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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DATA - 블랙박스를 버려라

BIG DATA - 블랙박스를 버려라

초연결시대에 왜 비행기는 지상과 소통하지 않는가?



앞으로 10년 뒤에는 비행 데이터 기록장치인 ‘블랙 박스’라는 개념 자체가 흡연구역처럼 순진하고 고리타분해질 듯하다. 세상은 초연결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거의 모든 사물이 네트워크에 연결된다. 제각기 자신이 무엇을 하고 느끼는지 끊임없이 알린다. 인터넷 공간의 클라우드를 통해 중요한 데이터를 보내면 컴퓨터가 받은 정보를 즉시 분석하고 패턴을 읽어내 우리가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오늘날의 항공사들에게 이 같은 변화는 완전히 딴 세상 이야기다. 그들은 차라리 구시대의 유물로 남기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말레이시아 항공의 보잉 777 같은 신식비행기에는 컴퓨터와 센서가 잔뜩 내장돼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쏟아낸다. 그러면서도 정작 비행기는 어디에도 연결돼 있지 않다. 비행기는 진짜 클라우드(구름) 속을 날지만 비행기의 시스템은 첨단기술 클라우드와 아무런 소통도 없다. 마치 시중에 나온 최고급 최신식 노트북을 구입한 뒤 한 번도 인터넷에 연결하지 않는 것처럼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모든 항공기의 블랙박스는 1000가지 변수의 데이터를 최대 25시간 동안 기록한 뒤 삭제한다. 데이터는 지구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원이 되고 있다. 하지만 항공사들은 그것을 던져 버리고 있다. 비행기가 추락할 경우에만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환자 의료 데이터가 훗날 환자가 숨진 원인을 파악하는 수단으로만 유용하다고 믿는 격이다.

물론 말레이시아 항공편의 추락 때문에 블랙 박스가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항공기가 인터넷에 연결돼 있지 않기 때문에 추락과 관련된 모든 데이터가 박스 안에 밀봉돼 있다. 박스는 지금껏 발견되지 않았다. 2009년 에어 프랑스 항공편이 바다에 추락했을 때도 같은 일이 있었다. 2년 동안 블랙박스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 뒤로 과학기술자들은 위성 또는 지상 타워와의 상시 연결을 통해 블랙박스 데이터를 지상의 컴퓨터로 스트리밍 전송하는 방안을 지지해 왔다. 그 구상은 그대로 사장됐다. 항공사 경영진과 정부 당국이 소극적인 데는 이유가 있다. 그들은 세계의 민항기 2만 대에 그 기술을 설치하고 그 모든 고속통신망을 이용하는 데 너무 큰 비용이 든다고 말한다. 반면 비행기 추락은 드물게 발생하며 블랙박스가 실종되는 일은 더 드물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것은 근시안적인 사고다. 비행기와 관련 데이터가 인터넷에 연결되면 일차적으로 기술적 고장이나 비행사의 실수 또는 테러 공격의 발생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그 정보는 또한 항공사들이 연료와 유지관리 비용을 절감하고 그들이 이제껏 상상도 못하던 효율성을 찾아내도록 도움을 준다.

이해를 돕기 위해 현재 실리콘밸리·뉴욕·텔아비브 그리고 다른 모든 혁신의 요람에 불고 있는 광풍을 생각해 보자. 창업형 기업가들이 땀 나게 뛰어다니며 기존의 모든 사물을 들여다보곤 묻는다. ‘여기에 디지털 스마트 기술을 장착하고 인터넷에 연결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럴 경우 이 사물의 기능과 이것이 창출하는 가치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가정집의 출입문 잠금 장치는 수백 년 동안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최근 로키트론이 개발한 인터넷 자물쇠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어디서든 딸 수 있다. 사람이 언제 들어오고 나가는지에 관한 데이터도 수집한다. 이는 고등학생 딸이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에 집으로 남자친구를 데려오는지 확인하는 데 유용한 기능이다. 온도조절기 전문업체 네스트는 온도조절 장치에 연결성과 데이터 기능을 추가하는 기술을 인정받아 구글에 30억 달러에 인수됐다. 나이키는 인터넷에 연결된 운동화를 선보였다. 휘슬은 애완견을 인터넷에 연결해준다.

