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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STAINABILITY | 목재 고층건물로 지구를 살린다

SUSTAINABILITY | 목재 고층건물로 지구를 살린다

CLT 등 첨단 가공 목재 이용하면 콘크리트-강철 건물에 비해 탄소발자국 60~75% 줄일 수 있어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내구성과 내화성도 뛰어나
2009년 직교적층목재(CLT)로 지어진 런던의 머레이 그로브 아파트.



영국부터 스웨덴, 캐나다, 호주까지 여러 도시에 새로운 종류의 고층건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는 요즘 이 건물들은 건축가와 부동산 개발업자, 환경운동가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다.

2009년 영국 런던에 지어진 9층짜리 머레이 그로브 아파트. 2012년 호주 멜버른 도크랜즈 지역에 건축된 포르테 아파트. 최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프린스 조지에 완공된 29m 높이의 디자인 센터 타워. 이밖에도 십여 개의 건물이 이 떠오르는 건축 장르에 속한다. 또 캐나다 밴쿠버엔 30층짜리 주상복합 타워가, 스웨덴 스특홀름엔 34층짜리 고층건물이 건설될 예정이다.

이 건물들은 모두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시대에 걸맞은 첨단 자재로 지어졌다. 강철-콘크리트 건물(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3분의1이 여기서 비롯된다)의 대안을 찾는 정부와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주목하는 이 자재는 바로 목재다.

“사회 각층에서 이런 건물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미국의 저명한 건축회사 SOM의 구조공학자 벤튼 존슨이 말했다. 고층건물에 중목[heavy timber, 긴 원목의 통을 네모지게 쪼개 놓은 무거운 재목)을 이용할 것을 주장한 존슨의 ‘목재 고층건물 프로젝트(Timber Tower Research Project)’ 보고서는 자주 인용된다. 존슨은 지난 3월 미 농무부가 목재 고층건물을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도구”로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전하며 “미국 정부도 이 아이디어를 후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농무부는 비영리단체 우드워크스(WoodWorks)와 손잡고 100만 달러를 투자해 건축가와 공학자들에게 목재 건축의 이점을 교육하고 있다. 목재 건축은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을 줄여줄 뿐 아니라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농무부는 또 지속가능한 목재 건물의 설계를 목표로 한 디자인 경연대회를 지원한다.

이런 아이디어는 지방의 목재업자들에게 일자리 창출과 환경보호를 위해 직교적층목재(CLT) 같은 새로운 자재를 탐구하도록 격려한다. CLT는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은 합판’이라고 불리는 강화 목재다. 목재들을 나란히 배치한 뒤 그 위에 직각방향으로 또 한 층의 목재들을 나란히 올려놓는 방식으로 여러 번 적층하여 접착한 자재로 강철에 버금가는 강도를 자랑한다.

CLT와 중목, 그리고 다른 첨단 목재를 사용한 건축 기술은 선보인 지가 꽤 됐지만 건축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다. 유럽과 캐나다, 호주의 극소수 목재 고층건물에 이용됐을 뿐이다. 이런 목재 건물의 외장재는 목재부터 재활용 금속까지 다양한 외장재를 선택할 수 있어 멋지고 현대적인 외양을 갖추게 된다.

기존의 목재 건물은 10층 정도에 머물렀지만 전문가들은 앞으로 20층, 30층, 심지어 40층짜리 목재 고층건물들이 지어질 것이라고 예견한다. 목재 건물 전문가인 밴쿠버의 건축가 마이클 그린은 30층짜리 주상복합 목재 건물을 지을 계획이다. 또 스웨덴 당국은 스톡홀름에 34층짜리 목재 주거용 건물의 건축을 허가했다. SOM의 보고서는 콘크리트 심으로 목골구조를 지탱하는 42층짜리 건물의 청사진을 소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렇게 지어진 건물은 콘크리트와 강철로만 건축된 건물에 비해 탄소발자국이 60~75% 감소한다.

