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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CLEUS - 인류와 핵의 애증관계

NUCLEUS - 인류와 핵의 애증관계

트리니티 사이트의 오벨리스크.



미국 뉴멕시코주 소코로 부근의 트리니티 사이트(Trinity Site). 1945년 7월 16일 아침 5시 29분 45초에 이곳에서 인류 역사 최초의 핵폭발이 일어났다.

트리니티를 방문하려면 새벽이 제격이다. 녹색과 적색의 고지대 사막이 아직 태양에 데워지진 않았지만 차가운 어둠이 걷혀가는 중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에 별로 볼 게 없다. 원자폭탄 제조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의 책임자들이 애초에 이곳을 선택한 이유가 거의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맥도널드 랜치 하우스의 ‘플루토늄 조립실’ 표지판.
폭발 지점에는 검은 방첨탑(obelisk)이 서 있다. 아른거리는 산악 지평선과 대조적으로 우뚝 선 3m66㎝ 높이의 완벽한 원뿔형이다. ‘장치(the Gadget, 원자폭탄을 의미한다)’가 들어 있었던 30m 높이의 건물에서 남은 것이라곤 콘크리트 조각 두어 개뿐이다.

눈이 밝다면 발 아래서 푸르스름한 트리니타이트(trinitite) 조각들이 보일지 모른다. 모래가 거대한 핵융합로에 빨려 들어갈 때 생긴 유리 결정체다.

길 아래쪽에는 그 실험 원자폭탄이 조립된 맥도널드 랜치 하우스(McDonald Ranch House)가 있다. 한 세기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천장에서 늘어진 끈에는 “플루토늄 조립실(Plutonium Assembly Room)’이라는 종이 표지판이 걸려 있다. 대수롭지 않은 역사적 건물이라고 해도 그보다는 더 번듯한 표지판이 붙어 있으리라.

이곳이 그처럼 방치된 것은 과연 기념해 할지 잊어야 할지 아직 우리가 확실히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인 듯하다.



전설의 헐벗은 알맹이핵폭탄은 두 도시(나가사키, 히로시마)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하지만 핵에너지는 파리와 뉴욕의 생명선에 전기를 지속적으로 공급한다. 핵은 J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유럽인 망명 과학자들이 원자를 쪼개 분출시킨 두 얼굴의 에너지원이다.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어퍼 웨스트 사이드에서 성장했고 하버드대에서 공부했다. 그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절묘한 시적 표현을 즐겨 썼다(그는 마티니를 제조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었다).

오펜하이머는 이 사막의 땅을 영국의 형이상학파 시인 존 던의 시구 “때려부수소서 내 심장을,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시여(Batter my heart, three person’d God)!”에서 영감을 얻어 ‘트리티니(Trinity, ‘삼위일체’라는 뜻)’로 이름 붙였다. 첫 폭발 실험이 성공하자 오펜하이머는 힌두 경전을 인용해 “이제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I have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라는 명언을 남겼다.

핵실험에 대한 좀 더 직설적인 평가는 물리학자 케네스 T 베인브리지에게서 나왔다. 그는 실험 후 오펜하이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 모두 개자식이다(now we are all sons of bitches).” 실제로 우리는 지금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핵에 관한 책이라면 리처드 로즈의 ‘원자폭탄 만들기’(Making of the Atomic Bomb, 1986년)에 견주어 평가될 수밖에 없다. 그 책은 군사 역사의 범주를 뛰어넘는다. 퓰리처상을 받은 그 책의 발간 25주년 기념판에서 로즈는 우리의 원자 정복 이야기가 시간이 흐르면서 “전설의 헐벗은 알맹이(a bare nucleus of legend)”로만 남게 됐다고 개탄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트리니티 사이트와 퀴리 부부에 대한 생생한 역사를 비롯해 최근 쏟아져 나온 책들은 풍력발전단지와 태양전지판 이야기가 무성함에도 핵분열의 거대한 업적이 그 7월 새벽 스스로 ‘세상의 파괴자’가 된 오펜하이머에게 그랬던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무시무시한 동시에 매력적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라돈 가스로 가득 찬 동굴크레이그 넬슨은 저서 ‘광채의 시대: 원자 시대의 장대한 부상과 극적인 추락(The Age of Radiance: The Epic Rise and Dramatic Fall of the Atomic Era)’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 원자 시대의 황혼에 살고 있다. 핵병기고와 핵발전 둘 다의 종말에 다가간다. 그런데도 현대인의 삶에서 방사선은 너무도 흔해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다. 모든 곳에 있지만 우리는 그냥 지나치고 있다.”

