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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와 분석이 만능은 아니다

데이터와 분석이 만능은 아니다



미국 자본주의를 불안에 빠뜨린 유령이 나타났다. 프랑스 경제학자는 아니다. CEO 연봉에 80%의 글로벌 소득세율을 부과하자는 토마스 피케티의 제안이 실현될 확률은 어차피 ‘제로’에 가깝다. 그보다는 ‘빅 데이터’와 ‘예측분석’이라는 유행어를 앞세워 부활한 프레드릭 테일러(Frederick Taylor, 미국의 경영학자)의 존재가 더 불안하다. 1911년으로 돌아가 그 이유를 살펴보자.

당시는 바야흐로 정치 진보주의의 시대였다. 그해 테일러는 저서 『과학적 관리론(The 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 서문에서 “과거에는 사람이 먼저였지만, 미래에는 시스템이 먼저”라고 썼다. 이런 사고방식은 바로 다음 해 대통령에 당선된 우드로 윌슨의 ‘개인의 권한보다 조직된 사회구조가 먼저’라는 생각과도 일맥상통했다.

테일러가 내세운 아이디어는 단순했다. ‘시간을 낭비하는 비합리적 요소를 모두 파악해 없애면 노동 생산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일단 경영자는 근로자의 행동을 관찰·기록·측정·분석해야했다. 직원이 자율적으로 일을 알아서 하거나 “그때그때 처리하기”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았다. 테일러는 복잡한 생산공정을 최소한의 단위로 나눠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단속 반복업무로 만들었다.

‘테일러주의’는 근로자와 이들의 작업방식을 엄격히 통제하는 독재주의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생산성이 높으면 소득도 높아진다는 원칙에 따라 그는 자신의 이론이 근로자를 구해준다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대로, 근로자가 버는 돈은 실제로 많아졌다. 테일러의 이론을 가장 훌륭히 실현한 공장은 헨리포드의 자동차 조립 생산공장이다. 테일러의 주장대로, 포드는 생산성이 가장 높은 근로자에게 통상보수의 2배에 가까운 인센티브를 줬다. 그러나 테일러의 분석 이론을 고지식하게 받아들인 포드식 모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장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과학적 관리는 데이터와 분석 결과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특성을 보인다. 대상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실질적 투자수익까지의 시간이 길지 않아 정당성의 근거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과학적 방식은 분명 매력적이다. 특히, 데이터 수집 및 분석 비용이 ‘무어의 법칙(프로세서의 속도가 18개월 만에 두 배씩 빨라진다)’보다 빠르게 하락하는 요즘은 그 매력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데이터와 분석 결과를 이용하면 우리 회사를 괴롭히는 문제가 무엇이든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데이터와 분석학의 사용이 위험하다는 뜻은 아니다.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바보다. 그러나 지나친 의존은 위험하다. 이점은 경쟁으로 쉽게 사라질 것이다. 무엇보다 데이터 및 분석학을 고지식하게 적용하면 직원 반발, 고객 이탈, 주주가치 하락 등의 부작용이 자주 발생할 것이다.

포드는 몰랐지만, GM의 CEO 알프레드 슬론은 알았다. 인간은 혼란스럽고 비합리적인 존재다. 단순히 원해서 원하고, 왜 원하는 지모를 때도 많다. 변덕을 부리거나 배은망덕하게 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멍청한 건 아니다.

테일러는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그의 눈에 근로자는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호기심도 없는 게으른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소모품이 됐다. 예측 가능성과 관리 통제를 지나치게 강조해 소득은 많아졌지만 노동은 하찮고 지루해졌다. 테일러는 여기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근로자들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러나 결국 생각을 바꿨다.

테일러의 실수는 결국 반복될까? 그럴 조짐이 보인다. 아마존을 보라. 데이터와 분석에 충성을 바치지만, 기술 및 소매 사업에서 직원 이직율은 최고 수준이다. 데이터를 통한 효율 제고로 아낀 돈을 사원 모집과 고용, 유지비로 다 쓰고 있다.

반면에, 애플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회사다. 물론 애플도 데이터를 기준으로 운영 및 재무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애플의 부활을 이끌었던 공동설립자 스티브 잡스는 인간의 비합리성을 없애야 할 약점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인간 본성의 혼란스러움을 기꺼이 수용하고 발전시켰다. 시장 데이터도 의심의 눈길로 바라봤다. 잡스가 틀렸던 적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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