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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UITE - 26년 ‘ANA맨’의 새로운 도전

C-SUITE - 26년 ‘ANA맨’의 새로운 도전

임창희 전일본공수 한국총판 사장 “차별화된 프리미엄 서비스로 기업고객 사로잡겠다”



“한일 문화교류에 가장 많이 기여하는 항공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품었던 목표가 무엇인지를 묻자 임창희 전일본공수(ANA) 한국GSA사장이 내놓은 대답이다. ‘매출을 200% 신장하겠다’거나 ‘시장점유율을 10% 늘리겠다’ ‘신 시장을 개척하겠다’ 등 사업과 관련된 답변을 하리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3월 27일 ANA 한국총판 사무실에서 가진 임 사장과의 인터뷰는 그렇게 한일 문화교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됐다. “2000년대 초 김대중 정부가 일본문화 개방정책을 펼 때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특히 일부 극단적인 세력은 제2의 식민지가 도래한다느니, 한일합방이 재현된다느니 하는 얘기들을 하기도 했다. 한국 대중문화가 일본 문화에 잠식되리라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엔 오히려 그 반대다. 한류가 일본을 휩쓸었다. 문화 개방 전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지난 10년 새 놀랍도록 좋아졌다.”

임 사장은 현재 경색 국면에 빠진 한일관계를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문화교류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극우 정권이 얄밉더라도 그것과 별개로 문화교류는 계속돼야 한다. 서로가 살고 있는 지역을 방문해 먹고, 자고 해봐야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그런 문화교류에 정치적인 색이 들어가선 안 된다.” 임 사장은 문화교류에 항공업이 가장 많이 기여할 수 있는 나라가 일본이라고 말했다. “한 나라에서만 일방적으로 여행을 가서는 문화교류라 하기 어렵다. 한국과 일본은 양국을 오가는 여행객 비율이 거의 비슷하다는 점에서 여행을 통한 문화교류에 아주 적합하다. ”

임 사장은 ANA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취항하던 1988년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지금까지 26년째 한 회사에서만 일해온 ‘ANA맨’이다. 그만큼 항공업계뿐 아니라 한일관계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각별해 보였다. 현재 ANA 한국총판은 3인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 3명의 공동대표가 모두 입사 동기다. 임 사장은 여객부문, 안철 사장은 화물부문으로 입사해 현재는 각 부문 대표를 맡고 있으며 전선하 사장이 두 부문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역할을 한다.

3인 공동대표 체제는 2003년 이들이 공동대표에 취임한 이래 11년 동안 역경을 이겨내고 성장을 거듭하는 원동력이 됐다. “혼자 운영하면 독단적인 경영이 될 수 있고, 둘이서 하다 보면 싸우기 마련이다. 셋이 함께 하니 서로 균형이 맞아서 좋다.” 3인 체제가 들어서면서 2002년까지 한국시장에서 적자에 허덕이던 ANA가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 3년 반만에 적자를 메우고 승승가도를 달렸다. 업계 분위기도 좋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본문화 개방정책과 낮은 엔화 환율이 맞물려 출국자들이 크게 늘었다. 상승세를 거듭한 끝에 2010년에는 높아진 환율에도 불구하고 ANA 한국취항 이래 최다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당시 ANA 전 지점에서 우리가 매출 1~2위를 다툴 정도였다”고 임 사장은 돌이켰다. 그때까지는 모든 것이 순탄한 듯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대재앙”이 닥쳤다. 2011년 3월 사망자만 2만여 명에 달하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다.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인한 방사선 노출 문제까지 논란이 되면서 일본 여행객이 급감했다. “수요가 40% 가량 떨어졌다”고 임 사장은 말했다. 사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2년부터 점점 수요가 회복되기 시작했는데 2013년에는 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사태가 터졌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끊임없이 확대재생산되는 괴담들이었다. “일본 전역이 방사능으로 오염됐다느니, 일본 내에서 방사선량을 함부로 측정하며 잡혀간다느니 하는 온갖 괴담이 있었다. 여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심했다.” 임 사장이 택한 방식은 정면돌파였다.