넬슨은 맨해튼 프로젝트가 일본에서 대형 참사를 초래하긴 했지만 미국의 혁신에 큰 도움이 됐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퇴짜 맞은 천재들의 피난처를 만들어 연구개발 불모지에서 핵에 관한 모든 것의 중심지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또 넬슨은 맨해튼 프로젝트가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1939년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미국을 거대한 공장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핵병기고 구축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 공장이 비록 가동은 중지됐지만 지금도 놀랍도록 건재하다.

예를 들어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일종의 ‘방사능 군도’가 여전히 미국 전역에 존재한다. 맨해튼 프로젝트와 냉전을 위해 세워진 창고와 공장들의 네트워크를 말한다. 워싱턴주의 핸퍼드 핵폐기물 처리장이나 테네시주의 오크리지 국립연구소 같은 일부 시설은 관광지가 됐지만 그보다 덜 중요한 핵시설들은 역사를 감춰왔다. 하지만 그런 시설은 때로는 공중보건을 해칠지도 모른다.

월스트리저널은 이렇게 지적했다. “일상적인 핵연료 처리만이 아니라 가끔씩 발생한 핵물질 취급 부주의로 인한 잔류물이 거의 서른대여섯 주의 시설에 존재한다. 그런 잔류물의 일부는 공원에, 일부는 학교 부근에 남아 있고, 또 일부는 상업 건물의 벽과 바닥, 천장에 남아 있다. 주거지의 산책로와 도시의 빈 땅, 지하수에서도 오염이 탐지됐다.”

전시 핵무기 제조에 사용된 시설 중 하나는 뉴욕 맨해튼 첼시 구역에 있는 베이어 앤 윌리엄스 웨어하우스(Baker & Williams Warehouses)다. 요즘 그곳은 사무실과 화랑으로 바뀌었다. 그 옆에는 요가 강습실과 커피점이 있다. 70년 전에는 이곳이 영화 ‘워터프론트(On the Waterfront)’에 나오는 부두 배경과 비슷했다.

또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의 분위기와도 흡사했다. ‘맨해튼의 맨해튼 프로젝트 가이드(A Guide to the Manhattan Project in Manhattan)’에 따르면 그 붉은 벽돌 건물들은 “1940년대 초 ‘맨해튼 엔지니어 디스트릭트’(Manhattan Engineer District, ‘맨해튼 프로젝트’의 공식 명칭)가 농축 우라늄을 단기적으로 저장하는 데 사용했으며 그 우라늄은 인근 허드슨강 부두로 비밀리에 운송됐다.”

지금은 베이커 앤 윌리엄스 웨어하우스에 초우라늄(transuranic) 흔적이 없다. 적어도 방사선측정장비를 휴대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렇다. 화창한 봄날 그곳에 갔을 때 멋지게 차려 입은 중년 신사가 그 건물 앞에 서 있었다. 그는 그곳 사무실에서 일한다고 했다. 그는 그 건물이 맨해튼 프로젝트에 관련됐으며 한때 핵물질을 저장했던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내가 그 이야기를 해주자 그는 “그거 멋진데요”라고 말한 다음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빨아들였다.

그런 무심한 묵살을 보면 맨해튼 프로젝트가 신화의 온화한 빛을 띤다는 로즈의 말이 옳은 듯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핵발전은 여전히 성가신 문제로 남아 있다. 넬슨은 저서의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지난 70년 동안 핵이 우리에게 준 고통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모든 것을 묻어 두고 확실한 혜택을 찾을 때다.” 환경운동가들은 석탄 연료에 낙담하고 풍력과 태양력의 지지부진함에 조바심을 내면서 핵에너지에 대해 호의적인 생각을 갖게 됐다.

제임스 머해피도 핵에너지에 희망을 건다. 하지만 그의 신저는 ‘원자력 사고: 오자크산에서 후쿠시마까지 원자로 용해와 재난의 역사(Atomic Accidents: A History of Nuclear Meltdowns and Disasters From the Ozark Mountains to Fukushima)’라는 섬뜩한 제목을 달았다. 기이하면서도 미있는 책이다. 핵사고에 관한 다소 기술적인 개요서이지만 최대한 기이한 효과를 내도록 엮었다.

예를 들면 방사성 가스 라돈-222가 가득 찬 동굴로 아무 것도 모르고 들어간 사냥꾼들, 핵 제트기에 대한 열렬한 꿈, 인간의 손길에 익숙하지 않은 말처럼 날뛰는 원자로들. 핵공학자인 머해피는 적절히 극적으로 묘사한다. 물론 흑연감속형원자로(graphite-moderated reactors)의 단점을 잘 모르는 독자는 세부적인 과학적 설명에 질릴지 모른다.