최근 미국 정부는 유럽과 캐나다, 호주 등 건축에 첨단 목재를 먼저 도입한 나라들을 따라잡는다는 목표를 내세우면서 관련 업체들을 독려했다. 그에 따라 요즘 미국에서는 첨단 목재 사업에 뛰어드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아이다호주의 포리스트 그룹은 3월 말 미국 최초의 CLT 공급업체가 되겠다고 발표했다. 목재 생산에 두각을 나타내는 다른 주들 역시 이런 움직임에 앞장서고 있다. 일례로 워싱턴주에서는 주정부 관리들이 환경단체와 민간부문, 교육기관들과 손잡고 CLT와 다른 가공목재의 사용을 증진시키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목재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목재 산업 종사 인구가 약 50만 명에 이른다. CLT 제조는 미국을 친환경 건축 시장의 선두에 올려놓을 수 있다. 국내외에 엄청난 잠재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유엔은 2050년까지 전 세계 도시 인구가 84% 증가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향후 35년 동안 약 30억 명이 새롭게 도시에 유입된다는 말이다. 이 30억 명의 인구를 위한 주거시설 건축은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도시를 더 확장하기보다는 같은 면적에 더 많은 인구가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지속가능한 자재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다.

“목재 건물은 에너지와 탄소 집약성이 훨씬 낮다”고 인테리어 디자인 업체 FXFOWLE 아키텍츠의 지속가능성 책임자 일라나 주다가 말했다. “목재 건물이 100년 동안 그 자리에 서 있다면 그 기간 동안 탄소를 격리하는 효과가 있다.”

나무는 탄소 저장고다. 햇빛을 받고 자라나는 나무는 자기 무게의 절반 정도 분량의 탄소를 흡수해 저장한다. 건축의 측면에서 볼 때 지속가능한 숲에서 공급받은 목재를 이용하는 것은 탄소를 거대한 금고 안에 넣고 열쇠를 내다버리는 것과 같다. 밴쿠버의 건축가 그린은 2013년 한 TED 강연에서 목재 1㎥터 당 1t의 탄소를 저장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런 환경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도시에 CLT 건물들이 더 많이 건축되는 걸 막는 걸림돌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건축자재에 대한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지난 2세기 중 상당 기간 동안 콘크리트와 강철, 석재가 도시 건축의 기본 자재로 사용돼 왔다. 현대의 도시 환경은 목재를 망치로 두드려서가 아니라 콘크리트를 부어서 만들어졌다. 강철 심을 넣은 콘크리트 층을 층층이 쌓아올렸다. 19세기 중·후반 대형 도시 화재가 빈번히 발생한 이후 이런 건축법이 표준이 됐다. 목재는 인구와 건축물 밀도가 높은 도시 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건축 자재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건축에 목재 사용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화재에 대한 우려다. 하지만 목재 건물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런 우려가 세심하게 가공된 중목 제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온다고 말한다. 중목구조의 건물은 내화성을 갖도록 만들어진 대형 빔들로 구성된다. 이 빔들은 불에 금세 타지 않고 서서히 숯이 된다. 화재 전문가들에 따르면 바깥 쪽에 만들어지는 이 숯 층이 안쪽의 목재를 불에 타지 않도록 보호해 준다. 화재가 발생할 경우 목재 표면에 생기는 이 숯이 건물 내부 온도 상승의 속도를 늦춘다.

