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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INDUSTRY - 중국 시장 노리는 할리우드의 고민

FILM INDUSTRY - 중국 시장 노리는 할리우드의 고민

(맨 왼쪽부터) 베이징에서 영화 ‘트랜센던스’를 홍보하는 조니 뎁(2014년 3월 31일).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 개봉을 앞둔 홍보 행사에서 포스터를 들고 있는 중국 영화팬.



왕레리와 류지에는 팝콘과 3D 안경을 들고 베이징의 어두운 영화관 안으로 밀치고 들어가 좌석을 찾았다. 일찍 도착했지만 베이징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자리 잡은 이 호화로운 새 영화관은 좌석이 속속 차고 있었다. 그들은 조니 뎁 주연의 새 공상과학 스릴러 ‘트랜센던스’의 개봉 상영을 관람하기 위해 그 영화관에 갔다. ‘트랜센던스’는 미국에서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중국에서는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베이징에서 광고업에 종사하는 25세의 청년 왕은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HUMOR다. “시리즈 ‘캐리비안의 해적’이 나오면서부터 난 조니 뎁 팬이었다. 그는 언제나 별나고 대담했다. 하지만 이제 그가 좀 더 진지한 역할을 맡는 걸 보고 싶다.”

‘트랜센던스’는 중국에서 개봉일에 1140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미국의 1120만 달러보다 많다. 27개 시장 중에서 중국이 큰 차이로 최고 기록을 세웠다. 그런 현상은 중국 관람객들이 이끄는 새로운 영화관람과 마케팅의 추세를 여실히 보여준다. 중국인 대다수가 이전보다 많은 가처분 소득을 올리면서 그들의 영화 취향도 할리우드, 정부 검열관, 중국 국내 영화산업에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안겨주면서 계속 진화하고 있다.

아시아의 외화팬들이 흔히 그랬듯이 왕도 어린 시절 대하드라마에 나오는 멋쟁이 주인공들에 매료되면서 할리우드 영화와 사랑에 빠졌다. 특히 그의 경우는 ‘타이태닉’에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연기한 주인공이 영웅이었다. 이국적인 매력에 이끌린 것이다. 중국에서는 정부가 영화 제작을 엄격히 통제하며 줄거리에 대해 막강한 통제권을 갖는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할리우드 때문에 난 영화를 좋아하게 됐다”고 왕이 말했다. “빠져들기가 아주 쉬운 문화다. 저렴하고 재미있으며 변함이 없다. 이제 중국 시장이 시험대에 올랐다.”

‘타이태닉’ 이후로 할리우드 감독들은 중국에 비상한 관심을 쏟았다. 계속 확장되는 거대한 영화 시장이 중국이기 때문이다. 2013년 중국 영화관들의 매출은 전년도에 비해 27% 증가해 36억 달러에 이르렀다.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영화 시장이 됐다.

할리우드는 세계 최고의 영화산업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중국인들을 평생 관람객으로 만들려고 애쓴다. 톰 크루즈, 니콜라스 케이지 같은 미국 액션 스타들의 중국인 컬트 추종자들이 그 수단이다. 또 할리우드는 블록버스터 시리즈를 끊임없이 쏟아내면서 중국인 관람객들을 계속 유혹한다.

그러나 할리우드는 중국 당국의 저항에 직면했다. 그들은 외국 문화의 영향력을 제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30년 이상 경력을 가진 중국 영화 프로듀서 빅터 리는 이렇게 말했다. “예를 들어 ‘타이태닉’ ‘아바타’ ‘트랜스포머’처럼 거액의 예산을 쏟아 부은 영화가 중국인들의 영화관람 문화를 형성했다. 그 영화들이 중국에서 첫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위력을 발휘했다.”



‘타이태닉’은 빙산의 일각할리우드는 현대 중국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호텔 엘리베이터나 식료품점에서는 셀린 디옹의 ‘My Heart Will Go On’(‘타이태닉’의 주제곡) 같은 노래가 자주 들린다. 관광객들에게는 짜증나는 일일지 모르지만 중국인들은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부른다.