머해피는 3대 상업 원전사고(스리마일 아일랜드, 체르노빌, 후쿠시마)를 다루지만 그의 책은 여러 소규모 사고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서 진가를 발휘한다. 1879년 오자크산의 방사능 동굴에 우연히 들어간 사냥꾼들로부터 1957년 9월 29일 발생한 키시팀 사고까지 다양한 재난을 파헤쳤다. 러시아 중부의 핵폐기물이 폭발한 키시팀 사고는 “핵발전의 역사에서 최악이며 가장 몰상식적인 재앙이었을지 모른다(possibly the worst, most senseless catastrophe in the history of nuclear power)”고 머해피는 말했다.

미국의 원전 운영이 나무랄 데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스리마일 아일랜드 사고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규모가 작지만 똑같이 심각한 여러 사고가 가려졌다. 1961년 1월 3일 저녁 아이다호 폴스의 군사용 원자로 SL-1은 ‘즉발임계(prompt critical, 지발중성자의 도움없이 즉발중성자만으로 임계에 도달하는 것)’로 폭발해 3명이 사망했다. 원자로 조작 책임자 잭 번스의 잘못인 듯했다.

머해피는 번스에 관해 “그는 결혼 위기를 겪고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었으며 지시를 잘 따르지 않았다”고 적었다. 이 책은 인적 오류가 얼마나 다양한지 잘 보여준다. 이 책을 읽은 뒤 그토록 어설픈 우리 인간의 손에서 남아나는 게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런데도 머해피는 핵 낙관론자다. “대형 사건들은 우리가 앞으로 겪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그는 적었다. “핵에너지가 지구상의 생명체가 계속 진보하도록 해주는 핵심 요소 중 하나일지 모른다”고도 주장했다. 우리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줌으로써 그렇게 된다는 이야기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두려움우리가 핵조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사실은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 있는 미 국립 핵과학역사박물관(National Museum of Nuclear Science & History)에 잘 나타나 있다. 수많은 핵탄두, 원자폭탄 최초 실험을 위해 과학자들을 실어 날았던 패커드 승용차, 습진과 위장병을 치료해준다고 약속하던 ‘라듐 물’ 한 주전자 등. 히로시마에 관한 전시물 부근에는 방문객들이 소감을 적을 수 있는 방문록이 있다. 그중 하나는 “세상에! 내가 다음 폭탄을 만들 거야!”라고 적혀 있다. 이 친구는 요점을 놓쳤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실상을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노던 캘리포니아에 있는 리처드 로즈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이렇게 개탄했다. “핵무기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서 도덕적 측면이 사라졌다.” 그는 우리가 약 7700기의 핵탄두를 유지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우리의 책임을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사보타주와 절도, 그리고 운명에 우리 미래를 맡겨 놓은 셈이라는 이야기였다.

로즈는 핵에너지에 관해 좀 더 낙관적이다. 그는 1970년대 말 ‘원자폭탄 만들기’를 쓰기 위해 기초 조사를 시작했을 때만해도 자신은 “자동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이는 반핵 언론인(knee-jerk anti-nuclear journalist)”이었다고 돌이켰다. 그러나 지금 그는 풍력이나 태양력 같은 ‘소규모의 명품’ 에너지원을 계속 지지할 순 있지만 핵에너지가 우리의 탄소 중독에 가장 확실한 대안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는 핵무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방사능에 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의 두려움”을 갖게 됐다고 개탄했다. 머해피와 넬슨도 같은 생각이다. 특히 넬슨은 독자들에게 “두려움과 미신, 무식으로 인해 핵을 외면하지 말도록” 촉구한다.

그러나 미신과 무식은 미국에 깊이 뿌리내린 특성이다. 그들은 화석연료를 태우는 것이 자연스럽고 기본적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반면 핵을 분열시키는 것은 엄청난 자만심처럼 느낀다. 아무리 설득해도 그런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핵이 발휘한 가장 가공할 힘은 소설가 돈 드릴로가 말한 “공포의 신학(the theology of fear)”이었다.

핵과학에 관해 수많은 글이 쓰여졌지만 가장 크고 긴 여운을 남기는 것은 머해피의 책에 나오는 한 문장일지 모른다. 그 문장은 끔찍한 한 단어로 돼 있다. “쾅(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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