 “어떤 것도 날 멈추지 못해”

3검찰, ‘신림 등산로 살인’ 최윤종 2심도 사형 구형

4中알리, 자본금 334억원 증자…한국 공습 본격화하나

5CJ대한통운, 편의점 택배 가격 인상 연기…“국민 부담 고려”

6 일본 후쿠시마 원전, 정전으로 중단했던 오염수 방류 재개

7호텔 망고빙수, 또 최고가 경신…13만원짜리 등장

8지오엘리먼트, 제2공장 준공…공모자금 150억원 투자

9경북경찰, "음주운전 신고" 협박해 금품 갈취한 일당 검거

실시간 뉴스

1“전자담배 발명 보상 못받아”…KT&G 前연구원, 2.8조 소송

2전신 굳어가지만…셀린디옹 “어떤 것도 날 멈추지 못해”

3검찰, ‘신림 등산로 살인’ 최윤종 2심도 사형 구형

4中알리, 자본금 334억원 증자…한국 공습 본격화하나

5CJ대한통운, 편의점 택배 가격 인상 연기…“국민 부담 고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