‘타이태닉’은 1998년 중국에서 처음 상영됐다. 미국에서 개봉된 지 1년 뒤였다. 중국에서 그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할리우드는 새롭고 수익성 좋은 중국 시장에서 첫 흥행 성공이라는 감질나는 맛을 봤다. ‘타이태닉’은 중국에서 흥행 수입 4400만 달러라는 기록을 세웠다. 2013년 3D판 재개봉도 큰 성공을 거뒀다. “모든 게 그 영화에 들어 있었다”고 왕이 격찬했다. “드라마, 역사, 미남 미녀… 게다가 시각적으로 더 멋진 영화로 재탄생했다.”

‘타이태닉’의 첫 개봉과 3D판 재개봉 사이에서 할리우드는 다른 영화 수십 편을 위한 대규모 팬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그에 따른 가처분 소득의 증가가 그 추세를 뒷받침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언스트&영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1인당 평균 가처분 소득은 2000년부터 2011년까지 네 배 이상 늘었다(760달러에서 3438달러로). 미디어·엔터테인먼트가 지출이 가장 크게 늘어난 분야 중 하나다. 2011년 한 해에 중국인들은 엔터테인먼트와 레크리에이션에 5470억 달러를 지출했다.

할리우드의 눈이 번쩍 뜨일 만도 했다. 베이징은 거의 하룻밤 사이에 아시아의 할리우드 전초기지가 됐다. 일류 배우들의 국제 홍보 투어에서 필수적인 도시로 자리 잡았다(이전에는 아시아에선 도쿄와 홍콩만이 거기에 포함됐다). 지난 3월 말 2주 사이에 베이징에서 할리우드 개봉작 3편의 스타들이 홍보 행사의 레드 카펫을 밟았다. ‘트랜센던스’ ‘캡틴 아메리카’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였다.

시장이 팽창하면서 왕과 같은 새로운 팬들과 할리우드 신화에 심취한 중국인들을 겨냥해 중국 전역에서 새 영화관들이 세워졌다.

“열세 살 때부터 영화관에 자주 가기 시작했다”고 왕이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2005년 새로 나온 ‘스타워즈’ 영화 ‘에피소드3 - 시스의 복수’를 보려고 줄을 서서 기다린 것이다. 줄을 선 사람들 중 일부는 ‘스타워즈’ 티셔츠와 의상을 입고 있었다. 그런 건 처음이었다.”

그때 왕은 이미 할리우드 영화 골수팬이 돼 있었다. “블록버스터 영화는 죄다 봤다. ‘해리 포터’ ‘미션 임파서블’ ‘아바타’ ‘트랜스포머’ 등. ‘쿵후 판다’와 ‘아이스 에이지’ 같은 대형 애니메니션 영화도 빼놓지 않았다.”

중국에서 인기 있는 영화는 대부분 가정친화적인 애니메이션이나 액션 영화였다. 대화나 복잡한 구성보다는 시각적인 효과에 초점을 맞춘 영화가 잘 전달되기 때문인 듯하다. 아울러 할리우드는 중국의 영화팬들을 끌어들이려고 여러 가지 묘안을 냈다. 중국인 배우를 출연시키거나(예를 들어 ‘아이언맨3’에 중국의 신예 여배우 판빙빙을 기용했다) 아예 영화를 중국에서 촬영하는 방식(예를 들어 ‘루퍼’는 원래 예고됐던 촬영지 파리 대신 상하이에서 찍었다)을 활용했다.

