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Essay | 김갑수, 新중년의 이 몹쓸 사랑! - 동호회 나간다고 애인이 절로 생기나?

Essay | 김갑수, 新중년의 이 몹쓸 사랑! - 동호회 나간다고 애인이 절로 생기나?

공허한 중년기엔 고전 명작이 훌륭한 반려자 … 자아 확장에 화제도 풍성해져



지난 글에서 세 사람의 사례를 들었다. 뭇 여인들의 의논 상대 노릇만 가능할 뿐 자기만의 애인이 도통 생겨나지 않는 착한 사내, 별 것도 아닌 충동적 언행으로 변태소리 들으며 여성들의 기피대상이 되고 있는 변호사, 매력적이고 유혹적이나 특정한 사람의 애인이 될 수 없어 안타까운 ‘조쁜녀’.

이들의 공통점은 많은 사람 속에서 나만의 사람, 정확히 말해 애인이 없다는 점이다. 자, 어떤가? 당신도, 또 다른 당신도 그렇지 않던가. 지난 20~30년 사이 전통 조선인들이 죄다 모던 한국인으로 변신했다. 더 이상 정신의 나이를 먹지 않고, 육신은 도무지 시들지 않고, 고개를 빳빳이 세운 중년으로 탈바꿈해 버렸다.

나이를 제 아무리 먹어도 청춘기 욕망은 은퇴선언을 할 줄 모른다. 은퇴는커녕 청춘기에 경험하지 못한 몫까지 챙기려는 듯 뭔가 짜릿한 ‘섬씽’을 찾아 전 사회적으로 꼴려 있는 상태다. 그 허다한 모임·동호회·강좌 따위가 그 현장이다. 명분이야 취미생활, 재충전, 인맥 확장 운운이지만 실상은 주체 못할 꼴림 증상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그런 자리들 속에서 어우러지는 이성들과 언제나 단지 스치기만 할 뿐이니.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때로는 사랑을, 때로는 욕정의 불나방을 꿈꾸지만 언제나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거기 누구 없소?여기까지가 진단이라면 다음은 해법이다. ‘애인을 만드는 50가지 비법’이라든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이성 공략법’이라든가. 그런 기기절묘한 답안을 찾으시는가. 그렇다면 단숨에 말해야겠다. 그런 것 없다. 세상의 모든 자기 계발서들을 떠올려 보라. 부자 되는 법, 느리게 살기, 인간관계론, 생각 넓히기 등등. 그런 책 읽고 그런 강연 들어서 자기계발이 됐다는 사람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그 모든 것들은 광고문구만 그럴싸한 건강식품과 다름없는 것이다.

문제는 있는데 해법이 없는 경우 어느 쪽에 주력해야 하는지 우리는 잘 안다. 당연히 문제를 골똘히 들여다보는 것이 순서다. 꺾어진 나이가 됐음에도 육신과 영혼에 스멀스멀 피어 오르는 이 괴로운 욕망의 정체는 무어란 말인가. 왜 일과와 가정생활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빈 자리가 내 속을 태우는가 말이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호로의 가르침이다. ‘하면 된다’. 5공 시절 전두환의 가르침이다. ‘안 되면 되게 하라’. 해병대의 가르침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중학교 영어 교과서에 적혀 있던 글귀다. 이런 상투적인 인생훈화가 때로는 생각의 단서로 쓸모가 있는 것 같다. 한번 생각해 보자. 구하니까 얻어지던가? 하니까 되던가? 안 되는데 되게 할 수 있는가? 뜻이 있다고 길이 찾아지던가? 우리가 겪어나가는 실제의 세상은 의지의 산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어서 구해도, 해봐도, 뜻을 세워도 잘 안 되는 것 투성이고, 그 중 대표적인 일이 바로 이성교제가 아닌가 싶다.

그러니 이런 방법은 어떨까. 구하지 말고 행하지 않고 뜻을 세우지 않는 것. 그 대신 자아의 상상공간을 넓혀나가는 것. 획득의 열망을 멀찍이 떼어놓고 뭉게 뭉게 생각의 구름을 확장해 나가는 것. 이런 것도 꽤 괜찮은 삶의 태도라는 걸 말하고 싶다. 어떤 일은 실천에 급급하기보다 생각의 구름장을 타고 하늘 위를 떠도는 것이 훨씬 나은 결과를 빚는다. 외로운 영혼에게 고한다. 생각의 구름장을 타고 놀아보자.

