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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 김갑수, 新중년의 이 몹쓸 사랑! - 추억은 때로 더럽다

Essay | 김갑수, 新중년의 이 몹쓸 사랑! - 추억은 때로 더럽다



성귀수의 책 『숭고한 노이로제』를 읽었다. 귀수보다 괴수가 더 어울릴 법한 괴이쩍은 인물인데, 시인이라고도 하고 프랑스어 번역가라고도 하고. 하여튼 난해하고 피곤하게 한 인생 살아가는 자다. 그 이른바 노이로제 책에서 발견하여 킥킥 웃으며 눈으로 밑줄 친 구절들이 있다. ‘미친 듯이 정신 차리는 자’라는 소항목이다. 자, 성귀수가 말하는 정신 차리는 자는 누구인지 몇 줄만 읽어보자.

‘연민을 통해서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자’ ‘불쌍한 바보들에게 자신을 모욕할 기회를 기꺼이 베풀어주는 자’ ‘칼을 몸에 지녀 정신이 빛나는 자’ ‘취향이 매우 단순 명료한 자’ ‘자기과장과 자기왜소화를 밥 먹듯 하는 자’

나의 독서가 ‘킥킥’이었던 까닭은 이 구절에서 발견되는 자아가 참으로 친숙했기 때문이다. 뭔가 들킨 기분이랄까. 몇 줄만 더 인용해 보자.

‘우울한 동류의 입에 딥키스 해주면서 그 어여쁜 혀 우아하게 깨물어주는 자’ ‘무섭도록 심각한 표정으로 안데르센 동화책을 달달 외우는 자’ ‘취기와 기억을 맞바꿔 버리는 자’ ‘농담을 역겨워한다고 진지하게 농담하는 자’ ‘만인이 오해할 정도로 순수한 자’ ‘세상과 작당해서 신나게 놀아줄 줄 아는 자’ ‘뻔뻔스런 아름다움을 갖춘 자’

그런데 이것이 과연 특정한 성향의 인간론일까 하는 의문이 스친다. 혹시 이 정의들은 여러 인물의 종합판이거나 만인의 공통분모는 아닐까. 자아의 순수성이란 특별히 순수한 사람의 독점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 가슴 한 켠에 비밀처럼 숨어있는 설‘ 정된 스키마’ 같은 것이다. 일찍이 우리는 모두 순수했고, 그것이 때묻어 가는 과정이 인생이라고 이해한다. 특별히 더 순수해 보이는 사람은 덜 자란 상태를 드러내 보일 용기를 지녔을 뿐이다.

연민을 통해서만 타인을 이해하는 자를 언급했는데, 아니 그럼 연민이거나 센티멘트거나 감상성을 통해서나 타자를 이해하는 거지 뭔 연구분석이라도 하리? ‘자기과장과 자기왜소화를 밥 먹듯 하는 자’라는 대목에서 성귀수의 인간론이 범인류적 공통분모의 추출이라는 것을 알겠다. 사람들은 다 그렇다. 좁쌀 크기로 졸아들었다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를 반복하는 것이 우리들의 자의식이니까. 그런데 목에 걸린 가시처럼 콱 찌르는 한 구절이 있었다. 그가 정의하는 미친 듯이 정신 차리는 자 가운데 이런 자.

‘더러운 애인들만 잔뜩 거느리고 다니는 자’ 더러운 애인은 어떤 애인일까. 천박하거나 이기적이거나 가짜 감정을 들이미는 애인? 변태취향의, 성적으로 막 나가는 애인? ‘잔뜩’은 뭐고 ‘거느리고’는 또 뭔가. 애인을 잔뜩 거느릴 수 있는 사람을 실제로 본 적이 없다. 실제 삶에서는 한 애인도 너무 많다.

그런데 어떤 깊은 밤 시간에 끈끈하게 떠올랐던 상념이 있다. 기억 속의 모든 그녀들이 갑자기 ‘더럽게’여겨지던 것. 시차를 두고 만났던 그녀들이 한 두름으로 엮여 ‘잔뜩’이 되던 것. 그 잔뜩 많은 과거의 애인들이 기억의 호출 속에서는 흡사 거느리듯이 등장하던 것. 곰곰 생각해 보니 더러운 혹은 ‘드러운’ 애인이란 실상 지나간 애인들 앞에 벌거벗고 서 있는 나 자신이었다. 추억은 때로 더럽다. 그날 밤 나는 더럽게 미친 듯이 정신을 차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고 아프니까 추억이다. 그 추억은 현재의 욕망과 닿아 있다. ‘욕망을 욕망한다’는 탈근대 철학에서 빠진 대목이 추억을 욕망하는 현재적 욕망, 그 결핍감이다. 그래서 추억을 욕망하는 감정이 아프면서 더럽다. 아니 아프게 더럽다. 더러운 그녀. 더러운 그 만남. 그런 걸 두고 통상 필생의 사랑 운운한다. 내게도 남들처럼 어떤 필사적인 만남이 있었고 그 시간이 터무니없이 길었고 결국 참담한 파국으로 끝났다.

그 기억을 두고 나에게도 사랑이 있었노라고 자부하는 식의 현재적 욕망이 더럽다는 말이다. 필생의 그녀 이후 다른 모든 그녀들은 그 필생 여인과 기억 속에서 기묘하게 동거하고 자주 합체한다. 모든 새로운 사랑이 더러운 과거의 그녀를 쫓아 다닌다. 마치 어린 사내아이가 엄마를 사랑의 대상으로 품듯이. 분명히 새로운 사람을 만났는데 그녀와 함께 하기 위한 관계의 셋팅이 괴롭게 익숙하다. 과거를 반복하고 추종하는 우매한 열정.

아예 영원히 과거를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위대한 개츠비가 그러하다. 개츠비의 사랑 데이지는 천박하고 영악하고 실제로는 사랑의 진실이, 고귀함이 무언지모르는 여인이었다. 그러나 비천한 시절의 개츠비에게 데이지는 유일무이하게 만났던 상류층 여성이었다. 개츠비가 품은 사랑의 절치부심은 바로 상층사회에 닿기 위한 욕망의 발현이었고 그 모든 것의 완성은 바로 결혼한 데이지를 내 것으로 획득하는 일이었다. 결국 죽음과 맞바꾸게 된 개츠비의 연정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가 만든 소설 제목에 답이 있는 것 같다. 원제 ‘더 그레이트 개츠비’는 ‘위대한 개츠비’라고 번역되지만 이 때의 그레이트는 우리말 어감의 위대함과는 거리가 있다. ‘거 참 대단하군! 잘났어 정말!’ 쯤의 느낌으로 개츠비가 그레이트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아마 못난 개츠비라고 번역해도 의미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각자 버전의 개츠비로 살아가는 우리성귀수가 정의하는 미친 듯이 정신 차리는 자가 바로 개츠비이고 바로 나 자신이고 또한 바로 당신이다. 우리는 각자 버전의 개츠비로 살아간다. 우리 가슴 속에는 어떤 훼손되지 않은 원점이 있고 그것이 소중하면서 또한 다른 말로 하면 더럽다. 그 원점의 사랑이 추억 공간에 위치해 늘 미화와 윤색의 작용을 하지만 또 어떤 순간에 더러운 기분이 치민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놓여날 길은 없을까.

내 사랑의 원점, 추억의 근거지, 모든 상념의 발원지가 되는 그런 만남의 기억으로 부터 해방되어 전혀 다른 삶,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는 없을까. 정확하게 답을 한다. 없다.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다들 미친 듯이 정신 차리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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