또 할리우드는 중국 영화제작자들이 도달할 수 없는 수준으로 애니메이션과 컴퓨터 그래픽 특수효과를 이용했다. 중국에서 최고 흥행수입을 올린 영화 10편 중 절반이 미국 블록버스터다. 1위는 13억9000만 위안(2억23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2009년 영화 ‘아바타’가 차지했다. 톱10 리스트에 오른 다른 할리우드 영화로는 ‘아이언맨3’ ‘타이태닉’ 그리고 최근 개봉된 슈퍼히어로 영화로 순식간에 10위권에 든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가 포함된다.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들과의 대결대사가 비교적 드문 슈퍼히어로 액션 영화들이 여전히 중국 흥행을 지배한다. 그러나 이제는 좀 더 미묘한 콘텐트의 수요도 커지고 있다. 중국인들이 할리우드 영화를 많이 보면서 더 스마트해지고 관심 분야도 넓어졌으며 안목과 기대치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호평을 받은 ‘라이프 오브 파이’와 ‘위대한 개츠비’처럼 문학을 바탕으로 한 영화만이 아니라 심지어 혹평을 받은 ‘트랜센던스’ 같은 영화도 신앙과 지위, 문화적 논란을 뛰어넘어 인기의 한계를 넓혔다. 왕은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 마블이나 DC 코믹스의 슈퍼히어로 영화라면 당연히 보겠지만 현란한 시각적 효과보다 구성과 인물 전개에 초점을 맞춘 영화도 난 좋아한다.”

다른 시장도 그랬듯이 중국에서도 할리우드는 특수효과와 액션이 많아 흥행이 확실시되는 영화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게을리 했다. 그러나 ‘트랜센던스’의 경우 미국이나 유럽에서 실패한 작품이 반드시 중국의 거대한 시장에서도 먹혀들지 않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중국 공산당의 검열중국인들의 영화 취향에 적합한 작품을 찾는 노력은 중국의 선전조직과 검열의 저항에 발목이 잡히기도 한다. 중국 당국은 여전히 중국에서 개봉되는 외화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외화 배급 쿼터가 연간 44편으로 완화되긴 했지만 중국의 영화 검열 당국[중국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SARFT)]은 변덕스럽고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SARFT는 중국의 유일한 등급 판정 기관이다. 따라서 중국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모든 작품은 모든 연령층에 적합해야 한다. 선정적인 장면이나 성인용 언어와 주제는 제외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할리우드로서는 그게 주된 제한 요소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최근 개봉된 영화 10편 중 7편중은 R등급(17세 미만 반드시 부모/보호자 동반)이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상영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거기에다 막대한 잠재적 수익성과 관람객들의 관심 분야 진화가 합쳐지면서 이제는 중국의 국내 영화산업이 할리우드보다 유리한 입장이다. 중국 배우들이 국내 시장을 계속 효과적으로 활용하리라는 기대가 크다. 최근 남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아시아 소사이어티 미중 영화 정상회의에서 소니 엔터테인먼트의 중국 제작발전 책임자인 디드 니커슨은 이렇게 말했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사회와 삶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다루는 영화를 보고 싶어한다. 피부에 와 닿는 영화 말이다.”

요즘은 중국 영화들이 국내 시장에서 할리우드와 경쟁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인기 있는 중국 영화들은 현대 중국인들의 삶에 관한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니커슨은 지적했다. 연예 전문지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2013년 중국 영화들의 국내 흥행 수입이 144% 늘어 11억 2000만 달러에 이르렀다. 반면 수입 영화들은 21%가 줄어 6억7000만 달러의 흥행 수입에 그쳤다.

니커슨은 흥행에 성공한 중국 영화 ‘로스트 인 타일랜드’를 예로 들었다. 한 발명가가 투자 유치를 위해 주주를 찾아나서는 간단한 코미디 영화다. 하지만 중국의 서민들이 공감하는 문제(출세와 재물에 대한 야망)에 초점을 맞췄다. 이 영화는 ‘타이태닉’과 달리 컴퓨터 그래픽이나 거액을 들인 액션 장면 없이 중국 시장에서 성공했다. 게다가 검열 통과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왕의 친구인 류는 중국인 영화 관람객의 진화 덕분에 선택의 여지가 넓어져 무척 좋다고 말했다. 중국인들의 할리우드 사랑 초기는 블록버스터였다. 류는 그런 영화가 “갈수록 물리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우리 안목이 높아지면서 그런 영화에서 벗어날 시기가 곧 온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나뿐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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