“이 빔들은 밀도가 매우 높은 나무판이다. … 완전히 연소하는 데 약 6시간이 걸린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서레이의 소방대장 렌 개리스가 말했다. 그는 2012년 목재 고층건물을 허용하는 쪽으로 지역 소방법을 개정하는 과정에 관여했다. “우리는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여러 연구를 시행했다. 그리고 콘크리트 건물과 목재 건물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거의 동일한 결과를 얻었다.” 화재경보와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될 경우에 한해서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디자인 회사 애럽의 공학자이자 목재 건물 화재 안전 전문가인 로버트 제라드 역시 안전한 목재 고층건물을 지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화재예방연구재단의 한 보고서에서 제라드와 동료 연구원들은 중목구조 건물의 내구성과 안전성을 설명했다. 기술 발전에 따라 건축법이 개정되는 건 시간 문제라고 그는 예견했다. 실제로 2015년판 국제건축법에는 CLT가 엄격한 화재 시험에서 보여준 안전성을 바탕으로 CLT에 관한 조항이 포함될 예정이다. “법이 CLT를 가장 실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형태의 건물에 적용하도록 허용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제라드가 덧붙였다.

고객이 가장 우려하던 문제에 이런 믿을 만한 답을 듣게 되면 “건축업자들은 희망으로 가슴이 부푼다”고 SOM의 존슨이 말했다. 특히 비용 절감 측면에서 그렇다. CLT를 이용한 건물은 조립식 건축이 가능하다. CLT 패널들은 현장 밖에서 조립된 다음 마치 거대한 젱가 게임 탑처럼 제 자리에 쌓아올려진다. 이런 효율성 덕분에 건축이 단기간에 적은 인원으로 이뤄진다.

전면에 재활용 금속 패널을 댄 것 빼고는 건물 전체가 목조로 이뤄진 멜버른의 포르테 아파트는 완공까지 약 9개월 반이 걸렸다. 콘크리트 기저가 완성된 후 CLT 구조는 건설근로자 6명으로 이뤄진 팀이 38일 만에 완공했다. 포르테 개발팀을 이끈 대릴 패터슨에 따르면 이와 유사한 건물을 콘크리트로 지었다면 건설근로자 30명이 16~18주는 일을 해야 이 과정을 끝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토대 건축공학 교수 테드 케식은 CLT로 지은 건물을 “이케아(스웨덴의 조립식 가구 브랜드) 건축물”이라고 표현했다. 못 몇 개 박고 너트와 볼트 몇 개 조이면 완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건축방식이 보편화되면 그 나무가 다 어디서 나오겠느냐고 걱정한다. CLT 제작을 위한 벌목이 숲을 위험에 처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하지만 지지자들은 지속가능한 삼림관리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CLT는 나무 농장에서 수확한 아주 어린 나무로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목재를 얻으려고 성숙한 나무를 자를 필요가 없다.

FXFOWLE의 주다도 이 견해에 동의하지만 나무농업의 비용과 이점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거기에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할지가 중요한 문제다. 그녀는 나무의 성장주기와 사용되는 목재 종류의 구조적 한계 등 삼림관리 측면의 자원 분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고품질의 CLT를 생산하는 스트럭처램 프로덕츠의 중목 전문가 크리스 스피클러는 지난 2월 건축 잡지 ‘빌딩 디자인 앤 컨스트럭션’의 한 기사에서 CLT 제조업체들을 위한 또 다른 원자재 공급원을 제시했다. 소나무좀(MPB) 병충해로 고사한 숲이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MPB는 숲의 생명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늙고 약해진 나무를 시들어 죽게 함으로써 어린 나무의 성장을 촉진한다.

하지만 여름과 겨울의 이상고온 현상은 MPB 개체수의 급증을 초래한다. 최근 몇 십 년 동안 MPB는 캐나다와 미국의 소나무숲 중 넓은 지역을 파괴했다. 2013년 콜로라도주에서만 26만4000에이커의 소나무숲이 MPB에 감염됐다. 이 나무들이 쓰러져 숲에서 썩어가면서 저장해 놓았던 탄소를 대기에 방출하도록 놔두는 대신 그것들은 CLT 제조에 활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목재가 도시 건축의 미래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SOM의 존슨에 따르면 그것은 ‘닭과 달걀’의 문제다. “사람들은 제조에 투자하기 전에 수요를 살핀다. 또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위험이 따르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비용효율적인 측면을 따져본다.정부가 나서서 지원을 하기에 딱 좋은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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