오염수 문제가 불거진 2013년 8월 직원 두 명과 함께 방사선 측정기를 들고 직접 일본을 찾았다. 한국과 일본의 방사선량을 비교해보기 위해서였다. 김포공항과 하네다공항, 서울 시청과 도쿄 도청, 노량진 수산시장과 츠키지 시장, 남대문 시장과 신주쿠 등 두 도시 구석구석을 누비며 방사선량을 측정했다. “혹시 조작이라는 논란이 일까봐 동영상까지 촬영”했을 만큼 만전을 기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측정에 나선 도쿄의 거의 모든 지역보다 서울의 방사선량이 더 높게 나타난 것이다. 이 결과를 업계 곳곳에 배포하며 알리기 시작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서 이 자료를 보고 ANA 일본 본사 사장에게 연락을 했고, 본사에서는 즉시 공로상을 전달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2013년 11월 ANA 본사의 니시무라 켄 상무가 서울을 직접 찾아 임 사장에게 공로상을 수여했다. “34~35도에 달하는 8월 무더위 속에서 땀 흘리며 돌아다닌 끝에 얻어낸” 쾌거였다.

임 사장은 이 기세를 몰아 2014년을 새로운 전기로 삼을 계획이다. 그 원동력은 바로 김포에서 도쿄를 거쳐 세계 곳곳으로 나가는 이원구간 판매다. “ANA의 허브 공항인 하네다 공항에서 국제선이 11편 증편돼 이원구간 판매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하네다 공항에서 유럽, 미국, 캐나다까지 모두 당일 연결이 가능하다.” ANA가 새로 내놓은 김포-밴쿠버 왕복노선의 세금 포함 왕복운임은 105만6900원으로 책정됐다.

ANA 가 가진 또 하나의 강점은 일본 국내선 이원구간 판매다. ANA는 일본 국내선 노선을 가장 많이 가진 항공사다. 만약 ANA의 김포-하네다 노선을 이용할 경우 일본 국내선 전 노선을 한 구간 당 5만원에 판매하는 ‘에코패스’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네다에서 1949㎞ 떨어진 이시가키 공항을 가더라도 5만원만 내면 된다. 하네다와 김포 간 거리가 1191㎞라는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가격이다. 만약 ANA 항공기를 이용하지 않았더라도 일본 왕복 항공권을 가지고 있다면 ANA 일본 국내선 전 구간을 10800엔(약11만3000원)에 이용 가능한 ‘익스피리언스 저팬 페어’ 서비스도 있다.

이원구간 판매가 중요한 이유는 한일 왕복노선을 운항하는 저비용항공사가 갈수록 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저비용항공사만 5개에 달하며 외국계 저비용항공사까지 더하면 총 16개 저비용항공사가 한국에 취항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한국과 일본 도시 간 왕복노선을 운항한다. 이원구간 판매는 저비용항공사가 하기 어려운 ANA만의 차별화 전략이다.

ANA 의 또 다른 차별화 전략은 기업고객에 초점을 맞춘 프리미엄 서비스다. ANA의 수준 높은 서비스는 이미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ANA는 미 경제전문지 비즈니스인사이더가 뽑은 ‘2013 세계 항공사 톱 20’ 순위에서 6위에 들었다. 정시운항 실적과 기내서비스 수준을 높게 평가받은 결과다. 일본 항공사로서는 처음으로 2년 연속 항공서비스 전문 리서치 기관 스카이트랙스로부터 별 다섯개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저비용항공사가 웹사이트를 통해 고객에게 직접 항공권을 판매하는 구조라면, 우리는 주로 여행사와 기업을 대상으로 영업을 한다”고 임 사장은 말했다. 3월 31일 신규 취항하는 김포-하네다 아침·저녁 노선도 그 일환이다. 기존 운항 스케쥴에 오전 7시 40분 출발해 9시 50분에 도착하는 아침 비행기와 저녁 8시 5분 출발해 10시 15분 도착하는 저녁 비행기 시간이 추가된다. 출장 목적으로 일본을 방문하는 기업 고객을 겨냥한 것이다.

이 두 노선에는 최신형 항공기 보잉777-ER300이 투입된다. 박스 형태로 된 비즈니스석이 68석에 달하는 호화 항공기다. 일본 항공사로서는 최초로 비즈니스석을 지그재그 형태로 배치해 고객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공간 확보를 동시에 달성했다. 임 사장은 이번 신규 취항을 기점으로 기업 영업을 강화할 방침이다.

“한국 기업들은 외국 항공사인 ANA보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을 주로 이용하는데, 그 벽이 생각보다 아주 두껍다”고 임 사장은 말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벽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임 사장은 김포-하네다 비즈니스석을 55만원(세금 제외)이라는 특가로 내놓고 기업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러 나선다. “올해는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매출이 크게 회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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