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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김갑수, 新중년의 이 몹쓸 사랑! - “거기 누구 없소?” 외로움에 몸부림

Essay |김갑수, 新중년의 이 몹쓸 사랑! - “거기 누구 없소?” 외로움에 몸부림

착한 카운셀러, 변태 소리 듣는 변호사, 매력적인 ‘조쁜녀’의 일상 탐구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오래된 소방서 구호다. 고생하는 소방서 아저씨들은 소방차를 닦아야 하고 조여야 하겠지만 헛헛한 중년 사내들의 러브로망을 위해서는 뭘 닦아야 하나. 구체적인 대상이 있다면 차라리 쉽다. 미련한 열정이든 영악하고 노회한 유혹이든 뭔가 방법이 있을 테니까. 문제는 그저 막연히 ‘거기 누구 없소?’ 하는 경우다. 아마 숱한 사내와 여인들이 그런 상태일 것이다.

저녁의 자동차 안에서 저 건너 아파트 단지 속 집집이 가득한 불빛을 볼 때가 있다. 아이들 깨끄덕대며 뛰노는 홈 스위트 홈도 많겠지만 또 얼마나 많은 불빛 아래 공허한 중년들이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보며 외로움에 몸부림을 치고 있을까. 나 또한 한 물끄러미 하고 있건만 왜 사람이 만나지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는 걸까. 만남이 가능해지려면 어떤 준비, 어떤 노력을 해야만 하는 걸까. 세 가지 사례를 보자.



사례 1. 그는 항상 남의 말을 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가정사, 연애사, 심지어 돈 문제까지. 그래서 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많다. 당연히 여성도 많다. 모임의 어떤 여성이 은근히 만남을 청할 때 그 속내는 십중팔구 ‘어찌하오리까’ 하는 카운슬링이다. 그는 언제나 그런 사람으로 인식되니까. 그런 시선을 받는 속에서 그가 취할 행동은 든든하고 믿음직한 선배나 친구, 오빠 역할을 강화하는 길뿐이다. 자기 안에도 어떤 충동과 욕망이 있다는 사실을 차마 꺼낼 용기가 없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진지하게 충고하고 배려하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거스를 때 상대방이 얼마나 당혹해 할까. 이것이 그가 갖는 두려움이다.



믿음직한 선배나 친구, 오빠로 남아과연 그의 착하고 훌륭한 성품은 어디에서 출발하는 것일까. 사람이 착한 것은 심성의 문제라기보다 일종의 생존전략이다. 남에게 착하게 행동함으로 해서 자기 존재 가치를 형성하는 인정투쟁이 바로 착함의 실체란 말이다. 착하고 든든해서 주위에 사람은 많은데 괴롭게도 내 몫의 ‘그녀’가 없다는 점이 그의 괴로움이다. 그녀들은 항상 다른 그 놈과의 안타까운 사정을 호소하기만 한다. 야들야들하게 별 일을 다 벌일 듯한 그 여인들이 하필 내 앞에서만은 정색을 하고 표정이 진지해지면서 의논 투로 돌변해 버리는 이 현실! 이거야 말로 어찌하오리까?



사례 2. 그는 변호사다. 직업이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최상급이다. 게다가 키도 훤칠한 호남형이다. 가정사도 별 문제 없는데다 힘이 넘쳐나는 판이니 어디 딴데서 비밀스레 너 좋고 나 좋은 에너지 소비를 하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촉촉한 사랑도 하고 싶다. 모든 면이 충족되니 하늘을 우러러 ‘한 두어 점 빼고’ 부끄러움 없이 살아도 용서가 되지 않을까. 실제로 주위에서는 그에게 비밀 애인이 많으리라 생각하기도 한다. 본업만이 아니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다채로운 활동을 벌이고 다니니 별일이 다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놀랍게도 그에게는 애인이 없다. 원하지만 애인이 생겨나지도 고정적인 만남이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왜일까. 바로 그의 기이한 성향 때문이다. 그 변호사 친구가 왜 그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뭔가 타고난 속성이 아닐까 싶기는 한데, 그 훤칠하고 압도감을 안겨주는 분위기의 사나이가 못 고치는 배냇병처럼 안고 있는 지병이 있다. 돌연 좌중을 깜작 놀래키는 언어습관. 그의 괴이한 언어세계는 좌중에게 때로는 폭소를 때로는 유쾌한 흥분을 자아내지만 여인들에게는 두려움을 안겨주는 것 같다.