이 모든 기기는 하드웨어에 무선 연결장치와 일부 스마트 기술을 장착한다. 따라서 그 기기가 자체적으로 약간의 데이터 처리작업을 한 뒤 데이터 센터로 정보를 보낼 수 있다. 데이터 센터의 대형 컴퓨터들이 그 정보를 분석하고 마사지해 유용한 일을 하도록 만든다. 네스트가 가정의 더 효율적인 난방법을 찾아내도록 돕는 식이다.

이것이 초연결시대의 대세다. 자물쇠든 비행기처럼 더 복잡한 기계든 크게 다르지 않다. 몇 년 전 제트엔진 제조사 제너럴 일렉트릭이 스마트시그널이라는 회사를 인수했다. 제트 엔진의 센서에서 보내는 데이터를 분석해 그 특정 엔진의 패턴을 파악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업체다. 소프트웨어는 그뒤 계속 보내지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떤 특이한 이상이 나타나는지 분석해 어떤 부품이 고장날 참인지 미리 알아내게 된다.

모두 오늘날 운행 중인 비행기 내부에서 이뤄지는 일이다. 시스템은 뭔가 잘못된 듯이 보일 때만 경고 신호를 보낸다. 비행기가 온라인화하면 그 소프트웨어가 네스트 같은 기능을 할 수 있다. 엔진과 관련된 데이터를 대형 컴퓨터로 보내는 역할이다. 대형 컴퓨터는 그 데이터를 받아 항공사의 모든 비행기가 보내오는 다른 엔진 데이터와 비교한다. 그뒤 고장을 줄이고 더 안전하게 작동하는 방법을 찾아내게 된다.

9·11 테러 때 엔진이 지상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고 상상해 보라. 마치 아마추어가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처럼 가속이 붙었다고 알릴 수 있었다면 결과가 약간 달라지지 않았을까? 비행기의 다른 여러 시스템에서 지상 컴퓨터로 데이터가 전송되어 전체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될 때 더 큰 마법이 일어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말레이시아 항공편 사고다.”

2000년부터 미국 항공업계에 스트리밍 데이터의 필요성을 설파해온 노스 텍사스대 컴퓨터학과의 크리슈나 캐비 교수가 말했다. “엔진의 데이터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 데이터는 비행사로부터 아무런 통신이 없음을 보여준다.” 시스템이 그와 같은 일상적인 패턴에서의 일탈을 감지해 당국자에게 통보할 수 있다.

비행기가 온라인화하면 이상을 일으키거나 납치된 비행기를 지상의 조종사가 조종해 착륙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술 전문가들은 말한다. 마치 무인기를 조종하듯이 말이다.

그런 기술을 도입하는 비용이 많이 들까? 그렇다. 그러나 어느 시점(현재 또는 곧)에 가서는 그 기술이 충분히 우수해지고 비용이 낮아져 시간과 비용의 절감 그리고 어쩌면 인명의 구제를 통해 제값을 충분히 하고 남게 된다. “데이터가 설계상의 결함이나 기상 패턴을 알아내거나 또는 조종사 훈련에 사용될 수도 있다”고 캐비가 말했다.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하면 그런 효율성을 얻지 못한다.”

항공사들은 오래 전부터 데이터의 힘을 알고 있었다. 1980년대 중반 저가 항공사의 원조 피플 익스프레스가 등장해 대형 항공사들의 고객을 앗아갔다. 당시 아메리칸 항공의 CEO였던 로버트 크랜들은 ‘수익관리(yield management, 시장 요인의 변화에 따라 상품 가격을 변경하는 기법)’라는 신흥 기술에 투자했다.

항공권 가격에 관한 과거 데이터를 분석해 비행기 정원을 어떻게 채울지 예측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다. 지금은 보편화된 티켓 판매 방식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티켓을 몇 주 전에 미리 구입하면 더 싸고 출발 직전에 구입해 다음 날 돌아올 경우 더 비싸진다.

이 데이터 덕분에 아메리칸은 주요 노선에서 피플 익스프레스와 가격 경쟁을 벌이면서도 이익을 낼 수 있었다.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는 구조였는데도 말이다. 아메리칸은 피플 익스프레스에 빼앗긴 고객을 되찾아와 결국 그 신생업체를 문닫게 만들었다. 언제나 데이터가 승리한다.

항공업계가 언젠가 비행기 온라인화, 그리고 그에 따르는 데이터 보고(寶庫)를 받아들여 블랙박스가 에어폰(실패한 항공기 탑승자용 전화)의 뒤를 따라 퇴장하리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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