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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 전문기자의 은퇴 성공학 - ‘건보료 폭탄’ 맞는 퇴직자의 눈물

서명수 전문기자의 은퇴 성공학 - ‘건보료 폭탄’ 맞는 퇴직자의 눈물



“아니 퇴직자가 무슨 돈이 있다고 이렇게 건강보험료를 왕창 때리는 거죠?”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박모(58)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당했다. 30여년 다니던 직장을 정년퇴직하면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건강보험료(이하 건보료)를 매달 21만원씩 내야 한다는 통지가 날아왔다. 퇴직에 따라 급여가 끊겨 살 길이 막막한 박씨에겐 그야 말로 날벼락이었다.

공단에 전화를 걸어 항의해봤지만 규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하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노후 대비 차원서 월 30만원씩 부어오던 은행 적금을 깨 건보료를 내기로 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많은 월급쟁이는 퇴직하는 순간 ‘건보료 폭탄’을 맞는다. 한 푼이 아쉬운 마당에 매년 상당한 생돈을 내야 해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건보료 부담 늘면서 ‘너무한다’ 민원 쏟아져과거 같은면 직장을 가진 자식한테 피부양자로 얹어 건보료를 피할 수 있지만 요즘은 그런 게 잘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박씨처럼 적금을 해지하거나 따로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 건보재정의 누수를 막겠다며 그물망을 촘촘히 좁혀 오고 있어 퇴직자의 건보료 부담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건보료는 가입기간이 따로 없고 평생 납부해야 하는 강제 의무사항이다. 만약 6개월 이상 체납하면 병원 진료비 전액을 내야 한다.

국가재정의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의료보험 혜택을 많이 보게 될 퇴직자에게도 보험료를 물리는 게 맞다. 문제는 제도운영이 너무 거칠다는 데 있다. 직장을 잃은 실직자나 퇴직자에게 유별나게 가혹하기 때문이다. 직장을 그만두면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넘어간다.

그런데 지역건강보험은 보험료를 오롯이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더구나 급여를 기준으로 한 직장 보험과 달리 지역보험은 소득은 물론 소유재산에 따라 보험료가 산출되기 때문에 집과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직장에 다닐 때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물어야만 한다.

직장가입자의 보험료 산출은 간단하다. 월급에 대한 요율 5.99%이 보험료다. 그것도 절반은 회사가 내 준다. 지역은 복잡하다. 소득·재산 보유에 따른 점수를 산출한 다음 그 점수에 175.6원을 곱한다. 예를 들어 배우자가 있고 3억원의 주택과 2000cc의 자동차를 소유한 1955년생이 퇴직 전 급여가 300만 원이라면 직장보험료는 17만9700원이다. 여기서 회사가 반을 내주니 본인 몫은 8만9850원이다.

말 그대로 직장가입자는 소유 재산과 관계없이 급여를 기준으로 산출하면 된다. 이 사람이 퇴직 후 지역으로 전환된다면 지역가입자 산출방식에 따라 19만원 정도의 보험료가 발생한다. 퇴직으로 소득흐름이 끊기는데도 건보료는 오히려 매월 10만원가량 더 물어야 하는 건 모순이다. 퇴직자에 부과되는 건보료를 폭‘ 탄’이라고 부르는 건 그래서다.

재산을 운용할 때도 건보료가 중요 변수로 등장한다. 지난해 11월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 센터에 상담을 의뢰한 서울 당산동의 최모(58)씨가 대표적 사례다. 그는 매월 100만원씩 월세가 나오는 2억4000만원짜리 오피스텔을 처분할지 여부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오피스텔 보유에 드는 비용부터 알아보자.

최씨네는 국민연금과 임대소득의 종합소득세와 퇴직연금의 소득세가 연간 175만원이었다. 재산세와 건강보험료는 각각 40만원, 312만원. 이 오피스텔을 처분하면 세금은 국민연금의 종합소득과세와 퇴직연금의 소득세를 합쳐 연간 100만원만 나오고 재산세는 없다. 건강보험료는 264만원으로 줄어든다.

결국 오피스텔 보유가 처분보다 비용이 연간 163만원 더 든다. 이는 연간 임대료 수입 1200만원에 훨씬 못 미치는 액수지만, 연 5% 수익률을 주는 금융상품이 널려 있는 상황에선 보유 실익이 별로 없다. 더구나 오피스텔은 공급과잉 우려로 앞으로 전망도 불투명하다. 그에겐 오피스텔을 팔아 지수형 ELS(지수연계증권)로 갈아타는 게 낫다는 처방이 내려졌다.

지난해 7월 이전만 해도 건보료는 별 문제가 안됐다. 직장에 다니는 자식의 피부양자로 등재하면 건보료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정부가 무임승차자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관련 규정을 고쳐 ▶이자· 배당소득 4000만원 이하▶사업자등록이 돼 있지 않은 사람의 연간 사업소득 500만원 이하▶근로소득 및 기타소득의 합 4000만원 이하▶연금소득 2000만원 이하인 경우가 아니라면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자식의 건강보험에 얹혀 살던 많은 퇴직자가 지역보험으로 넘어가 갑자기 보험료가 늘어났다.

예컨대 연 501만원의 임대료 수입이 있고 다른 소득은 없다고 치자. 이 경우 연간 사업소득 500만원 이상에 해당돼 피부양자 지위가 사라진다. 만약 기준시가 2억8000만원의 33평형 아파트와 배기량 2000cc인 승용차를 보유하고 있다면 연간 건보료가 243만원이나 된다. 연간 소득의 절반 가까이가 건보료로 새나가는 셈이다. 하지만 사업소득이 500만원이면 피부양자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불과 소득 1만원차이로 건보료 때문에 울고 웃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으로선 임대소득은 과세당국이 잘 파악하지 못하는 소득이어서 연 500만원이 넘는 임대소득자가 피부양자로 남아 있어도 그럭저럭 눈가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는 11월부터는 이게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가 3월 발표한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이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어서다.

이 방안에 따르면 2주택 이상인 다주택자가 연간 2000만원 이상의 임대소득을 올릴 경우 과세가 강화된다. 월세 수입자의 세금이 늘어나면 건보료도 덩달아 오르는 건 뻔한 일. 2000만원 이하의 수입자도 소득정보가 건강보험공단에 통보되기 때문에 피부양자 지위 상실은 현실이 된다.



정부 제도 개선 ‘산 넘어 산’건강보험공단은 과다한 보험료를 하소연하는 민원을 처리하느라 몸살을 앓는다. 지난해의 건강보험 이의신청 건수는 3932건에 달했다. 이 중 보험료 관련이 72%나 됐다. 보험료가 실제 가계의 경제사정 등에 견주어 지나치게 많이 부과됐다는 내용이 대부분으로 알려졌다. 특히 직장을 잃거나 그만둬 수입이 없는 데도 지역보험료를 과하게 매긴다는 주장이 다수를 차지한다.

지역보험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는 길은 단 하나, 소득만을 적용 기준으로 삼도록 건보제도를 뜯어고치는 것이다. 소득과 재산에 무차별로 건보료를 때리다 보니 퇴직자들은 갖가지 구실을 만들어 그물망을 벗어나려고 하고, 이로 인해 범법자 아닌 범법자만 양산하는 게 지역보험의 현주소다. 만약 소득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직장가입자와의 형평성도 생기고 퇴직자의 건보료 부담을 크게 낮춰 일석이조의 조세효과를 거둘 수 있다. 다행히 정부에선 소득에만 보험료를 부과하거나 소득 기준으로 부과하되 간접세 방식을 추가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하는 것으로 갈길이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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