남녀 간 돌발사가 이루어질 법한 상황에서 가령 그가 느닷없이 입에 올리는 단어는 ‘*지’다. 심심한 대화의 와중에 “난 *지털 수북한 여자가 좋더라”라 대놓고 말한다. 이래 놓으면 낄낄거리는 와중에 여인들은 힐끔힐끔 조심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실제로 그에게 물어본 적도 있다.

왜 꼭 그런 식으로 말해서 산통을 깨느냐고. 그냥 무난히 무리에 섞여서 좋은 인상 주면 어떻겠느냐고. 뜻밖에 그의 대답은 이랬다. “난 이래야 돼!” 그 혼자 맛보는 언어적 쾌감을 말릴 도리는 없겠으나 변태로 소문난 그가 호소하는 외로움은 안타깝기만 하다. 스스로 억제가 안 된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 나름 즐기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사례 3. 단아하고 매력적인 한 여인이 있다. 사내들 세계에게 그녀의 별명은 ‘조쁜년’이다. 성이 조씨라는 것과 ‘나쁜년’이 합성된 조어인데 그 매력적인 조쁜년을 거론할 때 우호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끊임 없이 화제에 오른다. 사내들의 통속한 대화에서 ‘나쁜년’이란 소위 ‘줄 듯 줄 듯 안 주는 여자’를 뜻한다.

그녀가 바로 그런 성향의 여인이다. 제법 친숙해졌을 때 사귀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던 적이 있는데 전혀 없다고 즉답을 한다. 거짓말 같지 않다. 분명히 그녀는 사람을 갈망하고 내가 봐도 ‘줄 듯 줄 듯’의 분위기는 틀림없이 풍기는 데 웬 사태일까. 그녀의 한탄을 액면 그대로 옮기자면 ‘사랑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줄 듯 줄 듯 안 주는 여자사랑을 원하는데 진지하게 다가오는 남자가 없다고 한다. 내가 재차 물었다. 본인이 줄 듯 줄 듯의 분위기를 풍기는 것을 아느냐고. 그녀는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차라리 태도를 분명히 하지 왜 여러 사람에게 그런 애매한 처신으로 오해를 사느냐고 비난조로 물었던 내가 어리석었다. 대화를 이어가 보니 그건 애매한 처신이기보다 그녀가 나름대로 삶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진지하고 결정적인 사랑을 갈망하는데 그런 행동이 방해물이라는 점. 특정인의 연인이 되고 싶은지 아닌지 스스로도 헛갈려 하는 듯싶다. 어쨌든 그녀에게는 연인이 없다. 누군가의 연인이 되어 깊은 애정을 나누고 싶다는 갈망이 깊은데 없다. 처음 볼 때 도저히 애인이 없으리라고는 상상되지 않는 고혹적인 그녀. 그녀는 어찌해야 할까.

온갖 사유로 홀로 외로워하며 ‘거기 누구 없소?’를 되씹는 사람들 투성이다. 모든 그녀들의 의논 상대역인 그 착한 친구는 어이해야 할까. 넘치는 정력과 기(氣)를 주체하지 못해 변태 소리 듣고 사는 변호사는? 매력적인 조쁜녀는? 이들 나름대로 외로운 사람들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닦고 조이고 기름 쳐야 할 과제를 풀어가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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