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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 전문기자의 은퇴 성공학 | 부부 행복은 연봉 1억원 넘는 가치

서명수 전문기자의 은퇴 성공학 | 부부 행복은 연봉 1억원 넘는 가치



옛날 중국에 한 병사가 있었다. 그는 이웃 나라와 전쟁이 벌어지자 전쟁터에 끌려 나갔다.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던 어느 날 시 한 편을 지었다. ‘생이별한 뒤 하염없이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부인을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진다. 살아 고향에 돌아가면 오래오래 같이 살자’는 내용이다.

<시경> 에 나오는 ‘백년해로(百年偕老)’의 유래다. 백년해로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평생을 함께 한다’는 우리 속담과 비슷한 뜻이다. 그러나 정말 남편과 부인이 한날 한시에 눈을 감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60년 해로도 힘든 게 요즘 세태가 아닌가 생각한다. 자식들 혼사 다 치르고 난 뒤 은퇴한 남편에게 이혼장을 내미는 황혼이혼도 해를 거듭할수록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한 해 혼인기간 30년 이상 부부의 황혼이혼은 9400건으로 전년보다 무려 9.3%늘어나 혼인기간별 이혼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30년차 이상 부부의 이혼은 10년 새 1.8배로 늘었다. 황혼이혼이 흔하다 보니 언론에서도 과거처럼 큰 기삿감으로 다루지 않는다.

황혼이혼은 수명연장과 관련이 깊다. 은퇴하고 짧은 여생을 살았던 과거에는 몸과 마음이 빨리 늙어가 싫어지고 좋아지고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의료기술의 발달로 은퇴하고도 20~30년을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됐다. 그 긴 세월을 싫은 사람과 매일 얼굴을 맞대고 티격태격 하느니 늦었지만 남은 시간만이라도 나의 삶을 찾겠다며 결단을 내리는 부부가 많아졌다. 앞으로 65세 이상의 인구가 많아지는 고령화가 진전될수록 황혼이혼이 늘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수십 년을 동고동락하며 살아오다 막상 둘만이 오붓하게 즐길 노년에 갈라선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원만한 부부관계가 노후생활 안착의 가장 기본적 조건임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이혼은 그 자체로 깊은 마음의 상처를 남길 뿐 아니라 은퇴라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독거노인이 돼 말년을 비참하게 보낼 가능성도 커진다.

남과 여는 서로 다른 별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사고나 생활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특히 갱년기 이후 남자는 감정에 민감해지고 공격성이 약해지는 반면 여자는 감정 변화가 약해지면서 안정적인 뇌 구조를 갖게 된다. 노년의 남자는 여성스러워 지지만 반대로 여성은 가족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게 되고 배려하는 마음도 감퇴한다고 한다. 이런 ‘화성인’과 ‘금성인’의 동거는 애당초 갈등이 내재돼 있다.

갈등은 남편이 가정으로 귀환, 아내와 마주 대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표면화한다. 서로 함께 사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보니 사사건건 부닥치는 일이 늘어나게 돼 있다. 신혼 때의 설렘과 짜릿함은 벌써 오래 전에 사라졌다. 남편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정신 없이 밖으로 뛰어다니는 회사형 인간이 된다. 회사형 인간은 아내와 소통하고 일상을 공유하는 데 서툴다. 과중한 업무와 치열한 생존경쟁에 시달려와 가족관계와 같은 삶의 질적인 측면을 돌아볼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 가정은 어디까지나 쉬는 곳이다. 은퇴하고 나서도 30년 가까이 힘들게 가족을 먹여 살렸으니 이젠 집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이 가정은 완전히 변했다. 남편의 귀환을 축하하고 그간의 노고를 치하해 줄 것을 기대했다간 큰 코 다친다. 예전의 아내는 더 이상 없다. 아내는 남편이 밖으로 나도는 동안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놓는다. 자녀 친구들의 엄마모임, 여고동창, 대학동창, 노래교실, 종교활동 등 자신이 편하게 만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을 거미줄처럼 형성하고 있는 사회형 인간이다.

여자들은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잘 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만나면 몇 시간씩 수다를 떨며 재미있게 시간을 보낸다. 용건이 없으면 만나도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는 남자들과 완전히 다르다. 회사형 인간과 사회형 인간은 처음부터 물과 기름간의 관계다. 남녀가 정신적·육체적으로 노후화하면서 성질마저 달라지면 마침내 균열이 생기고 경우에 따라선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권력자인 아내와 공존의 해법 찾아야은퇴생활은 단순히 인생을 정리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생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중요한 활동기다. 하지만 가정의 권력은 상당부분 아내로 넘어가 활동에 제약이 따른다. 만약 아무 생각 없이 은퇴해 집으로 돌아갔다간 곤란한 상황을 당하게 된다. 대학입시를 치를 때나 직장생활을 할 때처럼 머리를 써 연구를 해야 하고 준비도 소홀히 해선 안 되는 건 그래서다. 은퇴생활은 가정인이 돼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진 권력자 아내와 공존하는 방법을 어떻게 찾느냐가 관건이다.

행복한 삶은 부부가 그리는 노후가 동상이몽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먼저다. 걸음걸이는 다르더라도 한 곳을 바라보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부부 각자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살고 싶은 곳은 어디인지, 각자가 꿈꾸는 생활방식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그 간격을 좁혀 나가야 한다. 매일 30분만이라도 서로의 관심사를 공유한다면 부부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와 우정을 쌓아 나갈 수 있다.

은퇴한 남편과 전업주부가 갈등을 겪는 대표적 영역이 가사 분담이다. 여성들은 하루 세끼를 꼬박 챙겨 먹는 남편을 ‘삼식이’라며 꼴불견으로 여긴다. 이런 남편을 챙기는 자체가 스트레스라고 한다. 아내를 가사에서 일부 해방시켜 집 밖의 생활에도 시간을 쪼개도록 해줘야 가정에 평화가 깃든다.

미국 다트머스트대의 데이비드 블랜치플라워 교수는 부부 행복의 경제적 가치는 연봉 10만 달러(약 1억원)이상이라고 주장했다. 서로 행복하다면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바로 이겨내고 부도 쉽게 일굴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부부의 좋은 금슬은 건강과 부를 부르는 행복주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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