그 구름장 타고 놀기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말하면 에이, 하고 실망할 것이다. ‘어쩌라고?’ 하면서 필자를 쏘아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연사 목 놓아 외친다. 기기절묘한 해법이 없는 생의 어려운 과제 앞에서 모든 뛰어난 선인들이 짚어나간 길을 뒤따를 필요가 있다고. 모든 평범한 행위는 다수가 따라 한 결과로 평범한 일이 된 것이라고.

이른바 생각의 구름장을 타고 공중을 훨훨 날아다니려면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이다. 그것은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는 대신, 모임이나 동호회나 온갖 대소사에 참여하는 대신에 할 일이다. 시간이 엄청 걸리는 일이다. 아마도 사적인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고전 명저를 읽어나가는 일이다. 허구한 날 주위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면서 정작 자기의 애인이 없다고 괴로워하는 그 착한 친구가 오늘 저녁에 해야 할 일은 약속을 파하고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성들이 두려워하는 변태 변호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나 『악령』『죄와 벌』에 도전할 일이다. 조쁜녀라면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이나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쯤이 어떨까.

애인 구하느라 번득이는 눈망울을 따분한 활자에 처박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절실하면 가능하다. 어떤 유명 시인은 바흐 음악을 들으면 섹스를 느낀다고 했는데 그 섹스보다 더 강렬한 것이 도스토예프스키, 토마스 만, 이자벨 아옌데가 구축한 장대한 서사다. 이런 고전을 읽어나가면 곧장 생겨나는 세 가지 효용이 있다. 첫째, 시간이 흘러간다. 둘째, 자아가 확장되어 다른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셋째, 교양적 욕망을 자극하는 화제가 풍성해진다.



욕망의 눈망울 활자로 방향 전환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책을 읽으라고 훈계를 받아서 책이라면 멀미가 나는 사람이 많다. 열심히 읽어봐야 별로 쓸모가 없더라는 주장도 많다. 생활이 바쁘고 일이 바빠 책 읽을 틈이 전혀 없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 아마 회사 대표쯤 되는 사람이 빈 시간에 헤르만 헤세의 저작을 읽고 있으면 특이하게 비칠 것이다. 중년의 공허감이나 외로움은 호르몬 대사변이와 신체 노화 때문이라고 진단하지만 그 이상의 원인은 우리가 늘 똑같은 사람으로 살아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월과 함께 왜소하게 찌들어 버린 자아를 그대로 지니고 살아가는 탓에 헛헛한 무상감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성에 대한 간절한 욕구는 바로 그에 대한 보상심리다. 그런데 과연 늘 똑같은 모습으로 전에 없던 애인이 잘 생겨날 수 있겠는가. 변화된, 확장된 자아로 덜 공허한 중년기를 견뎌나가는데 고전 명작만한 반려가 따로 없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1116회 로또 1등 ‘15·16·17·25·30·31’...보너스 번호 ‘32’

2 의협, 의대 자율 증원안 수용 거부...의료개혁특위 불참

3이창용 한은 총재 "중동 확전 않는다면 환율 안정세 전환"

4권은비부터 김지원까지...부동산 큰손 ‘연예인 갓물주’

5현대차그룹 계열사 KT?...대주주 심사 받는다

6尹, 24일 용산서 이재명 회담?...“아직 모른다”

71000만 영화 ‘파묘’ 속 돼지 사체 진짜였다...동물단체 지적

8비트코인 반감기 끝났다...4년 만에 가격 또 오를까

9‘계곡 살인’ 이은해, 피해자 남편과 혼인 무효

실시간 뉴스

11116회 로또 1등 ‘15·16·17·25·30·31’...보너스 번호 ‘32’

2 의협, 의대 자율 증원안 수용 거부...의료개혁특위 불참

3이창용 한은 총재 "중동 확전 않는다면 환율 안정세 전환"

4권은비부터 김지원까지...부동산 큰손 ‘연예인 갓물주’

5현대차그룹 계열사 KT?...대주주 심사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