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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THEN & NOW - 톈안먼 사태에 무관심한 중국 젊은이들

CHINA THEN & NOW - 톈안먼 사태에 무관심한 중국 젊은이들

1989년 6월5일 중국 베이징 중심가 창안제(長安街)에서 한 남성이 맨몸으로 4대의 탱크를 막아 섰다.



베이징에서 근무하는 25세의 금융 분석가 링(성은 밝히지 않았다)은 중국 정부에 가진 불만을 꼽자면 한이 없다. 하지만 톈안먼 광장 시위의 기념식을 막는 검열은 그 리스트에서 순위가 한참 뒤로 밀린다. “오염, 부동산 시장 거품, 빈부격차, 경기둔화…. 그런 게 내 관심사”라고 링이 말했다.

25년 전 6월, 수많은 학생이 중국 각지에서 집회를 갖고 문화혁명 이후 중국의 정치탄압, 부패, 경제적 연고주의를 규탄했다. 홀로 탱크와 마주선 남자 등 톈안먼 광장에서의 대치 이미지들은 외부 세계에 상징적이고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중국 국내 상황은 다르다. 중국의 20대 중 다수는 그 이미지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봤든 못 봤든 그들은 과거보다 미래에 훨씬 더 관심이 많다.

“죽음을 기억해야 할 필요성은 정말 이해한다. 하지만 25년 전에 일어난 일의 검열에 이 모든 시간·노력·자원을 들일 만한 가치는 없다고 본다”고 링이 IB TIMES에 말했다. “미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링은 어쩌면 대학 교육을 받은 야심적인 중국 청년 근로자 다수의 견해를 대변할지도 모른다. 대졸자들의 취업현황이 사반세기 전 조국의 청년들이 죽음도 불사하려던 정치적 관심사보다 훨씬 더 긴박한 문제다.

그러나 그런 냉담한 듯한 태도는 단순히 젊음이나 자기중심적 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 역사에서 1989년의 사건들을 걷어내려는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정부 캠페인의 결과이기도 하다. 톈안먼 사태 이후 중국 정부는 억류 또는 검열을 동원해 잠재적인 운동가들에게 재갈을 물렸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25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최소한 64명의 개인이 이미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그 결과는 일시적 억류로부터 심할 경우 공식적인 체포까지 이어졌다. 중국 내 운동가 단체인 ‘중국인권수호자들’의 전언이다.

온라인에선 중국의 방대한 검열 메커니즘이 풀 가동된다. 모든 관련 검색 키워드(예컨대 발생일자 ‘4/6/1989’나 광장을 관통하는 ‘창안제’ 등)가 지역 검색엔진들, 영어와 중국어 뉴스 사이트,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차단된다. 국영 매체는 그 주제를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는다.

중국 젊은이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교육수준이 높고 첨단기술에 정통하다. 하지만 그 시위 운동에 관한 대중적인 공개토론을 억제하려는 중앙정부의 노력은 광범위하고 효과적이었다. “나는 중국에 있을 때 톈안먼 사태에 관해 전혀 몰랐다.” 자신을 시옹으로만 밝힌 27세의 전 경영 컨설턴트가 e메일에서 말했다.

1989년 6월 6일, 베이징의 고가도로에 탱크들이 배치된 가운데 자전거 통근자들이 터널 쪽을 향해 나아간다.
해외유학을 떠난 뒤에야 조국의 최근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을 인식하게 됐다. “캐나다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뒤 주변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는 그에 관해 찾아보고 리서치 하기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다큐멘터리를 보고 부모와 그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6월 4일의 의미를 발견하는 건 해외유학 기회가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경험이다. “홍콩으로 유학을 갈 때까지 그에 관해 몰랐다. 홍콩의 본토 영사관 앞에서 일어난 시위에 관해 신문에서 읽었다”고 링이 말했다. 중국 국내에 남아 학업을 계속했던 사람들의 경우 그 시위에 관해 아는 사람들의 숫자는 훨씬 작다.

베이징 대학은 거의 틀림없이 중국 최고의 대학이다. 그 학교의 조사 대상 학생 100명 중 유명한 ‘탱크 맨’ 사진을 제대로 알아본 사람은 15명에 불과했다. ‘기억상실인민공화국(The People’s Republic of Amnesia: Tiananmen Revisited)’의 저자인 미국 NPR 방송 특파원 루이사 림의 조사 결과다.

“내가 인터뷰한 학생들은 중국의 최고 인재, 최고의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라고 림이 자신의 저서에 썼다. “하지만 그들 중 대다수가 그 사진을 보고 아주 작은 낌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코소보인가요?” 한 천문학 전공자가 물었다. 마케팅 박사 과정에 있는 한 학생은 어림짐작으로 말했다. “한국에서 있었던 일이지요?” 그러나 역사를 배운 링과 시옹 같은 사람들도 대체로 무관심하다.

“검열의 목적은 대중심리를 안정시키고, 당에 대한 인민의 신뢰를 굳건히 하고, 궁극적으로 당의 주권을 확립하는 일”이라고 시옹이 말했다. “국가 개발을 주도하는 당의 능력에 의문이 많았다. 언론 자유의 제한이 사회 안정에 도움이 된다.” 링은 “톈안먼과 관련된 내 생각이 그렇게 명백하게 당에 의해 형성됐다니 아주 묘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나도 이것이 기억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다”고 링이 말했다. “하지만 그것을 경시하도록 만드는 뭔가를 정부가 내게 심어놓은 모양이다.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나로선 경제 안정과 개혁 같은 다른 일들이 훨씬 더 큰 우선과제로 여겨진다.”

시옹은 그 시위가 더 널리 알려졌으면 하고 바란다. 반란을 선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 전체적으로 과거를 잊고 새출발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것은 중국 근대사의 일부다…. 일단 중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실수를 인정하고 나면 세상 사람들이 당의 실수를 ‘용서하고’ 나아가 중국 지도부의 용기와 성장을 존중할 것이다.”

중국 정부의 계획에서 그런 시나리오는 없는 듯하다. 공산당은 계속 자신들이 원하는 문제에서만 기억을 강요한다. 중국인들은 마오쩌둥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모든 위안화 지폐에 그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그들은 추유안(屈原)을 결코 잊지 못한다.

매년 국경일 두안우지에(端午節)를 국경일로 정해 놓고 그 초나라의 유명한 시인이자 재상을 기념한다. 그리고 영유권 주장도 분명 잊지 못한다. 중국은 그 문제를 두고 일부 이웃나라들과 분쟁을 일으켰다. 그 문제는 최근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다시 부상했다. 그런 긴장은 국영 매체에서 거의 매일 재현된다.

그러나 1989년 6월 4일은 잊혀져야 하는 날임을 중국 정부는 분명히 했다. 그날 베이징에서 일어난 사태를 말해주는 가시적인 흔적이라곤 누구든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을 제압할 채비를 갖춘 정복과 사복 치안 요원들의 존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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