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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 日 소설 <설국>의 ‘불가능한 삼위일체’

Management |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 日 소설 <설국>의 ‘불가능한 삼위일체’



“그 사람과 의논한 건가?” “고마짱 말인가요? 고마짱은 미워서 말 안 해요.” 그렇게 말하고 마음을 놓아서인지 촉촉히 젖은 눈으로 그를 쳐다보는 요코에게 시마무라는 이상한 매력을 느꼈다.

그런데 오히려 고마코에 대한 애정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처녀와 도망치듯 (도쿄로) 돌아가 버리는 것은 고마코에 대한 지독한 사회의 방법일 듯 여겨지기도 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968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아시아에서 두 번째였다. 아시아에서는 지금까지 4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 1913년 인도 시인 타고르가 처음이고,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두 번째다. 1994년 오에 겐자부로, 2000년 가오싱젠 등이다. 가오싱젠은 프랑스로 망명했다.



아시아 두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 <설국> 의 첫 세 문장은 일본 근대문학 중 최고의 명문장으로 손꼽힌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문장만 읽어도 밤하늘 밑 하얀 눈에 덮인 조용한 어느 마을이 떠오른다. 설국의 무대는 니가타현의 에치고 유자와 온천이다. 가와바타는 유자와 온천에 머물며 이 작품을 집필했다.

등장인물은 한 남자와 두 여자다. 도쿄에서 온 무위도식하는 여행자 시마무라, 설국의 온천장에서 게이샤로 살아가는 고마코, 고마코 선생님의 아들을 보살펴주는 요코 등이다. 고마코는 시마무라를 좋아한다. 시마무라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요코에 은근히 끌린다. 요코와 고마코는 서로를 동병상련하면서도 두 남자(선생님의 아들과 시마무라)를 놓고 경쟁관계다.

소설은 설국으로 향하는 기차 속에서 시작한다. 시마무라는 창에 비친 요코를 훔쳐본다. 그녀는 한 남자를 간호하고 있다. 창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다. 시마무라와 요코 일행이 내리는 역은 같다. 시마무라는 여관에서 고마코를 만난다. 시마무라는 신록이 한창인 5월 23일 이 여관에 왔고, 그때 고마코와 시간을 보냈다. 199일이 지난 세밑 시마무라는 다시 산골 온천장을 찾아온 것이다.

고마코는 시마무라를 그리워하며 기다렸다. 시마무라는 두 번째 방문에서 고마코와 요코의 이야기를 듣는다. 고마코는 선생님의 아들, 유키오를 위해 게이샤가 됐고 그를 부양해왔다. 결핵을 앓고 고향으로 돌아온 유키오는 지금 요코의 간호를 받고 있다. 시마무라가 다시 도쿄로 돌아가는 날, 고마코는 그를 배웅한다. 요코가 달려와 “유키오씨가 위독하다”고 알리지만 요코는 끝내 유키오에게 가지 않는다.

몇 해가 지났다. 나방이 알을 스는 계절, 가을에 시마무라는 산골마을에 온다. 세 번째 방문이다. 고마코가 역시 그를 기다리고 있다. 시마무라는 고마코와 함께 유키오의 무덤을 찾았다 우연히 요코를 만난다. 요코는 시마무라에게 도쿄로 데려가 줄 것을 부탁하지만 고마코 얘기를 하니 울며 뛰쳐나간다.

마을에 불이 난다. 고치창고다. 마을 사람들을 위해 영화를 상영하던 중 불이 난다. 요코가 창고 2층에서 떨어진다. 불길로 뛰어드는 것이 고마코다. 고마코는 요코를 품에 안고 절규한다. ‘시마무라-고마코-요코’는 삼각관계다. 고마코는 열정적으로 시마무라를 좋아한다. 시마무라는 묘한 매력이 있는 고마코에게 끌린다. 요코와 고마코는 친한 듯하면서도 서로에 대해 얘기하기를 꺼린다. 요코와 고마코의 관계를 시마무라는 통 알 수 없다.

세 사람의 관계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불가능한 삼위일체’를 닮았다. 불가능한 삼위일체란 세 가지 정책목표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삼중딜레마라고도 한다. 거시경제에서는 ①환율 ②자본시장 개방 ③독립적인 통화정책의 세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두 가지는 동시에 이룰 수 있지만 세 가지는 쉽지 않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먼델 미 컬럼비아대 교수가 주장한 이론이다. 예를 들어 A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린다고 치자. 그러면 외국돈이 밀려와 A국의 통화가치가 오른다. 그러면 수출 국가의 경우 가격경쟁력이 나빠진다. 1980년대 미국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통화가치 상승을 막으려면 외환거래량을 직접 제한하던지 외환거래세를 매겨야 한다. 자본시장 개방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겪었던 저성장·고물가·재정적자 상태도 삼중딜레마였다. 저성장에서 탈출하기 위해 돈을 풀었더니 정부의 재정적자가 심해졌다. 또 시중에 돈이 많아지니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려 했고 그래서 금리를 올리자는 주장이 나왔다.

금리를 올리면 시중의 돈이 걷어들여져 되레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게 됐다. 삼중딜레마를 트릴레마라고도 한다. 그리스어로 숫자 3을 가리키는 ‘트리’(tri)와 딜레마의 합성어다. 시마무라가 산골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고마코의 처지는 달라져 있다. 첫 방문 때 고마코는 선생님의 집에 머물며 손이 딸릴 때 손님접대를 하는 수준이었다. 두 번째 방문 때 고마코는 게이샤가 됐다. 세 번째 방문 때는 선생님이 죽었기 때문에 숙소를 옮겼다. 게이샤로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삼중딜레마 시달려고마코는 선생님의 아들, 유키오에게 냉담했다. 유키오를 간호했던 요코는 그것을 참을 수 없었다. 요코는 “고마짱은 미워서 말 안 한다”고 시마무라에게 실토한다. 시마무라와 요코, 고마코 세 사람이 서로 좋아하기는 힘들다. 비단 이 세 사람뿐만 아니다. 삼각 애정관계는 삼중딜레마가 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 발전에도 삼중딜레마가 있다. ‘경제 발전-에너지 사용 감소-환경보호’의 세 가지를 동시에 이루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에너지 사용을 늘려야 하는데 그러면 환경이 나빠질 수 있다. 환경 규제를 강화하면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지만 경제 발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 을 완성하는데 13년이 걸렸다. 1935년 첫 발표했고, 1948년 완결판을 냈다. 그는 74세이던 1972년 4월 16일 자살했다. 유서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자살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인간실격> 의 다자이 오사무, <라쇼몽> 의 아쿠타가와 류스노케와 함께 자살로 삶을 마감한 대표적인 일본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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